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평] 4차 산업혁명과 남북관계

‘4차 산업혁명’ 대 ‘세 세기 산업혁명’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 총서 가운데 하나로 네트워크 이론을 국제정치학에 접목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미래전략네트워크”란 연구모임이 출간한 『4차 산업혁명과 남북관계: 글로벌 정보화에 비춘 새로운 지평』(서울: 사회평론아카데미, 2018)을 읽는다. 제목과 필진에서 드러나듯, 이 책은 정치학 연구자들이 4차 산업혁명이란 담론과 현실이, 2017년 말부터 재개된 한반도 평화과정(peace process) 속에서,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탐색하고자 한다. 이 연구모임이 출간한 『4차 산업혁명과 한국의 미래전략』(서울: 사회평론, 2017)의 공간적 범위와 행위주체를 한반도와 북한으로 확장하는 작업이 『4차 산업혁명과 남북관계』다.

4차 산업혁명과 남북관계의 관계에 대한 필자들의 진단은 이중적이다. 협력과 갈등 모두를 예측한다. 적에서 친구로 가는 한반도 평화과정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한 구성요소인 남북경협과 관련하여, “철도·도로망, 에너지·전력망 이외에도 정보통신망과 하드웨어 기기 및 설비, 소프트웨어와 인터넷 서비스, 디지털 미디어·콘텐츠 등과 같은 정보통신 분야의 현황은 새로운 협력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지만, “동시에 대규모 자연재해, 사이버 안보와 포스트 휴먼 기술의 위협, 이주·난민 안보와 사회 안보, 기후변화와 안보와 보건안보 등과 같은 신흥 안보 분야의 갈등은 향후 남북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1면). 4차 산업혁명과 남북관계의 관계에 대한 “미래전략네트워크”의 이 사고는 적과 적의 위협을 상정하는 전통 안보의 쟁점과 더불어 “위협 유발의 당사자가 명확지 않”(6면)은 이주와 난민, 전염병, 기수 변화, 환경오염, 사이버 안보위협과 같은 비전통 안보의 쟁점이 국제정치의 세계에 출현하고 있다는 의식의 발로다. 비전통 안보라는 반(反) 개념은, ‘미래전략 네트워크’의 또 다른 연구성과인 『신흥 안보의 미래전략: 비전통 안보론을 넘어서』(서울: 사회평론, 2016)와 『한반도 신흥 안보의 세계정치』(서울: 사회평론아카데미, 2017)에서, 복잡계 이론에서 떠오름 또는 창발(emergence)로 번역되는 용어를 차용하여 ‘신흥’(emerging) 안보로 재정의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네트워크를 고민하는 국제정치학 연구자에게 다음과 같이 다가간다.

지난 날의 국제정치가 산업 기술을 바탕으로 한 군함과 대포, 기차와 자동차를 떠올리게 한다면, 오늘날의 세계 정치는 IT를 기반으로 한 초고속   제트기와 항공모함, 우주무기와 스마트 무기, 그리고 드론과 킬러 로봇을 연상케 한다. 지난날의 국제정치가 인쇄혁명이나 전기통신혁명을 바탕으로 하여 문서를 보내고 전보를 치고 전화를 거는 시대적 환경에서 펼쳐졌다면, 오늘날의 세계 정치는 디지털 IT 혁명을 바탕으로 하여 인터넷과 인공위성, 그리고 스마트폰을 통해서 소통하고 클라우드 컴퓨팅과 사물인터넷을 활용해서 빅데이터를 처리하는 세상에서 이루어진다. (『4차 산업혁명과 한국의 미래전략』, 20면)

기술결정론 또는 경제결정론의 혐의가 있지만, 산업혁명 또는 그 혁명을 추동한 통신 기술의 발전과 국제정치의 변화를 인과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국제정치학의 한 조류였다(예를 들어, C. Murphy, International Organization and Industrial Change: Global Governance since 1850, 1994). 『4차 산업혁명과 남북 관계』는, 4차 산업혁명이 외교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정전(停戰)에서 평화로 가려는 국제 관계이자 특수 관계인 남북 관계에 그 한 전통을 적용해 보려 한다. 2016년 1월 세계경제포럼에서 ‘논쟁적인’ 개념인 4차 산업혁명이 언급된 이후(홍기빈, “4차 산업 혁명,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제5회 백 년 포럼, 2016), “해외 주요국들에 비해 한국이 유독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에 열광하는 것을 보며, 그 담론 안에 우리의 DNA에 맞는 무언가가 있는지도 모르겠다.”(『4차 산업혁명과 한국의 미래전략』, 5-6면)는 진술을 보며, 그 열광은 사실 ‘혁명’이 일상어인 남북 관계의 또 다른 축 북한에서도 2008년 정도부터 “정보산업혁명”으로 2011년부터는 “새 세기 산업혁명”으로 나타났음을 생각하게 한다.

 

북한에도 산업혁명의 담론이 배회하고 있다.

남한에서 (1차) 산업혁명은 방적기계와 증기기관으로 시작된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시작된 기술혁신과 이에 수반하여 일어나 사회·경제 구조의 변혁”(『두산백과』)으로 정의된다. 반면, “공장제수공업이 기계 제공업”으로 변화시킨 “생산기술에서의 변혁”으로 비슷하게 (1차) 산업혁명을 정의하는 북한은, “기계제 생산에로의 이행은 무엇보다도 근로자들의 자주성을 유린하는 자본의 힘을 크게 만들고 근로자들의 자주성을 유린하는 자본의 힘을 크게 만들고 근로자들을 더욱더 비참한 처지에 떨어지게 하였다”로 해석하는 방식으로 사회·경제구조의 변혁에 대한 나름의 가치판단을 담고자 한다(『경제 사전 2』; 『조선 대대 백과사전』). 기술혁신으로 발생한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의 비대칭성이 강조되지만, 프랑스혁명으로 상징되는 이른바 ‘시민혁명’은 북한판 산업혁명 정의에 추가되어 있지 않다.

북한에서 산업혁명이 일상어가 될 수 없는 이유다. 대체재는 1970년대부터 북한이 강조한 인간 개조를 위한 “사상혁명”, 사회개조를 위한 “문화혁명”과 함께하는 자연개조를 위한 “기술혁명”이다. 그러나 북한은 기술혁신에 근거한 내포적 성장의 길을 가지 못했다. 예를 들어 1939년 리승기 박사가 개발하고 북한이 1960년대부터 양산하기 시작한 나일론에 이은 세계 두 번째의 합성섬유인 비날론은, 자립적 민족경제론을 선택한 북한에서 기술혁신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기술 분야에서 ‘선발자의 함정’과 ‘기술의 저주’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2019년 1월 신년사에서도 북한은 여전히 “2.8비날론 련합기업소의 생산을 추켜세우는데 국가적인 힘을 넣어야” 한다고 말한다(『로동신문』, 2019년 1월 1일). 그러나 주체사상이 호명하는 노동의 투입을 통한 외연적 성장의 길을 걸어왔던 북한에서도 새로운 산업혁명 담론이 없지는 않았다.

북한 성장담론의 급변은, 김정일 정권 시기인 2000년대 초반 “정보산업시대”와 2009년 “지식경제시대”란 담론으로 나타났다(변학문, “김정은 정권 ‘새 세기 산업 혁명’ 노선의 형성 과정,” 『한국 과학 사회학회지』, 38: 3, 2016). 경원하던 산업혁명이란 용어가 정보와 결합된 “정보산업혁명”이란 표현이 등장했고, 지식경제시대는 2011년경부터 “새 세기 산업혁명”으로 승격되었다. 이 새 용어는 북한 최고지도자의 육성으로 언급될 정도다.

새 세기 산업혁명은 본질에 있어서 과학기술혁명이며 첨단돌파에 경제강국 건설의 지름길이 있습니다. 우주를 정복한 위성 과학자들처럼 최첨단 돌파전을 힘 있게 벌려 나라의 전반적 과학기술을 하루빨리 세계적 수준에 올려세워야 합니다. 인민 경제 모든 부문에서 과학기술발전에 선차적인 힘을 넣고 과학기술과 생산을 밀착시켜 우리의 자원과 기술로 생산을 늘이며 나아가서 설비와 생산공정의 CNC화, 무인화를 적극 실현하여야 합니다. (『로동신문』, 2013년 1월 1일)

북한판 새 세기 산업혁명을 상징하는 공작기계에 적용되는 컴퓨터수치제어(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 또는 Computer Numerical Control, 컴퓨터 수자 조정)를 북한은 영문 약자 CNC로 쓰고 있다. 김정은 조선로동당 위원장이 말했듯 “우리는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볼 데 대한 장군님의 뜻대로 높은 목표와 리상을 가지고 투쟁하며 모든 면에서 세계를 디디고 올라서야” 한다는 북한판 세계화 의지의 한 표현이 북한에서는 유례가 없는 CNC란 영문 그대로 쓰기다(『로동신문, 2012년 12월 10일). “CNC공업화에 이바지한 련하기계의 로력혁신자, 과학자, 기술자”들을 “새 세기 산업혁명의 선구자”로 지칭한 시점이 2011년 11월이었다. “돌파하라 최첨단을”이란 CNC의 노래가 있을 정도다. 북한의 자강도 희천에 위치한 련하기계를 2011년 2월경에 지칭할 때만 해도 새 세기 산업혁명 대신 정보산업시대란 표현이 사용되었다.

북한의 새 세기 산업혁명의 성과로, “생산과 과학기술을 밀접히 결합시키기 위한 힘찬 투쟁이 벌어진 결과 백수 십 대의 공작기계를 비롯한 중요 설비들을 CNC기대로 개조하고 200여 개 대상의 중요 생산공정을 현대화하였으며 근 100개의 단위들이 통합 생산체계를 비롯한 생산과 경영활동의 정보화를 빛나게 실현”한 것을 선전한다(『로동신문』, 2012년 12월 10일). 대상이 되는 공장들은 경공업, 선행 공업과 기초공업, 기계 및 전자공업 부문 등으로 전 산업에 걸쳐 있었다. 2019년 현재에도 이른바 사상, 문화, 기술혁명을 추동하는 “3대 혁명소조원”을 “새 세기 산업혁명의 척후병”으로 부르며 북한적 방식인 ‘사회운동적 기술혁신’을 추구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남북관계』는 북한의 새 세기 산업 혁명론을, 과학기술에 기초한 성장담론으로 해석하며, 특히 나노기술, 바이오기술, 환경기술과 함께 핵심을 차지는 분야인 정보기술(IT)을 중심으로 한 “단번 도약” 발전전략으로 해석하고 있다. “디지털 북한”의 출현은 북한이 추구하는 새 세기 산업혁명의 한 성과로 기록되고 있다(4장).

 

『4차 산업혁명과 남북관계』는 “북한이 스스로 선택하고 감당할 수 있는 경제발전 모델을 사전에 심도 있게 탐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8면)며, “인공지능, 빅데이터, 블록체인, 이동통신, 사물인터넷 등 IT 분야는 4차 산업혁명을 추동하는 산업이라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남북한이 모두 주요 성장 동력으로 발전에 주력하고 있는 산업이”(9면)란 점에 주목한다. 현재는 폐쇄되어 있는 개성공업지구와 같이 북한의 저임금 노동과 남한의 한계산업이 결합된 남북 경제협력 모델이 유효하지 않다는 의미로 들린다. 비핵·평화 과정의 지속 가능성이 관건이겠지만, 남한의 4차 산업혁명 담론과 북한의 새 세기 산업혁명 담론이 조응할 수 있는 남북 경제협력에 대한 상상이다.

북한은 2018년 4월 20일 조선로동당 제7기 3차 전원회의를 통해 2013년부터 시작한 핵·경제 병진 노선의 승리를 선언하고 경제건설에 총력을 다 하는 이른바 “새로운 전략로선”을 설정한 바 있다. 1978년 12월 중국공산당 11기 3중전 회의나 1986년 베트남 공산당 6차대회에서 제시된 도이머이정책을 연상하게 하는 개혁·개방선언으로 해석될 수 있는 정책전환이다. 그러나 중국과 베트남의 과거 사건이 개혁·개방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적대국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와 IMF와 같은 국제경제기구에서 정상 국가로 활동할 수 있어야 했다. 2019년 2월 28일 북한과 미국의 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북한의 “새로운 전략로선”이 개혁·개방선언으로 해석될 기회가 유보되었다. 적에서 친구로 전환되는 평화 과정은, 일방적 포용에서 평화협정과 같은 제도적 장치의 마련, 그리고 경제 및 사회문화적 협력을 통한 통합 그리고 문화적 공통성을 확인하는 절차를 필요로 한다(C. Kupchan, How Enemies Become Friends, 2012).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은 서로의 국가행동에 제약을 가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지 못하고 종료되었다. 북한의 핵시설 신고와 미국의 대북제재 해제란 교환의 틀을 북미는 만들어내지 못했다. 평화 과정이 지난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제4차 산업혁명과 남북관계』가 제시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남북 경제협력은, “몽골-중국-러시아-한국-일본의 전력 계통을 연결하는 동북아 슈퍼그리드”, “남-북-러 천연가스망 연결”(3장), ICT 기반 협력 모델의 창출(5장), “디지털 문화콘텐츠 협력 사업”(6장),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생할 수 있는 미래의 전쟁을 예방할 수 있는 군사협력(7장), ICT 기술을 활용한 e헬스 거버넌스의 남북 보건 협력에의 적용(9장) 등등이다. 한반도 평화 과정에서 서로의 행동을 제약하고 국가행동의 상호 조정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를 건설할 때, 그리고 전통적인 남북경협을 넘어서는 신사고를 할 수 있을 때, 실현할 수 있는 대안들이다.

하나 더 추가할 수 있는 남북 경제협력의 경로는, 『제4차 산업혁명과 남북관계』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북한의 경제개발구를 매개로 한 협력이다(163-4면). 북한은 핵·경제 병진 노선을 채택하면서 동시에 북한 전역에 걸쳐 20여 개의 경제개발구를 지정하고 그 개발구를 매개로 한 발전 전략을 세운 바 있다. 중국의 개혁·개방 초기 특정 경제특구를 중심으로 한 발전전략을 만들었던 것과 비슷한 모습이다. 그 가운데는 평양에 위치한 “은정첨단기술개발구”(2014년 지정)와 같은 북한판 새 세기 산업혁명의 공간이 있다. “은정첨단기술개발구”는 원래 “은정과학지구”였고, 이 지구는 “과학 지구와 과학 연구기관에 생산기지를 꾸”리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2012년 11월 26일 『로동신문』 보도에 따르면 “은정과학지구”에 있는 “기계공학 연구소”는 생산기지인 “인조금강석직장”과 “유압기구직장”과 연결되고, “조종기계연구소”는 “CNC장치생산기지”를 가지는 방식으로, “자동화연구소”는 “자동화시기구시험공장”란 생산기지를 가지는 방식으로, “미소 전자 연구 중심”은 “첨단 정보기술 제품 생산기지”와 연계되어, 운영되고 있었다고 한다. 연구와 생산을 단일 지구 내에서 통합하는 방식의 지구 운영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은정과학지구의 생산기지들이 은을 낸다.”가 이 기사의 제목이었다. 『제4차 산업혁명과 남북관계』에서는 “은정첨단기술개발구”에 국가 과학원 130여 개 연구소와 1만여 명의 연구원이 있고, 싱가포르 등과 협력한 20여 개의 기술기업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140면). 또 다른 사례로 2013년 11월 11일 착공에 들어간 “개성고도과학기술개발구”에 북한은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고자 했다(『통일뉴스』, 2013년 11월 12일). 경제개발구를 통한 북한판 개혁·개방도 외국인 투자가 없다면 실행이 가능하지 않는 길이다.

북한판 4차 산업혁명과 연관된 개발구를 남한의 판교 실리콘밸리를 연결하는 방식의 남북 경제협력 모델을 만들 수도 있다. 북한의 경제개발구를 남한의 지방자치단체 및 IT 관련 기업과 연구소들과 연계하는 남북 경제협력 방식의 모색이다. 적에서 친구가 되는 길인 한반도 평화 과정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에서 볼 수 있듯이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가 쉽지는 않다. 한반도적 맥락에서 평화의 길로 가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비로소 『제4차 산업혁명과 남북관계』가 제시하는 남북 경제협력이 작동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제4차 산업혁명과 남북관계』는 역으로 남북이 ‘공유’할 수 있는 산업혁명담론을 기반으로 남북경제협력의 새 길을 제시하고 있기에,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평화 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제4차 산업혁명과 남북관계』를 낡은 패러다임에 갇혀 있을 수도 있는 우리가 읽어야 하는 이유다.

저자 :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