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사전 서비스 이용자보호 가이드라인 리뷰
1. 서론
네이버 국어사전 혹은 다음 국어사전에서 ‘벙어리’를 검색하면 “언어 장애인을 얕잡아 이르는 말”이라는 단어 의미 설명과 함께 “차별 또는 비하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므로 이용에 주의가 필요합니다”라는 문장이 제시된다. 문장 옆에는 ‘차별표현 바로알기 캠페인’이라는 문구가 있고 문구를 클릭하면 캠페인 안내 페이지로 연결된다.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이하, KISO)가 2022년 3월 발표한 ‘어학사전 서비스 이용자보호 가이드라인’(이하, 어학사전 가이드라인)이 적용된 사례이다. KISO 어학사전 자문위원회 출범 배경, 가이드라인 마련 과정 등을 간략히 짚은 후, 어학사전 가이드라인의 구체적 내용을 살펴본다.
포털은 국립국어원 등 사전 편찬자와 제휴를 통해 어학사전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어학사전에 담긴 표현 중에는 과거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했던 말이지만 시대가 변하고 이용자 인식이 변화함에 따라 차별·비하의 의미를 띠는 것으로 인식되는 말이 포함되어 있다. 관련해 이용자 신고나 문의가 있을 때 마다 포털사는 사전 편찬자와 협의해 해당 표현을 수정하거나 비노출 조치를 취해왔지만 차별적 표현에 대한 보다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대응, 투명하고 체계적인 관리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에 KISO는 서비스 운영 분과 산하에 ‘어학사전 자문위원회’를 꾸리게 된다.
2021년 8월 출범한 KISO 어학사전 자문위원회에는 황창근 위원장(홍익대학교 법과대학 교수)을 포함하여 6인의 위원이 참여하고 있다. 위원들의 전문분야/직군을 살피면 법학 교수 2인, 아나운서 1인, 국어국문학 교수 1인, 법조인인 국가인권위 비상임위원 1인, 교육학 교수 1인이다. 어학사전 자문위원회는 이용자보호 가이드라인과 이용자 주의표시 기준을 마련했고, KISO 정책위원회는 어학사전 자문위원회가 마련한 어학사전 가이드라인을 시행키로 2022년 3월에 의결했다.
해당 가이드라인은 어학사전의 표제어, 용례 등에 차별·비하적인 표현이 포함된 경우 사전 편찬자와 협의하여 ‘주의 알림’ 표시를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현재는 차별·비하 표현 중 어학사전 자문위원회가 검토를 완료한 장애 관련 차별·비하 표현과 인종 관련 차별·비하 표현에 이용자 주의표시가 적용되고 있다.
2. 어학사전 가이드라인의 내용 검토
가. 제1조(목적) 및 제2조(원칙)
어학사전 가이드라인은 총 3개의 조로 간략하게 구성되어 있다. 제1조는 가이드라인의 목적을 밝히고 있는데 “회원사에서 제공하는 어학사전 서비스의 이용자 권익 보호를 위하여 차별·비하적인 표현에 대하여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어학사전 서비스의 활용 방향을 제시하고 나아가 건강한 사전 서비스 이용 문화 조성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내용이다. 이용자 권익 보호라는 큰 틀 안에서 어학사전 서비스 활용 방향 제시와 건강한 사전 서비스 이용문화 조성에 기여를 도모하고 있으며, 차별·비하 표현에 관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상정하고 있다. 기존의 KISO 게시물 정책 규정이나 검색어 정책 규정이 삭제 등의 조치가 취해져야 할 게시물과 검색어를 판단하는 즉 규제적 성격을 담은 정책 규정이었다면 이번에 마련된 어학사전 가이드라인은 사전에 포함된 차별·비하 표현을, 삭제 등의 조치를 통해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단어의 의미에 대해 추가정보를 제공하는 것에 주안점을 둔 정책 규정이다.
가이드라인 제2조는 세 가지 원칙을 서술하고 있는데 이용자 언어생활 보호(1항), 인격 존중과 동등 대우(2항), 그리고 어학사전 편찬 전문성 존중과 저작권 보호(3항)이다. 각 조항은 해당 원칙의 관련 대상 즉 해당 원칙을 준수함으로써 보호하고자 하는 이익/권리의 향유 주체를 다르게 정하고 있다. 제1항은 어학사전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용자 전체에 관련되는 내용으로 모든 이용자들이 ‘정확하고 올바른 언어생활’을 할 수 있도록 회원사가 배려하여야 한다는 원칙을 서술하고 있다. 회원사의 역할을 서술함에 있어 ‘배려’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조금 어색한데, ‘정확하고 올바른 언어생활’이라는 가치지향이 이후에 나오는 원칙들에서 언급하고 있는 ‘인격권’, ‘평등권’, ‘저작권’ 등과 같은 권리와는 그 성격이 다르므로 선택한 서술방식이 아닌가 추정해 본다.
인격 존중과 동등 대우 원칙을 서술하는 제2항은 회원사가 “모든 인간이 가지는 인격권과 평등권을 존중하여 사전의 표현이 이를 침해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어학사전의 표제어, 용례 등에 포함된 차별·비하 표현으로 인해 인격권과 평등권을 침해받는 이들, 가령 인종 관련 차별·비하 표현인 경우 표현대상이 된 특정 인종 집단이나 그 집단에 속한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원칙이다. 차별·비하 표현이 인격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회원사가 모든 인간이 가지는 인격권과 평등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했다는 의의가 있다. 제3항은 사전 편찬자와 관련된 것으로, 회원사는 어학사전 편찬자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저작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사전 편찬자는 어학사전 서비스의 콘텐츠 제공자이고 회원사는 콘텐츠 제공자의 저작권·전문성을 보호·존중하는 것이 마땅하다.
나. 제3조(차별·비하 표현 등에 대한 조치)
1) 조치 대상
가이드라인 제3조는 차별·비하 표현에 대한 조치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제1항에서는 회원사가 차별·비하 표현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고, 조치의 대상이 되는 차별·비하 표현을 “지역·종교·장애·인종·출신국가·성별·나이·직업 등으로 구별되는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모욕적이거나 차별·비하적인 표현방식을 사용하여 해당 집단이나 그 구성원들로 하여금 굴욕감을 느끼게 하거나 현저하게 불이익을 초래”하는 표현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어학사전 가이드라인 내용 중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 판단되므로 자세히 살핀다.
첫째, 정체성 요소로 8가지(지역·종교·장애·인종·출신국가·성별·나이·직업)를 명시하고 여기에 “등”을 추가함으로써 편의상 ‘기타’로 분류되는 사유까지 총 9가지 유목을 나열하고 있다. 이는 KISO 정책규정 중 ‘차별적 표현 완화를 위한 정책’(제21조)에서 나열하고 있는 사유들에 ‘종교’를 추가한 것이다. 어학사전 자문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종교’를 추가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통상적으로 인권침해적인 요소 유형에 종교가 주요하게 다뤄지고 있으며, 어학사전에 종교 관련 비하표현(예: 땡중, 예수쟁이)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KISO 게시물 정책규정이 ‘종교’를 금지 사유로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호하기 위해서였으나 어학사전에 포함된 단어의 경우 이용자의 표현물이 아니므로 ‘종교’를 추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았다고 한다. 이는 KISO 검색어 정책규정이 ‘종교’를 포함하고 있는 것과 동일하다.
이번에 발표된 어학사전 가이드라인에 제시된 정체성 요소들은 대표 사유를 예시한 것이며 가이드라인에 명시적으로 언급된 요소들만이 조치대상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어학사전 가이드라인 적용 시 어학사전 속 차별·비하 표현이 삭제되는 것이 아니라 ‘주의 알림’이 함께 표시되는 방식이므로 표현의 자유 침해 가능성은 미미하다. 따라서 이번 가이드라인에 제시된 대표 사유들 이외에도 향후 어학사전 자문위원회가 차별·비하표현에 해당하는 단어들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나감에 따라 빈번하게 발견되는 정체성 요소/차별금지 사유가 있다면 가이드라인에도 추가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참고로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는 19가지 차별금지사유를 제시하는데, 어학사전 가이드라인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차별금지사유들로는 사회적 신분1, 출신 민족, 용모 등 신체 조건, 기혼 미혼 별거 이혼 사별 재혼 사실혼 등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前科), 성적 지향, 학력, 병력이 있다.
둘째, 가이드라인 적용 대상이 되는 표현 방식은 “모욕적이거나 차별·비하적인 표현방식”을 사용한 경우다. 어학사전 자문위원회의 회의록에 따르면, 자문위원회는 ‘혐오’라는 용어도 고려하였으나 “사전 내 표제어가 그 자체로 증오와 혐오를 나타낸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 “비하가 더 적절하며 ‘비하적’이라는 말은 완곡한 표현이므로” 혐오 대신 비하라는 용어를 사용해 차별·비하 표현으로 표기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사실 혐오표현을 명확히 개념정의하거나 혹은 어디까지를 혐오표현의 범위에 포함시킬 것인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물론 ‘차별·비하 표현’을 명확히 개념정의하거나 그 범위를 획정하기도 어렵지만, 통상적으로 혐오표현이 강렬한 증오의 감정을 표출하거나 욕설과 유사한 표현으로 이해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차별·비하’라는 용어를 통해 보다 폭넓은 범위의 표제어, 용례 등이 조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전달키로 한 결정은 타당하다고 본다.
셋째, 표현이 낳는 효과 측면에서는 “해당 집단이나 그 구성원들로 하여금 굴욕감을 느끼게 하거나 현저한 불이익을 초래”하는 경우가 가이드라인 적용대상에 해당한다. 다만, 모든 차별·비하 표현이 굴욕감을 느끼게 하거나 현저한 불이익을 초래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인지, 아니면 차별·비하 표현 중에서 굴욕감을 느끼게 하거나 현저한 불이익을 초래하는 표현을 선별하여 조치하는 것인지는 가이드라인의 서술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렵다. 특히 ‘현저한 불이익’은 법적 판단에서 자주 사용하는 표현인데 만약 차별·비하 표현 중 현저한 불이익을 초래하는 표현만을 조치 대상으로 삼는다면 어느 정도의 표현을 현저한 불이익을 초래하는 것으로 간주할 것인지, 어떠한 경우에 그러한 불이익이 초래된 것으로 볼 것인지 등 관련 판별기준에 대한 질문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2) 조치 절차 및 방식
제3조 1항은 회원사는 이러한 차별·비하 표현에 대해 “신고 등을 통해 알게 된 경우”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달리 말해, 가이드라인은 회원사에게 필요한 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지는 않으며, 차별·비하 표현에 대해 회원사가 인지하게 되는 방식은 이용자 신고로 인한 경우 이외의 방법으로도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KISO 사무처에 따르면 KISO는 향후 차별·비하 표현 관련 동향 변화를 감지하여 선제적으로 대응하고자 관련 이슈를 모니터링 하고 민감 키워드를 선정해 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조치 대상에 포함되는 단어의 목록을 구축하기 위해 이용자 신고에만 의존하지 않고 KISO가 선제적·적극적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어학사전 가이드라인의 시행 및 차별·비하 표현에 대한 조치에 관해 널리 알림으로써 이용자들의 신고를 활성화하는 작업도 함께 해나가면 어떨까 한다.
회원사가 차별·비하 표현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할 때는 “사전 편찬자와의 협의하여” 조치토록 정하고 있는데 동 가이드라인 제2조 3항의 원칙을 고려할 때 사전 편찬자와의 협의 과정에서 편찬자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저작권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협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회원사가 취할 수 있는 ‘필요한 조치’는 “어학사전의 내용에 ‘주의 알림’ 등 필요한 조치”를 뜻한다. 2022년 3월부터 장애 및 인종 관련 차별·비하 표현에 대해 이뤄지고 있는 조치는 “차별 또는 비하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므로 이용에 주의가 필요합니다”라는 문장을 통한 주의 알림이다. 가이드라인에서는 필요한 조치를 ‘주의 알림’으로만 한정하고 있지는 않으므로 향후 주의 알림 이외에 다른 방식의 필요한 조치가 추가될 가능성도 있겠다.
3) 기타 규정
가이드라인 제3조 2항은 회원사가 동조 제1항의 필요한 조치를 시행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KISO에 차별·비하표현 여부, 조치 등에 대한 심의를 요청할 수 있으며 그 결과에 따라 조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회원사 자체 판단이 어려운 사례에 대해 KISO의 심의를 구하는 것으로 기존 게시물 정책규정, 검색어 정책규정에서 정한 방식과 동일하다.
3. 맺음말
KISO가 ‘어학사전 서비스 이용자 보호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차별·비하 표현에 대해 이용자 주의 표시를 적용하기 시작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인권, 평등, 다양성, 공존이라는 현 시대의 지향은 일상의 언어 사용과 분리될 수 없고, 관성에 의해 혹은 무심코 사용하는 단어들 중 차별·비하적 의미를 띠고 있는 표현에 대해 정확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해 시민 개개인의 언어감수성을 높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한편 국어사전이 갖는 문화적·역사적 가치를 고려할 때 잘못된 표현이라고 해서 표제어를 삭제하거나 수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점에서 KISO 회원사가 이용자 주의 표시를 통해 시민 개개인이 각 단어의 정확한 의미와 사용 맥락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통해 차별·비하 표현의 사용을 줄여나가는데 이바지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 적절하다.
물론 개별 단어만으로 화자의 의도나 문장의 의미를 판단할 수는 없다. 혐오표현의 사례를 봐도 단어 자체는 혐오나 증오의 감정을 담고 있거나 거친 욕설이 아니지만 혐오와 차별을 조장, 정당화, 강화하는 표현이 다수 존재하고 이러한 표현들을 혐오표현으로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KISO 어학사전 가이드라인은 좋은 출발점이지만 KISO와 회원사의 자율규제 노력이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이용자의 인격권, 평등권을 존중하기 위한 KISO와 회원사의 다양한 선제적, 적극적, 정책적 노력을 기대한다.
- 어학사전 가이드라인에 명시된 ‘직업’과 유사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차별금지사유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