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규제 모델의 발전을 위한 모색
*1. 문제제기
인터넷은 법적 진공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법은 현실 공간에 적용되는 것처럼 인터넷 공간의 활동들에도 적용된다. 만약 오프라인에서 어떠한 것이 불법이라면, 온라인에서 또한 불법이다. 문제는 어떠한 종류의 규제를 택할 것이냐다. 우리 정부를 비롯, 유럽연합 국가, 미국과 중국 등 많은 정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인터넷 규제를 시도하여 왔다. 하지만 이러한 규제에 대한 정당성과 실질적 효과에 대한 비판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인터넷 공간에서의 자유와 규제를 둘러싼 담론들은 아직도 완성되지 않은 논쟁으로 남아있다. 저작권 분쟁, 개인정보 보호 등 다양하고 광범위한 인터넷 규제의 영역 속에서 이 글은 불법 유해정보를 둘러싼 인터넷 내용규제의 근거와 현실에 적용되는 다양한 모습을 비판적으로 살펴보며 향후 대안적 규제 모델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켜보고자 한다.
2. 인터넷 규제의 다양성
세계 각국 정부의 인터넷 규제는 인터넷의 대중화가 가속화된 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본격화되기 시작했다는 시대적 동일성을 제외하고는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해왔다. 각국 인터넷 규제의 차이는 크게 인터넷의 매체적 성격을 바라보는 인식의 상이함과, 인터넷 매체를 둘러싼 상이한 사회적, 제도적 규제 구조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강력한 정부규제와 검열을 시행하고 있는 나라가 있는 반면, 인터넷규제의 근간을 인터넷 산업체와 사용자들의 자율규제에 두고 있는 곳도 있으며, 정부규제와 자율규제가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하는 공동규제를 채택하기도 한다. 또한, 이에 따라 필터링 등의 기술적 규제 방식에 대한 접근과 활동도 사뭇 다르다.
이러한 다양한 인터넷 규제의 스펙트럼을 장우영(2006: 41)은 정부의 개입 정도를 기준으로 방임, 균점, 과점, 독점의 네 가지 형태로 구분하고 있다. 하지만 대외적 안전보장과 대내적 질서 유지가 기본적 책무인 국가 권력에게 정보에 대한 통제 또한 본질적 임무(고경민, 2003: 65)라는 측면을 고려할 때1), 인터넷 규제의 영역에서 정부가 완전한 방임적 입장을 취하는 예는 사실상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현실의 인터넷 규제는 정부의 개입 정도에 따라 독점, 과점, 균점으로 나누어진다고 할 수 있다.
2.1. 독점적 규제
이들 중 규제의 독점 양상은 대부분 일당(one-party) 지배 체제의 전체주의 국가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독점의 형태는 다시 ‘엄한 제한(severe restriction)’과 ‘현저한 제한(significant restriction)’으로 구분된다. 전자의 예는 미얀마와 쿠바 정부의 인터넷 규제 정책에서, 후자의 예로는 중국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정보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빼앗는 이들 국가의 규제 정책은 비단 인터넷 매체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맥락 속에서 기존의 매체 영역에 적용되어 온 강력한 국가 중심의 규제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이해되다. 고경민은 이들 국가의 “인터넷 정책은 독자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거시적인 또는 보다 상위 정책의 구속을 받아 형성”된다고 파악했다(고경민 2003; Kalathil, 2003). 하지만, 중앙집권적인 정보의 독점적 통제는 자국 내 인터넷의 정상적 성장을 가로 막음으로써, 국민들의 알 권리를 포함한 표현의 자유를 현저하게 제약하고 있다는 국제적인 비판을 받고 있다.
2.2. 과점적 규제
반면,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는 국가들에서 인터넷 규제의 형태는 과점 혹은 균점의 양상를 띠고 있다. 여기서 과점적 규제는 정부의 우월적 권한을 중심으로 운영되며 규제의 합리성보다는 규제 목표 달성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규제 시스템으로 이해되고 있으며(장우영, 2006: 42), 일반적으로 정부의 강력한 권한과 집행력에 기초해서 민간 영역을 위계(hierarchy)적으로 규제과정에 참여시키는 방식을 띤다(황승흠 외, 2004).
과점적 규제는 독점적 규제 시스템과 비교하여 정부의 우월적 권한과 위계 구조에 기초하고 있다는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중앙집중적인 정보의 독점과 통제가 배제된 규제 형태라는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과점적 규제 시스템에서 매체들은 정부 주도의 개별적 통제를 받으며, 민간 영역의 참여와 역할은 균점적 규제와 비교할 때 상당히 제한적이라 할 수 있다. 인쇄 출판물을 비롯하여, 영상 음반물과 인터넷 매체 등 각기 표현 매체를 위한 법정 심의기관들을 두고 심의기관별 등급분류제를 실시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과점적 규제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매체특성에 기반 한 규제 접근 방식(medium-specific regulatory approach)의 관점에서 볼 때, 인터넷에 대한 정부의 과점적 규제는?인터넷이라는 전 지구적 매체에 대한 개별 국가의 법규제 적용범위의 문제, 매체 환경의 빠른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법규제의 낙후성 문제 등에 직면해 있을 뿐만 아니라, 독점적 규제에서와 마찬가지로 검열 논란을 일으킬 위험을 배태하고 있다.
2.3. 균점적 규제
이러한 맥락에서 미국, 호주, 유럽연합 국가들을 비롯한 많은 정부들이 인터넷 내용 규제 영역에서 균점적 규제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는 정부가 불법 정보에 대한 종국적인 규제력을 행사하면서도, 민간영역의 자율규제 노력을 지지, 지원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균점적 규제 형태는 “민간 영역이 전통적인 정부 영역에 해당되었던 규제영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정부 영역은 이러한 민간의 활동과 역할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협력 지원함으로써 규제의 합리화 및 효율성을 추구하는 규제 방식”으로 정의 된다(황승흠 외, 2004: 8). 하지만, 각국의 규제력 균점 형태는 고유의 사회 정치적 배경에 따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를 크게 두 가지로 유형화 해보면, 첫째는 사업자와 사용자들의 자율규제와 함께 시장기능에 인터넷 규제의 근간을 두고 있는 유형이고, 둘째는 이보다 세분화된 규제력의 균점을 기반으로 자율규제와 정부규제가 상호보완적으로 작동하는 공동규제를 채택하는 유형이다.
시장 중심의 규제 흐름은 미국의 예에서 찾아볼 수 있다 . 미국연방정부는 1996년 ‘Communication Decency Act’와 1998년 ‘Child Online Protection Act’의 연이은 입법을 통해 포괄적인 인터넷 내용규제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 규제 시도들은 시민 단체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고, 미국의 연방 대법원은 연거푸 이들 규제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2000년 연방 보조금을 담보로 공공 도서관과 학교에 필터링 소프트웨어의 설치를 사실상 의무화하는 ‘Children’ s Internet Protection Act’를 제정하였지만 이는 기술적 해법을 통해 정보 이용자를 간접적으로 규제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정보제공자에 대한 형사적 처벌을 전제로 하였던 앞서의 포괄적 인터넷 내용규제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이후 연방 정부 차원에서의 인터넷 내용규제 시도는 일단락된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산업계의 자율규제와 등급제 및 필터링 소프트웨어를 비롯한 자율적 기술규제의 활용을 적극 지지한 미국 정부의 입장과 필터링 소프트웨어의 활용을 중점에 둔 ‘어린이 인터넷 보호법’은 상업 필터링 소프트웨어 시장의 놀라운 발전에 큰 힘이 되었다.이런 의미에서 미국 인터넷 내용규제 정책은 인터넷 공간의 불법정보에 대한 정부의 최소 규제와 유해정보 영역에 대한 사업자와 사용자의 자율규제에 바탕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시장 중심의 규제 흐름은 시장 기능이 실패했을 때, 정부가 신속하고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미비되어 있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한편, 인터넷 내용규제의 맥락에서 공동규제란 정부, 인터넷 산업체, 사용자 등 모든 규제 관련 주체들이 불법 유해정보의 문제에 다각적인 접근 방식으로 공동 대응해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공동규제는 인터넷 사업자들의 자율규제 노력, 그리고 규제 당국의 법적 규제가 공통의 규제 목표를 위해 상호 보완적인 합동 규제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으로, 자율규제와 법 규제를 아우르는 확장된 개념의 규제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김유승, 2005b: 93).
1999년부터 유럽연합의 “Action plan for promoting safer use of the Internet”을 통해 시행되어 온 공동규제는 인터넷 산업체의 ‘자율규제’, 기술적 해법으로써 ‘자율 등급 및 필터링’ , 불법 정보에 대한 일반 이용자들의 신고를 받아 처리하는 ‘인터넷 핫라인’ , 규제 당국의 ‘법규제’ , 그리고 사용자들의 ‘미디어 리터리시’를 다섯 가지 핵심요소로 한다(Waltermann & Machill, 2000; 황승흠 외, 2004: 28). 이 규제 모델은 유해정보 규제에 있어서는 다중 주체가 참여하는 자율규제와 기술적 해법을 채택하는 한편, 불법 정보의 규제는 법집행기구의 승인 혹은 지지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황승흠 외, 2004: 29). 유럽연합의 “Action Plan”은 전체 예산의 60% 가까이를 인터넷 이용자들의 미디어 리터리시 고양을 위한 미디어 교육 및 자각 운동(Awareness campaign)에 할애할 정도로 중점을 두고 있다(European Commission, 2003). 하지만 이러한 이용자 교육과 운동은 그 성과를 단기간에 평가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규제력의 균점에 기반 한 공동규제 모델은 다중적 규제 방식의 도입과 다양한 규제 주체의 참여 보장을 통하여 규제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이용자의 권한과 자율성을 확대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독점 및 과점적 규제 형태와 비교하여 진일보한 규제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3. 공동규제 모델의 발전을 위한 모색
3.1. 공동규제의 필요성
우리나라에서 표현물 매체에 대한 규제 시스템은 법정 심의기관들의 사전 혹은 사후 심의에 따른 등급분류제에 그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들 등급분류제는 전통적인 연령등급제를 채택하고 있다. 반면, 민간 혹은 사업자의 자율규제는 정부 규제의 보조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만한 성장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매체에 대한 정부의 과점적 규제시스템은 우리나라만의 상황이 아닐뿐더러, 특정매체 특히 방송 매체의 경우, 매체의 공공성과 공정성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방송 매체는 이용 가능한 전파의 희소성과 침투성이라는 규제 논리 아래 강력한 정부 규제의 대상이 되어왔다. 문제는 전통적 매체에 적용되고 있는 이러한 법정 심의기구 중심의 과점적 정부규제가, 매체적 특성에 대한 사려 깊은 고려 없이, 기존 매체 규제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인터넷에 그대로 적용되었다는 것이다. 인터넷 내용규제에서 정부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정부의 과점적 인터넷 내용규제 정책이 효과적인 규제 목표의 달성과 표현의 자유 증진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느냐는 점에는 많은 의문이 제기된다.
인터넷 정보에 대한 직접적인 정부 규제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다양한 도전을 받아왔는데, 이는 각국 정부가 새로운 매체의 독특한 성격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데 실패하였고, 탈중심적, 전지구적 구조와 구성 요소들을 지닌 인터넷에 기존의 내용규제의 틀을 적용한 데서 큰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 기본권이나 민주주의적 가능성은 종전과 다른 규제 방식을 요구하고 있으며, 국가, 시민, 기업이 모두 참여하는 합동 규제시스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정보통제권의 강화를 통해, 일방적 피규제자의 입장에서 피규제자와 규제자의 지위 모두를 점유할 수 있는 집단으로 변화하고 있는 이용자 집단의 성격과 인터넷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산업체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고려를 바탕에 두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제까지 우리나라의 내용규제는 전적으로 정부의 몫이었지만, 인터넷 시대에 이른 오늘날 공동규제 계획은 필수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3.2. 호주식 공동규제 모델과 활용
그렇다면 공동규제의 주체는 누가되어야 하는가? 인터넷 내용규제 메커니즘에 대한 논의 속에서 최대의 정보통제권을 추구하는 주요 이해 당사자로서는 국가, 시장, 이용자라는 세 집단이 제시되어왔다(장우영, 허태희, 2005). 같은 맥락에서 심영희(2002: 59)는 인터넷 내용 규제 영역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직접적인 주요 이해 당사자들을 ‘경제적 시장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산업체’, ‘영향력 있는 사람, 훈수꾼으로서의 사용자’, ‘정부’, 세 집단으로 설정하여 “삼발이 모델”을 제시한다(그림1). 그리고 가장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관계를 이 삼자의 세력이 균등한 균형을 이루는 관계로 설정하여 규제 모델에서 이해 주체들 간의 세력 균형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그림1> 규제의 이해당사자 중심으로 본 자율규제의 삼발이 모델 (심영희, 2002: 59)
하지만 이론의 영역을 벗어나 우리나라의 현실적 규제 환경을 고민할 때, 법정 심의 기구 중심의 규제 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이고 전향적인 재고가 전제되지 않는 한, 이러한 규제력의 균등한 분점은 이론적 레토릭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의미에서, 국가 등급분류제도를 바탕으로 한 정부 주도 규제의 틀 속에서 운영되고 있는 호주의 공동규제 모델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호주 연방정부는 인터넷 내용규제의 영역에서 자율규제, 핫라인, 바른 인터넷 사용에 대한 교육과 캠페인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럽연합의 공동 규제 정책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하지만 호주의 규제 방식은 다중 주체 참여와 다중 규제 방식 채택이라는 동일성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과 근본적인 차이점들을 보이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호주 연방정부가 호주방송청(Australian Broadcasting Authority)과 영상문헌등급사무소(Office of Film and Literature Classification)을 통해 인터넷 내용을 직접 규제하고 있으며, 인터넷 산업체의 자율규제 노력을 이끌어내는 일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김유승, 2005a: 84-87).
특히 호주 방송청은 라디오, 디지털 방송에 대해, 호주 영상문헌등급사무소는 출판물, 영화, 비디오, 컴퓨터 게임물에 대해 각기 연령등급시스템을 포함한 국가 등급분류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는데, 이는 법정 심의기구들의 등급분류제도를 기반으로 하는 우리나라의 매체규제환경과 매우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호주 연방정부의 규제 기조는 인터넷 내용규제 영역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공동규제 시스템의 채택 또한 정부 주도의 규제 틀 속에서 논의되어 왔고, 호주 방송청으로 하여금 인터넷 핫라인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 ‘방송서비스개정법(Broadcasting Service Amendment Act)’을 통해 인터넷 내용규제를 위한 공동규제 계획을 수립하기에 이른다.
이렇듯 “민간영역이 정부가 정의하는 틀 안에서 규범을 만들고 그것을 강제하도록 요구받는” 위임된 자율규제(mandated self-regulation)(황승흠외, 2004: 5-6)는 또 다른 형태의 정부규제에 다름 아니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오랜 자율 규제의 전통과 시장 장악력을 바탕으로 사업자 자율규제의 실행력을 담보하고 있는 외국의 사례와 달리, 인터넷 산업체의 자율규제 토대와 경험이 일천한 우리의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인 자율규제의 모습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는 첫째, 위임된 자율규제가 사업자 자율규제의 실질적 실행력에 대한 제도적 지원과 함께, 올바르지 못한 규제 권한의 사용에 대해 정부가 직접적으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장치를 가질 수 있어, 자율규제를 제도적으로 안착시킬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민간영역이 스스로 형성하고 규제하는 자율규제 또한 실패하였을 경우의 법적 규제력 발동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자율규제에 대한 공적 책임을 묻고 그 실행력을 담보한다는 측면에서 위임된 자율규제는 가장 위력한 형태라 할 수 있다. 둘째, 이러한 방식은 기존의 법정 심의기구를 중심으로 하는 정부 주도의 규제 틀에 대한 혁명적 변화 없이도, 자율규제와 공동규제가 가지는 규제적 효율성을 채택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은 곧바로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정부 기구에 의한 심의 등급 분류제도 존속과 그 위계 속에서 종속적인 자율규제의 위상은 여전히 문제로 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터넷 내용규제 영역에서 정부규제의 대체제가 아닌 보완제로서의 자율규제의 본질과 그 필요성에 대한 인식 확산, 그리고 인터넷 불법 유해 정보 규제에 대한 높은 사회적 요구로 인해 이러한 비판은 큰 힘을 얻고 있지 못하다.
3.3. 삼발이형 공동규제 모델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인터넷 내용규제 메커니즘의 이해 주체 관계를 이론적으로 제시한 심영희의 삼발이 모델을 구체화 시켜보면 <그림2>와 같이 도식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델은 ‘정부’ , ‘인터넷 산업체’, 그리고 비정부기구, 시민단체를 포함한 ‘이용자 그룹’의 세 주요 주체로 구성되는데 각 주체들의 주요 역할과 관계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정부는 법적 규제를 통해 불법 내용규제에 대한 종국적인 책임을 지며, 산업체의 자율규제를 법제도적으로 지원하고 관리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정부의 협력적 규제환경 조성은 공동규제를 성공으로 이끄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정부는 산업체가 자율규제를 제도화하도록 입법 절차를 통해 강제할 수도 있으며, 또는 규제권의 발동을 담보로 압력을 행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둘째, 인터넷 산업체는 행동강령을 중심으로 한 자율규제 활동을 실시한다. 프라이스와 버헐스트(Price & Verhulst, 2000: 181)는 인터넷사업자 행동강령의 초점에 관하여 ‘사업자 책임문제에 관한 명확화 , ‘개인정보처리에 관한 접근방법’, ‘이용자불만에 대한 조사’ , ‘불법 유해정보의 처리절차’, ‘이용자 권한을 강화시키는 기술적 수단의 개발’과 함께 ‘법집행기관의 협력’을 첫 손가락으로 꼽았다. 우리의 현실에서도 행동강령이 내부적으로 사업자들에게 선언적 의미 이상의 실질적 강제력을 확보하고 외부적으로 사회적 법적 지위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정부와의 제도화된 협력이 필수적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행동강령은 그 적용 범위와 집행 그리고 불이행에 대한 제재 방법에 이르는 세부적인 사항들이 자율규제 기구와 정부 간 협의를 통해 만들어졌을 때 보다 높은 성공의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강휘원, 2002). 특히 법정 심의 기구 등을 비롯한 규제 당국과의 업무 협약 체결로 이를 좀 더 구체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제도적 기반이 없는 행동강령은 자칫 공허한 레토릭으로 전락하기 십상일뿐더러 이윤 추구를 앞세워 사회적 책무를 소홀히 하는 인터넷 사업자들의 ‘무임승차 현상’이나 ‘무원칙한 시장 검열’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장우영, 2006: 64-65).
셋째, 시민 단체를 포함한 이용자 그룹은 정부 혹은 인터넷 산업체가 규제 권한을 과도하게 혹은 자의적으로 사용하는지 여부를 모니터링하고 자문을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정부의 과점적 규제 시스템에 반비례하여 인터넷 내용규제 영역에서 시민단체를 비롯한 비정부 민간기구들의 자율규제 역량이 미약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민간 영역의 전문성과 재정 확보를 위해 정부와 산업체의 일회성이 아닌 제도적 지원과 협력이 요구된다.
각 주체들의 역할과 함께 이 모델이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은 첫째 ‘이용자의 자율성과 권한 강화’를위한 규제 주체들의 공동 노력이며, 둘째 불법정보와 유해정보의 구분이다. 이용자들의 미디어리터리시 교육과 제도적 장치들을 통한‘이용자의 자율성과 권한강화’는 인터넷 상에서 불법 유해정보로 야기되는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이고 장기적 관점의 해법이라는 점에서 규제 주체들의 재정적, 인적 지원과 참여를 포함한 공동 노력이 요구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유럽연합의 “Action Plan”이 인터넷 이용자들의 미디어 리터리시 고양을 위한 미디어 교육 및 자각 운동에 가장 중점을 두고, 전 예산의 절반 이상을 이 분야에 할애하여 온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이해된다.
또 다른 전제인 불법정보와 유해정보의 구분은 이 둘 사이의 구분이 명확하지 아니할 때, 표현의 자유가 현저하게 제한될 수 있는 점에 그 중요성이 있다. 인터넷 상의 불법정보와 불법 행위는 법에 의해 규제되어야 하며, 이에 대한 규제의 근본적인 책임은 정부에 있다. 자율규제는 불법정보 규제의 영역에서는 보조적인 역할을 담당할 뿐이다. 반면 표현의 자유 영역에서 보호를 받는 유해정보의 운영과 통제는 원칙적으로 사용자와 소비자 선택의 문제이자, 책임있는 사업자의 몫이다. 따라서 불법정보와 유해정보에 각기 다른 규제 모델과 접근 방식이 필요한 것이고, 공동규제 모델의 전제가 되어 왔다.
이상에서 본 연구는 삼발이형 공동규제 모델을 통해 공동규제 모델의 발전 가능성을 타진해보았다. 현존하는 유럽의 공동규제와 달리, 규제 시스템 전반에 대한 정부의 주도권을 인정하고 임위적 자율규제를 채택하면서, 각 규제 주체들의 불균형한 규제 역량과 불안정한 협력 관계를 법제도적 장치들로 보완해보고자 한 점들이 이 규제 모델의 주된 의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등급제와 필터링 소프트웨어 등을 포함한 기술적 해법이 가지고 있는 태생적 한계와 표현의 자유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고려하여, 이의 사용을 이용자의 선택에 맡기며 제도화하지 않고 있는 것 역시 기존의 공동규제 모델과 차별되는 점이다. 단, 이 규제 모델은 인터넷 내용규제 영역의 모든 법적, 사회적, 정치적 메커니즘을 총체적으로 포괄하고 있지 않으며, 이는 본 연구의 목적이 아님을 밝혀둔다. 다만, 이 삼발이형 규제 모델에서 밝힌 규제적 원칙과 방안들이 향후 인터넷 내용규제 모델을 위한 논의들을 발전시켜나가는 데 작은 한 걸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5. 맺는 글
오늘날 국가 규제의 한 모델로서 자리 잡고 있으며, 미국의 통신품위법 판결을 계기로 하여 합리적인 인터넷 내용규제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매체특성론적 관점에서 볼 때, 인터넷 규제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법관할권 문제를 보완해줄 국제적 공조,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의 규제 시스템 참여,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규제환경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한 규제 구조의 유연화 등의 조건이 요구된다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개별 정부의 독점적 혹은 과점적 규제보다는 유연하고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자율규제가 인터넷 규제 환경에서 더 큰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개별 국가 수준에서 또한 국제적 수준에서 각 주체들의 자율규제 노력과 정부, 규제 당국의 공동 협력을 틀로 하는 다중 주체, 다중 규제 방식의 공동규제 모델이 가장 근접한 답을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공동규제 모델을 최선의 해법이라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현존하는 공동규제 모델은 민간 영역의 사적 검열 논란과 기술적 해법을 둘러싼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더구나 공동규제 모델이 규제력의 세분화된 분점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정부가 과점적 규제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나라들에서의 적용에는 많은 어려움들이 있다. 다시 말해, 매체특성론에 근거한 이상적 규제 모델이라 하더라도 합리적인 규제 권한의 균점을 보장하는 법제도적 기반 없이는 그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현실의 내용규제 정책의 수립은 매체적 특성이나 규범적 당위성만큼이나 그 사회의 정치, 사회, 문화적 맥락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의 독점적 혹은 과점적 규제가 인터넷 내용규제 영역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비판뿐만 아니라, 규제 목표의 성취에도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할 때, 우리에겐 현재의 규제 시스템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대안적 규제에 대한 전향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공동규제 모델이 협력, 자율규제, 사용자 권한 강화라는 인터넷 내용규제의 미래를 위한 세 가지 주요핵심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우리 현실에 맞는 공동규제 모델의 모색도 주요한 과제로 대두된다고 할 수 있다.
* 편집자 주: 이 글은 <사이버커뮤니케이션학보> 제20호에 게재된『인터넷 공간의 자유와 규제: 공동규제 모델의 발전을 위한 모색』 을 수정?보완한 것으로서 2010년 1월 28일 국회도서관에서 KISO, 주한영국대사관, 한나라당 국민 소통위원회가 공동주최한 국제토론회 <디지털시대 표현의 자유Ⅱ>에서 발표됐다. 이 글의 재수록을 허락해준 김유승 교수께 감사드린다. [본문으로]
1) 기든스(Giddens, 1985: 178)는 국가권력에 의한 정보의 수집, 저장, 통제가 근대국가 성립의 전제라고 주장한 바 있다. [본문으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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