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단계 인터넷사회’의 태동(胎動)에 병행하는 리터러시 정책에 대하여

일찍이 철학자 칸트는 ‘자기와 남의 인격을 수단으로 삼지 말고 항상 목적으로 대우해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인격(人格, personality)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에게서 비교적 일관되게 나타나는 성격 및 경향과 그에 따른 독자적인 행동경향’을 뜻한다. 칸트는 특히 이 인격의 의미를 물건과 구별되는 자아의식으로서의 인격으로 범주화하여 정의한 것이다. 사회적 존재로서, 혹은 사회체계를 이루고 있는 개별적 구성원들의 인격이 위와 같이 정의된다면, 한 전체 사회의 성격, 경향을 나타내는 최소의 단위가 바로 인격이 아닌가 싶다.

오늘날 인터넷은 물리적 네트워크의 개념을 벗어나, 특정 가치관, 규범, 언어, 문화 등이 제도와 조직을 토대로 체계화 되어 있는 ‘사회’로 불려진다. 이러한 인터넷사회에서 이용자들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다양한 이슈를 주도적으로 만들어내고 습득하기도 한다. 때때로 인터넷사회에서 발생하는 이슈들은 현장성과 신속성 등을 바탕으로 파급되어 사회적 영향력을 낳는다. 또한, 파급된 이슈는 정부정책과 같은 구체적 형태로 변형되어 사회구성원 간의 끊임없는 논쟁과 토론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들은 종래 미디어기기 발전사에서는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이라는 미디어 용어 뒤에 공간의 개념이 포함된 ‘사회’라는 표현이 붙여진 것이다.

그렇다면, 인터넷을 ‘사회’로 보는 관점과 인터넷을 단순한 ‘미디어’로 보는 관점 간에 ‘이용자’개념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단순히 인터넷을 미디어로 보았을 때, 이용자들은 이를 단순한 도구로 본다. 미디어를 단순한 도구로 본다는 의미는 이용자가 자기통제를 할 수 있는 수준에서 그것(미디어)을 다룰 줄 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면에 인터넷사회에서 ‘이용자’는 미디어 도구 이용자와 인터넷 사회의 구성원 역할을 동시에 해낸다. 여기서, 후자의 인터넷사회의 구성원들은 동시에 인터넷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하나의 개체로 보아도 무방한 것이다. 즉, 인터넷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이용자들은 사회구성원 역할을 수행하여 인터넷이라는 개념 혹은 공간을 변형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기본 단위로서 그 역할이 증대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요즘 쓰는 표현으로 인터넷의 ‘건전화’, ‘유해성’, ‘정체성’ 등의 표현들은 대부분 인터넷사회 구성원들이 특정 기간동안 보여준 문화, 행위, 이슈 등에 의해 붙여진 인터넷사회의 ‘성향’을 말하는 것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바로 기존의 미디어 이용자들에 비해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더 높은 인격적 수준이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터넷 이용자들은 단순한 미디어기기 이용자들이 아닌 인터넷을 구성하는 개체이자, 인터넷을 변형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조종자이기 때문이다.

전통적 미디어에서 미디어 의제가 공중의제, 정책의제 등으로 변형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단순히, 인터넷을 미디어로만 구분한다고 해도 아래 그림의 인터넷 미디어에서 의제가 초기발화자, 의제파급자, 인터넷언론의제로까지 전달ㆍ변형되는 동안 인터넷 이용자가 인터넷공간에서 참여하고 소통하는 행위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림 1> 전통 미디어와 인터넷 미디어의 사회 의제화 구조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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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미디어의 경우 취재지시를 통해 입고된 기사원고의 내용이 검토되고 뉴스 가치가 판단되어 기사에 대한 취사ㆍ선택이 이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반면, 이용자가 주도하는 인터넷 미디어, 즉, 인터넷 사회에서는 현장보도가 여과없이 공중에 전달되는 경우가 주를 이루게 되어 종종 사회적 동의가 어려운 인종문제, 종교문제 등의 다소 주관적인 사안들이 많이 다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특징들을 바탕으로 인터넷사회의 이슈파급 과정상에서는 사실에 대한 명확한 판단절차가 간과된 채로 허위정보 등이 유포되면서 많은 사회적 갈등이 야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터넷사회의 구성원들이 만들어가는 ‘인터넷’은 특정이슈(의제)의 파급과정에서 이전 시대의 미디어와 구별점이 명확해진다. 인터넷사회의 ‘공론의 장’에서 구성원들의 의견은 인터넷의 시대적 성향을 생산해내는 첫 번째 요소로 작용한다. 이러한 이유로 인터넷사회 구성원들의 인격과 소양의 수준은 인터넷 전체의 성향에 매우 중요한 기초적 요소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전통적 미디어 시대 이용자 교육의 근본개념인 ‘리터러시’가 인터넷사회에서의 기술활용에 대해서도 구성원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 올바른 참여문화를 습득시키는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전통적 개념으로서 미디어 리터러시란 미디어를 통해서 전달되는 메시지에 접근하여 그것을 구성해보고, 평가ㆍ분석하여 새로운 메시지를 창출해내고 이를 공유할 수 있는 기본적인 미디어 능력제고에 그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 프로토콜을 중심으로 융합되고 있는 인터넷사회의 단계에 접어들면서는 일방향적 특징을 지니는 전통적 미디어 활용 단계에서보다 리터러시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예를들어, 전통적 미디어시대의 뉴스(이슈) 생산자는 철저히 미디어 영역의 기자들로 한정되어 있었다면, 시민저널리즘이 활성화되고 있는 인터넷사회에서의 구성원들은 정보의 생산주체로 탈바꿈 되었다. 이러한 생산적 주체의 인터넷사회구성원들에게는 미디어 메시지의 해석적 능력보다 생산적 능력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표 1> 미디어 리터러시의 시대적 변화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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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용자가 주도적으로 미디어의 메시지를 생산해내고 미디어의 이미지와 성향을 창조해나가는 시대에는 메시지 생산주체의 자아정체성에서 메시지의 내용과 성질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아래와 같은 다각적 리터러시 교육적 체계가 필요한 것이다.

<표 2> 이용자 주도형 미디어 시대의 자아정체성 확립을 위한 리터러시 추진 방향

3-8출처 : Moser, H., Einfuerung in die Medienpaedagogik, pp.217~218, 1999(재구성)

<표 2>에서 나타나듯, 기술적·문화적·사회적·반영적 비판 능력들이 인터넷 리터러시 교육에서 필요한 내용적 범주일 것이다. 또한 이들 능력들 중 기술적 능력은 미디어가 점차적으로 디지털화되어가며 전자적 기술 인프라에서 발전해나가면서 매우 중요한 능력일 것이다. 문화적·사회적 능력도 마찬가지다. 이전의 미디어가 단순히 받아들여지는 메시지를 리터러시의 대상으로 삼았다면 창의성, 책임감, 열린마음 등을 증진시키는 것이 그 주된 목적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점차적으로 미디어가 공간적인 개념을 띄게 되면서, 무엇보다도 미디어 이용자들의 상호작용이 중시되는 미디어사회에서는 개개의 이용자가 파급시키는 커뮤니케이션 내용이 보다 중요하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창의, 책임, 열린마음은 인터넷사회를 일컫는 지금의 미디어 시대를 넘어 이동성이 가미된 미래의 미디어 시대에도 더욱 중요성이 커지게 되어 리터러시 교육의 핵심적 내용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메이로비치(Meyrowitz)는‘미디어에 대한 이해를 리터러시의 개념확장을 통해 이해 할 것과 다수의 리터러시를 포함할 수 있는 통합 리터러시 개념으로 미디어 리터러시 재정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물론, 미디어 리터러시는 미디어의 발전과 더불어 충분히 다각적인 변화가 가능한 개념이다. 또한, 리터러시라는 명목으로 혹은, ‘윤리’, ‘의식함양’, ‘건전화’, ‘소양증진’ 등을 키워드로 수많은 정책사업이 지금도 진행중에 있다. 이와 같은 정책사업들이 보여주는 것은 메이로비치의 ‘미디어 리터러시 재정의’에 초점을 맞추어 기획되는 사업들이라는 점이다.

오늘날, 우리의 인터넷은 우리와 함께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기에 이르렀다. 스마트폰의 발달로 말미암아,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던 손 안의 풀브라우징은 초고속인터넷이 활성화되던 그 시절만큼의 충격을 주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제2단계의 ‘인터넷 사회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동성에 제한을 받았던 인터넷이 보다 시·공간적으로 자유로워지면서, 이용자들은 덩달아 매우 빠른 속도로 인터넷사회에 편입하고 있다. 집, 학교, PC방 등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목적을 지니고 사용했던 인터넷이 이제는 이용자 개개인의 몸과 함께 이동하며, 시간적 제약없이 접속가능한 공간이 되어 버렸다. 제1단계의 인터넷 사회화 과정에서 이용자들이 한정된 영역과 시간범주에서 인터넷사회 구성원 역할을 수행하였다면, ‘제2단계 인터넷 사회화’ 과정 중에 이용자들은 실제사회와 인터넷사회에서의 구성원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현재 미디어 발전상황에서 리터러시의 중요성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매우 소모적인 논의에 불과할 것이다. 또한 미디어의 발전과 더불어 리터러시 교육에 추가되어야 할 항목을 열거하는 것 또한 정책사업을 공고히 하는데 이렇다할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인터넷이라는 미디어가 어느 정도 우리들의 삶에 밀착되는지에 대한 보다 세심한 관찰이 우선 필요할 것이다. 바로 그 ‘밀착화’ 정도에 따라 인터넷 사회화의 과정이 이루어지게 된다고 보면, 미래의 미디어 사회에서의 리터러시 방향에 대해서도 보다 숙고할 수 있는 여지를 넓힐 수 있다고 본다.

우리 인간의 삶과 인터넷사회에서의 삶이 중첩되는 영역이 커지면 커질 수록 리터러시에 대한 중요성은 더욱 커지게 될 것이라고 판단된다. 이는, 한 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더욱 올바른 교육이 강조되고 구성원들의 지적 역량이 사회의 흥망성쇠를 결정지었던 역사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의 미디어 리터러시는 시작단계다. 물리적 기기가 생산한 한 사회의 출현을 우리는 10년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에 대한 명확한 구성원의 역할을 잡아주지 못했다. 그 시절 우리는 보다 인터렉티브한 방향의 리터러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 이제, 이동성에 기반한 제2단계 인터넷사회가 태동되면서, 우리는 실제사회와 점점 가까워지는 인터넷사회에 걸맞은 리터러시 체계를 구상하여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터넷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능력을 더욱 세세히 관찰하고, 인격적 수준을 높여줄 수 있는 교육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바로 그러한 구성원들의 인격적 수준과 발전단계는 다가오는 제2단계 인터넷사회의 리터러시 체계를 바로잡는 데 필수적 아젠다가 될 것이라고 본다.

저자 : 주용완

한국인터넷진흥원 인터넷기반진흥단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