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카르텔의 관음 문화는 어떻게 확대 재생산되는가
지난 4월 9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변호사 백성문은 정준영, 승리 등과의 단톡방에서 음란물 공유 사유로 조사 받은 로이킴에 대해 “통상적으로 일반인이라면 입건도 잘하지 않을 만한 것을 정준영 단톡방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하는 거 충분히 억울하다고 느낄 만하다”고 변호했다. 그는 로이킴의 범죄가 정준영의 경우처럼 중범죄가 아니며 “아마 청취자분들도 가끔 있을”, “남자들끼리 하는 단체 대화방 같은데 약간 야한 사진 올리는 경우”에 불과하다는 걸 논거로 들었다.
로이킴의 사례가 정준영의 그것만큼 중범죄는 아닐 것이다. 또한 로이킴 외의 일반 남성 상당수가 비슷한 행동을 했을 거라는 것도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실제로 인터넷 남초 커뮤니티에선 ‘이런 식이면 안 잡혀갈 남성들이 없다’며 로이킴을 옹호하기도 했다. 하지만 로이킴의 행동이 명백한 범법 행위는 아니라는 것, 그리고 상당수 한국 남성들이 비슷한 행동을 한다는 것이 그 행동에 대한 도덕적 결백의 근거를 마련해주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억울함’의 증거가 될 수도 없다. 오히려 백성문 변호사의 발언은 그동안 어떤 식으로 남성들이 아무 문제의식 없이 관음증적인 정서를 공유해왔는지, 여성을 대상화하는 행위를 얼마나 쉽고 당연하게 생각해왔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당장 여성에 대한 불법 촬영물을 공유하고 소비하던 소위 ‘웹하드 카르텔’ 역시 죄책감도 문제의식도 없는 상당수 남성들의 방관 속에서 자라오지 않았나. 어떤 사태가 문제없다는 것은 사실, 그동안 문제 삼지 않았다는 것을 뜻할 뿐이다. 지금 우리는 문제 삼지 않았기에 문제 없다고 말하기보단, 그동안 문제 삼지 않았던 도덕 판단에 어떤 안일함이 없었는지 질문하는 게 먼저다.
가령 앞서 인용한 “남자들끼리 하는 단체 대화방 같은데 약간 야한 사진 올리는 경우”는 어떨까. 이 역시 사적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이기에 처벌하거나 공적인 책임을 지우긴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여성을 인격체가 아닌 성적 대상으로만 인식하고 그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고, 그 행위를 통해 남성들끼리의 유대감을 공고히 하는 것이 과연 도덕과 무관한 일일 수 있을까. 다시 말해 한쪽 성별이 다른 한쪽 성별의 존재를 인격체보다는 일종의 소비재처럼 바라보는 문화가 암묵적으로 용인되고 있다면, 이것이 정의의 문제와 상관없는 취향과 사적 자유의 영역이라고 말해도 될까. 단톡방은 그저 단톡방일 뿐이고 그곳을 벗어나면 여성을 존중할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것은 그 반대의 경우와 비교해 훨씬 반직관적이고 믿기 어려운 일이다.
당장 단톡방 바깥으로 나가보자. 2008~2009년 당시 모 연예부 사진 기자는 여성 연예인의 몸매 라인을 강조한 사진을 찍을 때마다 ‘ㅇㅇㅇ, 숨 막히는 뒤태’라는 타이틀을 하도 많이 써서 그러다 숨 막혀 죽겠다는 핀잔을 받은 적도 있다. 사람들은 만날 똑같은 타이틀을 달고 아무 정보값 없는 사진 기사를 줄줄이 송고하는 그의 안일함을 ‘기레기’라는 말로 비난했지만, 그런 식으로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 하고 접근해 촬영하고 타이틀을 다는 태도 자체는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그의 사진은 사진 그 자체와 타이틀로 남성 독자들에게 훔쳐보기의 쾌감을 자극했다. 상대의 뒤에서 뒷모습을 힐끗힐끗 훔쳐보는 그런 쾌감. 지금도 포털 연예 기사나 스포츠 기사에서 무대 위 걸그룹의 모습이나, 프로 스포츠 시합에서 여성 치어리더의 가장 섹슈얼한 순간을 포착하고 클로즈업해 클릭을 유도하는 사진 기사를 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것이 모두에게 열려 있는 포털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해서, 피사체가 된 당사자들이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해서 관음이 아닌 건 아니다.
앞서 말했듯, 동참하는 이들이 많다고 해서 그것이 당연시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저 관음증적인 카메라의 시선 앞에서, 여성 연예인들이나 치어리더는 자신의 직업을 열심히 수행하는 각각의 인격체가 아닌, 그저 남성들의 시각적 쾌감을 위한 소비재로 납작하게 축소된다(그들이 섹슈얼한 퍼포먼스를 하는 것은 일부 사실이지만, 이 역시 여성을 대상화하는 사회 문화적 맥락 위에서 파악하는 게 옳다). 또한 이처럼 관음증적 이미지의 공공연한 유통은 관음증적 시선에 대한 일종의 사회적 승인 역할을 해준다. 걸그룹의 안무 중 특정 동작과 부위에 집중하는 소위 ‘직캠’이 하나의 팬 문화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보라. 문제 삼지 않으니 문제가 없다는 인식은 여기서도 반복된다. 앞서 ‘직관적인 찜찜함이 남는’ 수준의 관음증을 확실한 범죄로서의 관음증과 분리했지만, 이러한 사회적 승인 위에서 범죄로서의 관음증에 대한 정서적 토대 역시 만들어진다.
정준영 단톡방과 ‘웹하드 카르텔’, 그리고 그 이전의 소라넷 사태 등을 가로지르는 것은 여성 신체 이미지를 소비재 삼아 자기들끼리 교환하고 젠더 권력에 탐닉하는 남성 문화다. 이것을 일반 남성 단톡방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동일하게 볼 수는 없지만, 동일한 정서를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정준영 단톡방 사건 이후 까발려진 남성 기자 단톡방 불법촬영물 공유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 그 일반 단톡방에서의 관음 문화가 나름의 정도를 지키리라 기대하는 것도 난망하다. 한국 여성들에게 이 사회는 말하자면 관음의 판옵티콘 같은 것이다.
물론 인터넷 관음증-로이킴-정준영 단톡방-불법 촬영물 촬영의 연결고리에 어떤 필연성이 있다는 것이 모든 사안에 동일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뜻이 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단톡방 검열을 해도 된다는 뜻이 될 수도 없다.
다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통상적으로 일반인이라면 입건도 잘하지 않을 만한” 남성들끼리의 여성 관음은 일회적이거나 우연적이지 않은 거대한 현상이며, 이것은 다른 동료 시민을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미 부도덕하며, 이러한 도덕적 해이와 남성 카르텔의 기반 위에서 그보다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한다고. 그렇다면 각각의 단톡방에 속한 남성들이, 또한 연예인 뒤태 사진을 올리는 언론들이, 그리고 그걸 실어주는 포털들이 적어도 자율적으로 해당 행위를 지양할 도덕적 책무가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남들 다 하니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에 대한 비판에 억울해 할 일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정도의 사회적 합의조차 이루지 못한 사회에서 로이킴의 억울함이나 이야기하는 건, 너무 속편한 소리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