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된 전자상거래… 팬데믹 속 24시

코로나 시대, 택배로 시작하는 하루

눈 뜨면 택배 박스와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인생의 3분의 1을 코로나와 함께 보낸 6살 아이는 택배 아저씨가 ‘우리에게 필요한 물건을 매일 문 앞에 가져다 놓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마스크 안 쓰는 것보다 쓰는 게 더 편하다는, 코로나 시대에서 인생의 3분의 1을 보낸 아이니 그럴 만도 하다. 이 ‘코로나 키즈’의 일과는 오전 7시에 일어나 화장실에 다녀온 후, 현관 문 앞에 놓인 택배 박스를 집 안에 함께 들여놓는 것으로 시작된다.

생각해보면 아이의 생각이 틀린 것도 아니다. 아이의 작년 생일 자전거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전동 킥보드도, 심지어 도서관에 다니지 못할 때는 자신이 원하던 그림책까지 어느 날 택배아저씨가 마법처럼 문 앞에 가져다 놓았으니까. 가끔 일하는 엄마가 알림장을 늦게 봐, 부랴부랴 토요일 오후 늦게 쿠팡을 통해 주문하는 유치원 준비물도, 다음날 아침이면 로켓처럼 문 앞에 와 있다. 오히려 당장 ‘헬로 카봇’을 사달라는 주문에, “이건 지금 살 수가 없다”는 부모의 말이 아이 입장에선 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니 택배 아저씨에게 달라고만 하면 되는데, 도대체 왜 안된다는 거야?”

나는 가족 외에는 공유하지 않는 아파트 현관 비밀번호를 딱 한 사람과 더 공유한다. 마켓 컬리 기사님이다. 밤 11시에 주문하면 오전 7시까지 문 앞에 놔둔 다는 그 기적의 새벽 배송 서비스 말이다. 마침 똑 떨어진 주방 세제부터 계란, 우유, 저녁에 먹을 삼겹살까지… 신선식품부터 공산품까지 가리지 않고 도열한 어젯밤 치열한 장보기의 결과물을 보면서, 나는 새삼 신기하고 감사하다. 특히 이 모든 것들이 전날 밤 10시 50분 야근을 마치고 소파에 앉아 부랴부랴 주문해 놓은 것들이란 사실에, 더욱더!

마치 모든 소비를 얼어붙게 할 것 같았던 코로나 초창기와 달리, 코로나 2년차에 접어든 우리는 전자상거래로 매일의 일상을 채우고 있다. 하루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새벽 배송은 이제 기본. 업무상 급하게 봐야 하는 책은 퇴근 전 주문하면 ‘양탄자’를 타고 다음날 오전이면 날아오고(알라딘 양탄자 배송), 옷은 핸드폰 속 ‘입어보기 라방(라이브 방송)’을 통해 말 그대로 직접 입어보듯 대리만족 하며 고를 수 있다. ‘라이브 방송’을 통한 쇼핑은 쌍방향 소통이 어려워진 코로나 시대 등장한 그야말로 새로운 방식의 소비 형태다. ‘라이브 커머스(live commerce)’라고도 하는데, 실시간 동영상 스트리밍을 통해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일종의 휴대폰 속 ‘홈쇼핑’같은 역할이지만, 기존의 홈쇼핑에서 더 나아가 채팅방 등을 통해 운영자나 다른 구매자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면서 구매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방금 그 블라우스 검은색도 입어봐 주실래요?” “혹시 한 사이즈 더 큰 건 없나요?”와 같은 식이다. 네이버의 ‘쇼핑라이브’, 카카오의 ‘톡 딜라이브’, 롯데백화점의 ‘100라이브’ 등 국내 대표적인 유통 채널 대부분이 코로나 이후 라이브 커머스를 운영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아예 욕실에서 화장을 다 지우고 등장한 쇼호스트가 세수하는 것부터 아이라이너 그리는 것 까지 하나씩 보여주며 화장품을 판매하는 라방도 있다.

음식 분야로 눈을 돌려보자. 이제 유명 식당들의 음식은 직접 방문하지 않더라도 밀키트 혹은 택배 배송 등으로 만나 볼 수 있다. 과거엔 제조와 유통, 물류가 구분 돼 각자의 역할을 맡았다면, 전자상거래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유명 식당이 직접 상품을 소비자에게 팔고, 배달하기도 한다. 유통업체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밀키트’다. 과거 완제품을 고객에게 파는 데만 주목했던 유통업체들은 코로나19에 접어들며 이마트의 ‘조선호텔 유니짜장’처럼, 직접 유명식당들의 레시피를 토대로 한 밀키트나 간편식을 제조해 인기를 얻고 있다. 밀키트는 Meal(식사)과 Kit(세트)의 합성어로 요리에 필요한 손질된 재료와 양념, 조리법을 세트로 구성해 판매하는 제품이다. 식재료 손질이 다 돼 있어 번거롭지 않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조리만 하면 하나의 메뉴를 만들 수 있다. 코로나19로 외식 등이 어려워지고, 휴교나 재택근무 등으로 가정 내에서 식사하는 ‘집콕족’이 많아지면서, 관련 사업이 급성장했다. 이마트에 따르면 올해 들어 7월까지 밀키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22.2%로 급증했다.

이를 용이하게 한 또 다른 기술이 바로 네이버 페이, 카카오 페이 등의 핀테크다. 핀테크는 금융이라는 뜻의 파이낸스(Finance)와 기술이라는 뜻의 테크놀로지(Technology)가 합쳐진 말로, 금융과 (정보)기술이 결합한 서비스 또는 그런 서비스를 하는 회사를 뜻한다. 공인인증서 넣고, OTP 일일이 확인하지 않아도 지문인증이나 간편 비밀번호만으로 모든 온라인상 결제를 가능하게 한 일등 공신이다. 신데렐라의 호박 마차 못지않은 마법 같은 일이 지금 2021년 대한민국에선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조원 매출 올린 마켓컬리

이런 마법 같은 일은 실제 전자 상거래 업체의 성장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내 ‘새벽배송’서비스의 선구자격인 마켓컬리 운영업체인 컬리는 지난 3월 초 주주들에게 김슬아 대표 이름으로 정기주주총회 소집 통지서를 보냈다. 이 통지서에서 컬리는 지난해 매출액이 9523억원으로 전년(4259억원)보다 123.5%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는 주요 대형마트의 온라인 쇼핑몰 매출액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2015년 서비스 초창기 당시 매출이 29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정말 괄목할만한 성장세다. 고객 수 역시 지난 5월 기준 누적 800만명을 돌파했다.

특히 컬리는 코로나19의 확산에 더 강한 면모를 보였다. 컬리 측은 서울 등 수도권 지역에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시행된 지난 7월 12일부터 20일까지 신규회원 가입자 수가 직전 주 대비 43% 증가했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마켓 컬리에서 기록한 총 주문 건수도 이전 기간 대비 12% 증가했다.

컬리 뿐 아니다. 올해 미국 뉴 증시에 상장한 쿠팡도, 미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상장 서류에서 지난해 매출이 119억7천만달러(약 13조2500억원)로 2019년의 7조1000여억원보다 약 91% 늘어났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쿠팡과 컬리가 나란히 2배 안팎의 매출 성장을 이룬 셈이다.

국내 양대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와 카카오 마찬가지. 이들 업체는 코로나19 속 커머스·핀테크·콘텐츠 등 신사업의 성장에 힘입어. 올해 2분기 나란히 역대 최대 실적을 거뒀다.

이러한 새로운 산업의 성장은 새로운 형태의 노동도 낳았다. 밤에 일하는 물류 노동자와 야간 택배 기사 등의 ‘야간 노동자’다. 이를 ‘긱 이코노미(gig economy)’라고도 한다. 긱 이코노미는 1920년대 미국 재즈클럽에서 단기적으로 섭외한 연주자들을 부르던 말 ‘긱(gig)’에서 유래한 것으로, 특정 기업과 고용계약을 맺고 일하기보다, 앱 같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그때그때 제공되는 일거리를 잡아 돈을 버는 경제 활동을 말한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는 이를 ‘디지털 장터에서 거래되는 시간제 근로’라고도 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투잡 개념으로 이 시장에 뛰어드는 사람이 많았지만, 코로나19로 관련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점차 이를 생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늘어나 사실상의 전업 노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이나 웹사이트 등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노동이라는 뜻에서 ‘플랫폼 노동자’라고도 한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플랫폼 노동자는 전체 취업자의 7.4%인 178만명에 달한다.

물론 급격한 성장에는 성장통도 따르는 법이다. 최근엔 이들 노동자에 대한 갑질이나 과로사 등 열악한 노동 환경이 수면 위에 드러나 사회적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올해 들어 발생한 쿠팡 배송 기사의 잇따른 사망과 이천 덕평물류센터 화재, 마켓컬리의 일용직 근무자에 대한 블랙리스트 작성 논란 등이 대표적이다. 이를 계기로 ‘새벽 배송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소비자들도 생겨나고 있다.

새벽 배송을 이용하면, 누군가는 말 그대로 새벽에 일해야 한다. 야간 노동의 폐해는 배달 노동자의 과로사 사고처럼 즉각 눈에 보이기도 하고, ‘야간 노동은 발암’이라는 주장처럼 장기간에 걸쳐 여러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쿠팡 탈퇴’ 등을 주장하는 이들은 유럽에선 저녁에 모든 가게가 문을 닫고, 배달 등 서비스에 대한 비용도 높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물론 서비스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야간 노동자나 플랫폼 노동자 전반에 대한 근로 환경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는 이미 해외에서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논의이기도 하다. 미국은 지난 4월 마티 월시 노동장관이 “긱 근로자도 직원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관련 토의가 한창이다. 코로나19로 플랫폼 노동자는 급증했지만, 최저 시급 등 기본 권리는 누리지 못하는 상황을 타계하기 위한 것이다. 스페인에서는 이미 지난 3월 유럽연합(EU) 최초로 모든 긱 노동자를 직원으로 인정하는 법안을 발표했다. 물론 이렇게 될 경우 전반적인 기업의 지출이 커지면서, 이용자 입장에서도 같은 서비스에 대해 더 높은 요금을 지불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긱 노동자 역시 납세 문제 등 여러 가지 의무 부담을 져야 한다.

국내에서도 최근 들어 여야 의원들 사이에서 플랫폼 규제법, 플랫폼종사자 보호법 등 각종 법안을 두고 활발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인류에게 수많은 난제를 던진 코로나19가 아무래도 우리에게 또 다른 숙제 하나를 남긴 것 같다.

저자 : 남정미

조선일보 주말뉴스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