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민주주의 현재와 미래-①> 국내 디지털 민주주의 현주소와 개선 방향

1. 발단과 전개 : 한국에서 디지털 민주주의의 출발

 

한국은 선도적으로 광범한 초고속인터넷 환경을 구축한 나라답게, 온라인 환경이 여론 형성과 선거 참여 등 민주주의 제도와 구현에 끼치는 영향을 앞서서 경험한 나라다. 온라인 정치 팬클럽인 노사모가 중심이 된 지지 세력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됐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에 대해 당시 영국의 <가디언>은 “세계 최초의 인터넷 대통령 로그온하다(World’s first internet president logs on)”라는 기사를 싣고 한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발전된 온라인 민주주의 국가임을 주장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1

2002년 대선 패배 뒤 한나라당은 “시대정신에서 졌다”고 자평했으며,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는 “우리가 인터넷 매체의 활용에서 뒤진 것도 주요한 패인이었다”고 말했다.2지지 세력이 주도하는 온라인 활동이 현실 정치 권력을 창출했다는 2002년 대선의 경험은 여야 정치세력을 넘어 일반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이후 한국 사회의 온라인 공간은 여론 주도권을 노린 치열한 정치선전의 전장으로 변모했다. 정당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정치세력이 온라인에 뛰어들어 정치인과 정당에 대한 지지와 반대 등 여론 형성에 나섰다. 2008년 미국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 2010년 천안함 피폭을 둘러싼 논란은 온라인 여론전을 가열시켰다. 온라인 공간에서 토론과 표현 방법이 늘어나고 다양해졌지만 갈등과 대결은 격화되고 논의의 심화와 지평 확대는 이뤄지지 못한 채 진영별 극단화로 치달았다.

온라인 여론 공간에서 정치 진영 간 첨예한 갈등은 토론 활성화를 가져왔지만, 결과적으로 온라인 여론의 질적 저하와 극단화로 이어졌다. 온라인의 각종 커뮤니티에서 다양한 주제에 대한 정치 토론이 진행됐지만, 무조건적 옹호와 비방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았다. 대규모 회원을 보유한 대형 커뮤니티 게시판과 포털 뉴스의 기사댓글은 여론전이 펼쳐진 주된 무대였다.

자발적인 의견 표현의 공간이던 인터넷 여론 공간은 정치세력간 주도권 투쟁 무대가 되면서 부작용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비논리적인 옹호와 비방으로 여론 공간이 오염되었고, 주도권 쟁취를 위해 뛰어든 조직적 세력들에 의해 일반 이용자들이 밀려나거나 압도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트위터와 카카오톡, 유튜브와 같은 소셜미디어는 개인들 간의 네트워크 기반의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점에서 온라인 여론 주도권 경쟁을 가열시키는 에너지 공급원이 됐다.

한국 온라인 여론생태계가 악화된 결정적 계기에는 행정부 차원의 책임이 크다. 중립을 지켜야 할 국가 권력 기관들을 일부 정권이 당파적 이익을 위해 정치적 사건에 잇따라 동원하고 개입시킨 일 때문이다.

2008년 촛불시위와 2010년 천안함 사태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 국가정보원이 심리전단을 통해 인터넷 댓글과 대통령선거에 개입하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세월호 참사 책임으로부터 정권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에서 국가정보원, 국군사이버사령부, 국군기무사, 경찰청 국가의 권력 기관이 댓글과 여론조작에 개입하는 일이 벌어졌다. 매크로 프로그램 등을 통한 댓글 조작으로 여론에 영향을 끼치려 한 ‘드루킹’ 사건은 온라인 여론조작 시도가 국가 권력기관 차원을 넘어 여야를 가리지 않고 광범하게 진행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온라인 여론 공간이 조작되어 현실 정치·사회적 사건에 영향을 끼쳤다는 실질적 피해도 크지만, 그 못지않게 시민들이 인터넷과 국가권력 기구에 대해 기본적 신뢰를 철회하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는 장기적으로 디지털 민주주의와 공권력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 기반을 허물어 사회 통합과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2. 한국 디지털 민주주의 현주소

 

소통의 걸림돌을 없애고 정치 주체들의 참여를 편리하게 만들어 민주주의를 발달시킬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디지털 민주주의의 기술적 도구들은 현재 시점에서 찬사보다 비판의 대상이다. 네이버, 다음 등 포털은 맹목적 공방의 공간으로 악화하고 있는 기사 댓글의 존폐를 고민하는 상황이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연예 기사 댓글을 폐지했고 여론 조작의 대상과 어뷰징 기사의 도구가 되고 있는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를 선거 기간 운영 중단하기로 했다. 네이버는 댓글 시스템을 개선해, 게시자의 글 작성 이력과 프로필 공개를 통해 글의 책임성을 높이려 시도 중이다. 온라인이 가져온 소통의 확대와 참여 활성화가 애초 기대와 달리 여론 공간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불러온다는 비판이 높아진 데 따른 대응이다.

이런 현상이 국내에 고유한 모습은 아니다. 트위터는 지난해 11월부터 모든 형태의 정치광고를 금지하고 있으며 구글도 맞춤형 정치광고를 중단하기로 했다. 소셜미디어에서 개인정보를 활용해 맞춤화한 정보와 광고를 제공하는 정밀 맞춤형(micro targeting) 광고가 여론조작의 수단이 된다는 현실이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의 사례를 통해 확인된 데 따른 대책이다.

인터넷 공간이 오염되자 국내에서는 법률적 조처를 통해 인터넷 여론 공간의 책임성을 높여 디지털 민주주의를 업그레이드하려 시도했다가 좌초한 사례들이 있다. 대표적인 게 인터넷실명제 입법이다. 악플의 폐해를 막기 위해 2007년 시행된 인터넷실명제는 2012년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사라졌다. 2010년 헌법재판소는 이른바 ‘미네르바 사건’에서 허위사실 유포죄에 관해 위헌결정을 내림으로써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 범위를 폭넓게 보장했다.

인터넷이 참여 촉진 매체이면서 익명과 폭넓은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는 공간이라는 속성은 민주주의의 딜레마를 만드는 구조적 특성이다. 공동체의 사안에 대해 시민들의 자발적인 여론 형성과 적극적인 참여는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필수적인 요소다. 이런 민주적 참여는 인터넷 환경에서 지원과 구현이 쉬워지지만, 그로 인해 디지털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빠르고 용이한 참여 확대가 직접민주주의의 이상적 실현을 꿈꾸게 하지만, 실제로는 숙의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포퓰리즘으로 귀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높다.3

인터넷에서 유권자들이 손쉽게 의견을 표현하고 논쟁적 사안에 대해 빠르게 반응하는 정치적 반응이 고대 그리스 시절 직접민주주의가 불러온 중우정치(포퓰리즘)의 폐해를 반복할 수 있다는 우려다. 윤평중은 고대 그리스의 직접 민주정치가 포퓰리즘으로 변질되는 문제를 넘어서기 위해 근대 이후 정당과 의회 기반의 대의민주주의가 출현했다며, 디지털 민주주의가 포퓰리즘으로 기운 결과 숙의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훼손한다고 주장한다.

3. 디지털 민주주의, 어떻게 고쳐야 할까

 

인터넷 환경의 참여민주주의가 숙의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광범한 공감과 동의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민주주의의 바람직한 형태에 대한 논의는 다양하다.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디지털 민주주의의 형태가 인터넷과 정보기술 등장 이전의 시기로 회귀할 수는 없다는 게 기본적 제약이다. 즉 대의민주주의가 직접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 등장했지만, 오늘날 인터넷 참여민주주의가 갈등 증폭과 극단화 등의 문제를 가져왔다고 해서 유권자들의 참여를 제한하고 대의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돌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디지털 환경의 유권자들이 자신의 손에 넣은 직접민주주의의 수단과 권한을 포기하거나 대의적 제도에 양도할 것이라 기대할 수 없다.

디지털 시대의 바람직한 민주주의는 디지털 도구와 인터넷이 존재하지 않던 과거 시기 이상적으로 여겨진 정치 제제로의 회귀일 수 없다. 새로운 디지털 환경과 그에 대한 시민들의 태도를 기본적 조건과 당연한 권리로 인정한 상태에서의 모색이어야 한다. 이는 디지털 환경의 민주주의를 규정하는 조건들과 그중에서 민주주의의 본질을 위협하고 있는 요소들을 밝혀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디지털 민주주의가 기대와 달리 다양한 부작용을 불러오고 있는 문제는 유권자 대중과 디지털 기술 때문에 생겨난 게 아니다. 디지털 민주주의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디지털 기술이 존재하지 않던 시기에 골격과 내용이 만들어진 민주주의 제도를 업그레이드하지 않고 작동시키는 데서 비롯한다.

이는 크게 두 가지 결함을 안고 있다. 하나는 민주주의에 영향을 끼치는 새로운 기술적 구조에 대한 사회적 통제력 상실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한 환경에 적합한 시민적 능력의 부재이다.

첫째 요인은 현재 디지털 민주주의에서 여론의 형성과 정치 참여가 정밀 맞춤형 정치광고, 매크로, 로봇에 의한 조작 등 기술을 이용한 어뷰징과 조작에 매우 취약한 구조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정보기관 및 정치 세력들의 온라인 여론 조작만이 아니라 2016년 미국 대선, 영국 브렉시트 등에서 페이크 뉴스와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이 여론을 왜곡한 현실이 말해준다. 의회나 행정부 등 합법적 권한을 위임받은 주체가 이러한 온라인 여론 공간의 조작과 왜곡을 통제하지 못한 채 기술업체와 어뷰징 세력에게 농락당하는 게 현실이다.

기술과 제도를 악용하는 세력은 항상 존재하지만 디지털 기술은 이러한 세력에 유난히 취약한 구조다. 디지털 기술은 기계와 알고리즘에 의해 작동하는 데 빠르고 강력하고 드러나지 않는 게 특징이다. 알고리즘은 공개되지 않고 특허로 보호되기 때문에 디지털 기술은 복잡성과 비가시성을 지닌다. 문제는 디지털 기술을 개발하고 플랫폼을 운영하는 세력이 이를 악용할 때 사회가 알아차리지 못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는 점이다. 시민사회와 합법적 권력이 통제하지 못하는 은밀하고 강력한 첨단 기술이 온라인 공간에서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여론을 조작한다는 사실이 2016년 미국 대선을 비롯해 국내 정치적 이벤트에 국가권력 기관이 개입한 사건의 기술적 배경이다.

둘째 요인은 유권자들이 온라인과 소셜미디어 시대의 여론 환경에 필수적인 인지적 역량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사회가 새로운 디지털 환경에 필요한 시민적, 사회적 역량을 제대로 정의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에 대해 가르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 결과 현재의 교육 제도는 새로운 디지털 환경과 시민 참여에 필요한 역량을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 조직적 여론조작의 출현, 은밀한 알고리즘의 영향 등 새로운 기술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위협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인지의 결여가 배경이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문화 지체의 한 측면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과 사회환경과 달리 사람의 인지적 성향과 태도는 변화와 적응이 느리거나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 ‘텔레그램 N번방’과 코로나19 대응이 알려준 것들

 

그렇다면 어떻게 디지털 민주주의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까? 디지털과 인터넷으로 인해 달라진 기술적 환경에 대한 이해와 분석이 우선이다. 사회와 개인에게 끼치는 장단기적 영향과 위험성을 파악할 때 비로소 새로운 기술 환경에서 민주적 가치를 구현할 방법과 거대한 권력에 대한 사회적 통제의 길을 찾을 수 있다. 이는 디지털 환경과 디지털 시민에게 적합하게 업그레이드된 민주주의 구조와 시민 역량을 정의할 수 있게 해준다. 현재의 민주주의 법제가 사회 변화에 따라서 계속 변해오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디지털 기술 이전의 사회 환경과 개인에 최적화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극단화하는 온라인 여론이 숙의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를 훼손한다는 비판보다 중요한 것은 기존의 공론장 이론과 표현 자유 개념 등이 새로운 기술과 사용자 환경에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인식이다. 디지털이 부재하던 시기로 역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달라진 기술 환경에 적합한 새로운 거버넌스와 시민적 역량을 모색해야 하는 게 과제로 된다.

살펴본 것처럼 현재의 디지털 사회에서 기존의 거버넌스와 법제는 첨단 기술을 활용한 조작과 개입에 기본적으로 취약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출발점이다. 텔레그램과 블록체인 거래를 통해 여성들을 성적으로 착취하고 학대한 ‘텔레그램 N번방’ 범죄는 은밀한 디지털 기술에 대해 사회가 파악하지도 못하고 통제력을 잃은 상황의 위험성을 잘 드러낸다. 디지털 민주주의 또한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디지털 민주주의의 구현을 위한 구체적 출발점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투명성과 정보 공개가 시작점이다.

코로나19가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이 된 전 세계 위기 상황에서 한국 보건당국은 모범적인 방역 정책으로 세계 시민들의 주목과 찬사를 받았다. 감염병 분야 최고의 전문성을 지닌 전문가 집단이 최대한의 투명성과 정보 공개를 통해 신뢰를 쌓고 시민들의 협조를 이끌어낸 덕분이다. 이러한 개방성과 투명성을 기반으로 한 시민들의 자발적 협력은 감염병 상황만이 아니라, 디지털 환경에서 민주주의의 구현을 위한 방향을 알려준다고 본다. 더 많은 정보와 선택권에 익숙하고 이를 요구하는 디지털 환경의 시민들에게는 투명성과 정보 공개가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1. Jonathan Watts, “World’s first internet president logs on”, Guardian, 2003.2.24. [본문으로]

  2. 유성운, “이회창이 분석한 노무현에게 패한 이유 3가지”, <중앙일보>, 2017.8.22. [본문으로]

  3. 윤평중, “직접민주주의의 부활인가, 포퓰리즘의 대두인가”, <월간중앙>, 2019.5.30. [본문으로]

저자 : 구본권

KISO저널 편집위원, 한겨레신문사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