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따른 미국 인터넷 정책의 향배
1. 반목, 불확실성, 그리고 갈등
2017년 1월 20일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와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로 대표되는 미국의 정보기술(IT) 업계와의 관계를 특징짓는 핵심 단어들은 반목(서로 미워함), 불확실성, 그리고 갈등이라 할 수 있다.
가. 반목
후보시절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유세 연설에서 테러리스트들의 활동을 막기 위해서는 ‘인터넷을 닫아버리는 방안(closing that Internet up in some way)’을 논의할 필요가 있으며 ‘표현의 자유를 외치는 사람들은 바보들’이라고 말할 정도로, 자유롭고 개방된 공간으로서의 인터넷(free and open Internet)이 표방하는 가치들에 대한 적개심을 서슴없이 드러냈다. 또한 트럼프 후보자는 아마존의 독과점을 비판하고, 애플의 해외 공장 운영에 대해 비난했으며, 애플과 미 연방 수사국(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 이하 FBI)간에 아이폰 잠금장치 해제를 놓고 갈등이 벌어졌을 때는 이용자 프라이버시를 옹호한 애플을 맹렬히 비난하면서 애플 제품을 보이콧(boycott) 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실리콘밸리는—피터 틸(Peter Thiel)을 제외하고는—힐러리 민주당 후보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는데, 실리콘 밸리 지역에서 나온 정치후원금의 99%와 정보기술업체의 임·직원들이 낸 정치후원금의 95%가 힐러리 후보에게 갔을 정도였다. 2016년 11월 8일 투표에서 트럼프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자 애플과 아마존 등 주요 IT기업들의 주가가 일제히 하락한 것도 이러한 반목 관계에 대한 불안심리가 작용한 일례라 할 수 있다.
나. 불확실성
트럼프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어떤 인터넷 정책들을 실행할 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대선 기간 동안 트럼프 후보는 인터넷 관련 세부 정책을 제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1 말을 바꾸는 경우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당선 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역시 인터넷 관련 정책들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의 인터넷 정책에 대해서는 추측(speculation)만이 가능한 상태라 하겠다. 한편, 미국 인터넷협회(Internet Association)는 2016년 11월 14일에 트럼프 당선인 및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보내는 공개서한을 통해 일련의 인터넷 정책들을 제안하였다. 이 공개서한에 담긴 정책기조들에 대해서는 2장에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한다.
다. 갈등
주요 IT기업 경영진들은 2016년 12월 트럼프 당선인과의 회동을 통해 관계 회복을 조심스럽게 모색했으나, 양자의 관계는 대통령 취임 일주일만인 2017년 1월 27일에 트럼프 대통령이 내린 ‘반(反)이민 행정명령’2을 계기로 갈등 국면으로 치달았다. 구글·마이크로소프트·페이스북 등 거대 IT업체 경영진들은 이슬람권 7개국 국적자와 모든 난민의 미국 입국을 일시적으로 금지한 반이민 행정명령을 강력히 비난했고, 구글 직원 2,000여명은 반이민 행정명령 반대를 위한 파업에 참여했다. 반이민 행정명령의 효력을 중단시키기 위한 소송에 130개가 넘는 IT기업들이 탄원서를 제출했으며, 구글·애플·페이스북의 주도로 IT 기업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반대하는 공개서한을 준비 중에 있다가, 2017년 2월 9일에 미국 제9 연방항소법원이 반이민 행정명령의 효력을 잠정적으로 중단시켰던 2월 3일의 하급심 결정이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고 판결하자 공개서한 작성을 잠정적으로 중단한 상태이다. 반이민 행정명령을 둘러싼 트럼프 행정부와 실리콘밸리의 충돌은 예견 가능한 것이었는데, 이 행정명령은 인터넷협회가 2016년 11월 공개서한에서 요청한 이민제도 개혁요구에 정면으로 반하는 방향이기 때문이었다.
2. 인터넷협회(IA)가 제안한 정책 로드맵(roadmap)
2012년에 발족한 미국 인터넷협회(https://internetassociation.org/)는 아마존·페이스북·구글·마이크로소프트·넷플릭스·페이팔·트위터·우버·야후 등 인터넷 산업을 대표하는 40개의 인터넷 기업들의 모임으로, 회원사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인터넷 정책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오고 있다. 2014년에는 망 중립성(network neutrality) 찬성 입장을 강력하게 표명했던 인터넷협회는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미국의 인터넷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자신들의 입장을 전달함과 동시에 트럼프당선인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1장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2016년 11월 14일에 트럼프 당선인/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인터넷 정책의 로드맵을 제시하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이 공개서한에는 9개 핵심 정책 분야에 대한 인터넷협회의 입장과 구체적 정책들이 제안되어 있는데, 이를 정리하면 <표1>과 같다.
<표 1> 인터넷협회가 공개서한에서 제시한 9개 핵심 정책 분야와 분야별 정책 제안들
정책 분야 | 정책 제안들 | |
1 | 중간매개자의 법적책임(intermediary liability) | 명예훼손, 저작권 분야에서 중간매개자 면책 조항 현행 유지를 촉구: (1) 통신품위법(Communications Decency Act: CDA) 제230조 유지, (2) 디지털천년저작권법(Digital Millennium Copyright Act: DMCA)의 세이프 하버(safe harbor) 조항 지속 |
2 | 저작권(copyright) | 인터넷 혁신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균형 잡히고 유연한 형태로 저작권법을 운용해 줄 것을 요청: (1) 이용자 접근을 보장하는 형태로 저작권법의 유연한 적용, (2) 디지털 음악 시장 육성, (3) 미국 저작권청(U.S. Copyright Office) 현대화 |
3 | 프라이버시 및 데이터 보안(privacy and data security) | 프라이버시 보호와 데이터 보안 강화를 위해 법률들을 개정해 줄 것을 촉구: (1) 전자통신프라이버시법(Electronic Communications Privacy Act: ECPA) 개정, (2) 강력한 암호화 지지, (3) 정부에 의한 감시 개혁, (4) 타국의 공권력이 수사를 위해 정보를 요청할 때 관련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도록 국가들 간에 양자/다자 협정 체결 |
4 | 무역 및 글로벌 인터넷 정책(trade and global internet policy) | 미국 인터넷 기업들이 해외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미국 정부가 힘써줄 것을 요청: (1) 미국의 중간매개자 면책조항들과 유사한 보호장치들이 해외에서도 도입될 수 있도록 미국 정부가 압력 행사, (2) 해외에서도 미국 국내와 유사한 형태로 지적재산권이 보호되도록 힘써줄 것, (3) 유럽에서 추진 중인 디지털단일시장(Digital Single Market) 계획에 포함되어 있는 인터넷 규제들이 도입되지 않도록 노력해 줄 것, (4) 국가 간의 자유로운 데이터 유통을 보장, (5) 인터넷을 통한 제품과 서비스 교환에 있어서의 관세 장벽 완화 |
5 | 특허 개혁(patent reform) | 특허 관련 개혁의 필요성 역설: (1) 관할 법원을 정하는 법정지(venue) 기준 개혁 지원, (2) 특허 괴물(troll) 방지를 위한 소송 시스템 개혁 지원, (3) 소프트웨어 및 서버(server)의 특허 인정 기준(patent subject matter eligibility standard)과 관련하여 연방대법원의 Alice v. CLS Bank 판결과 특허법 101조에 천명되어 있는 핵심 원칙들을 유지해 줄 것, (4) 고품질 특허 장려를 위해 특허청이 역할을 수행해 줄 것, (5) 철저한 등록 후 심사 프로그램(post-grant review program) 유지, (6) 지적재산권 수익에 대한 세제 감면을 통해 미국 내 투자를 장려 |
6 | 온디맨드 혹은 공유 경제(on demand or sharing economy) | 다음의 2가지 기본 원칙을 지켜줄 것을 요청: (1) 규제에 있어 일관되고 스마트한 접근법을 취해줄 것, (2) 공유 경제는 유연성과 경제적 기회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20세기 방식의 규제로 새로운 기회 및 성장가능성을 막아서는 안 됨. |
7 | 신규 기술(emerging technology) |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기술들이 꽃필 수 있도록 정부가 유연하게 접근해 줄 것을 원론적 차원에서 서술하면서, 기존 규제모델에서의 큰 변화는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표명 |
8 | 인터넷의 개방성과 접근성 보장(open & accessible Internet) |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인터넷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다음의 정책들을 펼쳐줄 것을 촉구: (1) 여러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는 거버넌스(governance) 구조 지원, (2) 인터넷의 개방성 보장, (3) 광대역 접근(broadband access) 촉진, (4) 연결성(connectivity)을 증진시키기 위한 혁신적인 사업 모델 보호, (5) 인터넷 접근을 방해하거나 중단시키는 외국 정부들의 행동에 대해 미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 |
9 | 21세기 노동력(a 21st workforce) | 21세기에 부합하는 노동력 양성을 위해 다음의 정책들을 펼쳐줄 것을 촉구: (1) 과학·기술·공학·수학(STEM)분야 및 컴퓨터공학 교육 확충, (2) 이민제도 개혁, (3) 소외지역 기술교육지원을 통한 기술분야에서의 다양성 증대 |
3.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의 향배
인터넷협회의 정책제안들 중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과 일치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들은 ‘무역 및 글로벌 인터넷 정책’에서 언급한 해외에서의 불필요한 규제 철폐와 관세장벽완화를 통한 자유무역 증진, 그리고 ‘온디맨드 혹은 공유경제’ 영역에서 요청한 규제완화이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과는 반대일 것으로 예상되는 인터넷협회의 세부 정책 제안들은 강력한 암호화 지지, 정부에 의한 감시 최소화, 인터넷의 개방성과 연결성을 보장하기 위한 망 중립성 강화, 해외 우수인력 유치를 위한 이민제도 개혁이다.
이민제도 개혁과 관련해서는 1장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반이민 행정명령을 둘러싼 갈등이 이미 폭발한 상황이고, 트럼프 대통령의 후보자 시절 발언들—테러리스트의 활동을 막기 위해 인터넷을 닫아버릴 필요성에 대한 언급 및 애플 제품 보이콧 촉구 발언—에 비춰볼 때, 트럼프 행정부는 국가 안전 보장과 공권력의 원활한 집행이라는 명분하에 암호화 기술 제한 및 정부에 의한 감시 확대라는 방향, 즉 인터넷협회가 요구한 것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인터넷 정책들을 추진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볼 수 있다.
반이민 행정명령을 둘러싼 갈등 이후 트럼프 행정부와 실리콘밸리가 강하게 충돌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망 중립성 문제다. 망 중립성 옹호자였던 톰 휠러(Tom Wheeler) 미 연방통신위원회(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 이하 FCC) 의장이 사임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휠러를 대신하는 인물로 FCC의 망 중립성 규칙에 비판적 입장을 고수해 온 아지트 파이(Ajit Pai)를 지명했다. 버라이존(Verizon) 변호사로 일한 경력이 있는 파이는 탈규제주의자로 알려져 있고, AT&T·컴캐스트·버라이존과 같은 거대 통신업체들의 독점적 사업형태를 제한해온 그간의 FCC 규제들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해 왔다. 따라서, 파이 의장 하에서의 FCC는 망 중립성 규칙 철폐를 포함하여 그간의 FCC 정책기조와는 상당히 다른 방향을 보일 것으로 예견된다.
4. 실리콘밸리 대통령?
사업가이자 저자인 앤디 케슬러(Andy Kessler)는 2017년 2월 3일자 월스트리트저널(Wall Street Journal) 칼럼을 통해 ‘트럼프는 첫 번째 실리콘 밸리 대통령일지도 모른다(Trump Could Be the First Silicon Valley President)’는 견해를 제시했다. 표면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과 실리콘밸리가 ‘기름과 물’처럼 이질적인 것 같지만, 실제로 둘은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권위를 존중하지 않으며, 고위험/고수익을 추구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쳤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현실화 한다’는 점에서 닮았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지적이다.
트럼프 행정부와 실리콘밸리는 인터넷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인터넷 정책들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가치들에 있어서는 많은 부분에 있어 갈등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케슬러의 지적처럼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행동 양식과 태도에 있어서는 둘 사이에 묘하게 유사한 점들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불확실성’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기도 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반이민 행정명령 반대 행동에서 보였듯이, 미국 인터넷 기업들의 경영진들과 직원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도 파괴(disruption)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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