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RCLUB의 자율규제 사례

최근 자율규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행정학사전은 자율규제정책을 「규제 대상이 되는 당사자 또는 집단이 그 활동에 대해 스스로 규제 기준을 설정하고 집행까지 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으로 정의하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들은 사이트에 게시되는 수많은 정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각 사이트에 특화된 자율규제 정책을 마련하여 시행중이다. 커뮤니티의 자율규제정책은 이용자의 암묵적 동의 혹은 합의에 의해 정착된 문화를 기반으로 한다. 국내 최대의 사진 커뮤니티인 SLRCLUB의 자율규제 사례를 통해 커뮤니티의 문화가 어떤 방식으로 자율규제정책에 반영되고 시행되는지 소개하고 커뮤니티 자율규제의 발전방향을 모색해 본다.

1. SLRCLUB 소개

SLRCLUB은 DSLR 카메라(Digital Single-lens Reflex Camera) 이용자들을 위한 인터넷 커뮤니티로서 2002년 설립되었다. 초기에는 카메라 및 관련기기 정보교환, 사진이나 리뷰 등의 유저콘텐츠 생산·공유, 이용자 간 친목도모를 목적으로 제한된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운영되었다. 이후 다양한 종류의 디지털카메라가 생산, 보급되면서 이용자의 범위가 확대되어 일반 커뮤니티, 포럼, 갤러리, 중고장터, 소모임 등의 종합적인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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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SLRCLUB의 자율규제정책

SLRCLUB 개설 초기에는 DSLR 카메라를 보유한 소수의 이용자를 대상으로 커뮤니티가 운영되었다. 즉, 이용자의 대부분이 비교적 높은 연령의 DSLR 카메라 이용자에 한정되었으므로 집단의 규모가 작고 생산된 콘텐츠의 내용이 제한적이어서 분란이나 권리침해의 소지가 많지 않았다. 이와 더불어 이용자들 스스로도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와 책임에 대한 이해가 높았기 때문에 이용자가 주체가 되어 자발적으로 콘텐츠를 검열하는 방식으로 자율규제가 이루어졌다. 서비스제공자의 개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디지털카메라가 대중화되면서 이용자의 범위가 확대됨에 따라 다양한 서비스가 추가 제공되었고, 게시판 내 분쟁조정, 부적합 콘텐츠 차단 등을 위해 널리 수용될 수 있는 명문화된 관리규정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또한 콤팩트카메라, 휴대폰카메라 등 휴대성이 강화된 카메라의 보급은 초상권, 저작권 등의 권리침해에 대응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따라 SLRCLUB은 이용약관을 정비하고 게시판 관리규정을 제정하여 공지함과 동시에 체계적인 게시물 관리시스템을 개발하여 발전시켜왔다.

가. 게시판 관리규정

SLRCLUB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 중 이용자들이 가장 높은 빈도로 이용하는 것은 ‘게시판 서비스’이다. 2013년 현재 SLRCLUB에서 이용 가능한 게시판은 소모임을 제외하더라도 50여개에 이른다. 이용자는 각 게시판 내에서 게시글, 답글, 댓글 등을 통해 의견을 교환하고 여론을 형성한다. 따라서 게시판 관리규정이 SLRCLUB 자율규제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게시판 관리규정은 먼저 각 게시판의 개설목적과 용도를 소개하며, 이에 따라 게시가 제한되는 내용을 설명한다. 관리규정은 1. 회원들의 공감대를 얻어 오랜 기간을 거쳐 자연스럽게 정착된 규칙을 포함하는데, 이러한 규칙은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행동양식이 특정 커뮤니티 내에서는 배척될 수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자율규제항목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SLRCLUB 이용자들은 개설 초기부터 게시판 내에서 높임말을 사용하였고 반말 사용을 자발적으로 규제해왔다. 따라서 관리규정에도 반말사용을 금지하는 항목이 포함되어있으며, 이와 같이 사이트 문화로서 정착된 규정은 운영자의 개입 없이도 대체로 자율적으로 지켜지는 편이다. 커뮤니티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신규 이용자가 반말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다른 회원들이 반말 사용을 지양해달라는 댓글 등을 작성하여 적응을 유도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반면, 2. 사업자가 커뮤니티의 바람직한 문화형성을 위해 의도적으로 제정하는 항목도 있다. 이러한 항목은 대개 법적으로는 구속력이 약하거나 없지만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수 있는 행동양식에 대한 것이 많다. 「욕설 및 비속어 사용 금지」 또는 「비하 어휘 사용금지」 항목 등이 바로 그것이다. 전자의 경우 욕설 사용으로 인한 분쟁 발생 및 명예훼손 등의 권리침해를 예방하기 위해, 후자는 ‘보슬아치’, ‘자슬아치’, ‘홍어’, ‘전라디언’, ‘고담대구’ 등의 어휘 사용을 금지하여 성별 혹은 지역 간 대립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한 규정이다. 정제된 언어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지향하는 SLRCLUB의 운영방침에 따라, 회원 간 분란을 야기하고 발전적인 의견교환을 원천봉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두 항목 모두 비교적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물론 범죄정보, 청소년유해정보 등 3. 현행법을 위반할 수 있는 내용이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규정에 맞지 않는 내용도 관리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SLRCLUB의 게시판 관리규정은 법과 제도에서 제한하고 있는 항목을 포함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일부 항목은 건전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데 방해되는 활동을 금지하기 위해 커뮤니티 이용자의 암묵적 동의를 얻어 또는 사업자의 서비스운영목적을 근거로 의도적으로 제정되었다는 것이다.

나. 게시물 관리요청 제도

게시물 관리규정이 근본적으로는 서비스의 원활한 제공을 위한 자율규제의 근거마련을 위해 제정된 것이라면, 이를 실제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시행하는 것이 ‘게시물 관리요청 제도’이다. 이용자는 게시물 관리규정을 참조하여 본인의 게시물을 등록하거나 수정, 삭제할 수 있다. 타인의 게시물에 대해서도 규정위반 여부를 판단하고 사후처리를 요청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일종의 신고제도인 ‘게시물 관리요청’ 이다. 예를 들어, 관리규정에 의해 게시가 제한된 내용이 게시판에 등록된 경우, 회원은 신고버튼을 이용해 해당 게시물에 대한 관리요청을 접수한다. 관리요청이 접수되면 사업자(운영팀)가 해당 내용을 직접 열람하여 조치여부를 결정한다. 즉, 게시물에 대한 이용자 개인의 1차적인 자율규제(작성자는 본인 게시물의 신고접수를 쪽지를 통해 자동으로 통보받으며 게시물 수정이나 삭제를 결정할 수 있다)와 사업자에 의한 2차적 자율규제(관리규정에 의한 판단 및 최종 조치)가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제도는 게시물삭제, 감점, 이용제한 등 타인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수반할 수 있으므로, 게시물 신고가 무분별하게 이루어질 경우 이용자가 서로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따라서 신고 남용과 부정이용 방지를 위한 보완책도 시행중이다. 즉, 부정신고를 방지하기 위하여 두 명 이상의 회원이 관리요청을 신청해야만 운영팀에 실제 신고가 접수되며, 신고사유가 부적절하거나 게시물이 규정위반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에는 정상열람조치 후 부정신고처리하게 된다. 부정신고가 5회 누적되면 게시물관리요청기능이 영구 차단되므로 이용자는 게시물에 대한 신고를 신중히 접수해야한다.

다. 자율규제를 위한 편의기능

앞서 소개한 게시판 관리규정의 제정 및 관리요청제도를 통한 자율규제는 서비스 제공자인 운영팀이 규제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정책이다. SLRCLUB은 이용자가 각자의 기준에 따라 컨텐츠를 자율적으로 선택하여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독창적인 자율정책 서비스 또한 제공하고 있다. 이용자는 갤러리에 게시된 사진작품 중 공공장소나 공용PC에서 열람하기 부적절하다고 판단하는 게시물에 레드리본을 달 수 있다. 이용자는 맞춤서비스 설정을 통해 레드리본 지정된 사진들의 갤러리 노출을 일괄 차단할 수 있다. 또한 홈페이지 첫 화면에 썸네일 형식으로 출력되는 ‘오늘의 사진’ 또한 일부 카테고리를 차단할 수 있는데, 이는 청소년 보호 등을 위해 자율적으로 콘텐츠를 제한할 수 있는 이용자 중심의 서비스이다. 자율규제가 「스스로 규제 기준을 설정하고 이에 근거하여 콘텐츠를 생산·공유하는 것」이라고 할 때, 관리규정에 의한 외부적인 규제 외에도 개인이 자율적으로 설정한 규제기준에 따라 서비스를 선택적으로 이용하는 것 또한 넓은 의미의 자율규제라 할 것이다.

3. 올바른 자율규제 문화 정착을 위한 노력

자율규제정책이 이용자의 자발적 참여와 사업자의 적절한 사후 조치를 통해 지속적으로 시행될 때 바람직한 커뮤니티 문화가 정착된다. 따라서 커뮤니티의 자율규제정책이 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1. 사업자가 커뮤니티 문화를 기반으로 체계적이고 명확하게 분류된 관리규정을 마련하고 2. 이용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며 3. 사후 조치가 일관된 기준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만일 4. 이용자의 의문이나 문제제기가 있다면 최대한 명확히 답변할 수 있어야 하며, 대화와 설득을 통해 자율규제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이끌어야 한다. 또한 5. 관련법 개정, 기술발전, 다수 이용자의 의견에 따라 개정의 여지가 있는 항목은 수정하고 보완하여 최신성을 유지하여야 할 것이다.

SLRCLUB은 이용자가 관리규정 등을 습득하고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공지, 도움말, 이용문의 답변 등을 통해 이용자와 활발히 소통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또한 미래창조과학부, 여성가족부,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 등의 관계기관과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자율규제의 최신 동향을 파악하고 실제 관리에 적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최근 SLRCLUB을 포함한 다수의 인터넷 커뮤니티가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의 게시물관리 표준규약 제정연구에 함께 참여하였다. 일관되고 현실적인 정책마련을 위한 이러한 노력이 자율규제 발전과 올바른 인터넷문화정립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인터넷의 영향력이 증대함에 따라 분쟁 및 권리침해 등에 대응하기 위한 사업자의 책임이 강조되고 있다. 청소년유해매체나 권리침해정보 등의 유통을 차단할 수단으로써 국가의 직접적 개입보다는 사업자에 의한 자율규제가 더욱 효율적이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자율규제가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하거나 이용자에 대한 국가의 제재수단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사업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공통된 관심사를 가진 인터넷 이용자가 함께 모여 콘텐츠를 생산·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서비스인 만큼, 외부적 제재에 따른 다양한 의견 교환의 위축이야말로 커뮤니티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용자의 동의와 참여를 얻지 못하는 규제는 이미 ‘자율’정책으로서 그 정당성을 잃을 것임이 자명하다. SLRCLUB이 자유와 책임의 균형을 적절히 유지하는 건전한 소통의 장을 위한 고민과 노력을 지속하는 이유다.

>> 참고문헌

이종수(2009). 『행정학사전』.서울: 도서출판 대영문화사.

저자 : 나수진

(주)인비전커뮤니티 SLRCLUB 운영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