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입법 과잉, 무엇이 문제인가?

1. 많아지는 정보통신법률안과 제·개정 법률

지난 1월부터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이하 ‘KISO’) 법제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위원회는 정보통신(ICT)과 관련한 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되면 이론적 관점에서 검토하여 이를 부처를 거쳐 국회에 제시해서 법률안 심의에 참고하도록 하는 일을 한다. 그렇다보니 새로 제출된 정보통신 관련 법률안을 평소보다 좀 더 빠르게, 좀 더 자세히 볼 일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최근 국회에 제출되는 정보통신법률안이 많아졌고 국회를 통과하여 시행되는 법률도 많아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지난 21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위원회에 제출된 총 1,039개의 법률안 중 107개를 원안 가결, 68개를 수정 가결, 4개를 폐기, 201개를 대안반영폐기, 2개를 철회, 657개를 임기 만료 폐기하였다고 한다.1 21대 국회 기준으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소관하는 법률 수가 97개였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법률안이 발의되고 제·개정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국회에 제출되는 법률안이 많아지고 심의를 거쳐 그중 필요한 법률안이 국회에서 의결되어 공포·시행되는 것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하고 의아해하시는 독자가 계실 것이다. 그렇다! 원칙적으로 모든 법률안은 특정 사회문제를 발견하고 이것이 시민사회와 시장에서 적절히 해결되지 못할 때 국가가 나서서 해결하기 위한 처방을 담고 있기 때문에, 국회에 제출되는 법률안이 많아지고 심의를 거쳐 그중 필요한 법률안이 국회에서 의결되어 공포·시행되는 것은 바람직하며 권장되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그와 같이 많은 법률이 사회문제를 적절히 해결하고 있다면 정보통신 영역에서 국가 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가 좀 더 적극적으로 증진되고 시민의 권리가 좀 더 잘 보장되어 궁극적으로 정보통신영역에서 시민의 삶이 좀 더 편안해져야 할 텐데 과연 그런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 칼럼을 쓰기 위해 제가 선행연구를 찾아 읽고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렇게 법률안과 제·개정 법률이 많아진 것이 역사적으로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오래전부터 문제였으며, 분야로는 정보통신법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국회입법조사처의 전진영과 김현아가 정리한 제13대 국회부터 제21대 국회까지 제안 법률안 수와 그 추이를 보면 이를 금세 알 수 있다.

<표 1> 제13대부터 제21대 국회까지 제안 법률안 수와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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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안에 따르면 이와 같은 현상을 이르는 ‘입법 홍수’라는 용어는 1970년대 초부터 언론에서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그는 16대 국회 이전까지는 행정부가 입법을 주도하였고 입법 홍수라는 용어도 행정부의 지나치게 많은 법률안 제출을 비판하는 것이었는데, 2004년 17대 국회부터는 국회의원이 입법을 주도하고 지나치게 많은 법률안 제출과 법률 제·개정을 비판하는 것으로 변화가 있었다고 분석하고 있다.2 21대 국회 현황을 보면 제안 법률안 총 25,858개 중 의원안이 23,655개로 91.5%, 정부안이 831개로 3.2%, 위원회안이 1,372개로 5.3%3로 현재의 입법 홍수는 입법부의 지나치게 많은 법률안 제출과 법률 제·개정을 비판하는 것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리고 21대 국회 제안법률안이 총 25,858개인데 이 중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1,039개의 법률안이 제출되었다고 하니 상임위원회가 총 17개임을 고려하면, 정보통신 관련법만 유독 많이 제출되고 제·개정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는 입법 홍수 현상이 특정 분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현상임을 시사한다.

2. 법률안과 제·개정 법률이 많아지는 이유

이와 같이 법률안이 많아지는 이유는 무엇보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시민사회와 시장이 이를 자율적으로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이미, 19세기와 20세기 초에 노동문제, 빈곤과 질병, 불공정거래 등 여러 가지 사회 문제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 국가를 소극적 질서유지 국가에서 적극적 급부 국가로 한차례 크게 개편한 바 있다.4 그리고 우리나라 정치 체제의 역사와 특징에 주목하여 생각하면 그간 권위주의 행정부에 억눌려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하던 국회가 민주화 이후 자율성을 가지고 활발하게 입법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선해할 수도 있겠다.5 또한 이러한 국회 정상화로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에 대한 지원이 강화된 것, 권한에 비해 책임을 다하지 않는 정치를 개혁하려는 시민단체가 국회의원 의정 활동을 평가하여 베스트 의원을 언론에 공포하거나 공천 배제할 대상을 선정하여 각 당에 제출하고 이것을 공천에 반영하지 않으면 명단을 공개하고 낙선 운동을 하는 것, 이익단체가 주도하여 의정평가회를 하는 등 시민사회와 시장의 압박이 효과를 발휘한 결과라고 분석할 수 있다.6

3. 문제점

이와 같이 많아지는 법률안과 제·개정 법률은 어떤 문제를 야기할까? 우선 국회의 심의·의결의 질을 떨어뜨린다. 누구든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몫이 있다. 그런데 그것을 넘으면 과부하가 걸려 그 일을 대강하거나 그중 일부만 열심히 하고 나머지는 팽개치는 경향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국회에서 심의를 기다리는 산적한 법률안은 정말 꼼꼼하게 심의·의결해야 할 중요한 안건에 집중하지 못하게 방해하여 국회의 심의·의결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란 우려는 당연한 것이다. 둘째, 그 결과 국회가 의결한 법률 중 일부는 당해 입법이 해결할 사회문제를 둘러싼 시민사회와 시장 상황과 입법이 작동해 일어날 변화를 적절히 예측하지 못해 ‘입법 실패(legislation failure)’로 이어진다.

정보통신법에서는 ‘단통법’으로 불리던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국회는 2014년 이동통신사에서 가입자에게 지급하는 이동통신단말장치(이하 ‘단말기’) 보조금이 시장 질서를 교란시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통법을 제정하여 그 해 10월부터 시행하였다. 그러나 법 제정 당시부터 가입자에게 차별적으로 지급하는 보조금 지급을 규제하여 ‘호갱을 방지’하겠다는 의도는 좋지만 국내 이동통신 시장과 단말기 시장이 경쟁이 아닌 과점시장인 것을 고려하면 그것은 전체 소비자의 복지를 저해하고 사업자에게만 이득을 주게 될 것이라는 우려7대로 이 법은 제정 이후 끊임없는 논란 끝에 ‘호갱을 양산하는 법’이란 오명을 쓰고 10여 년 만에 폐지되었다.

셋째, 국회의 심의·의결의 질 하락은 당해 법률 내용에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법제를 혼란스럽게 만들어 법 집행을 어지럽히기도 한다. 정보통신법에서는 「정보통신 진흥 및 융합 활성화 등에 관한 특별법(이하 ‘ICT특별법’)」이 대표적인 예이다. 2013년 국회는 정보통신 행정을 개편하기 위해 「정부조직법」을 개정하여 정보통신부를 폐지하고 미래창조과학부로 통합하였고, ICT특별법을 제정하여 당시 정보통신 거버넌스의 중심이었던 「국가정보화기본법」의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를 폐지하고 정보통신전략위원회가 이를 대신하도록 하였다. 전문가들은 입법 당시부터 당해 법률의 내용과 형식이 가진 문제점을 지적8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법은 국회 심의를 통과하여 제정되었다. 우리 법제상 당해 생활 영역을 조성하기 위한 법원리, 정책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거버넌스, 당해 생활 영역의 법(률)관계에 등장하는 당사자와 그 당사자의 권리·의무·권한·책임, 정책 수단 등을 규율하는 것은 「환경정책기본법」과 같은 ‘기본법’이라는 법형식이 담아 왔으며, 정보통신법에서도 그때까지는 「국가정보화기본법」이 그러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2013년 당시 거버넌스를 개편하려면 ICT특별법이 아니라 「국가정보화기본법」을 개정하는 것이 기존 법제 이론을 존중하고 효율성을 추구하는 좋은 방법이었다. 그럼에도 국회는 이러한 조언을 등한시하고 입법을 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잘 아는 것이니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그 반대의 예도 있다. 국회는 2021년 데이터 생산과 이용을 활성화하고 데이터 산업을 발전시키겠다는 목적으로 「데이터 산업진흥 및 이용촉진에 관한 기본법」을 제정하였다. 그런데 이 법은 다른 정보통신법과 관계를 고려해 보았을 때 ‘기본법’의 지위가 아닌 ‘특별법’의 지위에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도 국회는 제명에 ‘기본법’이란 이름을 사용하여 혼란을 자초하였다.

넷째, 이와 같은 ‘입법 실패’는 고스란히 시민과 사회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법률은 원칙적으로 시민의 권리·의무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고, 그것을 집행하는 데는 많은 집행비용이 든다. 단통법으로 인해 일부 시민은 득을 봤겠지만 그보다 휠씬 많은 시민은 더 싸게 살 수 있는 단말기를 비싼 값에 사는 ‘호갱’이 될 수밖에 없었고 단말기 유통 구조를 개선하고 금지행위를 단속하기 위해 행정부가 쓴 돈과 그에 관련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사법부가 들인 시간과 비용은 온전히 시민의 세금으로 충당되었다.

4. 개선 방안

그렇다면 이와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입법 과정에서 ‘입법 실패’를 거를 수 있는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국회의원과 행정부 공무원이 법률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의원이 이를 심의·의결하는 과정은 시민이 없는 진공상태가 아니라 정당, 시민단체, 이익집단, 언론 등이 활발하게 참여하고 소통하는 과정이다.9 따라서 이 과정 중에 다양한 시민의 의사가 반영되어 법률안이 다듬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그 하나의 방법이 법률안을 제출할 때 이해관계자와 시민의 법률안에 대한 찬반 의견과 그 이유를 제출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법률안을 성안할 때부터 현재보다 좀 더 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법률안에 반영할 수 있게 하여 심의를 좀 더 풍부하게 할 수 있는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10

둘째, 국회의원의 법률안 심의·의결을 지원하는 기관과 사람이 전문성을 펼칠 수 있도록 독립성을 강화해야 한다. 현재 법률안을 만드는 것을 지원하는 기관과 사람은 어느 정도 독립성이 있는 경우가 있다. 저와 같이 대학에 소속된 사람, 시민단체에 소속된 사람 등이 법률안을 만드는 것을 지원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반면 국회의원의 법률안 심의와 의결을 지원하는 기관과 사람은 전문성을 펼칠 수 있는 독립성을 상대적으로 적절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와 국회도서관에 소속된 입법조사관, 외국법조사관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법학 등을 전공한 전문 인력으로 독립성이 주어지면 심의 과정 중에 의미 있는 견제와 지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들은 국회의원 중심의 국회 구성과 운영에서 사실상 ‘주변인’에 머물러 있어 독립성이 약하다. 이들이 속한 기관과 사람의 독립성을 강화하여 전문성을 살려 의미 있는 견제와 지원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셋째, 시민과 시민단체의 변화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국회의원을 평가하는데 있어 입법 양보다는 질적인 평가를 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국회의원이 지금과 같이 열심히 일하게 된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정치를 개혁하려는 시민과 시민단체의 활동이었음은 이미 서술한 바와 같다. 따라서 이들이 입법 양보다 질을 기준으로 평가하면 문제는 빠르게 개선될 것이다. 시민이 평소에 어떤 국회의원이 좋은 입법을 하는지 관심을 갖고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 그리고 국회의원 선거에서 좋은 입법을 한 국회의원은 다시 국회로, 입법 실패를 한 국회의원은 집으로 갈 수 있도록 감시와 견제를 해야 한다.

우리 모두 입법의 질(the quality of legislation)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을 제안한다.

  1. 전진영, 김현아(2024), <21대 국회 입법활동분석>, 국회입법조사처, 2024, 16-17쪽, <표 6> 참고 [본문으로]
  2. 고종안(2024). 급증하는 의원입법안, 어떻게 할 것인가?. <입법학연구> 제21권 제2호. 86-87쪽 [본문으로]
  3. 이상 전진영, 김현아. 앞의 보고서. 5쪽 [본문으로]
  4. 정필운(2024). <법 안의 사람 법 밖의 사람>. 드레북스. 36-41쪽 [본문으로]
  5. 고종안, 앞의 글, 89쪽 [본문으로]
  6. 김현종(2014), 규제 관련 의원입법의 문제점과 과제, <한국경제연구원 세미나자료> 제14권 제4호, 한국경제연구원, 10-11쪽; 고종안, 앞의 글, 90쪽 [본문으로]
  7. 예를 들어, 정필운(2014.9.4.),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에 대한 지정토론문, <사단법인 전파통신과 법 포럼 월례발표회 토론문>, 1쪽 [본문으로]
  8. 황창근(2014). ICT특별법의 제정 의의와 발전 과제. <토지공법연구> 제64권. 465-485쪽 [본문으로]
  9. 고종안. 앞의 글. 102쪽 [본문으로]
  10. 고종안. 앞의 글. 103쪽 [본문으로]
저자 : 정필운

한국교원대학교 일반사회교육과 공법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