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기사 통계사이트 ‘충격 고로케’ 등장의 의미
인터넷상에서 낚시성 뉴스 제목을 만나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흔한 일이었다. 네이버 뉴스캐스트 한 페이지 8개 링크들 중에 위 미끼성 단어가 안 빠지는 언론사가 없을 정도로 낚시 제목은 이제 모든 언론사들의 기본기가 되었다. 낚시 제목이란 가령 이런 식이다. “유명여대 20대女, 저녁이면 이곳 가서 그만”, “얼짱女배우, 새정부 들어서자 뜻밖에도…”, “얼짱女장관 내정자, 5.16혁명 질문에 결국” 언뜻 보면 음란스팸문자 문구 같지만 사실 매일경제 인터넷 판에 실린 3월 4일, 5일자 기사제목들이다. “유명여대…이곳 가서 그만” 제목의 기사는 사실 LH공사의 대학생 전세금지원이 지연되어 대학생들이 개강 이후에도 집을 알아보러 다닌다는 기사이다. “얼짱女배우…” 기사는 납세자의 날을 맞아 성실세납 연예인들에 대한 표창이 이루어졌다는 기사이다. “얼짱女장관 내정자…결국” 기사는 50대를 바라보는 여성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 대한 기사이다. 얼짱이라는 제목이 달린 기사 덧글에는 “어떻게 이 아줌마가 얼짱이란 말이냐” 는 항의가 빗발쳤다. 경제지뿐만 아니라 중앙일간지와 스포츠지 기사도 마찬가지이다. 3월 6일자 서울신문 “왕년의 주먹대장, 50년 만에 결국…” 기사는 주먹대장이라는 만화가 50년만에 복간된다는 기사이다. 같은 날 스포츠투데이 “강예빈, 복서에게 복부 강타 당했다 충격!'” 기사는 복부를 강타당했는지 강타당하지 않았는지 방송을 보면 알게 될 것이라는 기사이다. 도무지 기사 제목을 보고서는 내용이 유추가 되지 않는다. 궁금하면 클릭해보라는 이야기이다.
포털 네이버가 뉴스캐스트를 도입하고 기사제목 편집권을 언론사에게 제공하면서, 각 언론사들이 조금씩 자극적인 기사를 배치하더니 어느 새부터인가 제목에 충격, 경악, 결국, 긴급 등의 수식어들을 남용하기 시작하였다. 사실 인터넷 등장 이후 뉴스 소비의 축이 인터넷으로 넘어오면서 지면을 찍어내는 언론들의 수익은 전 세계적으로 점차 감소하는 추세이긴 하다. 특히 한국의 중하위권 일간지들은 자본잠식 상태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메이저 일간지들 역시 종편출범이후 막대한 지출로 경영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게다가 인터넷 매체 시장에서는 지면을 내지 않는 인터넷 신문과 전통적인 지면 신문들이 동일 선상에서 노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 와중에 네이버 뉴스캐스트가 제목 편집권을 언론사들에게 넘겨버렸으니, 그야말로 기름에 불붙인 격이 되어버렸다. 대한민국 시작페이지 47%를 점유하고 있는 네이버로부터 각 언론사들이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트래픽을 끌어들여 광고 수입을 얻어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 아닌가. 매체는 넘쳐나는데 허락된 공간은 한 줄짜리 링크이니 너도나도 ‘충격’ ‘경악’ 등의 단어까지 붙여 기사를 송고한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 경쟁은 본질적으로 보도경쟁이 아닌 낚시경쟁이며 생존경쟁이기 때문이다.
신문 기사 제목은 그 기사 내용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간추려 기사를 읽는 데에 중요한 단서와 관점을 미리 제시하는 것이 본래의 역할이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뉴스가 소비되기 시작하면서 기사 제목은 링크 제목으로 탈바꿈하여 조그만 화면 안에서 ‘관심 좀 가져주세요’라고 너도나도 외치는 호객꾼 역할로 변모하였다. “충격”, “경악” 같은 단어는 이 호객행위를 위한 일종의 “미끼”이다. 게다가 미끼성 단어가 남용되면서 가장 자극적인 제목을 뽑아낼 수 있는 아무 기사나 뉴스캐스트 노출 탑 기사로 노출되고 있는데, 이는 사회 중요 아젠다를 설정하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한국 언론들이 포기한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저널리즘의 위기이며 민주주의의 위기이기도 하다.
네이버 메인페이지 뉴스 영역은 뉴스캐스트부터 뉴스스탠드에 이르기까지 언론사들의 처절한 노출 경쟁의 현장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러던 와중 이 경쟁 기록들을 모두 모아서 무너진 저널리즘에 조명을 비춘 것이 충격 고로케(hot.coroke.net) 사이트이다.
<그림> 충격 고로케 사이트 중 경악 고로케
충격 고로케는 ‘충격’, ‘경악’, ‘헉’, ‘결국’, ‘알고 보니’ 등 미끼성 단어가 포함된 낚시제목 기사를 따로 모아 나열하고, 어느 언론사가 가장 많은 낚시제목을 작성하였는지 순위를 매기는 사이트이다. 언론사들이 던진 미끼로 도리어 언론사들을 낚아채오는 것이다. 낚시기사를 언론사별로 묶어 해당 언론사가 자주 활용하는 미끼성 단어들의 순위도 매긴다. 또 주단위로 통계를 내어 각 언론사가 낚시성 기사제목 생산을 얼마나 더 늘리고 있는지 그래프로 보여준다. 25일 월급날 기준으로 1달 간 가장 많은 낚시 기사를 생산한 언론사에게 상장도 수여한다. 상장 이름은 미끼성 단어에서 따온 ‘충격상’, ‘알고보니상’, ‘숨막히는상’ 등이 있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따르면…’ 기사를 가장 많이 생산한 언론사의 경우 특별히 ‘알바생’에게 상장을 수여한다.
사실 이 사이트는 구체적인 계획 없이 필자의 개인적인 궁금증에서 시작되었다. 1월 초 어느 날, 인터넷 브라우저를 켰다가 네이버 메인페이지 뉴스캐스트 화면을 통해 ‘ㅇㅇ 자연임신 못한다 충격’이라는 제목의 스포츠조선 기사를 접하였는데, 어느 연예인이 자궁암 수술로 더 이상 자연임신을 할 수 없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두고 이 신문사가 ‘자연임신 못한다 충격’ 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두었던 것이다. 기사를 접한 뒤 느낀 불쾌감을 뒤로 하고, 문득 어느 언론사가 가장 많은 ‘충격’ 기사를 생산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1시간 남짓 못되는 시간동안 기사 제목을 집계하는 간단한 코드를 작성하여 웹사이트를 오픈하였고, 그 다음날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사이트 주소를 공개하였다. 키워드를 더 추가해달라는 친구들의 요청이 몰려왔고, ‘경악’ ‘결국’ ‘헉’ ‘이럴 수가’ ‘알고보니’ 등의 키워드를 더 추가하였다. 며칠 뒤부터 신문사 기자친구들로부터 ‘사이트 잘 봤다’ ‘너가 만든 것 아니냐’며 연락이 오기 시작하고,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이 밀려왔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검색을 해보니 이미 수천여건 넘게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충격 고로케’ 사이트 주소가 공유되고 있었고, 하루 10만명 넘게 사이트를 방문하고 있었으며, 접속 레퍼러를 보니 거의 모든 언론사의 인트라넷에서 충격 고로케를 열어본 것으로 나타났다. 간단히 만든 사이트가 이렇게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만큼 언론사 낚시제목에 대한 불만이 곪아터질 대로 터졌다는 의미이며 방관하는 데에도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이 파장을 계기로 어떻게 언론 시장을 개선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모두의 고민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충격 고로케를 향한 네티즌들의 뜨거운 환호는 사실 포털 그리고 언론을 향한 마지막 경고이기도 하다. 낚시제목에 피로를 호소하는 것이며 좋은 기사를 내놓으라 요구하는 것이며 책임 있는 운영을 촉구하는 것이다. 미끼성 단어로 낚아챈 트래픽이 당장의 수익에는 기여할지언정 뉴스 전체의 신뢰를 떨어트려 이제 언론이 조롱의 대상이 될 정도로 전락했음을 네티즌들이 언론사와 포털들에게 일깨우려는 것이다. 전통적인 언론매체라는 이유로 특혜를 받으며 포털 메인페이지 뉴스 영역에 비중 있게 노출되던 기사들은 이제 신뢰 측면에서도 개인 블로그 포스트만도 못하고, 속보성 측면에서도 SNS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독자 입장에서도 포털 입장에서도 더 이상 매력적인 콘텐츠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올바른 언론환경을 위해서도 올바른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뉴스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포털 뉴스영역에 매스를 들이댈 때가 되었다. 자율규제 차원에서라도 동일기사 반복송고나 검색어 편승 기사송고를 필터링한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저질 제목으로 반복 송고하는 언론사들에 대한 적절한 불이익 시스템을 도입하는 둥 뉴스의 품질 관리를 위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네티즌들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포털과 언론사들은 이제 행동해야 할 시점이다. 다시 말하지만 충격 고로케는 그 마지막 경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