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으로 규정된 게임 중독

질병 기준은 절대적일까? 예를 들어 인류의 역사에서 오랜 기간 ‘한센병’은 천형(天刑)이었다. 하늘이 내린 벌이며, 신의 뜻을 어겨 생긴 질병이라는 의미였다. 이 때문에 많은 한센병 환자들은 ‘문둥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적인 격리를 당했고 범죄자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이는 동서양이 다르지 않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문둥이는 섬이나 격리시설에 살게 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들에게 불임시술을 받게 하거나 강제 노역을 시킨 게 불과 100년도 채 되지 않았다.

한센병 뿐만이 아니다. 같은 감염병 가운데에는 여전히 사회적 차별을 받는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가 있으며,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인류의 오랜 역사와 함께 치료보다는 차별과 격리를 받아 온 대표적인 질환이다.

점차 의학이 발달하면서 감염병 등 여러 질병이 개인의 잘못만이 아니라는 점이 널리 퍼져가고 있음에도 여전한 차별한 남아 있지만 누명을 벗고 있기도 하고, 동시에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질병이 생겨나기도 한다.

최근 ‘게임 중독’이라는 새로운 질병 분류가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해 생겨났다. 지난 5월 세계보건기구 총회에서 게임 중독 또는 ‘게임 사용 장애’는 질병으로 분류됐고, 이 안이 포함된 제 11차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이 의결됐다. 다만 질병 분류 기준은 앞으로 3년 뒤인 2022년부터 적용된다.

이런 세계보건기구의 결정에 대해 국내외적으로 찬반 논란이 뜨겁다. 게임 산업을 육성하고자 하는 국내 게임 산업계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 게임 중독으로 인해 게임 전체를 ‘악’으로 몰아간다며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게임 중독에 빠진 자녀를 둔 부모들이나 이를 치료하는 의료계에서는 다른 중독과 마찬가지로 게임 중독 역시 꼭 치료해야 할 대상으로 꼽는다. 이 논쟁은 정부 부처로도 확산돼 게임 중독을 치료하는 쪽인 보건복지부와 게임 산업을 육성하고자 하는 문화 부처가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실제 질병으로 분류될 때까지 2년 여 남은 기간 동안 게임 중독의 정의를 확실하게 해야 하며, 이에 빠진 이들의 치료나 게임 중독 자체의 예방 등에 대해 현재의 찬반 논쟁을 통해 해결책을 찾아보고자 한다.

■ 게임 한다고 다 중독은 아니야

중독은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는 장애다. 게임 중독을 의학적 명칭으로 ‘게임 사용 장애’로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알코올 중독 또는 알코올 사용 장애는 술을 많이 마셔 직장 등에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지만, 계속해서 술을 마시고 싶은 욕구가 있으며 이를 참지 못할 때를 말한다. 술을 마시기는 하지만 자신이 감당할 정도로 마시며, 음주운전이나 폭력 등과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일상생활에서도 지장이 없다면 이는 중독이라는 개념보다는 오히려 삶의 활력소로 부를 수 있다. 이처럼 게임이나 알코올 등 흔히들 위해라고 부르는 것들은 건강에서 질병으로 이어지는 연속성처럼, 건전한 취미에서 중독으로 이어지는 한 선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연속으로 이어지는 선에서 어느 지점부터 게임 중독이라는 명칭을 달 것이라는 문제가 남아 있다. 치열한 논란을 예고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과거 게임은 주로 전자오락실이나 PC방 등에서 돈을 내고 해야 했기에 시간 및 장소적 제약이나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중간에 중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스마트폰의 사용과 광범위한 인터넷 덕분에 게임을 어디서나 즐길 수 있다. 또 과거의 전자오락은 어느 선에서는 끝이라는 지점이 있었으나, PC방이나 스마트폰을 이용한 최근의 인터넷 게임은 끝이 없이 계속 순환될 수 있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정리하자면 과거보다는 훨씬 게임 중독이 나타날 수 있는 여건이 좋아졌다고 할 수 있다.

게임 중독 증상은 이전의 다른 중독 질환과 마찬가지로 학업이나 회사 일 등 일상생활을 망칠 정도의 과도한 게임 이용, 중단하게 되면 나타나는 금단 증상, 하면 할수록 더 심해지는 중독 강화 증상 등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예들 들어 밤 새워 게임을 하느라 잠을 자지 못해 다음 날 일상을 망치거나 계획했던 것보다 더 오래 게임을 하는 과도한 게임 증상이 나타난다. 또 게임을 하지 않으면 불안하거나 초조, 무기력을 느끼게 되며, 게임을 하지 않는 시간에 게임 장면을 떠올리는 등과 같은 금단 증상도 나타난다. 중독 강화 증상은 게임에 대한 내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더 자주 또는 오래 게임을 하게 되며, 게임하는 시간을 줄이거나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계속 실패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는 게임 때문에 눈이나 머리가 충혈되고 아프지만 계속 게임을 하는 경우도 있고, 게임을 하기 위해 돈을 훔치거나 부모 등에게 거짓말을 하는 증상도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증상과는 달리 취미 활동으로 게임을 1~2시간가량 즐기고, 스스로 이를 중단할 수 있으며, 평소 학업이나 일 등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 중독으로는 보지 않는다는 의미다.

■ 게임에 중독되면 뇌의 작동에도 부정적인 영향

게임 중독도 다른 중독과 마찬가지로 겉으로 볼 수 있는 증상과 우리 몸 특히 뇌의 기능적인 변화가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임에 빠져 학교나 회사를 가지 않는 날이 많아지고, 대인 관계가 어려워지며, 밤새 게임을 하다보면 밤과 낮이 바뀌는 등 일상이 망가지는 모습이 나타난다. 심지어 직장인의 경우 퇴사를 하거나 학생은 휴학이나 제적을 당하기도 한다. 가족과의 갈등을 일으켜 폭력이나 폭언 등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경우도 많다.

세계보건기구가 제시한 게임 중독 기준을 보면 ‘게임이 일상생활보다 우선하기 때문에 가족, 사회, 교육 등 중요한 개인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는데도 게임을 중단할 수 없는 상태가 최소 12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다. 하지만 이처럼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으며, 청소년의 경우 대략 20명 가운데 1명 가량만 이에 해당되고 성인은 이보다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별로는 남성이 여성보다 다소 많다.

이와 같은 게임 중독이 계속 되면 결국 뇌의 기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나온 연구 결과를 보면, 하루에 2시간 30분 이상 매일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경우 마치 코카인에 중독된 사람들과 비슷한 뇌신경학적 기전을 갖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우리 몸의 정상적인 뇌신경전달물질 분비 체계가 망가질 수 있으며, 이는 이를 교정할 수 있는 약물 치료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담배나 알코올, 마약 등과 같은 물질에 중독된 것과 다름없는 것이 바로 게임 중독이라는 뜻도 된다.

■ “건전한 게임 이용자 많고, 게임 산업 크게 위축될 것”

게임 중독에 빠진 이들은 전체 게임 이용자 가운데 소수에 불과하며 세계적인 게임 산업 선진국인 우리나라의 게임 산업이 위축될 것이라는 것이 게임 중독의 질병화에 반대하는 논리의 골자다. 이런 논리의 연장선으로 실제 게임 산업을 담당하는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지난 5월 세계보건기구의 결정 뒤 보건복지부가 주도하는 회의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게임 업체와 문체부에서는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하는 안이 본격 시행되면 2023년부터 3년 동안 11조 원의 경제적 손실을 볼 것이라는 추정도 나온다. 이처럼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데에 반대하는 쪽에 손을 든 곳은 한국게임학회, 차세대융합콘텐츠산업협회, 문화연대,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등 거의 30개 단체에 육박하고 있다. 이들은 ‘셧다운제’ 등 게임을 지속적으로 할 수 없도록 규제 등을 두면 게임 중독으로 진행되는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들 단체들은 또 게임을 하면서 멀쩡하게 업무나 학업 등을 잘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라고 강변한다. 더 나아가서는 영어나 역사를 배우게 하는 등 게임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도 크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근본적으로는 게임을 하는 개개인의 선택을 보건당국이 질병이라는 규정을 통해 관리하겠다는 방침에 대해서 반대하는 주장도 있다. 담배를 피워 폐암, 심장병 등 각종 질병에 걸릴 위험이 높아지더라도 이는 개개인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면 게임 산업 육성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이는 담배 산업의 위축을 막기 위해 금연 정책을 반대하는 것과 다름없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결국 산업을 육성하고 세금을 더 걷기 위해 국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포기하도록 종용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담배 소비를 줄이기 위해 담뱃세를 올리거나 담뱃갑에 흡연에 따른 피해를 담은 그림을 넣자고 했을 때, 담배 사업을 육성해 담뱃세를 더 걷어야 하는 정부 부처가 이를 반대하고 나서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흡연자 모두가 폐암이나 심장병 등 각종 흡연 관련 질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폐암 등에 걸리는 이들은 결국 흡연으로 인한 막대한 진료비를 써야 하고 수명이나 건강하게 살아가는 기간인 ‘건강 수명’도 짧아져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지는 데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간과했다는 비판인 셈이다. 게다가 흡연의 경우 간접흡연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문제가 있는 만큼, 게임 중독에 걸린 이들 역시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주는 피해가 만만치 않은데 이 역시 간과할 수 없는 큰 고통이라는 것이다.

■ 담뱃세처럼 게임중독세도 나올까?

어떤 질병에 대한 예방이나 관리에는 비용이 들어간다. 이 비용을 해당 제조업체 또는 이용하는 이들이 내게 하는 것이 현재의 대체적인 정책들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담뱃세이다. 여기에 술에도 건강증진기금을 내게 하자거나, 비만을 일으키는 각종 식품을 만드는 업체에도 ‘비만세’를 매겨야 한다는 주장도 여러 차례 나온 바 있다.

게임도 마찬가지이다. 국회에서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과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에 게임사의 매출 가운데 일부를 게임 중독 치료를 위한 기금으로 조성하기 위해 징수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최근 들어서도 지난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게임 중독에 빠진 이들을 치료하기 위한 돈을 게임업체들로부터 징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세금 부과에 대해 반대하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우선 담뱃세에 포함된 건강증진기금처럼 부담시키기에는 담배와 게임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주장이다. 담배는 피우게 되면 니코틴 등 화학물질을 흡수하게 돼 중독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근거가 있지만, 게임은 이와는 달리 게임 중독에 빠지는 이들의 가정환경이나 직업적 상태 등 다른 정신적인 상태나 질환 등 여러 가지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물론 담배 중독에 대해서 담배업체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다른 인터넷 중독과의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유튜브나 인터넷 방송 등 다른 데에도 빠져 있으면서 게임 중독과 마찬가지의 피해가 나타날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게임에만 세금을 매기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중과세의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게임업체는 이미 부가가치세와 법인세 등을 납부하고 있는데, 다른 회사들과 달리 별도로 ‘게임중독세’를 내는 것은 이중과세라는 지적이다.

정리하자면 게임중독세는 자칫 헌법이나 법률 등에서 규정하고 있는 ‘평등의 원칙’ 등을 위배할 수 있다는 논리인데, 법조인들 가운데에서도 이에 동의하는 이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

■ 2년 남짓 남은 기간 동안 섬세한 해결책 나와야

어찌 됐든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한 세계보건기구의 결정으로 게임 중독에 대한 사회적인 논의를 폭발시킨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한 개인의 문제 또는 한 가정의 문제로 치부됐던 게임 중독 문제가 이제 사회적인 문제로 올라 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단순한 보건학적 분류나 법률적인 규정을 넘어서 이런 논의가 게임 중독 치료나 게임 사용에 있어 실질적인 도움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게임 산업을 위축시킨다는 이유로 정부 부처가 논의 테이블에서 빠지거나, 우선 정부의 재원 마련의 일환으로 세금부터 매기자는 형태로 진행돼서는 곤란하다는 의미다. 어떻게 하면 게임이 이용자의 스트레스 해소 등 건전한 취미 활동으로 이용되면서 이를 제조하는 산업의 발전에는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서로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한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 논의를 진행할 것이므로 해외 사례도 적극적으로 찾아 우리나라에 적합한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2년여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세계적으로 게임 산업의 선두주자에 들어가는 우리나라는 게임을 다른 나라에 수출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게임 중독에 빠지지 않으면서 게임을 잘 이용하는 방법을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저자 : 김양중

한겨레신문 의료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