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진실과 거짓의 싸움에 정부 개입 안 돼…한국형 자율규제 틀 마련해야
“자율 경쟁 상황 지켜보는 정부 인내심 절실”
“더 많은 회원사 참여… 향후 10년 미래 내다봐야”
정부 규제 완화에 따른 보완적 처방으로 ‘자율규제’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에서 인터넷 자율규제 기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제도와 공공선택의 문제를 수십 년 동안 연구한 연구자이자 200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엘리너 오스트롬은 ‘공유의 비극을 넘어(Governing the Commons)’라는 책에서 공유지의 비극은 각 주체의 자율규칙 형성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고 했다. 정부의 역할은 공정한 시장 속에서 각 행위자가 형성해나갈 ‘자율규칙’들이 준수되고 뿌리내릴 토양을 형성시키고, 유지・관리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2009년 3월, 국내 인터넷 자율규제의 활성화 및 조기 정착을 위하여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orea Internet Self-governance Organization, 이하 KISO)가 출범한 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KISO는 수년 동안 뜻있는 연구자들과 시민사회의 논의 결과로 태동해 인터넷 공간의 질서와 합의를 도출해 나가고 있다.
KISO저널은 10주년을 맞아 현재 KISO 산하 위원회 위원장들을 만나 자율규제 비전에 대해 들어봤다. 대담은 중앙대 인근 모처에서 두 시간 가량 진행됐다. 이들은 사이버상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 규제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으며, 협력적 거버넌스(Governance)의 틀을 통해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 시장이 주도하여 설립한 한국 최초 민간자율규제 기구인 KISO가 10주년을 맞았다.
(이인호 정책위원장)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는 인터넷에서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 보호’라는 규범적 가치가 충돌할 경우 균형 감각을 가지고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자율규제 정책을 수립하고 실천해왔으며, 특히 정책위원회는 KISO의 사명을 실현하는 중심 위원회로서 지난 10년 동안 충실히 역할을 수행해왔다고 자평한다.”
(배영 인물정보 서비스 자문위원회 위원장) “지난 10년 전과 비교해 볼 때 인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더 커진 것 같다. 관심이 많아진 만큼 요구는 다양해졌고, 또 복잡해졌다. 인물정보서비스에 대한 자문을 해 온 지난 6년은 중첩되거나 비어있는 영역을 찾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 지금 자율규제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인호) “특히, 빠르게 진화하는 인터넷 영역에서 자율규제의 장점이 두드러진다. 자율규제는 정부가 규제할 수 없거나 규제가 어려운 영역이나 사안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충돌하는 이익들을 객관적으로 조정해 낼 수 있다. 예를 들면, 가짜뉴스 혹은 거짓 정보를 정부가 나서서 규제하면 자칫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으나, 자율규제로 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시도는 매우 의미 있다. 자율규제는 정부 규제가 충분히 가능한 영역에서도 규제 비용을 줄이면서 사업자들의 자발적인 준수를 끌어낼 수 있다.”
(김기중 네이버 검색어 검증위원회 위원장) “(자율규제는) 사회적 변화, 시간의 경과에 따른 새로운 이슈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으며, 수범자들의 규제에 대한 수용성이 훨씬 크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디지털 유품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었을 때, KISO 주도로 그 기준을 수립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새로운 문제에 대한 법령의 대응은 늦을 수밖에 없으므로, 자율규제 기구에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디지털 유품 사례는 자율규제의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법령의 제・개정 없이 자율규제의 기준만으로 규제 기준을 정하는 것은 그 집행 상에 일정한 한계가 있기도 한데, KISO는 법령상의 한계가 있어 디지털 유품 기준을 최소한으로 정할 수밖에 없었다.”
△ KISO 산하 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임하며 자율규제 활동에 있어서 어려웠던 점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배영) “같은 서비스에 차별적 적용이 불가능한 것이 공적 규제라면, 자율규제는 아무래도 회원사별 상황과 관행의 차이로 상이한 적용이 나타날 수 있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같은 사안이라 할지라도 다른 처리 결과를 나타내는 부분들에 다양한 의구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부분을 이용자에게 설명하는 과정이나 또 가능한 회원사별 공통 기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여전히 쉽지만은 않다.”
(김기중) “KISO가 출범한 지 10년이 됐지만, 이용자들이 KISO 활동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점은 큰 걸림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는 홍보의 문제라기보다는 자율규제의 경험과 전통이 부족한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한계인 듯하여,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가장 보람을 느꼈던 때는 언제인가.
(이인호) “정책위원회는 전문성을 가진 역량 있는 7인의 정책위원회 위원들이 회원사가 제공하는 인터넷 서비스의 게시물 또는 검색어 등에 관한 정책을 결정하고, 피해구제 신청에 대해 개별적인 심의결정을 한다. 인터넷의 긍정적 가치를 지켜나가는 일선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로도 보람을 느낀다. 정책위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것은 소중한 경험이다.”
(배영) “서비스의 운영과 관련한 기본 체계에 대한 검토와 다양한 사례의 심의를 통해 기본 원칙을 구축하거나 개선해나가는 과정에서 보람을 많이 느낀다. 다른 위원회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지만 인물정보서비스자문위원회의 경우 직업별 등록 기준을 검토하기 위해 현재 우리 사회의 직업 체계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부터 시행했다. 이런 과정 속에 마련한 기준과 적용에 있어서의 원칙은 충분히 의미 있는 작업의 결과였다고 자부한다.”
△ 4차 산업혁명 등 신기술 발전 방향에 따라 프라이버시(Privacy)나 표현의 자유 등과 같은 이슈는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이는데, 향후 화두는 무엇이 될 것으로 보는가.
(이인호)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의 충돌 문제가 두드러지고, ‘잊힐 권리(Right to be Forgotten)’, ‘데이터이동권(Right to data portability)’의 이슈 또한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도 인공지능이 발전하면서 ‘가짜(Fake Data)’ 문제, 알고리즘에 의한 차별 문제도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김기중) “뭐니 뭐니 해도 개인정보 이슈가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배영) “개인정보 보호와 활용에 대한 이슈는 향후 데이터 활용 폭이 커지는 상황에서 보다 많은 논의가 뒤따를 것으로 판단된다.”
△ 우리 인터넷 문화에서 변화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변화를 위한 방향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이인호) “두 가지를 들 수 있겠다. 하나는 자유에 따르는 책임의식을 갖는 것이 필요하고, 다른 하나는 진실 존중의 문화가 확산돼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인터넷이 수준 높은 자유의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그 자유의 전제인 책임의식이 뒤따라야 하고, 진실을 추구하려는 시민의식이 높아져야 할 것으로 본다.”
(배영) “국민의 기본권이라 할 수 있는 알 권리나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 인식은 온라인 문화의 활성화를 통해 매우 높아진 반면, 타인의 권리 침해에 대한 고려는 상대적으로 더딘 양상을 보이고 있는 듯하다. 특히 소통을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고 갈등 요인을 제거해 갈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는데, 오히려 갈등이 심화하고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에 무감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어느 한 주체의 노력보다는 문제의 심각성을 자각하고 함께 해결해 나가려는 공감의 형성이 우선 필요하다. 개별 사안에 대한 대책보다는 건강하고 생산적인 공간과 문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모색이 계속돼야 한다.”
△ 인터넷과 관련된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다. 정부가 인터넷 진흥 및 규제에서 가져야 할 방향성은 무엇이 바람직하다고 보는가.
(이인호) “인터넷 분야에서 자율규제를 하고 있음에도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현실이 아쉽고 안타깝다. 진실과 허위의 싸움에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무엇이 진실이고 허위인지, 어떤 표현이 가치 있고 가치 없는지를 정부가 재단(裁斷)하려고 해서는 곤란하다. 정부는 사상의 경쟁 메커니즘이 잘 작동할 수 있도록 자율적인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에 신경을 써야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한국적 상황에 적합한 자율규제 틀을 만드는 논의구조가 필요하다.”
(배영) “사실 정보화 초기 이외에 효과적인 진흥 정책을 실감하지 못했다. 현재는 규제가 상수이고 진흥이 변수인 상황인데,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진흥 정책의 경우에도 현재와 같이 단기 위주의 시장 정책보다는 장단기적인 고려를 통해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려주었으면 좋겠다.”
(김기중)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자율경쟁 상황을 지켜보는 정부의 인내심이다. 정부가 주도하는 일방적인 법리 적용에 의한 완충장치로서 자율규제의 강점이 있기 때문에 많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 KISO가 성공적인 자율규제기구로 정착하기 위해 무엇이 더 보완돼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씀 부탁드린다.
(이인호) “KISO 회원사는 현재 12개로 주요 포털 등이 참여하고 있지만 많다고 하긴 어렵다. 국내 이용자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해외 기업들도 회원사로 참여토록 독려할 필요가 있다.”
(김기중) “이용자를 포함해 보다 넓은 이해관계자 그룹이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심지어 정부 쪽 관계자도 옵저버(Observer) 형식으로라도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배영) “더 많은 회원사의 참여와 더 많은 영역에서의 활동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KISO가 자율규제(Self-Regulation)기구가 아니라 자율정책(Self-Governance)기구라는 이름에 더 부합하는 차원에서 사업을 기획하고 검토해야 한다. 다양한 산업의 스펙트럼 속에 현재 하고 있는 영역 외에 다른 영역으로 활동 범위를 넓혀가기 위해 필요한 내용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인력이 100명은 더 필요하지 않을까(웃음). 물리적 역량의 한계가 있지만, 10년간 업력을 바탕으로 향후 10년을 바라보며 한국과 인터넷, 어떻게 바뀔지 모를 지능정보사회를 내다보고 대비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사회=신익준 KISO 사무처장
정리=박엘리 기획팀장
<약력>
- 이인호 정책위원회 위원장
△한국공법학회‧한국헌법학회‧한국언론법학회 부회장 △사단법인 한국정보법학회 공동회장(전) △헌법재판소 헌법연구원 연구관보 △중앙행정심판위원회 비상임위원 △국회사무처 입법지원위원(현 8기) △국가인권위원회 행정심판위원회 위원(현)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 정책위원장(현)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현)
- 김기중 네이버 검색어 검증위원회 위원장
△한국인터넷정보센터 NNC위원(전) △한글인터넷주소 분쟁조정위원회 위원(전) △한국무선인터넷산업연합회 무선인터넷 심의위원(전) △법무법인 동서파트너스 변호사(전)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 정책위원(현) △법무법인 동서양재 변호사(현)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현)
- 배영 인물정보 서비스 자문위원회 위원장
△한국정보사회학회 이사(전) △사이버커뮤니케이션학보 편집위원(전) △한국인터넷진흥원 이슈리포트 편찬위원(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자문위원회 위원(전)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 인물정보 서비스 자문위원회 위원장(현) △숭실대학교 정보사회학과 교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