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관의 삭제요구에 대한 KISO의 정책·심의결정 리뷰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이하 ‘KISO’라 함)의 중요기능 중 하나는 행동규칙 또는 행동규약(code of conduct)을 제정하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은 자율규제를 정의내릴 때 행동규약과 같은 규칙기반의 도구들을 가장 중요한 특성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행동규약은 모범계약(model contracts), 정관 또는 규약(memorandum), 소비자헌장(consumer charter), 가이드라인(guideline), 자발적이고 협력적인 협약(voluntary and co-operative agreement), 윤리강령(code of ethics), 행동강령(code of practice) 등으로 표현하기도한다.1)
정부가 아닌 민간집단(non-state group)에 의해 만들어지는 규칙들은 국가법에 의한 타율규제와 자율규제를 구분짓는 가장 중요한 기능이기 때문이다. 자율규제활동의 산물인 규칙 또는 규약들은 국가법과 사회적 일반규범의 틀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법이나 제도가 담지 못하는 행동원칙을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메워주는 규제의 보완수단이다. 민간자율규제기구에 의해 이루어지는 규칙제정 활동을 정부기구가 어느 정도의 권한을 부여하고 위임하는 가의 정도에 따라 공동규제(co-regulation)의 수준이 결정난다.
인터넷상의 제3자게시물에 대한 내용규제를 중점업무로 삼고 있는 KISO 역시 [정책결정]과 [심의결정]이라는 두 가지 수준의 규칙기반의 도구를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율규제기구는 크게 4가지 활동을 하게 되는데, 첫째는 정책결정(policy-making)이다. 이것은 회원사의 행동을 규제하는 데 사용되는 정책이나 원칙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둘째는 규칙제정(rule creation)으로서 특정 행동을 통제하는 규칙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는 규칙을 적용하고 시행하며 제재도 가하는 일련의 활동들이다. 넷째는 분쟁조정(dispute-settlement)으로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포럼 또는 조정회합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조정을 통해 불필요한 법률적 절차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KISO는 정책의 원칙을 천명한 [강령]을 이미 공표한 바 있으며, [정책결정]을 통해 세부 행동규칙을 설정하고 있다. [정책결정]이 규제활동에 필요한 원칙을 명시화 하는 것이라면, [심의결정]은 이 규칙에 기반한 판정으로서 게시물의 처리방향과 같은 시행(implement)이나 제재(sanction)와 같은 보다 구체적이고 실행적인 의사결정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법령에 기반한 인터넷 공동규제체제를 갖추고 있지 않기에 KISO는 인터넷 포털사들이 만든 순수한 자발적 자율규제로 특징 지워질 수 있다. 따라서 KISO가 만든 자체적인 규약이 관계당국으로부터 어떠한 법률적 위임이나 승인을 받고 있지 못한 상태이다. 그런 점에서 KISO는 [정책결정]이나 [심의결정] 과정에서 현행 법이나 규제체제의 해석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며, 이러한 제도적 규제틀 안에서 회원사들이 통일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규약의 안전성을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다.
그동안 KISO의 [정책결정]은 정보통신망법상의 ‘임시조치’에 모아졌다. 그 이유는 현행 임시조치제도가 절차나 권리관계 측면에서 모호한 점이 많아 인터넷기업들이 이를 처리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책-제2010-06-03호]와 [정책결정 제2010-06-06호] 및 [심의결정 제2010-07-03-01호]는 특정 법률의 해석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넘어서 현재의 공적규제기구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의 역무관계 및 심의범위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정책결정]과는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이번 KISO의 결정들은 향후 논의될 공동규제와 관련한 KISO의 입장을 표방한 것이라고 해석된다. 이 글에서는 KISO의 [정책결정]과 [심의결정] 내용을 검토한 후 이것이 갖는 의미를 논의하고자 한다.
2. [정책결정] 및 [심의결정]의 내용과 평가
KISO [정책-제2010-06-03호]와 [정책결정 제2010-06-06호] 및 [심의결정 제2010-07-03-01호]는 천안함 사건 이후 정부의 공식적 발표에 반하는 게시물이 회원사의 사이트에 게재된 것과 관련이 있다. [정책-제2010-06-03호]는 국가기관이 허위사실 유포의 명목으로 이들 게시물의 일부의 삭제를 회원사에게 요구함에 따라 이의 처리요건을 다룬 정책결정이며, [정책결정 제2010-06-06호]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허위사실을 유포한다는 명목으로 회원사에 삭제 또는 그에 준하는 조치를 요구하는 시정권고를 한 게시물을 KISO가 재심의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결정사항이다. [심의결정 제2010-07-03-01호]은 앞의 정책결정에 따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삭제를 시정권고한 게시물을 KISO가 재심의한 결정내용을 담고 있다.
1) [정책-제2010-06-03호]의 내용과 취지
[정책-제2010-06-03호] 정책위원회의 정책결정(2010. 6. 22.)
<허위사실 관련 게시물 처리절차에 관한 정책결정의 건>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 정책위원회는 허위사실 관련 게시물 처리절차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결정한다. 1.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에 근거하여 국가기관이 게시물 삭제를 요청하는 경우 다음과 같은 요건을 갖춰야 한다. (1) 게시물의 삭제요청은 ‘공문’에 의하여야한다. (2) 게시물의 URL이 특정되어야 한다. (3) 게시물의 내용이 ‘허위’라는 근거가 제시되어야 한다. (4) 게시자가 해당 게시물을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게시하였음이 소명되어야 한다. |
[정책-제2010-06-03호]는 국가기관이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에 근거하여 불법정보 삭제요청을 하는 경우 갖추어야 할 형식적·절차적 요건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현행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요건에 해당하는 인터넷콘텐츠는 불법정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번 정책결정은 국가기관이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을 위반한 불법정보임을 이유로 당해 콘텐츠에 대한 삭제요청을 하는 경우 일정한 형식적·절차적 요건과 소명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즉, 민간자율규제기구와 국가기관 간의 협력관계에 있어서 필요한 최소한의 프로세스를 설정하고 있다.
이 같은 정책결정은 수사권을 가진 검찰이나 경찰 등이 게시물의 ‘불법성’에 대한 명확한 소명이나 적시없이 임의의 또는 편의의 방식으로 특정 게시물의 삭제를 요청하는 관행은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특정 게시물의 삭제는 헌법이 정하고 표현에 대한 기본권과 맞닿아 있기에, 비록 공신력 있는 국가 기관이라고하더라도 민간 사업자에게 ‘허위’사실의 근거를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본 것이다.
이번 결정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 첫째는 포털 등 인터넷서비스사업자는 서비스 약관이라는 계약관계를 바탕으로 이용자들이 게시물을 올리고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인터넷서비스사업자들은 불법성이 의심되는 제3자 게시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임의로 삭제해서는 안 되며, 삭제하더라도 불법성에 대한 명시적인 설명의 의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히, ‘공익을 훼손’ 등과 같은 포괄적인 표현은 불법성을 입증하는 충분조건이 못 된다는 점에서 구체적인 사실적시를 요구한 것으로 이해된다.
둘째, 국가기관이 게시물의 구체적인 대상(URL 등)을 적시하지 않은 채 삭제를 요청하는 경우, 인터넷서비스사업자가 임의적 판단으로 게시물을 삭제해야 하는 문제점을 이번 결정을 통해 제한시켰다는 점이다. 특히, 정치적으로 논쟁중인 내용에 대해 국가기관이 ‘포괄적 삭제요청’을 하게 되면, 민간 인터넷 사업자는 법률이 부여한 권리를 넘어서는 판단을 해야 하므로 대상을 명시하는 것은 중요한 요건의 하나다.
2) [정책결정 제2010-06-06호]의 내용과 취지
[정책-제2010-06-06호] 정책위원회의 정책결정(2010. 06. 28.)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원회’)가 시정 요구한 게시물에 대해 회원사가 심의를 요청하는 경우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이하 ‘KISO’)는 이를 심의할 수 있다. 이 KISO의 심의는 게시물이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7 제1항의 불법정보나 청소년보호법상의 청소년유해정보가 아닌 경우에 한한다. 다만, 이 정책은 심의위원회의 시정요구의 법률적 성격과 관련하여 현재 진행 중인 행정소송의 최종판결 선고 시까지로 그 효력을 한정한다. [결정배경] 회원사는 법령에 의해 설치된 심의위원회의 결정에 원칙적으로 따르며, 법적 근거가 분명한 불법정보 및 청소년유해정보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는 심의위원회의 판단을 존중하고 따른다. 다만, 심의위원회의 심의 대상정보가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7 제1항의 불법정보나 청소년보호법상의 청소년유해정보 이외에 유해성에 대한 법적 근거가 분명하지 않은 기타 사회적 유해성 정보인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법률적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불법정보나 청소년유해정보가 아닌 사회적 유해성 정보에 대해, 심의위원회는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정보’라는 등의 심의기준에 따라 심의 및 시정요구를 하고 있으나 이는 이용자의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심의위원회의 시정요구가 강제성이 있는 행정처분이라면 회원사는 이를 반드시 따라야 하고, KISO는 이를 다시 심의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심의위원회는 자신의 시정요구가 행정처분이 아니라 ‘권고적 효력’만 있다고 하는 반면 서울행정법원은 심의위원회의 시정요구는 행정처분이라고 판단하였다. 심의위원회의 시정요구의 법적 성격이 관련 사건의 최종 판결 선고 시까지 불분명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회원사가 심의위원회의 ‘사회적 유해성’ 판단을 그대로 이행할 경우 정보 게시자는 그에 대한 불복수단 등 자신의 권리 제한을 시정할 방법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KISO는 심의위원회가 ‘불법정보’, ‘청소년 유해정보’ 이외의 사유로 시정요구를 해온 게시물에 대해 회원사가 심의를 요청할 경우, 그 시정요구의 법적 성격이 분명해질 때까지(즉, 위 관련 사건에 관한 법원의 최종 판단이 선고될 때까지) 법령이 정한 기준에 따라 해당 여부를 심의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런 판단을 함에 있어서, ‘유해성’ 문제는 범세계적으로 정부규제나 법적 판단의 영역이 아니라 자율규제 영역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도 함께 고려하였다. |
[정책결정 제2010-06-06호]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시정 요구한 게시물에 대해 KISO가 2010년 6월 28일 마련한 처리 정책이다. 이 결정문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시정요구’가 갖는 법적 성격과 관련이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라고 하는 공적 심의기관이 불법정보, 청소년유해정보 이외의 정보에 대해서 기타 사회적 유해성을 이유로 시정요구를 하는 경우, 당해 게시물의 처리에 관한 일반적 기준을 제시하였다. 이 결정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시정요구의 법적 성격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법원에 의해서 그 성격이 명확해질 때까지 잠정적으로 유효한 정책으로서, 불법정보, 청소년유해정보 이외의 기타 사회적 유해성 정보의 경우에는 자율규제의 영역임을 천명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또한 KISO가 현행 법률이 정하고 있는 불법정보의 범주에서 ‘사회유해성 정보’를 분리해서 심의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불법정보나 청소년유해정보가 아닌 사회적 유해성 정보에 대해, 심의위원회는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정보’라는 등의 심의기준에 따라 불법성을 자의적으로 판단하여 심의 및 시정요구를 하고 있으나 이는 이용자의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할 수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라고 하는 공적 심의기관과 자율규제기구 간의 협력모델을 구축함에 있어서 권한 및 기능의 적정하고도 명확한 배분을 시도하였다는 점에서도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3) [심의결정 제2010-07-03-01호]
[심의-제2010-07-03-01호] 정책위원회 심의결정(2010년 7월 15일)
결정내용: 1. 해당 없음 □ 의안번호 [심의-제2010-07-03-01호] o 의안명 : 방통심 시정권고 받은 천안함 게시물 1건 심의의 건 o 의결내역 – 신고번호 : KI100708170001 [게시물URL] http://bbs2.xxxxx.media.xxx.net/gaia/do/kin/reaxxxbsId=K162&articleId=19xxxx [결정] 정책위원회 운영세칙 제6조 제2항?제1호의 ‘해당없음’ [표결 결과] ‘해당 없음’ 10명, ‘삭제 또는 그에 준하는 조치’ 1명 [결정 내역] 본 게시물은‘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시정요구한 게시물에 대한 처리 정책([정책-제2010-06-06호] 정책위원회의 정책결정 2010. 06. 28.)’에 따라 심의를 진행한 결과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7 제1항 각호의 불법정보에 해당하거나 청소년보호법상의 청소년유해매체물에 해당한다고 볼 근거가 없으며,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게시자의 의견 또는 주장을 개진한 것으로 판단되어 ‘해당없음’으로 결정한다. 이 심의결정 과정에서‘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시정요구의 법적 근거로 심의규정을 언급했을 뿐 정보통신망법을 거론하지 않아 KISO가 심의하게 되었으나, 해당 게시물은 사실상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7 제1항 제8호의 국가보안법에서 금지하는 행위를 수행하는 정보에 해당하여 삭제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 소수의견이 1명 있었다. |
해당 게시물은 천안함 침몰에 대해 정부의 공식발표와 다른 해석과 정치적 의견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논쟁적 게시물’로 간주할 수 있다. 이 심의결정은 공공의 이익과 관련된 의제로서 국가를 상대로 한 정치적 의견표명은 폭넓은 표현의 자유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고 있다. 아울러 의견과 사실을 구분짓고 의견표명과 주장의 개진에 대해서는 규제가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고려한 판정이다.
특히, 이 심의결정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 부터 ‘삭제권고’ 조치가 내려진 게시물이었으나, 민간 자율규제기구인 KISO가 다른 결정을 내림으로써 권고조치에 대한 법률적 권한 및 해석을 사회적으로 촉발시킨 의의가 있으며, 이러한 결정은 인터넷규제 체계를 발전시키는 데 건강한 재료를 제공한다.
KISO의 이번 정책결정 및 심의결정은 국내 인터넷규제 제도 및 법규 아래서 민간 인터넷 서비스사업자들이 자율규제를 수행하는 데 있어 봉착하게 되는 어려움을 담고 있다. 그 평가를 몇 가지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불법정보 vs. 유해정보의 이원화
가. 유해물에 대한 해외의 규제방식
KISO의 이번 [정책결정]은 불법물과 유해물을 이원화해서 처리하는 범세계적인 인터넷 내용규제모델을 확인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즉, 불법정보는 공적기구의 심의대상이 되지만, 유해정보는 비록 그것이 갖는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국가기구에 의해 삭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유해정보에 대한 심의는 민간 자율규제활동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유해물에 대한 자율규제활동의 예로는 명예훼손이나 사생활침해와 같은 권리침해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정보통신망법에 규정되어 있는 임시조치제도나 대안적 분쟁조정활동을 들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결정은 국제적인 기준에 부합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은 인터넷상의 유해물에 대해 국가가 직접 규제하는 제도를 갖고 있지 않다. 미디어 규제가 발달한 EU(2004)에서도 규제대상으로서 인터넷콘텐츠를 불법(illegal), 유해(harmful), 원치않는(unwanted) 콘텐츠로 구분해서 적용하고 있다.2)
불법콘텐츠는 비교적 명확한 개념으로서 국가법으로 금지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관계당국은 불법콘텐츠에 대한 처벌과 확산을 방지할 책임이 있다. 인터넷기업이나 이용자들 역시 법 집행에 협조해야 하며, 이러한 콘텐츠를 발견하여 신고하거나, 범법자를 추적하거나, 또는 불법콘텐츠의 유통을 막는 데 협조할 의무가 있다. 이는 법률에 의해 주어진 권리와 의무로 이해된다. EU는 불법 콘텐츠의 확산을 범국가적 차원에서 대처하기 위한 핫라인(European Network of hotline)을 구축하여 국가, 기업, 이용자들이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했다. 개별 국가법이 정의내리고 있는 불법콘텐츠의 범위는 제도나 규제특성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다. 유럽에서는 아동청소년 포로노그래피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나라들이 불법콘텐츠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나머지 내용에 대해서는 불법으로 규정하는 바가 매우 적고 국가마다 다소의 차이가 있다.
유해콘텐츠는 그 자체가 유해한 내용을 담고 있는 콘텐츠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유해하다고 지각된 효과”를 의미한다. 유해하다고 지각된 효과는 개인이나 집단들이 갖고 있는 신념, 가치, 관심사나 문화전통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한 집단이 유해하다고 생각한 것이 다른 집단에게는 그렇지 않다고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유해 콘텐츠는 엄밀하게 ‘잠재적인 유해콘텐츠(potentially harmful content)’로 부를 수 있다. 어린이나 약자의 보호와 같이 국가들 간에 합의가 가능한 영역도 있지만, 상당부분은 합의가 어렵고 명시적으로 규제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다.3)
마지막으로 원치않는 콘텐츠는 말 그대로 요청하지 않았는데 수령된 콘텐츠를 말한다. 스팸메일이 대표적이다. 여기서 국가규제의 역할은 이용자를 원치않는 피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로 나타난다.
유럽연합은 ‘불법’과 ‘유해’콘텐츠를 국가가 내용규제에 개입하는 기준점으로 받아들이면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유럽연합은 유해콘텐츠를 불법 콘텐츠와 완전히 구분해서 규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국가규제나 기업에 의한 임의적 규제를 지양하고 콘텐츠를 받아들이는 이용자의 능력을 배양하는 것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동에 유해하다고 판단되는 콘텐츠에 대해서는 부모들이 모니터링이나 내용통제를 직접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재정적으로 지원하거나 또는 인터넷기업 등이 자율규제를 통해 내용 등급제나 의식을 고취시키는 다양한 활동을 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특히, 유해콘텐츠는 논쟁적 콘텐츠(controversial or disputatious content)로 간주된다. 유해의 기준이 매우 주관적이고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입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터넷기업들이 취하는 대표적인 콘텐츠 자율규제 방식의 하나인 노티스 앤 테이크 다운(notice and take down) 원칙도 유해물에 한해서는 게시자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기 때문에 논쟁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명예훼손과 같이 특정인을 폄하하거나 권리를 침해했다고 판단되는 콘텐츠에 대해 인터넷서비스기업이 차단조치를 하므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의 처리는 심의가 아닌 대안적 분쟁조정기구(ODRS: On-line Dispute Resolution System)를 통한 분쟁처리 절차를 따른다.
유럽의 이 같은 규제시스템을 고려해 볼 때, 국내 인터넷규제는 불법정보의 기준이 모호하고 폭 넓게 규정되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 포털 등 인터넷서비스사업자들은 인터넷상의 게시물 처리시 불법과 유해정보의 모호한 구분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토로해 왔다. 현재 인터넷상에서 문제가 되는 게시물 유형은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그 대표적인 것은 청소년유해정보이다. 이 유형의 정보는 청소년보호법 및 정보통신망법, 방송통신위원회설치법에 규정되어 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청소년유해매체물결정제도 등에 의해 규제되고 있다. 둘째는 저작권침해정보로서 저작권법에 의해 규제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정의내려지는 불법정보가 있다.
그러나 현행 정보통신망법4)이 규정하고 있는 불법정보의 범위는 너무 넓고 인터넷서비스 사업자 입장에서는 그 경계를 구분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현실적으로 불법정보와 유해정보가 구분되어 있지 않다. 현행 법에 나열된 불법정보의 범위는 2002년 위헌결정5)에서 헌법재판소가 제시 국가나 정부에 의한 규제조치로서 정당화될 수 있는 온라인상의 정보의 범위에도 정면으로 반한다. 헌법재판소는 국가나 정부에 의한 규제조치가 정당화될 수 있는 온라인상의 정보의 범위를 ‘내용 그 자체로 불법성이 뚜렷하고, 사회적 유해성이 명백한 표현물’에 국한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불법정보의 범위가 넓으면 규제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정부나 사업자가 임의로 규제 할 수 있는 여지가 만들어짐으로써 ‘규제의 사회적 정당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2) 불법 및 유해정보 규제체제로서 ‘시정요구’의 성격에 대한 문제제기
가. 행정법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성격 및 시정요구’를 행정행위로 판단
국내 불법정보 규제체제는 법원이 아니라 행정기관에 의해 결정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그 근거는 현행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 7에서 규정하고 있는 불법정보에 대한 ‘삭제명령권제도’와 방송통신위원회법 제21조6), 동법 시행령 제8조7)에서 규정하고 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의한 ‘시정요구 제도’이다.
특히, 시정요구 제도의 성격은 규제기관으로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기구 성격과 맞물려있다. 그동안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스스로 민간인으로 구성된 독립기구의 성격을 지니고 있을 뿐 행정청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공표해왔다. 설령 행정청이라고 본다고 하더라도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법’이라고 한다)상 시정요구 제도는 단순히 권고적 효력만을 가지는 비권력적 사실 행위인 행정지도에 불과하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최근 서울행정법원 제12부는 ‘최병성목사의 쓰레기시멘트 보도 소송(이하 쓰레기시멘트 보도 소송)’8)에서 방송통심심의위원회의 시정요구가 사실상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이라고 판단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행정처분은 행정청의 공법상의 행위로서 특정사항에 대하여 법규에 의한 권리의 설정 또는 의무의 부담을 명하거나 기타 법률상 효과를 발생하게 하는 등 국민의 구체적인 권리 의무에 직접적 변동을 초래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먼저 법원은 방송통심심의위원회를 행정규제기구로 정의내리고 있다. 그 근거로 대통령이 위촉하는 9인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이들 위원들은 국가공무원법상 결격사유가 없어야하고 그 신분이 보장되며(법 제18조, 제19조, 제20조), 위원 중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포함한 3인은 상임으로 임명되고 형법 등의 벌칙적용에 있어서 공무원으로 의제된다(법 제26조 제4항). 그리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국가로부터 운영 등에 필요한 경비를 지급받고 있으며 위원회의 규칙은 제정·개정·폐지될 경우 관보에 게재·공표된다(법 제28조, 제29조). 이는 과거 정보통신윤리위원회를 규율하고 있던 구 전기통신사업법(2007. 1. 26.법률 제8289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에는 없던 규정인데, 위와 같은 규정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송통신위원회와 마찬가지로 합의제 행정청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또한 법원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시정요구제도가 단순히 권고적 효력만을 가지는 비권력적 행정지도가 아니라 인터넷포털인 다음커뮤니케이션 등 국민에게 의무의 부담을 명하거나 기타 법률상 효과를 발생하게 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이러한 행정법원의 판단은 권고조치를 사실상 강제적 내용규제의 하나로 보고 있음을 의미한다. 법원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전기통신회선을 통하여 일반에게 공개되어 유통되는 정보의 심의 이외에도 전기통신서비스제공자 등에 대하여 해당 정보의 삭제 또는 접속차단ㆍ이용자에 대한 이용정지 또는 이용해지 등을 하도록 시정요구를 할 수 있고(법 제21조 제4호, 법 시행령 제8조 제1항, 제2항), 피고로부터 시정요구를 받은 전기통신서비스제공자 또는 게시판 관리·운영자는 그 조치결과에 대하여 피고에게 지체 없이 통보하여야 할 법률상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법 시행령 제8조 제3항).
이처럼, “쓰레기시멘트 보도소송”에서 행정법원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행정규제기구로, 그리고 시정조치를 강제적 규제수단인 행정처분으로 판단했다는 점은 그동안 방송통심심의위원회가 주장해 오던 바와 배치되는 것이다. 현재 항고소송이 진행 중인 점을 고려하면, 아직까지 시정조치의 성격에 대해서는 해당 기구와 법원의 판결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책결정 제2010-06-06호]는 시정조치를 민간 사업자들이 해석하는 준거틀이 불확실한 조건에서 나온 결정이다. KISO는 그 결정문에서 “KISO는 심의위원회가 ‘불법정보’, ‘청소년 유해정보’ 이외의 사유로 시정요구를 해온 게시물에 대해 회원사가 심의를 요청할 경우, 그 시정요구의 법적 성격이 분명해질 때까지(즉, 위 관련 사건에 관한 법원의 최종 판단이 선고될 때까지) 법령이 정한 기준에 따라 해당 여부를 심의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고 밝힘으로써 시정요구에 대한 조속한 제도정비 또는 규제의 불확실성 해소를 요청하고 있다고 해석된다.
나. 시정요구제도에 대한 국가인권위의 개선권고
실제로 시정요구제도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로부터도 개선권고를 받았다. 인권위원회는 지난 9월30일 “정보통신심의제도에 대한 개선권고”를 통해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전기통신망을 통하여 유통되는 불법정보 등에 대한 심의권 및 시정요구권을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자 및 게시물 관리 사업자 대표들과 시민사회 대표들이 함께 구성하는 민간자율심의기구에 이양하는 내용으로 관련 규정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권한에 따라 이루어진 심의 및 시정요구 현황을 분석해서, 방송통신위원회 및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설립된 2008. 5. 16. 이후 2010. 2. 28.까지 인터넷게시물에 대한 심의 건수는 총 58,022건으로 매월 약 2,699건이고 이 중 방송통신 심의위원회에 의해 시정요구가 의결된 건수는 매월 약 1,684건이다. 또한 2010년 1, 2월에는 심의 건수 대비 시정요구건수 비율이 약 87.3%에 이르러 심의의 대상이 된 게시물들은 거의 삭제 등 조치의 대상이 되었다고 발표했다.
신청주체 및 정보유형 현황을 보면 심의신청 주체별 건수 비율은 2008년에는 중앙행정기관 등 공공기관이 약 14.4%, 일반인이 85.4%이었으나 2009년에는 중앙행정기관 등 공공기관이 신청한 건수 비율이 약 44.5%로 약 3배로 급증하였다.
또한 심의신청 대상이 된 정보유형도 ‘사회질서 위반’의 경우 5.3%에서 14.7%로 약 3배 급증하였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2008년부터 2009년까지 불법정보 심의신청에 대하여 시정요구한 구체적 유형을 살펴보면, 시정요구 총 건수 28,468건 중 게시물을 인터넷망에서 최종적으로 제거하는 삭제, 이용해지, 접속차단 건수가 28,339건으로 약 99.5%를 차지하여 시정요구를 받은 게시물의 거의 대부분이 인터넷망으로부터 완전히 제거된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위는 이러한 점을 종합해서 현행의 심의제도가 중앙행정기관을 비롯한 공공기관이 국민의 비판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용될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인권위의 이 같은 판단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갖고 있는 ‘정보심의권’, 즉 불법정보에 대한 규제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대상정보가 불법정보인지 여부를 판정하는 기준인 심의규정을 제정·공포하고 심의 하는 권한과 불법 정보라고 결정이 난 경우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 대하여 시정요구를 할 수 있는 ‘시정요구권’ 모두를 민간에 이양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는 향후 인터넷 내용규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이번 KISO [정책결정] 및 [심의결정]은 행정법원의 판결 및 국가인권위의 개선권고와도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각주>
1) Bonnici, jeanne Pia Misfsud(2008). Self-Regulation in Cyberspace, (Cambridge: T.M.C. Asser Press). [본문으로]
2) Proposal for a Decision of the European Parliament and of the Council on establishing a multiannual Community programme on promoting safer use of the Internet and new on-line technologies (COM(2004)91 final 12 March 2004) at p.3-5. [본문으로]
3) EU(1996). European Union approach to illegal and harmful content on the Internet For submission to the COPA Commission. [본문으로]
4) 제44조의 7 제1항이 제44조의 7(불법정보의 유통금지 등) ① 누구든지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정보를 유통하여서는 아니 된다.
1. 음란한 부호ㆍ문언ㆍ음향ㆍ화상 또는 영상을 배포ㆍ판매ㆍ임대하거나 공공연하게 전시하는 내용의 정보
2.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공공연하게 사실이나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의 정보
3.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부호ㆍ문언ㆍ음향ㆍ화상 또는 영상을 반복적으로 상대방에게 도달하도록 하는 내용의 정보
4. 정당한 사유 없이 정보통신시스템, 데이터 또는 프로그램 등을 훼손ㆍ멸실ㆍ변경ㆍ위조하거나 그 운용을 방해하는 내용의 정보
5. 「청소년보호법」 에 따른 청소년유해매체물로서 상대방의 연령 확인, 표시의무 등 법령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고 영리를 목적으로 제공하는 내용의 정보
6. 법령에 따라 금지되는 사행행위에 해당하는 내용의 정보
7. 법령에 따라 분류된 비밀 등 국가기밀을 누설하는 내용의 정보
8. 「국가보안법」 에서 금지하는 행위를 수행하는 내용의 정보
9. 그 밖에 범죄를 목적으로 하거나 교사(敎唆) 또는 방조하는 내용의 정보. [본문으로]
5) 헌재 2002. 6. 27. 99헌마480,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 등 위헌확인. [본문으로]
6) 제21조(심의위원회의 직무) 심의위원회의 직무는 다음 각 호와 같다.
3.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제44조의7에 규정된 사항의 심의
4. 전기통신회선을 통하여 일반에게 공개되어 유통되는 정보 중 건전한 통신윤리의 함양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으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정보의 심의 및 시정요구. [본문으로]
7) 제8조(심의위원회의 심의대상 정보 등) ① 법 제21조제4호에서“대통령령이 정하는 정보” 란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유통되는 정보 중「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제44조의7에 따른 불법정보 및 청소년에게 유해한 정보 등 심의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정보를 말한다.
② 법 제21조제4호에 따른 시정요구의 종류는 다음 각 호와 같다.
1. 해당 정보의 삭제 또는 접속차단
2. 이용자에 대한 이용정지 또는 이용해지
3. 청소년유해정보의 표시의무 이행 또는 표시방법 변경 등과 그 밖에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 [본문으로]
8) 이 사건은 환경운동가인 최병성목사가 운영하는 다음커뮤니케이션의 블로그(http://blog.daum.net/cbs5012)에서 국내산 시멘트에 관하여 별지 게시글의 제목 및 주요 내용란의 기재와 같은 글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한국양회공업협회 등으로부터 심의신청이 제기됨에 따라 이를 심의한 결과, 이 사건 게시글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7 제1항 제2호 소정의 ‘불법정보(비방 목적의 명예훼손 정보)’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2009. 4. 24. 위 다음커뮤니케이션에 대하여 해당정보의 삭제를 요구(이하 ‘이 사건 시정요구’라고 한다)한 것에 대한 최병성목사의 이의신청을 판결한 것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