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사회, 신권력 주인으로서의 초대
인터넷의 확산, 디지털화와 네트워킹에 기반한 지식정보화 시대를 지나오면서 데이터 권력이라는 주제로 수많은 담론이 오갔다. 많은 미래학자들이 데이터 권력의 등장을 예견했으며, 미래 사회는 데이터를 장악하는 자가 주도한다는 가치관이 자리 잡았다. 20세기 부국이 원유 생산국이었다면 21세기 이후는 정보를 선점하는 자가 강자로 군림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미국의 경우 20세기 들어 세계 최대 산유국의 지위를 지켜왔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대다수 거대 글로벌 IT 기업들이 미국에 기반을 두고 있을 만큼 데이터 부국으로서의 위상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데이터를 자원이라 생각하고 가치를 연구하면 할수록 이상한 점이 있다. 기존에 중시되어 온 유형적 가치와 달리, 데이터는 그 활용이 활발해져 갈수록 양이 늘어나고, 도리어 빅데이터 처리 비용이 감소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성으로부터 데이터를 소유하고 그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더 유리한 선택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보의 속성상 데이터는 자유롭게 이동해야 함에도 그동안 정보주체와 기업, 국가들은 프라이버시, 정보주권, 데이터 경제와 같은 저마다의 이유들로 데이터의 통제를 주장해왔으며, 한편으로 그 활용을 위해서도 애써왔다.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이 데이터를 둘러싼 가치 배분에 뾰족한 수 없이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할 무렵, 영리하게도 관점을 달리할 것을 조금은 단도직입적으로 권유하고 있다. 다양한 플랫폼 기업들의 사례를 통해서 저자는, 데이터 권력의 작동 메커니즘은 과거의 물질적 권력 개념에서는 해결이 안 되는 것이며, 정보의 흐름이 형성되는 방향과 힘을 제대로 파악할 때 의도하는 목적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논조를 이끌어 나간다.
첫 장을 펼치자마자 ‘권력이란, 의도한 결과를 얻는 능력이다.’ 라는 버트런트 러셀의 말을 화두로 꺼내면서, 저자는 무엇인지도 모를 에너지를 우선 어떻게 작동시킬 것인지에 시선을 집중시킨다. 그리고 권력은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지를 떠올리는 그 순간, 바로 지금 세상에 공존하는 구권력과 신권력의 존재를 인식시킨다. 구권력은 소수에게 독점되어 폐쇄적이다. 한번 권력을 지닌 지도자만이 그 힘을 주도하기에 일방향으로 작동한다. 한편으로 연결된 사회망을 통해 형성된 신권력은 다수가 공유하는 것부터가 구권력과는 다르다. 신권력은 개방적이면서 참여적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주체가 될 수 있다. 신권력은 동료 집단이 주도하며, 에너지를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저자는 구권력이 화폐(currency)와 같이 작동한다면, 신권력은 일종의 흐름(currrent)으로 대비된다고 한다. #미투 운동, 페이션츠라이크미의 환자들, 아이스버킷 챌린지와 같은 신권력들은 기존의 정치와 산업을 뒤흔드는 정도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 사건들에서는 평범한 이들이 주인이고 그들은 능동적으로 힘을 만들어 냈으며, 새로운 힘은 촘촘한 연결망과 수평적인 참여자들로 투명하게 유지되어 행사되었다. 더구나 그 참여에는 회비가 들지 않고, 성과는 문제되지 않는다. 오직 참여만으로 인정을 받는다고 하니 불편하지가 않다.
신권력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자 오늘날 기업이나 조직은 신권력 모델을 채택하면서도 나름의 사정에 맞게 구권력 모델을 혼용한다. 저자는 기업이나 조직이 신권력의 가치들을 어떻게 수용하는지를 분석하기 위한 도구로서 ‘신권력 나침반’이라는 차트를 고안했다. 책의 내용을 좀 더 소개하면, 차트의 가로축은 구권력 또는 신권력의 가치를 표방한 정도의 척도를 표시하고, 세로축은 구권력과 신권력 중 어떤 모델을 채택했는지를 표시해, 조직이 선택한 전략을 추적할 수 있게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페이스북과 우버는 구권력의 가치를 취하면서 신권력의 모델을 채택하는 ‘영합주의자’이고, 에어비앤비나 위키피디아와 같은 조직은 신권력 모델과 신권력의 가치를 표방하는 ‘군중’이다. 군중 아래 구간은 ‘응원단장’으로, 신권력을 가치를 수용한 구권력 모델들로 올드미디어인 가디언, 파타고니아가 있다. 응원단장은 외부와 소통하지는 않지만, 소비자나 독자들의 참여를 독려함으로써 신권력을 수용한다. 마지막으로 구권력 모델과 구권력의 가치를 추구하는 조직들이 속하는 ‘성주’구간이 있다. 성주구간에는 제조업과 같은 전통적 산업을 영위하는 기업이나 미국 국가안보국과 같은 국가조직들이 속한다. 그런데 저자는 애플 또한 이 구간에 드는 것으로 이해하며, 오히려 애플은 비밀스럽고 협력하기 어려운 체제를 통해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상품을 제시하고 소비를 유인하는 전술을 펼치는 기업임을 보여준다. 신권력이 득세하는 시대라도 역량 있는 구권력들은 여전히 성공적으로 목적을 이뤄낸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을 만큼 이 책은 힘이 존재하는 현상 그대로를 설명한다.
저자는 대중이 주도하는 신권력에 대해서 밝은 면만을 조명하지는 않는다. 트럼프가 미국 대선에 승리하기 위한 도구로써 신권력을 이용한 사례와, ISIS가 끔찍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신권력을 악용하는지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설명한다. 또한 연결된 사회로부터 극우집단의 열정이 어떻게 폭발했는지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연결사회에서 페이스북, 우버는 신권력을 형성한 대표적인 플랫폼이다. 그러나 정작 공유의 힘을 만들어낸 20억이 넘는 사용자는 페이스북이라는 거대 플랫폼의 운영이나 알고리즘에는 접근할 수 없다.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은 정치와 사회, 선거에 영향을 미칠 만큼 중대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막상 이용자들의 의도와는 달리 그 힘이 이용되더라도 대중들은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기도 한다. 이들을 새로운 플랫폼 독재자라고 명명하지만 신권력을 이용해 군림하는 세력에 대해서도 밝혀줌으로써 그들과의 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을 세심하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의 묘미이다. 특히 제10장에 이르러 전미총기협회가 신권력을 이용해 혼합된 전략으로 블룸버그의 자금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승리했는지를 드라마틱하게 소개하고 있는 대목에서는 엄청난 힘이 소용돌이치는 태양의 눈을 발견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연결사회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다. 그 흐름 안에서 우리는 스스로 중심이 되어 소통하고, 누려가면서 힘을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 힘의 실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는 단순히 흐름에 휘둘리고 말 것이다. 이 책은 새로운 신권력을 단순히 부리기보다는 그 흐름과 힘을 이해하는 것에 주안점을 둔다. 친절하게도 제11장에서는 디지털화된 일상에서 많은 조직들이 고민하는 문제로 구세대와 신세대간의 갈등을 분석하고, 밀레니얼 세대와 어떻게 교감하고 목적을 달성할 것인지를 제시하고 있다. 논의의 중심부로 갈수록 새로운 흐름에서는 기업뿐만 아니라 개인도 직장 내에서 신권력의 언어를 구사할 기회를 얻어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미 한국의 많은 기업들이 직급을 탈피하고 수평적 조직문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기업문화에 변화가 없다면 구권력 모델에서도 소셜 네트워크와 같은 피드백 루프를 만들어 도파민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떨까.
오늘날 대중들은 과거와 다른 지위와 힘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잘 알고 있듯이 대중은 때때로 정보의 흐름을 장악한 자로부터 소외당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박할 수 없는 점은 신권력은 에너지를 갖고 있으며 이를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을 이해하고 이용한다면 ‘연결된 사회’이기에 누구나 그로 인해 승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의 전반에 걸쳐 저자는 담담하게 목소리를 이어가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사회 전체와 소통하는 전층 사회를 추구하고 있다.
이제 신권력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은 연결사회를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이다. 누구라도 이미 진행되고 있는 거대한 권력의 물결에서 그 흐름과 진행 방향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이 책을 지침서로 활용해 보면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