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부품 : 인간 노동자

AI는 이제 누구에게나 일상이 되었다. 자율주행 자동차로 거리를 달리고, 온라인 마켓의 추천 제품을 사고, 챗봇에게 오늘의 운세를 묻고, 터치 몇 번으로 그럴싸한 그림을 그리며 AI 경험을 매일 늘려가고 있다. AI 기술이나 포스트휴먼에 대한 개념을 달리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느새 AI 시대에 들어와 있다.

2024년 영어로 발간되어 2025년 한국에 소개된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Feeding the Machine)>는 AI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 한가운데 선 인간에 대한 책이다. 부제에서 밝히듯 인공지능 신화에 가려진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세계에 흩어진 데이터 주석 작업자, 머신러닝 엔지니어, 물류 노동자, 투자자, AI 윤리학자, 데이터센터 기술자들의 이야기를 엮어내며 글로벌 자본주의 풍경을 비판적으로 고발한다. 그리고 AI 기술을 향유하는 소비자를 포함한 모두가 이 네트워크에 얽혀있기에 무관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책을 쓴 마크 그레이엄, 제임스 멀둔, 캘럼 캔트 세 사람은 옥스퍼드대학교 인터넷 연구소에서 기술과 정치학의 교차점을 연구하고 있다. 이들은 케냐 나이로비의 디지털 아웃소싱 노동 연구에서 시작된 페어워크 프로젝트(Fairwork for AI)1를 바탕으로 AI 산업의 노동 현실을 민족지적 서술로 그려냈다. 책은 크게 8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0년 이상의 기록을 통해 디지털 노동자 일곱 명의 현장을 조명하고, AI 시대 노동 전략을 제시한다.

전 지구를 가로지르는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책이 전하는 바는 명료하다. ‘AI는 새로운 식민주의’라는 것이다. AI 시스템의 본질은 노동자를 추출해 이윤으로 전환하는 추출기계(extraction machine)이며, 기존의 편견과 차별을 재생산하는 도구로서 권력을 소수에게 집중시켜 과거 식민주의적 질서를 재구성하게 될 것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묻는다. ‘가만히 있을 것인가? 투쟁할 것인가?’

1. AI, 인간 노동을 추출하다

# 우간다 굴루의 데이터 주석 작업자 애니타.2 오전 5시에 일어나 두 시간을 걸어 사무실에 간다. 그는 자율주행차량 회사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데 운전 영상을 보며 신호등, 정지 표지판, 사람 얼굴 등의 요소를 시간 단위로 식별하는 일을 맡고 있다. 모니터에 눈을 고정하고 클릭, 클릭, 클릭…자신이 만든 결과물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알지 못하지만 첨단 산업에 일조하고 있다는 마음으로 고된 반복 노동을 견딘다. 이 계약을 이어가지 못한다면 다시 거리로 나가 채소와 주스를 팔아야 하니 노동환경에 불평할 수 없다.

# 영국 코번트리의 물류 노동자 알렉스.3 아마존 물류 창고에서 일하는 그는 무작위로 상품을 점검해 AI 시스템이 상품을 제대로 인식하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한다. 시스템의 지시에 따라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고 하루 종일 같은 작업을 반복한다.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앉을 수 없다. 그의 행동은 아마존의 최첨단 프로그램에 의해 실시간으로 추적된다. 속도는 시스템이 정한다.

AI는 종종 “물리적 실체 없이 공기 중을 부유하는 순수한 정보의 집합체”4로 상상된다. AI라는 신비로운 최첨단의 문명을 앞에 두고 단조롭고 강박적인 후진적 노동 현장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저자는 19세기 ‘매커니컬 터크’ 사기극에 이를 비유한다. 나무인형으로 자동으로 체스를 둘 수 있다고 소개됐지만 인간 체스 마스터가 숨어있었던 것처럼, AI 안에는 시간당 1.16달러짜리 인간 노동자의 지난한 시간이 녹아있다. 인간은 “증기기관에 석탄을 집어넣던 화부들처럼 추출 기계에 데이터를 공급”5하고, 기업은 “데이터세트를 독점적으로 통제하고 집단지성을 사유화하여 이익을 창출한다.”6

2. AI, 식민주의를 재현하다

저자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역사적 맥락 안에 AI와 노동을 배치시킨다. 엔클로저 운동에서부터 역사를 거슬러 내려오며 캘리포니아 집단 농장, 유럽 식민주의의 자리에 오늘날 빅테크 기업을 놓는다. 이를 통해 AI 기술은 새롭지만 AI 기업이 노동을 사용하는 방식은 전혀 새롭지 않다는 점을 선명히 드러낸다. 저자는 빅테크 기업들이 자본주의의 오랜 유산인 ‘약탈’과 ‘착취’의 방식으로 AI 시스템을 작동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책은 빅테크 기업들이 국경을 넘나드는 아웃소싱과 임금 경쟁, 생체인식 스캐너와 같은 첨단 감시 체제, 엄격한 규율, 단기계약 등 유무형의 방식으로 노동을 통제하며 남반구 저개발 국가 노동자들을 구조적 불평등 속으로 밀어 넣고 있음을 고발한다.

더 나아가, 저자는 빅테크 기업들이 AI를 통해 지식 세계까지 재편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AI는 특정 지역과 문화적 배경에 따라 설계되고 훈련되기 때문에 “백인성”을 띄고 있다는 것이다. 그 예로 AI 시스템이 주택담보 대출심사에서 유색인종의 점수를 낮게 주거나, 편부모 가정의 복지 부정 수급 가능성을 높게 매기는 등의 사례를 언급한다.

또한 빅테크 기업들은 AI 인프라를 통해 “지식의 식민지성”을 구현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라틴아메리카의 탈식민주의 학자 아니발 키하노의 표현을 빌려와, AI 데이터 안에서 누군가의 목소리는 과도하게 증폭되고 누군가는 배제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AI 온라인 플랫폼의 사용자 구성, 데이터세트의 생성과 선별, 모델 훈련방식, AI 정책 등 전 과정에서 특정한 헤게모니의 영향을 받고 있고 특히 백인 남성 미국 중심의 글로벌 기술 엘리트들이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7고 말한다. 또한 AI 상업화 경쟁이 본격적으로 가속화되면서 인류의 이익을 위한 AI라는 이상주의적 접근은 설자리를 잃었다고 진단한다.

그렇다면 AI가 제1세계 백인 남성 중심의 시대로 시계를 되돌려 놓는다는 경고일까. 기술 자본을 소유한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 인간은 AI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것인가.

저자는 우려에 대한 답변으로 저항적 실천과 연결을 내놓는다.

3. 기계를 멈춰 세워라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 노동은 극단적인 불투명성을 특징으로 한다. 책에 따르면, 데이터 공급업체 등은 비공개 계약에 따라 업무 내용을 철저히 숨기기 때문에 노동자 자신조차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는지, 자신의 작업이 비즈니스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투쟁의 대상조차 모호하다. 기계 부속품처럼 고립되어 작동하는 노동환경이 지속되며 노동자들은 현 상태를 당연하게 느끼기에 이른다.

책의 외침은 단호하다. 노동자들을 향해 “그 누구도 대신 싸워주지 않는다.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고 투쟁을 촉구한다.8 “이 착취적 기계 안에서 노동자들이 집단적 힘을 구축하기 위한 첫걸음은 바로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9이라고 구체적으로 제안한다. 나아가 “기업이 전 지구적 노동 시장을 이용해 노동자들을 압박하는 것처럼 노동자들 또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하라”10고 말한다.

저자가 전 세계에 흩어진 다양한 디지털 노동자들을 소개하는 것도 초국적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작업으로 보인다. 런던의 머신러닝 엔지니어 리, 아이슬란드의 데이터센터 기술자 에이나르,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 투자자 타일러, 아일랜드의 예술가 로라, 나이로비의 노조 활동가 폴… 이들의 위치성과 정체성은 제각기 다르지만 결국은 모두가 같은 착취 구조 안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미디어 캠페인, 청원, 파업, 공급망을 넘나드는 조직화 등 노동자들의 다양한 실천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4. 거대한 흐름. 바꿀 수 있을까?

이 책은 AI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결국 자본주의와 불평등 노동을 말한다. 자본 투자와 이윤 창출이 무한 반복되는 리듬에 AI가 촉발하는 밀리초의 템포가 더해지면서 강박적이고 불안정한 노동환경이 만들어진다는 점을 현장연구로 생생하게 담았다.

하지만 AI를 걷어낸 후 남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고발은 다소 진부하게 느껴진다. 1944년 칼 폴라니가 <거대한 변환>에서 ‘악마의 맷돌’(Satanic Mills)로 묘사했던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비인간성에 대한 비판이 오늘까지도 유효하기 때문인 걸까. 중세의 귀족, 산업사회의 공장 자본가, 오늘날의 빅테크 기업을 선형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오히려 역사의 거대한 흐름 앞에 무력함을 느끼게 한다.

노동자들의 연대와 연결의 가능성을 과도하게 낙관하고 있는 듯한 부분도 아쉽다. 테크노동자연합(Tech Workers Coalition, TWC)과 같이 계급적 연대를 도모하는 사례는 소개하고 있지만 노동자의 성별, 인종, 민족, 장애, 종교 등의 교차성은 비교적 드러나지 않는다. 우간다의 흑인 여성과 영국의 백인 남성의 노동 경험과 저항 전략을 상상했을 때, AI 노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들을 단일한 범주로 묶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디지털 노동의 특성을 고려할 때 노동자들의 생존전략은 전통적인 노동운동의 범주 밖에서 모색될 가능성도 있다. 호주의 플랫폼 배달 노동자들의 경우 스스로 직원이 아닌 ‘기업가적 자아’로 정체성을 내면화하게 되면서 개별적으로 수익을 높이거나 단기적으로 조건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한다. 이때 집단적 정체성 표현은 자연히 약화된다.11 기업에 저항할 에너지를 자기계발에 투입해 생계 유지와 안정에 집중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이는 저자가 기대하는 노동 전략은 아니다.

책은 몇 가지 질문과 아쉬움은 남기지만, AI가 만들어 내는 소란 속에서 잠시 멈춰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준다.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 먹히는 인간은 누구인가. 저 멀리 존재하는 이름 모를 안타까운 누군가일까. 저자는 직접 호소한다. “당신 역시 추출기계가 착취 가능한 자원으로 간주되는 전 세계 노동자, 소비자, 시민 집단에 속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의 문제는 곧 우리의 문제다.”12 AI 네트워크에 모두가 연루되어 있다는 감각을 일깨워준다.

  1. 페어워크 프로젝트(Fairwork for AI)는 옥스퍼드대학교 인터넷연구소와 베를린 사회과학연구센터(WZB)를 중심으로, 공정 노동을 연구하는 국제적 협력 프로젝트다. 이들은 시민사회 캠페인의 일환으로 공정 노동을 위한 열 가지 원칙을 마련하고, 이를 기준으로 기업에 점수를 매기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까지 39개국에서 618개 기업이 평가 대상이 되었으며, 책의 저자들 역시 이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https://fair.work/ [본문으로]
  2. 이 책, 1장 ‘기계가 우리를 닮아갈수록, 우리는 기계가 되어간다 –우간다 굴루 데이터 주석 작업자’요약. [본문으로]
  3. 이 책, 5장 ‘기계를 멈춰 세워라 –영국 코번트리, 물류노동자’ 요약. [본문으로]
  4. 이 책, 22쪽 [본문으로]
  5. 이 책, 196쪽 [본문으로]
  6. 이 책, 24쪽 [본문으로]
  7. 이 책, 101쪽 [본문으로]
  8. 이 책, 204쪽 [본문으로]
  9. 이 책, 304쪽 [본문으로]
  10. 이 책, 285쪽 [본문으로]
  11. Tom Barratt, Caleb Goods, Alex Veen(2020). ‘I’m my own boss…’:Active intermediation and ‘entrepreneurial’ worker agency in the Australian gig-economy. EPA: Economy and Space Vol. 52(8) . 1655-1656쪽. [본문으로]
  12. 이 책, 333쪽 [본문으로]
저자 : 유은재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 기획팀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