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진실 시대에 팩트를 논하다

 

팩트(사실)란 무엇인가? 거미줄같이 연결된 소셜 네트워킹의 시대,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들어내는 딥페이크(deep fake) 시대, 첨단 AI와 ICT 기술의 발전의 시대에 인간은 더 똑똑하면서 자유로워지고, 사회는 직접 민주주의의 이상에 성큼 다가가고, 세계는 좀 더 가까워져서 더 잘 서로를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져가고 있다. 전후 세계를 지탱하던 계몽주의적 낙관주의는 정보기술 발전의 한 절정기에 극도의 혼란에 빠지고 있다. 2016년은 뒤돌아보건대 전후 시대와 ICT 기술 발전이 만나면서 꿈틀거리던 물밑의 괴물이 처음으로 지상으로 올라온 해였다.

 

2016년 미국 대선과 브렉시트 투표는 전후 시대의 한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1990년대 인터넷의 등장과 2000년대 후반 이후 소셜미디어의 무한 확장 속에서 첨단 AI 기술이 이끄는 새로운 세상으로 한치의 의심 없이 한 발을 내딛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는 조금은 눈치채고 있었지만, 그 모습이 어떠할지 상상하지 못했던 괴물이 선거라는 정치의 장을 통해 그 모습을 극적으로 드러냈다. 포스트트루스, 가짜뉴스(fake news), 얼터너티브 팩트(alternative fact)는 단순한 미디어 공간의 변화에 따른 이상 현상이나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전후 시대를 흔드는 새로운 개념들이 되었다. 2016년의 충격적인 정치적 사건 이후 국내외적으로 그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분석적 연구들이 시도되었는데, 해외의 대표적 책들로 리 매킨타이어(Lee McIntyre)의 「포스트트루스(Post Truth)」(2018), 한스 로슬링(Hans Rosling) 외, 「팩트풀니스(Factfulness)」(2018), 바비 더피(Bobby Duffy)의 「팩트의 감각(The Perils of Perception)」(2018)을 들 수 있다. 모두 2018년에 나온 책이라는 점에서 이들 연구 모두 2016년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결과물로서의 시대성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2016년 미 대선과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의 결과가 그 이후 사회에 충격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알 수 있다.

세 책 모두 일관된 논지와 쉬운 설명으로 접근이 어렵진 않지만, 그 분석에 실제 이용된 이론적 배경이나 방법론은 결코 간단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2016년 돌출된 현상에 대해 일관된 관점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설명을 밀어붙이는 역량이 대단한 책들이다. 세 권의 책은 모두 한 가지 질문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즉 이른바 가짜뉴스와 허위정보는 왜 지금 문제이며, 더 많은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사람들은 왜 허위정보에 더 끌리고 또 잘못된 인식을 가지게 되는가라는 질문이다. 하나의 의문에서 출발하지만 분석은 각기 다르다.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는 일반인들의 세계에 대한 사실인식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13가지 테스트로부터 시작한다. 테스트 결과에 따르면 우리는 세계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무지하며, 이는 교육의 유무나, 전문가와 일반인 여부에 관계없다. 그러면 “세상에 대한 무지는 왜 이렇게 널리 퍼졌고, 왜 이렇게 집요할까”. 저자는 먼저 사람들의 오답이 체계적인 것에 주목한다. 오답이 체계적인 것은 지식이 적극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이지만, 지식을 업그레이드하더라도 사람들의 잘못된 믿음이 정정되지 않는 것은 문제의 원인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세계에 관한 사실을 묻는 질문에 침팬지보다도 답을 못 하는지에 대해, 사람들의 과도하게 극적인 세계관의 탓이며, 그 근저에 우리 뇌의 작동 방식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책에서는 극적인 세계관을 만드는 인간 뇌의 10가지 본능-간극 본능, 부정 본능, 직선 본능, 공포 본능, 크기 본능, 일반화 본능, 운명 본능, 단일 관점 본능, 비난 본능, 다급함 본능-을 자세히 기술하며, 이러한 오류는 ‘사실충실성(factfulness)’의 실천을 통해 극복이 가능하다고 제안한다. 책의 분석은 일관되게 의사이자 통계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로슬링의 학문적·실천적 배경에 기반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서술 과정은 매우 설득적이다.

 

바비 더피의「팩트의 감각」 역시 팩트풀니스와 같은 질문에서 출발하고 있다. 세계적인 여론조사기관인 입소스 모리(Ipsos Mori)의  13개국에 대한 조사를 통해 세계적 이슈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오해하고 있는지 사람들의 인식과 팩트의 간격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책은 전 세계 사람들의 삶 일반과 관련되어 있는 평범하지만 중요한 주제들-건강, 섹스, 돈, 이민과 종교, 범죄와 안전, 선거, 정치, 온라인 세계 그리고 전 지구적 이슈-에 대해 사람들이 얼마나 잘못 알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이러한 인식의 오류와 간격은 팩트의 감각을 기르는 것에 의해 정정할 수 있다고 보고, 각 이슈별로 팩트 감각을 기르는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바비 더피는 우리가 흔히 빠지는 함정이 무엇인지 파악하면 완전히 왜곡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다고 보고 세계를 더욱 정확하게 인식하게 해줄 열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팩트의 감각」과 팩트풀니스는 모두 우리가 세상을 보는 관점에 대해 팩트(사실)와 오류의 괴리를 보여주면서 출발한다는 점에 공통점이 있다. 한스 로슬링이 의사 출신으로서 인간 뇌에 사실을 인식하는 본능적 필터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면, 바비 더피는 전 세계 13개국 5만여 명에 대한 조사를 통해 사람들의 오해와 사실의 간극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팩트의 감각」에서 흥미로운 것은 한국도 조사대상 13개국에 포함되어 있는데, 한국 사람들이 생각보다 사실정보를 잘 인식하고 있는 국가(스웨덴, 독일에 이어 세 번째 국가)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부터 서평자의 믿음을 깨는 팩트였다.

 

리 매킨타이어의 「포스트 트루스」는 앞의 두 책과 같은 시대적 배경, 동일한 질문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보다 철학적, 정치적, 사회과학적 배경에 기반하여 설명을 시도한다. 그는 사회심리학적 인지편향, 기존 미디어의 쇠퇴와 소셜 미디어의 출현, 그리고 가짜뉴스의 범람이 가져온 새로운 정보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좀 더 근본적으로 탈냉전 시대 이후 과학부인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이 탈진실의 배경이 된다고 주장한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냉전이 끝에 등장한 포스터 모더니즘에 대한 분석이다. 냉전 이후 시대를 풍미한 철학적, 문화적 사조로서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접근법은 모든 것을 의심하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이다. 따라서 어디에도 ‘정답’은 없으며 각자의 ‘이야기’만 존재하기에, ‘텍스트가 의미하는 바에 정답이 존재한다’는 기존의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심지어 진실 개념 자체도 의심받기 시작했다. 트럼프 측근의 억지처럼 들렸던 ‘대안적 사실’이란 주장이 사실은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세 책의 또 다른 공통점은 낙관적 세계관이다. 즉 저자들은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비해 세상은 전반적으로 나아지고 있고 본다. 따라서 탈진실에 맞서 싸우는 법을 배우면, 사람들의 오해나 잘못된 믿음은 정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탈진실에 맞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우리 뇌의 인지편향과 편향을 강화하는 기술이 범람하는 시대에 사람들은 어떻게 사실을 놓치지 않고 살 수 있을 것인가? 저자들은 사실 문제를 모호하게 만들려는 어떤 시도에도 의문을 제기해야 하며 어떠한 거짓에도 맞서 싸워야 한다고 한다. 이를 위해 오류를 바로잡기 위한 교육, 국가와 기업의 역할 등을 강조하고 있다. 의도적 합리화나 인지편향 같은 것들의 영향력이 매우 강력하지만, 진실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결국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의 문제 제기와 분석은 매우 참신하지만, 결론과 제안은 허무할 만큼 예측 가능하다. 세상에 대한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은 저자들이 제안하듯이 사람들이 주의 깊게 적극적으로 사실과 진실을 구분하려는 노력을 하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의도적인 신념의 영역은 사실에 대한 교육 등의 노력 너머에 있는 문제이다. 지금 가짜뉴스와 허위정보가 왜 정치의 영역에서 더 문제인가를 생각해보면 낙관적 기대만으로 사람들의 신념의 영역을 개선하기는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인간 개인의 노력 이외에 탈냉전 이후 정치의 근본적 재구성이 필요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잘못된 인식을 완벽하게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잘못된 인식을 통해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지적은 이 시대의 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로서 매우 의미가 있다. 세 권의 책이 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세상에 어떤 허위정보가 넘쳐나더라도 결국 세상에 어떻게 반응할지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는 것이다. 진실은 지금까지 늘 소중했고 앞으로도 계속 소중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 : 김유향

국회 입법조사처 과학방송통신팀 팀장, KISO 저널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