전자금융거래법 개정의 의미와 주요 쟁점
1. 들어가며
우리나라에는 인터넷뱅킹 등 전자금융거래에 대한 안전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고 전자금융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전자금융거래법(이하 전금법)이 있다. 전금법은 2007년 1월 시행 이후 인터넷뱅킹, 홈트레이딩(HTS) 등 전자금융거래의 성장 및 안정화에 크게 기여했다.
2010년대의 스마트폰의 대중화와 더불어 빅데이터·AI·클라우드 등 디지털 신기술 도입 및 성장으로 최근에는 핀테크, 빅테크 등 새로운 금융시장 참여자가 등장하고 금융산업 구조가 변화되는 금융의 디지털 전환을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전금법은 2007년 제정 이후 제도적인 큰 변화 없이 그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에 통과된 법이라서 현재와 같은 디지털 금융의 큰 변화를 제도적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와는 달리 EU 등 주요 국가에서는 이와 같은 디지털 금융의 변화 및 중요성을 인식하고 경쟁과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빅테크 등의 새로운 Player의 등장을 담은 「EU : 지급결제산업지침(PSD2: The revised Payment Services Directive)(‘18)」등 법률을 제·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위원회는 2020년 7월 27일, 디지털금융의 혁신과 안정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한 「디지털금융 종합혁신방안」을 발표했고, 후속 작업으로 국회 정무위에서는 2020년 11월 27일 전자금융거래법 일부개정안(윤관석의원 등 12인)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총 4개 분야 16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그림 참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전자금융거래법 전면 개편 수준으로 보인다. 그런데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개정안 찬성 여론과 한국은행, 금융노조 등 금융권의 반대 여론이 대립하고 있어 전금법 개정안은 8개월째 국회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하에서는 전금법 개정안의 주요 쟁점을 ‘(가) 종합지급결제업 신설’, ‘(나) 전자지급거래청산업의 제도화’, ‘(다) 금융회사의 전자금융사고 책임 범위 확대’로 구분해 살펴보고자 한다.
2. 전금법 개정안의 주요 쟁점
가. 종합지급결제업 신설
이번 전금법 개정안에는 ‘종합지급결제업’라는 신규 라이센스를 도입했다. 종합지급결제사업자는 이용자에게 계좌를 개설해 주는 방법으로 자금이체업을 하면서 별도의 등록 없이도 대금결제업과 결제대행업을 함께 영위할 수 있으며, 대금결제업에 대해서는 30만원 수준의 후불결제업무도 허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종합지급결제사업자는 금융결제망에 직접 참가해 이용자의 급여 이체, 결제, 송금, 투자, 보험료 지급 등 기능을 가지는 계좌 기반의 금융 라이프 플랫폼 구축이 가능하다. 여기다가 계좌를 기반으로 은행 수준의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은행법 등 규제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물론 은행과 같은 여신·수신 업무는 금지되며, 이자지급 금지 등의 제약사항도 존재한다.
금융위는 하나의 금융 플랫폼을 통해 간편송금, 결제 외 계좌 기반의 다양한 전자금융업무를 한 번에 제공할 수 있는 혁신적인 대형 사업자를 육성할 필요가 있다며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빅테크 기업 등은 여신·수신 기능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은행과 같은 건전성 규제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내세우며 개정안에 찬성하고 있다.
반면 금융노조 등 금융권에서 종합지급결제사업자는 기존 금융회사가 하던 업무의 대부분을 수행하면서도, 금융회사가 받던 규제는 대부분 받지 않게 되는 것이며, 금융시장에서의 동일 행위에 대한 동일규제 원칙이 무너지는 빅테크 특혜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지방은행 등 영업 기반이 약한 중소형 금융회사는 법 개정시 빅테크의 공습에 의해 영업력이 크게 약화될 것으로 판단하고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다.
나. 전자지급거래청산업의 제도화
청산이란 거래에 따라 생기는 채권·채무관계를 계산해 서로 주고받을 금액을 확정하는 것을 뜻한다. 즉, 금융회사에서 자금이체 등 거래가 발생할 때 금융회사 간에 매번 금액을 정산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 동안 발생한 거래를 계산해 한 번에 돈을 정산하는 것을 의미하며, 현재 전자지급거래에서 청산 업무는 금융결제원이 수행하고 있다. 이번 전금법 개정안은 전자지급결제청산업을 제도화했다. 자세히 살펴보면, 금융위에 전자지급거래청산기관에 대한 허가 및 감독 권한을 부여하고, 기존 청산기관인 금융결제원은 허가를 받은 것으로 간주하는 내용을 개정안에 담고 있다. 이와 더불어, 빅테크가 디지털 금융산업 진출시 외부거래1 뿐만이 아니라 내부거래2에 대해서도 외부 전자지급거래청산업자를 통한 청산이 의무화된다. 참고로, 내부거래에 대한 청산 의무화는 은행 등 기존 금융회사에 대해서는 규제하지 않고 있던 사항이며, 금융위는 빅테크가 은행보다는 내부통제 수준이 낮을 것으로 판단해 내부거래 발생시 내부에 기록만을 남기는 것(은행이 처리하는 방식)보다는 청산기관에 기록을 남겨 두어서 투명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금융위는 그동안 기관 간 협약으로 운영돼 온 디지털 지급거래 청산 제도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근거를 만들고, 금융결제원과 같은 청산기관에 대한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해 디지털 지급 결제의 안전성을 확보할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또한, 빅테크 등에 대한 디지털 금융거래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외부거래뿐만이 아니라 내부거래에 대해서도 외부 청산기관에 의한 청산의무 부과가 필요하다며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행은 한은법 제28조에 의거해 지급결제제도의 운영·관리에 대한 권한을 한국은행(금융통화위원회)이 갖고 있으므로 전금법 개정안은 한은법에 명시된 한국은행의 권한을 침해하는 월권행위에 해당되고 금융결제원에 대한 이중규제에 해당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정무위원회 이용우 의원은 “빅테크가 가장 발달한 중국의 왕롄조차 내부거래를 제외한 외부 금융회사와의 거래만 외부청산하고 있고, 지급결제시스템은 비영리 공공적 인프라로써, 운영하는 기관은 통상 민간 자율협약으로 유지하는 해외 관행을 고려하여 중앙은행 감시 아래 두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한국은행 의견을 지지하고 있다.
다. 금융회사의 전자금융사고 책임 범위 확대
현 전금법 제9조에 의하면 금융회사의 무과실 책임 범위가 한정되고 이용자의 고의·중과실 범위가 넓어서 인터넷뱅킹 불법 이체 등 대부분의 전자금융사고 소송에서 소비자가 패소하고 있다. 반면, 해외의 경우 전자금융사고에 대해서 원칙적으로 금융회사가 배상책임의무를 지고 있어 국내 금융회사의 금융사고 예방 노력 부족 및 이용자 예방 의무 전가에 대한 비판이 있어 왔다.
이에 따라, 금융위는 현행 접근매체의 위·변조, 해킹 등으로 획득한 접근매체의 이용 등 특정한 기술적 유형으로 제한되고 있는 금융회사의 책임을 ‘이용자가 허용하지 않은 전자금융거래(무권한거래)’로 인해 발생한 사고까지로 그 책임 범위를 확대하고, 해당 비대면 거래가 금융회사가 관리·운영하는 영역 외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이나 오류 없이 비대면 거래를 처리한 사실을 금융회사가 입증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해 디지털금융에서 비대면 거래 이용자를 두텁게 보호하려고 하고 있다.
반면 은행 등 금융권에서는 금융회사의 무과실책임 범위를 과도하게 높이면 이용자의 사기 공모 등이 빈발하게 발생할 수 있는 등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3. 나가며
음악 용어에 조율이란 단어가 있다. 악기의 음을 표준음에 맞게 조정해 연주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든 것을 말하며, 문제를 어떤 대상에 알맞거나 마땅하도록 조절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악기를 연주하는 공연에서 악기가 표준음에 맞게 조율이 되지 않은 상태로 연주를 하게 되면 악기가 가지는 음색이 변하게 되고 음정이 맞지 않아 아름다운 소리를 얻을 수 없어 공연에 실패하게 될 것이다. 이렇듯 음악 공연에서 악기의 조율은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음악 공연에서 악기 조율이 중요하다는 원리가 이번 전금법 개정에도 적용된다고 느껴진다. 이번 전금법 개정은 4차 산업혁명 및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맞는 디지털 금융산업의 혁신을 통해 글로벌 수준의 디지털금융 유니콘 출현을 유도하고 혁신적 핀테크 아이디어에 기반한 창업이 활발해지고 양질의 일자리도 창출해 디지털뉴딜 등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정책 방향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전체 16개 개정 항목 중 일부 사항에 대해서 금융노조, 한국은행 등 관계 기관들과의 정책 조율이 부족해 개정안 통과가 지연되고 있다. 멋진 그랜드 피아노를 사 놓고도 조율을 제대로 못해 연주를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전금법 개정안의 정책 목표는 바람직한 방향인 것으로 판단되므로 국회, 정부, 금융권, 빅테크 등 관련 기관들이 모두 적극적으로 소통 및 협상하고 원만하게 정책을 협의 및 조율하여 전금법 개정이 통과되길 기대한다.
[참고문헌]
- 국회, 전자금융거래법 일부 개정안 (2020.11.27.)
- 금융위원회 보도자료, 디지털금융의 혁신과 안정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 「전자금융거래법」의 전면 개편을 추진하겠습니다. (202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