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평] 미국 다큐멘터리, <소셜딜레마>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언은 언제 어디에서나 진리로 통한다. 인간은 개인으로 존재하고 있어도 홀로 살 수 없으며, 사회를 형성해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관계를 유지하고 함께 어울림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동물이라는 의미이다. 즉, 개인은 개인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최근 등장한 SNS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점을 보다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s)의 약어인 SNS는 서비스 사용자들 간에 서로 관계를 맺거나 사이트 내에서 공통된 목적을 가진 사람과 만남을 갖는 등 새로운 인맥을 만들어가는 것을 목적으로 개설된 인터넷 서비스이다. 이는 개인의 생각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고, 한 개인이 온라인상에서 불특정 다수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의 특징은 즉시성, 공유성, 실시간성, 상호작용성, 집단여론성이다. 즉, 스마트폰 보급의 증가에 따라 이용자들이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SNS를 이용할 수 있으며, 자신이 만들어 낸 콘텐츠를 자신이 속한 소셜 그룹에서 공유할 수 있다. 또한 SNS의 양방향성을 활용해 정보나 의견을 교환하고 이를 통해 콘텐츠의 제작, 수정 등 일반적인 활동이 누구나 가능하게 되고, 이런 활동을 통해 얻게 되는 정보가 커뮤니티를 통해 개방적이고 지속적으로 축적되고 발전됨으로써, 거대한 여론이 만들어진다는 특징을 담고 있다.
그런데 SNS는 온라인을 통한 인간관계 맺기, 그것도 불특정 다수와의 관계 맺기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면서 다양한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 SNS가 가져오는 사회적 폐단에 대한 경고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버전으로 제작, 방영되고 있어 화제다. 소셜 딜레마(social dilemma)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보통 바람직한 것으로 간주되는 사회적 관계의 확대가 더 큰 해악을 가져오면서 SNS 역할의 확대나 축소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줄거리는 대강 이렇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SNS 플랫폼 기업이 이용자를 플랫폼에 오랜 시간 잡아두기 위해 추천기능, 좋아요 기능을 이용하고 있으며, 보고 싶은 것만을 보여주면서 이용자를 조종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온라인상의 활동 내역을 분석해 이용자 성향에 맞춘 광고를 노출시켜 상품 구매를 유도하고 있다고 한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런 과정을 지배, 통제하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이(AI)라는 것이다. AI는 이용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가짜뉴스를 추천한다. 중요한 것은 이용자의 관심사일 뿐 노출되는 정보가 사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것이 반복되면 이용자에게도 정보의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AI가 제공하는 사실만을 진실로 믿으면서 인간의 행동을 조정하게 되는 것이다. 더 커다란 문제는 믿고 싶은 정보만을 믿고 상대를 배척하면서 좌우의 극심한 대립이 나타나고 있고 이에 따라 토론과 대화를 통해 최적의 대안을 마련하는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인 내용을 보자. 먼저 우리는 SNS을 무료로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의 관심을, 나아가 우리 자체를 상품으로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품의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당신이 상품이다(“If you’re not paying for the product, you are the product.”). 우리와 우리의 관심이 광고주에게 팔리고 있다(We’re the product. Our attention is the product being sold to advertisers.”). 개인의 점진적이고 눈에 띄지 않는 행동과 인식의 변화가 상품이라는 것으로 결국 관심을 중독으로 발전시켜 구매를 유도하는 SNS 비즈니스 모델을 설명한다.
SNS 기술의 특성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트리스탄 해리스(Tristan Harris) 전 구글 디자인 윤리학자는 보통 기술은 인간이 필요할 때 사용하는 도구이지만 “소셜미디어는 인간에게 사용되길 기다리는 ‘도구’가 아니며 “소셜미디어는 특정한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인간 심리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또한 사용자의 모든 관심, 취향을 파악한 SNS와 광고주는 누가, 어디에서 검색하는지에 따라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페이스북에 대해 ‘25억 개의 트루먼쇼’ 라고도 덧붙이면서 이를 마술사에게 홀린 상황으로 묘사한다. 나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소셜미디어가 마법사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모은 방대한 데이터에 있다. 내가 ‘좋아요’를 누른 글과 콘텐츠, 재생한 영상, 문자를 보낸 상대는 물론 SNS 활동 시간까지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다큐멘터리는 충분히 발달한 과학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Any sufficiently advanced technology is indistinguishable from magic.”)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이 모든 조종 과정은 AI 알고리즘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알고리즘은 객관적이지 않으며 기업의 이익에 봉사하도록 설계돼 있다고 한다.
셋째, SNS 중독으로 인한 폐해 관련 언급이다. MIT 연구에 의하면 트위터에서 가짜뉴스는 진짜 뉴스보다 6배 빨리 퍼진다고 한다. 또한 판단력과 자제력이 부족한 미국 10대 여학생 중 자해로 입원한 사람의 수가 3배 증가했고, 15세~19세 여성의 자살률은 70%, 14세 이하 여성의 자살률은 무려 151% 증가했다고 한다. 나아가 2016년부터 올해까지 계속하고 있는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피자가게 지하에서 아동 성매매 조직을 운영했다는 음모론인 피자게이트 등처럼 소셜미디어는 사람들의 판단력을 잃게 만들고, 아무도 진실을 믿지 못하게 하면 결국 극심한 좌우 대립으로 민주주주의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다큐멘터리는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는 개인에게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잠자리 들기 30분 전에는 스마트폰을 끄라는 등 개인적 노력의 필요성을 말하는 동시에 소셜미디어 기업에게 윤리적 행동을 촉구한다. 또한 플랫폼이 수집하는 데이터량에 따른 데이터세 부과 등 국가가 소셜미디어 기업을 규제할 것을 촉구한다.
사실 그동안 SNS의 폐해를 지적하는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올해 10월, 10년 만에 개정된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인터넷이 인간의 뇌에 미친 영향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결과를 보여주고 있고 작년 7월 출간된 프랭클린 포어 의 “생각을 빼앗긴 세계”는 인간의 모든 삶이 거대 테크기업에 의해 지배당하는 가운데 이로 인해 파괴되는 우리 삶을 묘사하고 있다. 이 점에서 이 다큐멘터리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다만, 주요 SNS 기업에 근무했던 직원들의 고발 형식이라는 점이라는 것과 영상을 통해 문제점을 보여주는 것이 보다 강력한 체험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자본주의 경제활동에서 기업이 소비자의 구매를 유도하기 위해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할 수 있으면 바로 구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인터넷과 SNS의 발달은 이런 소비자의 관심 분석을 보다 쉽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기업의 노력이 과도해지면서 인간을 지배, 조정하는 단계까지 이르면서 인간 존엄에 관한 문제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SNS와 인터넷이 사회적 관계나 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대폭 확대하는 등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하고 있고 혁신을 통해 산업과 경제를 이끌어 가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다만, 자동차를 개발하고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안전한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를 상상하기 어렵듯이, 아무리 유용하고 필요한 기술, 서비스라고 해도 적절한 위험방지 수단이 강구되지 않으면 그것은 인간의 존엄과 자율적인 삶에 위협이 될 수 있다. 이제 플랫폼 경제, 데이터 경제의 흐름을 인정하고 혁신을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하겠지만 기업의 자정 노력, 개인의 적절한 통제력 행사는 물론 국가의 플랫폼 규제 방안을 고민할 시기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