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정보자원과 자율규제 : 한국적 자율규제 고민에 대한 제언
인터넷에서 정보와 지식은 공유자원일까?
이 문제는 많은 학자들 간 논쟁거리지만, 영리적·집단적 이해를 떠나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유자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디지털 지적재산권 등에 관한 문제는 여전히 남지만 말이다. 그럼에도『코드 2.0』 의 저자이기도 한 레식(Lessig)은 인터넷 규제인 코드의 등장과 정보의 자유로운 이용을 원하는 진영 간의 경합과 갈등이 인터넷의 역사라고 오래전부터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사이버 공간의 질서인 코드를 우리가 어떻게 만들지가 자유로운 공유자원으로서 인터넷 자리매김의 핵심이라고 제기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인터넷 정보와 지식에 관련한 흥미로운 흐름이 발견되고 있다. 200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오스트롬(Ostrom)과 그의 동료들은 지식을 공유자원으로 간주하고 복잡한 정보지식 공유자원을 관리하기 위한 이상적인 프레임워크가 무엇인지를 연구하고 있다. 사실 사람이 공유하는 자원이란 뜻의 ‘공유자원(commons)’ 용어는 그 의미가 다의적이다. 오스트롬 역시 과거 저서에서는 한정된 고기잡이 어장이나, 저수지, 목초지 등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인해 아무도 관리하지 않게 될 때 발생하는 공유자원의 비극을 해결하기 위한 체계에 대해 고민한 바 있다. 그녀는 다양한 실험과 조사를 통해서 완전한 방임은 공유지의 비극을 낳고, 과도한 국가의 개입은 오히려 이해당사자 간의 법률적 비용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오스트롬은 공유자원을 자율적으로 잘 관리하는 방법으로서 강력한 집합적 행동과 자율적인 지배구조가 필요하고, 서로 믿을 수 있는 높은 수준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를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으로 표현한다. 요컨대, 신뢰와 협력의 사회적 자본이 많고 자율적인 지배기구가 작동할수록 공유자원 관리가 잘 된다는 것이다.
인터넷 정보규제의 딜레마와 자율규제
이제 다시 인터넷 정보자원으로 돌아가 보자. 물론 인터넷 정보자원은 현실 공간의 공유자원과 같을 수는 없다. 그것은 지적재산권이 있고, 국가마다 현실 법체계에서 불법 유해정보의 유통과 확산을 차단하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실례로 미국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제1조에 근거해 테러, 마약, 아동 포르노 등만 아니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규제를 받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보다 다른 사회문화적 환경으로 인해 차이가 있다. 그것은 비단 한국만이 아니고,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나치관련, 중동에서는 종교관련 인터넷 정보 콘텐츠가 규제 대상이다.
이러한 정보 콘텐츠규제에 대해 일부 극단적인 정보자유주의자들은 외부로부터의 완전한 자유공간으로서 인터넷을 강조한다. 그리고 사용자 스스로 자율정화 할 수 있는 기제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러한 초기 정보자유주의자들도 현실법질서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런 맥락에서 고민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인터넷 정보의 자율규제 필요성이다.
음란물과 표현의 자유 간의 세계적인 파장을 불러일으킨 미국의 통신품위법 위헌 논쟁 이후 인터넷 정보와 관련된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는 정부기관에 의한 직접적인 정보규제가 표현의 자유를 훼손할 수 있으며 심각하게는 검열을 야기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모든 정보자원을 불특정다수에게 제공했을 때의 사회적인 피해 역시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마치 앞서의 오스트롬 교수가 강변한 것과 같이 해결대안이 나오지 않을 수 있는 ‘과도한 정부 개입’과 ‘사유 재산권을 무조건 시장에 맡기는 자유방임’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인터넷 정보자원의 갈등국면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 정부가 아니라 사용자 또는 민간차원의 자발적 감시와 견제를 통해 해결하자는 것이 바로 인터넷에서 시작된 자율규제다. 즉, 과도한 정부규제로 인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검열의 위험을 벗어나면서, 또 방임을 했을 때 정보자원 자체가 쓰지 못하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제3의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율규제의 한계를 넘어서
인터넷 정보의 공유를 위한 효과적인 자율규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이 필요하다. 인터넷 정보라는 공유자원을 집단적으로 자율 관리하는 것은 감시와 최소한의 규제, 갈등해결장치, 내부의 평판 구축 등이 고민되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인터넷에서의 자율규제 역시 한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는 없다.
따라서 자율규제는 정부와 사업자 그리고 이용자들 간의 역학관계와 합의에 의해 여러가지 모델이 나타난다. 이런 모델은 각각 차이는 있지만 정부와의 관계 속에서 결정되는 경향이 강하다. 아무리 순수한 의미의 자율규제라 할지라도 규제의 근거틀은 현실의 법과 규범에 따라 달려 있기 때문이다. 자율적인 규제를 한다고 해도 그 근거와 테두리(경계)는 정부규제의 위임에 불과할 수도 있다. 자율규제 모델이 강제적 자율규제, 직접적인 자율규제, 검사된 자율규제, 인가된 자율규제, 자발적 자율규제로 구분되는 것은 결국 정부와 이해당사자 간의 관여방식의 차이에 기인한다.
그럼에도 왜 자율규제가 강조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자율규제가 가지고 있는 강점 때문이다. 첫째, 자율규제가 아무리 현실 법체계의 경계를 벗어날 수는 없을지라도 정부가 주도하는 일방적인 법리 적용에 의한 처벌이라는 극한적 조건을 막아줄 수 있는 완충장치로서 인터넷 사용자들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비록 정부규제의 위임이나 승인이라고 할지라도 사전적인 규제를 통해 사용자들의 자율적인 정화시스템의 구축에 기여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로서 사용자들 간의 과거 인터넷에서 쓴 글의 확인 등 평판시스템 활성화가 한 예일 것이다. 셋째,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외부의 강제 없이도 인터넷 정보자원이 효율적으로 관리될 수 있는 지배구조의 확립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거래비용 차원에서 자율규제는 과도한 정부규제로 인한 사회적 비용과 마찰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물질적으로도 불법 유해정보를 모니터링하기 위한 기술적 방법 개발비용이나 인적자원 투입비용을 줄일 수 있다.
한국적 맥락의 자율규제, KISO도 더 고민해야
이처럼 인터넷 정보자원을 하나의 공유자원으로 평가하고, 효율적 관리를 위한 방안으로서 자율규제의 필요성을 살펴보았다. 그런 맥락에서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이하 KISO)는 완전한 자율규제라기보다는 스스로 규제하고 의무를 각 포털에 부과하지만, 이 범위를 벗어나면 법적 규제의 대상이 되는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KISO가 성공적인 자율규제기구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추가적인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첫째, 실제적인 심의를 할 수 있는 정책위원회에 사용자인 네티즌 참여를 확대해야 할 것이다. 주요 포털사들의 사업자 위주 자율규제를 벗어나 네티즌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의견수렴의 창구를 확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현실적인 조건에서 인터넷의 주인인 네티즌들을 모두 포용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네티즌의 의견을 대의할 수 있는 인터넷 투표제도나 담당 위원의 선출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자발적인 네티즌들의 감시와 견제를 바탕으로 이들에게 자율규제기구의 문호를 여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인터넷 공유자원을 유지 관리할 수 있는 실제적이고 자율적인 논의구조로 발전할 토대를 만들 수 있다.
둘째, 현재의 인터넷 정보 콘텐츠규제를 벗어나 인터넷이라는 공유자원을 어떻게 풍부하게 할 수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즉 KISO가 단순히 자율규제기구가 아닌인터넷 정보자원을 유지하고 이를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여러 사업 아이템 고민이 필요하다. 예컨대, 인터넷 정보문화 개선운동이나 법률자문센터 운영, 디지털 저작권 관련 교육, 정보격차 해소, 이용자 권익 보호를 위한 공동의 편집 가이드라인 연구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셋째, KISO는 미국이나 유럽의 자율규제기구가 아닌 한국의 자율기구이다. 따라서 KISO는 한국적 법과 정보문화의 테두리에서 운용되어야 한다. 인터넷 정보가 여러 부작용이 있지만 아직 인터넷이 큰 문제없이 작동되고 있는 것은 네티즌들의 자율적인 정화 노력때문일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네티즌들의 권익 보호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정부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일방적인 정부정책 호응이나 반대보다는 한국적 맥락에서 과도한 것과 지켜야 할 것을 구분하여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그래야만 네티즌들의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 자율적인 인터넷 정보공유자원을 관리할 수 있는 기구로 정착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