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법학회 활동 소개
1. 꿈을 현실로 만든 학회
경험과 지식의 공유 가치를 주창하지만 학계에 종사하는 연구자와 현업에서 활동하는 실무자들이 격의 없이 소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의 적지 않은 학문 분야에서 학계와 현업은 유리되어 있다. 또 융합과 통섭이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서로 다른 학술적 경로를 밟아 온 학자들이 한 학회의 깃발 아래 모여 활동하기도 결코 용이하지 않다. 21세기가 열리자마자 어울리기는커녕 섞이기조차 어려울 것 같은 학계와 현업, 이질적인 학문들에 산포된 연구자들이 함께 모여 공동의 학술 목표를 추구한다고 했으니 어찌 꿈이라고 하지 않았겠는가?
그 꿈을 현실화 한 학회가 있다. 뿐만 아니라 학술 활동의 성과를 좋은 법조인 양성을 위해 환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법조계와 언론계 실무자, 법학과 언론학자들이 ‘한 우물’을 파고들었다는 사실은 더욱 놀랍다.
한국언론법학회(Korean Society for Media Law, Ethics and Policy Research)는 헌법·공법을 전공한 법학자와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언론학자, 현직 판사와 변호사, 현업에 종사하는 언론인들이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는 학회이다. 1999년 말부터 2년여의 준비 작업을 거쳐 2002년 2월 8일 창립되었다. 김진홍·원우현·이구현·정연구·윤영철·유일상·이구현 교수를 비롯한 여러 언론학자 및 성낙인·정정길·이재상·김철 교수 등 여러 명의 법학자 그리고 박형상·안상운·배금자 변호사 등 다수의 법조인들이 창립 멤버가 되었다.
학회는 정관을 통해 학술 활동의 범위를 크게 세 가지로 정했다. 첫째는 언론을 비롯한 커뮤니케이션 제 영역의 법적인 영역이고 두 번째는 윤리적 영역이며 세 번째는 커뮤니케이션 영역의 정책 부문이다.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학문과 제도가 질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법과 윤리가 수레의 양 바퀴처럼 조화를 이루어야 하고 법과 정책이 일관성과 체계성을 갖추어야 하며 일련의 정책이 윤리를 토대로 집행되어야 한다. 정당성과 효율성을 확보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한국언론법학회가 영문 학회 이름에 ‘Media Law, Ethics and Policy’를 포함시킨 것은 매우 적절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년간의 임기제인 회장은 원우현·김진홍·유일상 등 세 분의 언론학자가 1-3대 회장을 맡아 학회의 기틀을 다졌다. 2007년부터는 권영설 전 중앙대 법대 교수, 한위수 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정재황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각 2년간의 회장직을 맡아 학회 활동의 내실과 외연 확대를 이루었다. 현재 학회장은 서울중앙지법과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를 지낸 김재협 변호사가 맡고 있다. 회원 수는 200여명으로 많지 않으나 성실하고 적극적인 연구자들이 많아 학회의 정기 학술대회와 쟁점 세미나 장은 언제나 진지하고 뜨겁다.
2. 올해의 판결과 철우 언론법상
최근 몇 개 언론 매체와 단체에서 ‘올 해의 판결’을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언론법학회는 창립한 2002년부터 이미 ‘올 해의 판결’과 ‘올 해의 연구자’ 등 ‘철우 언론법상’ 수상자를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초대 회장을 지낸 원우현 학회 고문이 출연한 기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철우 언론법상은 언론법의 학문적·사회적 발전에 큰 힘을 보탠 빼어난 연구자와 판례를 선정하여 수상하고 있다. 학술상은 대부분의 학회들이 수여하고 있지만 판례에 대해 학회가 상을 수여하는 것은 매우 드물다. 권영성·허영·박용상·권영설·성낙인 등 역대 심사위원장들의 면면이 말해주듯 철우 언론법상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심사를 통해 신뢰성을 제고하면서 상의 권위를 높여왔다. 다음 표에서 보는 것처럼 철우 언론법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헌재 결정과 대법원의 판결들은 인터넷상의 표현 자유 확대, 명예훼손 소송에 있어서 공적인물·공적사안의 법리 적용, 방송광고사전심의제도의 위헌결정, 반론제도와 방송광고판매제도, 야간집회의 자유 등 다양한 영역의 쟁점을 다루고 있다.
1 | 2002 | 박용상(헌법재판소 사무처장) |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 등 위헌확인 (헌재 2002.06.27. 99헌마480) |
2 | 2003 | 박선영(카톨릭대 법대교수) | 남성우 KBS PD와 `한국논단’ 간 손해배상사건 (대법원 2002.12.24. 2000다14613) |
3 | 2004 | 김옥조(한림대 객원교수)· 김재협(수원지법 부장판사) |
방송법 제74조 위헌소원 (헌재 2003.12.18. 2002헌바49) |
4 | 2005 | 김재형(서울대 법대교수) | 서적발행·판매·반포 등 금지가처분 (대법원 2005.01.17. 2003마1477) |
5 | 2006 | 윤재윤(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함석천(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판사) |
반론보도심판청구 (대법원 2006.02.10. 2002다49040) |
6 | 2007 | 한위수(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 없음 |
7 | 2008 | 문재완(한국외국어대 법대교수) | 방송법 제32조 제2항 등 위헌확인 (헌재 2008.06.26. 2005헌마506) |
8 | 2009 | 이재진(한양대 신문방송학과교수) | 독점적 방송광고판매대행 헌법불합치 (헌법재판소 2008.11.27. 2006헌마352 ) 포털사이트 인격권침해 부분 인정 (대법원 2009.04.16. 2008다53812) |
9 | 2010 | 이승선(충남대 언론정보학과교수) | 야간옥외집회금지 헌법불합치 (헌재 2009.09.24. 2008헌가25) |
10 | 2011 | 이인호(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교수) |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 위헌확인 (헌재 2010.12.28. 헌바157, 2009헌바88(병합)) |
11 | 2012 | 장호순(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교수) | 공직선거법 제93조 제1항등 위헌확인 (헌재 2011.12.29. 2007헌마1001등 (병합)) |
3. ‘현실적 모의재판’과 언론법학 교육
한국언론법학회는 정기학술대회와 사회적 현안으로 부각된 쟁점들에 대한 기획 세미나를 수시로 개최해 왔다. 공법·헌법 전공자들과 언론학을 공부한 학자·현역 종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기획하고 협력한 시너지 효과는 대단히 컸다. 2002년 개최한 ‘한국 언론의 현황과 공인의 명예훼손’ 세미나는 공인과 명예훼손의 비교법적 고찰, 집단소송과 명예훼손, 온라인 명예훼손, 언론과 공익의 윤리적 문제와 명예훼손 등 언론보도와 공인의 명예훼손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룬 국내 최초의 학술 행사였다. 이후 언론법학회는 개인정보보호와 언론보도의 문제, 언론관계법 개정 논의의 쟁점과 과제, 뉴미디어 저널리즘의 법적 문제와 현황, 전문영역의 언론보도와 법원의 판결, 한국·중국·일본 3개국의 인터넷포털 문화와 비교법제, UCC의 언론법적 검토, 대통령 선거와 언론의 선거보도, 정보화시대의 성표현과 청소년보호 등을 주제로 학술 활동을 벌였다. 2010년 이후 최근 3년 간 언론법학회가 기획하고 개최한 주요 학술 세미나 주제는 다음 표에 정리한 것과 같다.
2010.10. | 지상파 재송신 분쟁의 진단과 해결전망 | 2011.10. | 망중립성 문제의 현안과 전망 |
2010.10. | 최근 인터넷·스마트폰 규제의 동향과 문제점 | 2012.6. | 방송사 지배구조와 방송편성권 |
2010.12. | 글로벌 콘텐츠 산업의 육성과 지상파방송의 역할 | 2012.8. | 방송통신정책의 법적 과제의 진단과 전망 |
2011.3. | 언론법의 최근 동향 분석 | 2012.9. | 인터넷언론의 변화와 선거보도 공정성 확보방안 |
2011.6. | 스마트미디어 시대의 방송광고제도의 현황과 전망 | 2012.12. |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법적 문제 |
2011.9. |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와 한계 | 2013.2. | 방송통신융합시대 개인정보보호법제의 운영실태와 법적 쟁점 |
한국언론법학회는 한국연구재단 ‘등재’ 학술지 <언론과 법>을 연간 2회에 걸쳐 발행하고 있다. 그동안 동 학술지에는 현역 판사·변호사·기자 등의 현업 실무자들과 법학·언론학 분야의 교수와 연구자들이 우수한 학술적 성과를 게재해 왔다. 언론법학회는 학술지 발행, 학술세미나 개최, 철우 언론법상 수여 등의 활동 외에 2011년부터 매년 ‘언론법 모의재판’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언론법 전문가를 꿈꾸는 로스쿨 재학생과 언론학·법학 전공 대학원생들의 언론법에 대한 대응 능력을 제고하기 위한 행사이다. 필자가 명예훼손법의 주요 개념인 ‘현실적 악의’를 차용하여 이 모의재판을 ‘현실적 모의재판’이라고 부르는 데는 그 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3인 1조가 된 참여자들은 3개의 모의 재판부에서 각각 원고와 피고로 역할을 번갈아가며 다투게 되는데 현실의 언론소송에서 다루어졌거나 다루어질 가능성이 높은 쟁점들이 경연대회의 문제로 출제된다. 두 번째는 모의 재판부 구성은 언론법학자 뿐만 아니라 전·현직 부장 판사들이 대거 참여하여 모의재판의 ‘현실성’을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언론법학회가 연구와 실무에서 얻은 경험들을 후진 양성에 적극적으로 환원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그림 > ‘2012 언론법 모의재판 경연대회’ 입상자들과 모의재판부 재판관들의 기념 촬영사진
최근 한국언론법학회는 헌법·공법학계와 언론학계의 중견학자들이 상호 이해와 교류를 바탕으로 활발한 학술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는 1970·80년대 한국의 학계에 ‘언론법 연구’의 단초를 마련한 제1세대 언론법학자들에게 교육받은 제2세대 연구자들이 언론법이라는 학문의 전통을 성공적으로 계승하여 발전시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언론법학회를 매개로 하여 법학자들의 상당수가 언론관련 학회의 회원으로 가입하고 언론학회 회원들이 법학관련 학회의 회원으로 진입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단순한 인적 교류를 넘어선, 법학과 언론학, 법조와 언론계의 언론법 연구를 위한 ‘화학적 결합’의 중심 역할을 앞으로도 한국언론법학회가 수행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