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이’의 자기결정권이 먼저 보장되어야
1. 우리 사회에 인터넷이 일반화된 것이 10여년 남짓한 상황인 점을 고려하면 네티즌의 죽음에 관한 우리의 대응은 매우 중요한 시점에 있다. 현재는 이 문제가 다소 생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앞으로 죽음을 앞둔 네티즌이 필연적으로 늘어나 언젠가는 모든 이가 이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 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을 고려하면 우리가 이 문제를 대하는 것은 한 때의 정책적 호불호를 정하는 것보다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 논의에 관한 현재의 결정은 결과적으로 모든 네티즌의 죽음에 대한 준비를 위한 시금석이 되는 것이다.
2. 현재의 상황적 문제 해결을 논하는 것에 앞서 반드시 생각해야 할 원칙이 있다. 이 원칙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토론자는 주체적 의사결정자인 당사자로서 죽을 이(결국은 死者가 될 이)의 의사결정권을 보장하는 것을 꼽고 싶다. 현재 우리의 논의는 이런 준비 없이 죽은 네티즌의 디지털 유품을 둘러싼 법률관계에 관한 것이 핵심이지만, 앞으로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것은 바로 죽을 이들이 이런 문제에 관하여 충분히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死者의 디지털유품을 둘러싼 법률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업계의 서비스약관에 이러한 선택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포괄적으로 권리를 누구에게 일임하는지를 비롯하여 재산권적 정보와 인격권적 정보의 구분, 폐기 대상 정보의 지정, 일정 기간 이후 공개 선택 등 네티즌의 선택에 따라 다양한 서비스 모델을 창의적으로 구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서비스를 사업의 내용으로 하는 업체까지 나타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자기결정권의 최소한은 사회적 합의를 해 두는 것이 좋겠다.
3. 이 문제에 대한 두 번째 원칙은 사람은 죽음으로써 모든 권리 의무 관계를 소멸시킨다는 점이다. 그러니, 죽은 이의 홈페이지, 블로그, 카페 등의 디지털 정보에 관한 어떠한 관리행위도 죽은 이의 명의로 이행되어서는 아니 된다. 이후의 적법한 권리자가 승계자의 권리, 즉 살아 있는 이의 명의로 죽은 이를 추모하는 등의 행위를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죽은 이의 명의로 디지털 정보의 변경 등이 이루어지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어서는 아니된다. 이 점은 죽은 이를 추모하고 안타까워하는,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과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추모의 뜻을 가진 이들이 죽은 이를 죽은 이로서 추모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죽은 이를 살아 있는 것처럼 대하는 것은 추모의 공간에서는 허용되는 행위일지언정 법률의 공간에서 허용되는 행위는 아니다. 그러니, 죽은 이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죽은 이의 아이디나 비밀번호를 갖고 정보관리를 시도하는 행위에 대하여 사업자가 이를 허용하는 것은 법리적으로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을 국가가 공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이것이 우리의 모든 사회 생활관계의 기본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이 점을 원칙으로 삼고 적응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일정기간이 지난 후 적법한 권리자에게 권리를 이전하고, 특정 기간이 지난 후에는 삭제 또는 폐기하거나 재산적 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권리자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에는 국가에 귀속하는 등의 조치가 가능할 것이다. 이것은 상속에 관한 일반적 법리이다. 물론, 디지털 유품에 대해 상속법의 법리 이외의 규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 특별법적 조치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업계와 사회의 오랜 연구와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4. 현 시점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작업은 사회적 합의의 단초를 얻는 것이다. 우선 이 작업은 디지털 정보의 이용관계에 초점을 두고 사전에 결정할 수 있도록 약속을 하는 것으로 시작될 수 있다. 업계에 표준약관을 만들어서 제공한다면 현재의 혼란을 다소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KISO에서 연구할 사항이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법적 조치가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와 국회가 함께 공론화 과정을 거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