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헌’ 열풍을 넘어선 IP 주권 강화를 위한 과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인공 헌트릭스. 사진제공=넷플릭스

1. ‘케데헌의 성공을 바라보는 시각

매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분야별 키워드가 있다. 올해 문화산업 분야에서는 단연 ‘케데헌’(케이팝 데몬 헌터스, 이하 케데헌)이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K-POP 아이돌과 전통 무속신앙을 소재로 한 최초의 해외 제작 애니메이션인데다, 상업적으로도 대성공을 거두었으니 화젯거리가 되는 데 부족함이 없다. 지난 8월 업계 간담회에서도 정부 측은 “케데헌을 우리가 제작할 순 없었나. 가슴 아프다”라고 했고, 산업계에서도 “우리 IP를 우리가 보유하면서 글로벌 시장으로 나갈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답했다.1 속사정을 일일이 설명하기 어려운 자리라는 점은 이해되지만, 정부의 안타까움과 업계의 다짐만으로는 위기에 처한 문화산업 구조가 쉽게 개선되기 힘들다.

케데헌의 성공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둘로 나뉘는 듯하다. 먼저 우리 대중문화와 전통문화를 소재로 한 콘텐츠를 우리가 만들었다면 콘텐츠 수익 외에도 캐릭터 상품 등 부가수익까지 온전히 우리나라에 귀속될 수 있지 않나 하는 시각이다. 우리 국민으로서 이해는 되지만 콘텐츠 제작과 유통 환경을 고려하지 못한 아쉬움에 불과해 보인다.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케데헌을 만들었더라도 글로벌 공급망이 없으므로 성공이 힘들었을 것이라는 견해이다. 케데헌의 성공은 우리 전통과 대중문화 소재의 상업적 잠재력을 다시 확인시켰다. 김밥, 라면 등 K-푸드의 인기가 치솟고 패션 상품 매출이 급증했으며,2 약 4조 5000억 원의 추가 관광 수입이 기대되는 등3 파급효과가 이어지고 있다. 그 효과를 충분히 누리고 있다는 현실적인 진단이 가능하지만, 원천 IP 확보의 중요성이 다소 희석돼 보이기도 한다. 문제는 ‘누가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누가 IP와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수익을 지속적으로 회수하는가’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케데헌의 성공에서 무엇을 배우고 개선해야 할까?

2. 영상콘텐츠 시장의 위기

1) 한류 콘텐츠의 성장과 현실

한류 바람은 1990년대 중반 <사랑이 뭐길래>로 일기 시작했다. 문화산업의 성장은 우리 콘텐츠 기업들의 고통과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2000년 전후로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일었던 반미 감정과 중국의 시장개방이라는 국제환경 변화도 한몫했다. 그 전인 1994년 대만의 유선 텔레비전 자유화 입법으로 우리 콘텐츠가 소개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된 것과, 비슷한 시기에 홍콩 영화산업이 몰락한 것도 도움이 됐다. 중화권에서 시작된 한류가 일본을 거치며 확대되었고, 2010년대 중반까지 K-POP, 영화, 드라마, 게임 등 분야별 콘텐츠 수출이 꾸준히 증가했다. 그러다 2017년부터 얼어붙은 한중 관계의 악영향으로 중국 진출에 장애를 겪자 미국과 유럽 등 서구시장으로의 진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이 시기에는 콘텐츠 제작 분야의 열악한 환경 개선과 제작사-제작사 간 또는 제작사-유통사 간 불공정 계약 관행을 점검하면서, 콘텐츠 제작과 유통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도 기울였다.

지난 30년간 우리 콘텐츠의 품질은 높아졌고 그만큼 다른 산업 분야에 미치는 영향력도 증대되었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여러 위기 속에서 그나마 잘 생존해 왔다고 평가하고 싶다. 기본적으로 우리 콘텐츠 기업들은 영세하고 국내 시장은 작다. 한 번의 실패가 기업의 존폐 위기로 직결되기 때문에 흥행작을 만들어 내야 하는 부담이 크고, 그만큼 공격적인 투자가 힘들다.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수출 시장을 다변화하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수입국 입장에서는 타국의 콘텐츠를 자국의 문화정체성 유지나 문화정책에 걸림돌로 인식하므로 규제를 뚫기도 쉽지 않다. 기획력과 연출력만으로는 이 같은 상황에 맞서 IP 주권을 주장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2) 영상콘텐츠 제작과 유통 환경의 붕괴

영상콘텐츠 시장의 위기도 위와 같은 배경과 궤를 같이한다. 더욱이 방송통신 환경이 급변하면서 우리 영상콘텐츠 제작과 유통 환경은 붕괴 직전에 이르렀다. 국내 환경 개선에 주목하는 사이 해외 거대자본으로 제작된 작품들이 유통되면서, 출연료, 작가료, 스태프 인건비가 상승했고, 광고 시장도 줄어들어 국내 제작사는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다. 2024년 기준으로 국내 드라마의 70% 이상이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OTT에 의존하고 있고, 이들의 투자가 없다면 제작 산업의 붕괴를 막기 힘들다는 예측이 나온다.4

유통도 마찬가지이다. 지상파방송에서 IPTV 등 유료방송으로, 다시 OTT로 소비자 채널이 이동하면서 기존의 유통질서는 무너졌다. 영상콘텐츠를 스트리밍으로 소비하는 흐름은 10여 년 전부터 나타났지만, 대응이 늦었다. 전통적으로 방송 규제는 주파수 희소성, 사회적 영향력, 문화주권 등에 기반해서 설계되지만,5 OTT는 부가통신서비스로 분류되어 이런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제공하는 서비스는 같은데 적용되는 규제가 불균형적이다. 게다가 글로벌 OTT보다 자본력에서 밀리는 토종 OTT는 망사용료까지 지불해야 해서 역차별 논란까지 일고 있다.

3) 넷플릭스의 약진과 토종 OTT의 대응

2016년 등판한 넷플릭스는 첫 두 해 고전하다가 2019년 <킹덤>을 시작으로, <오징어 게임>, <더 글로리> 등 드라마와 <솔로지옥>, <흑백요리사> 등 예능까지 진출해서 190여 개 국가에 서비스하고 있다. 투자 대비 효과도 톡톡히 보고 있다. 2024년 상반기 넷플릭스가 제공한 콘텐츠 6,801개 중 한국 콘텐츠 비율은 5.7%(926개), 시청 시간은 8.7%(70,449시간 중 7,993시간)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특히 TV 시리즈는 11.1%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영어를 제외한 콘텐츠 중 가장 높은 효율성을 나타냈고, 특히 인도네시아(38%), 베트남(38%), 홍콩(34%), 싱가포르(33%), 대만(33%), 미얀마(32%), 필리핀(32%)에서 매우 높은 점유율을 보인다.6

글로벌 OTT처럼 대규모 자본을 투자하기 어려운 토종 OTT들은 콘텐츠를 차별화하여 투자 효율을 높이고 있다. 티빙은 케이블 채널의 콘텐츠 외에 한국프로야구(KBO) 경기를 중계하기 시작했고, 웨이브는 제작비가 큰 영화나 드라마 대신 예능이나 다큐멘터리를 늘리고 있으며, 쿠팡플레이는 K리그,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등 축구 경기와 포뮬러원(F1)이나 LIV골프 등 스포츠 중계권을 확보하고 있다.7 외형적으로는 네 개의 토종 OTT가 콘텐츠를 차별적으로 제공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콘텐츠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3. 변화된 시장에서의 생존 전략

영상콘텐츠 제작과 유통 환경의 위기는 10여 년 전부터 예상된 결과였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이 있지만, ‘케데헌’의 성공이 우리 영상콘텐츠 제작과 유통 환경의 개선 필요성을 인식하게 했으니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정부, 업계, 학계 할 것 없이 우리 문화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세부적으로는 차이가 있으나, 주된 요지는 방송과 통신을 양분해서 접근했던 방식을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 맞는 미디어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영상콘텐츠 분야와 관련해서는 합리적인 규제 체계 마련, 토종 OTT의 경쟁력 강화, 중소 콘텐츠 제작사 지원 등 생태계 조정을 꼽을 수 있겠다.

1) 새로운 환경에 맞는 합리적인 규제로 재편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로 재편되면서 관련 분야의 규제는 조정돼 가겠지만, 방송 채널과 OTT 채널간 규제 비정합성, 글로벌 OTT 사업자와 토종 OTT 사업자간 불균형적 규제는 우선적으로 고려될 필요가 있다. 크게 방송과 부가통신서비스로 양분된 접근에서 벗어나 방송이든 OTT든 실제로 제공되는 서비스의 특성에 따라 규제가 적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글로벌 OTT 사업자와 토종 OTT 사업자간 불균형적 규제는 글로벌 OTT 사업자에 대한 규제 신설이나 강화보다 토종 OTT 사업자에 대한 규제 완화로 조정해 가는 방법이 효과적이라고 본다. 예를 들면, 유럽과 같이 우리 콘텐츠 30% 쿼터제를 적용하거나 국내외 OTT 사업자 모두에게 방송발전기금을 내도록 하는 것보다 국내 OTT 사업자들의 망사용료를 할인해 주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2) 다양한 K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는 단일한 창구 제공

우리 콘텐츠가 해외에서 인기가 높은 만큼 ‘우리 콘텐츠만으로 구성된 OTT’를 통해 해외 시장을 공략할 필요가 있다. 넷플릭스가 우리 시장에 투자하는 이유도 우리 콘텐츠가 동남아시아에서는 물론이거니와 북미, 중동, 아프리카에서도 통하기 때문이다.8 게다가 토종 OTT가 해외에 진출할 경우 해외 시청자들의 데이터를 축적해 다양한 장르와 소재로 IP를 확보할 수 있고, 국내 제작사들에도 더 많은 창작 기회가 제공될 수 있다.9 반대 의견도 있다. 세계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술 인프라 구축, 현지 사업자들과의 제휴, 자막, 더빙, 검수 등 현지화 작업에 필요한 인력과 현지 사무소를 운영하는데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이다.10 그러나 K-POP, 영화, 드라마, 예능 등 우리가 IP를 가진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는 단일한 창구를 제공하고, 이를 관광, 뷰티, 패션, 문화체험 등 오프라인 프로그램으로 연계할 인프라는 적극적으로 고려해 볼 만하다.

3) 중소 제작사 지원 강화와 제작 생태계 정비

대형 제작사와 글로벌 OTT의 협력이 강화되는 부작용으로 중소 제작사는 제작에 손을 놓게 되고,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나오지 못하게 되면서 한국 콘텐츠의 경쟁력은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다. 드라마의 경우 톱배우들의 회당 출연료가 5억 원이 넘고 배우들의 총 출연료는 제작비의 40%를 훌쩍 넘기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11 제작 기회는 대규모 금액을 투자할 수 있는 대형 제작사에게만 집중될 것이다. 중소 제작사에 대한 지원과 함께 영상콘텐츠 제작 생태계 전반에 대한 정비가 필요하다. 최근 몇 년, 대규모 투자가 뒷받침된 우리 콘텐츠가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를 통해 인기를 얻고 있지만,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를 계속 만들어 낼 수 있는 기반이 무너지면 콘텐츠 IP 주권도, 한류의 영향력도 지속될 수 없다.

  1. 금준경(2025.08.24.). ‘케데헌’ 열풍에 정통부 차관 “가슴 아파” 티빙 대표 “뼈 아파”. 미디어오늘.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8339. [본문으로]
  2. 김현지(2025.10.13.). 김밥·라면 식품부터 패션까지….‘케데헌’ 효과 톡톡. 파이낸셜뉴스. https://www.fnnews.com/news/202510131821008820. [본문으로]
  3. 이가영(2025.10.13.). 대박 난 ‘케데헌’ 경제 효과는 얼마? “4조5000억 원 예상”.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culture-life/k-culture/2025/10/13/5GB7ZTLVKBG3HJVSIXPIJ3O3FI/. [본문으로]
  4. 이상진(2025). 공공성 보호 vs 미디어경쟁력 : 규제의 방향을 다시 묻다. <방송문화>. 봄호. 32쪽. [본문으로]
  5. 한정훈(2025). 넷플릭스 10년 후, 세계 미디어 지형 및 규제 변화. <Media Issue & Trend>. 제68호. 30쪽. [본문으로]
  6. 김규연(2025). 하반기 국내 OTT 시장 전망: 쿠팡플레이와 티빙의 제휴 멤버십과 스포츠 콘텐츠 전략 양상. <방송영상·OTT 트렌드>. 제3호. 55쪽. [본문으로]
  7. 이승엽(2024). 국내 OTT의 약진과 방송시장의 부진에 대한 현황 분석. <미디어 이슈&트렌드>. 제65호. 42쪽. [본문으로]
  8. 박선영, 김성태(2024). 넷플릭스와 국내 콘텐츠산업의 저작권 논쟁에 대한 탐색적 연구: <오징어 게임>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제24권 제6호. 225-226쪽. [본문으로]
  9. 이지은(2025). ‘케데헌’ 글로벌 열풍, 토종 OTT 해외 진출 시급하다. <ANDA>. 10월호. 93쪽. [본문으로]
  10. 유진희(2025). <킹덤>부터 <폭싹 속았수다>까지, 넷플릭스 한국 10년, 국내 영상콘텐츠 산업의 변화와 방송사의 과제. <방송문화>. 여름호. 35쪽. [본문으로]
  11. 김지완(2024). 제작비 증가와 제작 편수 감소, 해법은 없는가?. <방송작가>. 10월호. 18쪽. [본문으로]
저자 : 서재권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