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중심을 오래 잡아줄 것인가? : 전직 판사 게시글 임시조치 요청 관련 심의결정을 중심으로
1. 온라인 표현의 위축과 KISO 정책규정에 거는 기대
온라인 게시물을 이유로 ‘언론중재법’상 조정·중재와 손해배상, ‘형법’과 ‘정보통신망법’에 따른 형사처벌이 과히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정보통신망법에 따른 삭제와 임시조치 사례들까지 감안하면 2002년 6월 27일 헌법재판소가 인터넷을 ‘가장 참여적인 시장’이자 ‘표현촉진적인 매체’라고 평가한 것이 무색해진다. 현대 사회의 가장 거대하고 주요한 표현 매체로 자리를 잡은 인터넷의 표현을 ‘질서 위주의 사고’만으로 규제하려 들 경우 표현의 자유의 발전이 큰 장애를 입게 될 것이라는 당시 헌법재판소의 경고가 오히려 더 설득적이다. 일반 시민들의 가장 중요한 표현의 공간이자 소통 장치인 온라인의 표현을 정보통신망법과 형법 등을 동원해 봉쇄하고 처벌하려는 정치 권력자들의 행태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원리와 어울리지 않는다. 더욱이 행정기관이 온라인 소통의 문지기 역을 자임하고 표현물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행사하려는 것은 밀턴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욕적인 처벌 못지않은 처벌’이다. 진리의 본성은, 특별하게 정해진 논리가 사고 방법에 묶여 있을 때보다 자유롭고 자율적일 때, 더 빨리 그 자신을 드러낸다고 하지 않은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가 꾸준히 온라인 ‘자율규제’의 틀을 구축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KISO는 2009년 출범 직후부터 구체적인 온라인 게시물을 대상으로 심의 결정을 해 왔다. 개별적인 사례의 심의 기준이 되는 일반적인 규범을 KISO 정책위원회는 ‘정책결정’ 형식으로 차곡차곡 마련해 왔다. 게시물과 검색어, 선거기간 중 인터넷정보서비스와 모욕·혐오적 표현물에 대한 자율적 심의의 기준을 모아 「KISO 정책규정」 으로 묶어냈다. 2014년 6월 17일이었다. 2015년 10월 27일, KISO는 「KISO 정책규정 해설서」를 편찬하고 기념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정책규정’ 제2장 제1절은 명예훼손성 게시물에 대한 임시조치 등을 규정하고 있다. 임시조치를 할 수 있는 요건과 범위, 대상을 규정한 제3조와 제4조에 이어 제5조는 임시조치의 처리 제한을 다루고 있다. 그 내용의 골자는 첫째, 국가기관과 지자체는 명예훼손 관련 임시조치 요청의 주체가 아니다. 둘째, 정무직 공무원 공인의 경우 명백히 허위사실이 아닌 한 공적업무와 관련한 게시물은 임시조치의 대상이 아니다. 셋째, 공직자와 언론사의 경우 게시물이 업무에 관한 것으로 공적관심사에 해당할 경우 임시조치의 대상이 아니다. 넷째, 정무직 공무원, 공직자, 언론사의 경우 해당 지위를 벗어나더라도 재임 중 발생한 공적 업무는 위에서 말하는 공적업무로 본다. 다섯째, 임시조치 요청의 주체가 (정무직 공무원이 아닌) 공직자, 언론사의 경우 명백한 허위사실,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인 때에는 임시조치를 할 수 있다. 여섯째, 국가와 지자체의 장, 구성원 개인은 임시조치를 요청할 수 있다. 일곱째, 정무직 공무원, 공직자, 언론사의 경우에도 구체적인 정황이나 사실의 적시없이 단정적이고 모욕적인 표현만을 한 경우 임시조치를 할 수 있다. 제5조의2는 임시조치 여부에 의문이 있을 때 회원사는 KISO에 심의를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
2. 심의 사건의 개요와 평가
현재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아무개 신청인은 판사 재직 시절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전교조 간부들에 대해 무죄판결을 하였다. 아무개 변호사는 KISO 회원사의 블로그에 게시된 3건의 게시물이 경멸감의 표시로서 모욕,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며 그 삭제를 요청했다. 회원사 내부의 의견은 임시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는 일부와 공인의 공적 업무에 대한 비판이라며 반려해야 한다는 다수로 갈렸다. 회원사는 KISO에 심의결정을 의뢰하였다.
KISO 정책위원회는 표결 절차를 거쳐 심의대상 게시물 전부에 대해 ‘해당 없음’ 결정을 하였다. 논의 과정과 심의결정문에 담긴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해당 게시물은 신청인이 판사로 재직할 당시의 공적 업무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둘째, 전직 판사인 신청인은 재직 시절 ‘정책규정’ 제5조 제3항에 해당하는 공직자였다. 셋째, 전직 공직자가 공직의 지위에 있을 때의 공적 업무에 관한 게시물이므로 그 게시물이 명백한 허위사실에 해당하는지, 또는 게시물이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중점적으로 판단하였다. 넷째, 게시 글은 신청인 등의 판결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밝힌 것으로서 허위의 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다섯째, 게시 글은 공직자의 공적업무에 관하여 통상적인 문구를 이용한 비판에 해당하고 욕설을 사용하지 않는 등 표현의 자유 보장 범위 안에 있다. 따라서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라고 보기 어렵다. 여섯째, 재판이 끝난 사항에 대해 비판하는 것 자체가 제한되는 것은 아니며 재판에 대한 적절한 감시와 견제가 공정한 재판을 담보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일곱째, ‘국민상식을 외면한 편향판결’, ‘알량한 법적 지식’, ‘사회경험이 일천한’ 등과 같은 경멸적 표현으로 자신을 모욕하고 있다는 신청인의 주장은 비록 당사자에게 가혹할 수 있으나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위 사례에 대한 KISO 정책위원회의 심의결정에 대부분 동의한다. ‘대부분’이라고 함은 일부 견해를 달리하는 점이 있다는 말이다. 심의결정은 신청인이 제시한 3개의 게시물 표현에 대해 정책규정 제5조 제3항과 제4항을 적용하였다. 해당 게시물이 명백한 허위사실인지 여부,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인지 여부를 검토하였다. 그리고 해당 표현들은 명백한 허위사실이 아니며,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동조 제3항은 제1항·제2항에 이어 ‘명예훼손 게시 글’에 대한 임시조치 여부를 다루는 규정으로 이해된다.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표현인지 여부는 그동안 법원에서 어떤 명예훼손적 표현의 면책 여부를 다툴 때 적용되었다. ‘KISO 정책규정 해설서’의 해설 내용을 감안하거나 해설서에서 인용한 대법원 판례도 이 법리가 명예훼손 소송에서 도출되었음을 소개하고 있다.
신청인은 ‘알량한 법적 지식’과 같은 몇 가지 게시글의 내용은 경멸감을 표현한 모욕범행이라며 임시조치를 요구하였다. 정책위원회의 심의결정 내용과 마찬가지로 해당 표현들이 공직자에 대한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으로 볼 수 없다는 결론에는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신청인이 경멸적 표현으로 인한 모욕범행을 제기하고 있으므로 심의 과정에서 기술적으로 정책규정 제5조 제5항의 해당 여부를 판단에 추가하는 것이 더 적절했을 것으로 본다.
3. KISO 중심 온라인 심의의 일관성과 안정성 강화 필요
온라인을 감시와 통제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은, 온라인의 음란한 정보들이 오프라인 사회의 정연한 규범 질서를 훼손한다고 주장한다. 온라인의 폭력적인 정보가 청순한 청소년들의 정서를 야금야금 갉아먹을 것이라며 핏대를 올린다. 날조된 게시물들이 연약한 연예인들의 심성을 해쳐 급기야 연예인의 자기 살해를 결과한다고 꿰맨다. 공직자와 정치인에 대한 허위의 공격적인 정보를 그대로 존치할 경우 사회질서와 자유민주주의 시스템이 붕괴될 수 있다고 강변한다. 통제론자들의 시각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청소년 일탈과 성적 희롱의 만연과 범죄자들의 포악한 폭력과 연예인의 자살과 권력자들의 불명예는 오롯이 온라인에서 뿌리 뻗어 나온 것들이다. 온라인은 베르테르 권총의 방아쇠이자 총구이며 탄약이자 탄두며 나아가 그 자체 한 자루 총기로 매도된다. 통제론자들은 따라서, 온라인을 더 촘촘하고 정교하게 감시할 수 있는 장치를 계발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학교 담장 인근에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현란히 범람하는 음란한 유흥, 백주 대낮에 버젓이 자행되는 인명 살상 목적의 묻지마 폭력, 눈을 크게 뜨고 걸어도 땅이 푹 꺼져서 다리를 뺏어가는 오프라인 세상의 위험은 온라인의 그것보다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럼에도 실제 오프라인 세계에서는 온라인을 더욱 정교하게 감시하고 통제하며 더 거칠게 처벌하려는 작업들이 전개되고 있다. 당사자들은 손사래를 치며 감시·통제·처벌 장치라는 의혹을 부정하지만 그동안 온라인을 대해 온 당사자들의 태도에 비춰볼 때 단순한 기우로 넘길 사안들은 아니다.
이를테면, 문화체육관광부는 ‘인터넷신문’의 등록 요건을 강화한 개정 ‘신문법 시행령’을 2015년 11월 19일부터 적용하고 있다. 취재와 편집에 종사하는 상시 인력 기준을 3명에서 다섯 명으로 늘렸다. 또 청소년을 보호하려는 취지에서 모든 인터넷신문으로 하여금 청소년보호책임자를 지정하도록 의무를 부과했다. 지난 봄날부터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저해하는 주범 중 하나로 유사 언론이 지목 당했다. 인터넷 언론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부당하게 ‘사이비 언론질’을 벌인다는 것이다. 일종의 언론자격심사 비슷한 장치로 취재와 편집 인력 기준이 상향 조정 된 셈이다. 규모가 작은 인터넷 언론과 시민사회는 온라인 정보 유통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강력히 맞섰으나 시행령은 개정되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2015년 12월 10일 당사자 외에도 제3자 혹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직권에 의해 명예훼손 등 권리침해 정보를 심의하고 시정요구를 할 수 있도록 ‘정보통신 심의규정’을 개정했다. 심의위원회는 ‘권리구제의 기회를 확대하고 이용자의 권익을 제고’하기 위하여 자격 제한 규정을 완화하여 신청자격을 확대했다고 밝히고 있으나 시민사회는 이 규정의 개정이 권력자에 대한 비판 게시물을 차단하는 데 더 자주 활용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사안의 성격과 차원이 다르긴 하지만 언론중재위원회는 2015년 10월 ‘언론중재법 개정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인격권을 침해하는 기사에 대한 침해배제청구권, 기사의 복제와 댓글에 대한 피해 구제 방안을 신설하는 내용이 담겼다. 언론중재위원회는 침해배제청구권이 대법원의 판결을 명문화 한 것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피력한다. 그러나 시민사회는 신문법 시행령과 정보통신심의 규정의 개정과 같은 맥락의 작업이라며 표현 자유의 위축을 걱정하고 있다.
복마전 같은 현실 세계의 실상은 억지로 눈 감고 모르쇠 하는 사람들이 유독 온라인에 대해 무흠결의 청정수역 지대가 될 것을 강요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그러한 요구야 말로 온라인의 특성과 실상을 정말 모르는 우매한 태도다. 행정 권력이 온라인 표현 공간의 통로를 틀어지고 정보의 유통을 심사하는 것은 시대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 온라인의 명예훼손 표현을 형사처벌하는 나라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고 온라인 표현을 모욕죄로 징치하는 나라들은 극히 적어 한 손으로도 꼽힌다. 한국의 일부 정치권이 반의사 불벌의 사이버 모욕죄를 신설하거나 모욕죄의 징역형량을 과도하게 높이려고 시도하고 있는 한편, 국제 사회는 한국의 온라인 명예훼손과 모욕죄 처벌에 대해 그 개선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형사처벌이 아닌 민사소송을 통해 온라인 상의 명예훼손과 모욕표현 문제를 해결할 것을 제안해 왔다. 또 온라인의 심의 주체도 행정 권력이 아니라 민간의 기구가 감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도 오래 전 온라인 심의를 민간 기구에 위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개진했었다. 2010년 9월 30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정보통신심의제도에 대한 개선권고’에서, 온라인 심의권 및 시정 요구권을 온라인서비스 제공자 및 게시물 관리사업자 대표, 시민사회 대표들이 공동으로 구성하는 ‘민간자율심의기구’에 이양할 것을 권고하였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행정기관인 방통심의위의 온라인 심의제도는 사실상 검열로서 기능할 위험이 커서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를 중대하게 침해한다고 볼 우려가 있다. 행정기관이 인터넷 게시물을 통제하는 것과 더불어 심의대상과 심의기준 규정이 명확하지 않은 점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는 온라인 심의를 민간자율기구가 담당하더라도 독일처럼 해당 민간자율기구에 대한 관리·감독을 방통위 등 공적기관이 맡는 공동규제 모델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민간자율심의 기구에 의한 조정과 중재, 사법부를 통한 분쟁해결 수단의 병행 방식도 고려되었다. 이러한 국가인권위의 시각은 2002년 6월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 등 이른바 ‘불온통신’ 규정을 위헌 결정한 헌법재판소의 견해와도 유사하다. 당시 결정에서 헌재는 행정 권력에 의한 온라인 심의는 비록 사후적이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상시적인, 자체 검열체계로 작동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동시에 헌재는 그 결정에서 부득이한 경우 국가는 표현규제의 과잉보다 오히려 규제의 부족을 선택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해악이 명백하게 검증된 것이 아닌 표현을 규제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더 큰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표현 자유의 본질이라고 보았다.
출범 이래 꾸준히 심의결정과 정책결정을 유기적으로 생산하고 축적해 온 KISO가 그동안의 경험과 지혜를 「KISO 정책규정」, 「KISO 정책규정 해설서」로 묶어냈다. 그리고 그에 기초해 전직 공직자의 공적 업무 관련 게시글을 심의결정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발전이라고 할 것이다. 이번 심의결정의 결론은 신청인에게 ‘상당히 불편하고 괴로운’ 심히 유감스러운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신청인이 공직자로 재직 중 생산한 판결문에 담긴 소중한 가치들과 국가인권위원회의 통신심의제도의 개선 권고, KISO 정책규정의 역사와 소임을 감안해 주길 기대한다. 더불어 전직 공직자의 공적 업무와 관련한 게시글의 임시조치 범위를 획정한 이번 심결이 자율적인 심의의 안정성과 일관성을 확보하는 데 밑거름으로 쓰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