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글로벌 반도체 밸류체인의 불확실성과 한국의 대응 전략

2025년 1월 20일, 미국은 트럼프(Trump) 2기 시대를 맞았다. 1기 정부의 기조를 이어받아 2기 정부 역시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에 입각한 대외 정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2기 정부의 대외 정책에는 몇 가지 변수가 추가된다. 그중에는 질과 양적인 면에서 모두 급성장한 중국의 산업, 특히 반도체나 배터리, 전기차 같은 제조업의 강력한 확장세가 있다. 2기 정부가 취할 주요 대외 전략은 중국은 물론 주요 경쟁국에 대한 고율의 관세, 특히 대미 흑자 폭이 큰 한국, 대만, 일본, 독일 등 주요 우방국이자 제조업 국가로까지 타격을 줄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2기 정책의 불확실성 속에서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는 주요 산업에는 반도체 산업이 있다.

1. 트럼프 2기 정부의 반도체 정책 방향 예상

. 일반적인 방향

전임 바이든(Biden) 정부의 반도체 정책은 리쇼어링(Reshoring)이다. 칩스법(CHIPs & Science ACT)에 따라 미 정부가 집행하는 보조금 규모는 2026년까지 총 527억 달러에 달하는데, 대부분은 미국의 반도체 기업이나, 국립연구소, 반도체 관련 대학들이 수혜한다. 칩스법 보조금은 미국 업체뿐만 아니라, 미국에 반도체 팹을 건설하는 외국 업체들도 받는다. 대만의 파운드리 업체인 TSMC는 116억 달러, 한국의 삼성전자는 64억 달러 지원 대상으로 결정된 바 있다. 칩스법은 트럼프 2기 정부에서도 연장될 수 있을까? 칩스법이 연장된다면 제2의 칩스법 같은 형태가 될 수 있다. 이는 미국의 주요 반도체 제조업체들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필수 요건이라는 점에서 가능성이 높다. 특히 국방용 반도체 등 안보에 필수적인 시스템반도체 확보가 앞으로 더 중요해지므로, 칩스법 2가 나온다면 미국 업체들이 지원 대상 우선순위가 될 것이다. 시스템반도체의 경우 10나노 이하급 제조 기술을 보유한 유일한 미국 업체는 인텔이기 때문에, 트럼프 2기 정부의 반도체 지원 정책의 주요 이슈는 인텔의 부활이 될 것이다. AI 반도체에 필요한 고대역폭메모리반도체(HBM, High Bandwidth Memory)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미국 메모리업체인 마이크론 역시 트럼프 2기의 지원 정책의 중심이 될 수 있다. 반면 해외 업체들은 트럼프 2기 정부에서 상대적으로 지원 혜택이 축소되거나 강화된 가드레일 등으로 인해 더 부담을 떠안게 될 가능성이 높다.

. 중국에 대한 견제 밸런싱

트럼프 2기의 반도체 산업 정책의 또 다른 한 축은 중국에 대한 견제 밸런싱이 될 것이다. 한 편으로는 중국산 반도체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고, 핵심 기술 수출 규제를 더 강화하여 중국 배제 정책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다. 이는 전략적 디커플링(strategic decoupling)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정책은 중국에 반도체 팹이 있는 해외 업체들에게도 직간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중국에서 생산된 제품이 중국산 반도체로 분류돼 미국 수출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시안에서 낸드 플래시 팹을 운영하는 삼성전자, 우시에서 디램 팹을 2곳, 다렌에서 낸드 플래시 팹을 1곳 운영하는 SK하이닉스 같은 한국 반도체 제조사들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는 중국 현지의 한국 반도체 팹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또 한 편으로는 중국이 미국이 재편하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협조하고, 미국이 통제하는 AI 및 반도체 기술 리더십에 도전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나올 경우, 트럼프 정부는 중국과의 반도체 커플링을 비즈니스 관점에서 재정의할 수도 있다. 이는 바이든 정부에 비해 다소 완화된 대중 반도체 기술 및 무역 조치로 발현될 수 있다.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는 중국의 산업 영향력 확대가 미국의 국익을 위협하는 위험 수위를 어디로 설정할 것이냐에 따라 조절될 것이다. 즉, 미국 내의 반도체 생태계 보호에만 집중한다면 대중국 견제 완화가, 반대로 미국 및 미국의 주요 우방국이자 반도체 공급망 핵심 관계국들의 글로벌 반도체 주도권 주도에 초점을 맞춘다면 중국 반도체 산업의 디커플링 정책 방향으로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 반도체 밸류체인 핵심국에 대한 견제책

트럼프 2기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는 고립주의를 내포하는데, 고립이 되더라도 미국이 원하는 혁신 기술 성장 동력을 확보하려면 AI 반도체 같은 첨단 반도체 해외 의존도가 완화돼야 하는 선결 과제가 있다. AI 반도체가 바이든 정권 말미부터 국가안보 주요 항목으로 설정되고 있으므로, 트럼프 정부에서도 AI 반도체 해외 의존도 완화를 주요 과제로 설정할 수 있다. 특히 TSMC로 대표되는 AI 반도체의 거의 독점에 가까운 생산기지가 있는 대만을 미국은 국가안보 위험 요소로 고려할 수 있고, 위기 대응책으로서 TSMC 첨단 파운드리 팹을 미국 혹은 미국 동맹국으로 위험 분산 차원에서 신설, 확장, 혹은 이전하라고 더욱 거세게 요구할 수 있다. 한국 반도체 업체들에 대해 독과점 규제 조치가 적용될 수 있는 분야는 DRAM 기반으로 제조되는 AI 특화 메모리반도체인 HBM이다. AI 반도체를 핵심 안보 요소로 고려하는 미국 입장에서 하이닉스 같은 해외 업체가 거의 독점하는 HBM 생산 비중 역시 견제 대상이 될 수 있다. 견제책으로서 중국으로의 4세대 이상급의 HBM 수출 통제, 미국 내에서의 HBM 생산 비중 확대가 요구될 수 있다.

2. 트럼프 2기 정부의 반도체 다자간 수출 기구 등장 가능성

트럼프 2기 정부에서 추진될 자국 중심의 반도체 생태계 구축 기조는 미국 우선주의의 외연 확장을 필요로 한다. 미국 내에서 반도체 공급망을 전부 재구축하는 것은 비용 면에서나, 기술 면에서나 한계가 명확하다. 따라서 미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자국의 이해관계를 이른바 유사입장국(like-minded country)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반도체 공급망의 주요 포석을 차지하는 일본, 영국, 네덜란드, 한국, 대만 같은 전통적인 미국의 우방국 혹은 동맹국이 포함된다. 특히 동아시아 3국은 미국 입장에서는 반도체 제조 분산이 가능하면서도 안정된 민주주의 체제 국가라는 점에서 더 중요하다. 이러한 유사입장국은 중국의 반도체 시장을 대상으로 고수익을 거두어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동아시아권 국가들에게 대중 반도체 견제 정책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은 경제적 피해를 야기하므로 추진 근거가 약해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트럼프 정부에서 미국 중심의 다자간 반도체 기구를 추진한다면, 그 레버리지는 경제적 인센티브보다는 지역과 안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 동아시아 3국은 미군이 직접 주둔하고 있거나, 미군의 안보 영향권 내에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 반도체 판 제2COCOM 가능성

1950년부터 1994년까지, 미국은 동맹국과 함께 전략기술수출통제제도(COCOM)를 통해 대 공산권 전략 기술(민간-군사 이중 용도 기술) 통제를 시행한 적이 있다. 냉전 종식 이후 COCOM의 명분이 약해지자 이를 대체하기 위해 1996년, 바세나르협정(Wassenar arrangement)이 성립되었다. 그러나 이 협정에는 러시아가 가입돼 있으므로 수출 규제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대신 트럼프 2기 정부에서는 더 강력한 통제력을 갖는 기구가 나올 수 있다. 미 상무부 산하 전략기술 수출 통제 담당 부서인 산업안보국(BIS, Bureau of Industry Security)은 2024년 9월, 첨단 반도체 기술을 수출 통제 대상으로 설정하는 임시 최종 규칙(IFR, Interim Final Rule)을 발표한 바 있다. 이를 위해 BIS는 수출 통제 분류 번호(ECCN)를 도입하고, 동등한 수준의 통제를 하는 동맹국에 대한 라이선스 허가 예외 조치, 첨단 기술에 대한 라이선스와 수출 허가 심사 예외 조치도 발표했다. 이 조치에서는 반도체 수출 규제에 참여하는 국가를 4개의 그룹으로 나눴다. A등급에는 호주, 독일, 캐나다,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스페인, 영국, 한국 등 전통적인 미국의 동맹국이 포함된다. 그리고 D등급에는 중국, 러시아, 이란 등의 미국의 적성국이 포함된다. A등급 국가들은 미국의 전략기술 수출 통제 정책을 준용한다고 간주, 수출통제시행국(IEC) 면제 조치를 받게 된다. 이러한 IEC 면제가 한국이나 대만 같은 반도체 제조 강국들이 미국의 대중 수출 규제 동참 압박 수단이 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2기의 고립주의가 현실화될 경우, 반도체와 지역안보가 결합된 사안의 중요성도 커질 것이다. 미 싱크탱크인 후버 연구소는 반도체 밸류체인의 지정학적 역학 구도를 미-중-대 세 국가가 이루는 이른바 칩-트라이앵글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후버 연구소는 미국의 대 대만, 중국 반도체 제조 의존도가 과하다는 것과 대만의 지정학적 안정성이 핵심 변수가 된다는 것, 그리고 대 중국 수출 규제가 적절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 다른 미 싱크탱크인 랜드 연구소 역시 대만의 기술안보적 환경 변동이 글로벌 반도체 밸류체인에 미치는 영향, 특히 안보적 이유로 첨단 반도체 생산이 지속되지 못 하는 시나리오를 분석했다. 이는 트럼프 2기 정부에서 동아시아 지역에 쏠린 첨단 반도체 제조의 과도한 의존도를 안보적 관점에서 완화해야 한다는 정책 근거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본적으로 첨단 반도체 제조의 국내 복귀 정책이 그렇다. 미국 내 반도체 생산 비중이 높아지면 대만과 한국의 생산 비중은 그만큼 축소된다. 이와 동시에 중국 파운드리 팹의 확장도 글로벌 반도체 제조 역학 구도에 영향을 준다. 이는 첨단 반도체 생산 구도가 조만간 바뀔 것이고, 결국 미국의 동아시아 지역 안보 관점에 영향을 주게 됨을 의미한다. 현재는 AI 반도체 등 첨단 반도체 생산에서 대만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기 때문에 대만 발 반도체 공급망 불안정성을 제어하기 위해서라도 미국과 동맹국은 대만 주변 안보에 적극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2030년대에 이르러 미국의 대만 첨단 반도체 생산 의존도가 완화되면, 양안 사태에서 미국은 전략적 명확성을 취할 동기가 약해진다.

. 대만 반도체 제조업을 둘러싼 기정학

대만도 이러한 첨단 반도체 공급망에서의 영향력 약화로 인한 안보 위기 촉발 가능성에 주목한다. 대만은 첨단 반도체 생산은 해외로 분산시키지 않는 실리콘방패(Silicon Shield) 전략을 취해왔다. 그러나 이는 해외 반도체 제조 의존도 완화라는 트럼프 정부의 대외 정책과 충돌하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 내 TSMC의 파운드리 팹 투자 확대와 더불어 기술 독립성 확보를 위해 공급망 자체를 미국 내에서 재구축하도록 안보 자산을 무기로 대만에 더 강하게 요구할 수 있다. 중국 역시 반도체 내재화 정책을 강화하여 반도체 해외 의존도를 지속적으로 낮추기 위한 투자를 확대할 것이다. 이는 글로벌 반도체 역학 구도에 영향을 준다. 특히 중국산 반도체의 과잉생산, 그로 인한 출혈 경쟁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미국이 계획하는 대중 반도체 기술 및 무역 제재 정책이 선단 공정 반도체에서 중국에 대한 추가 비용 부과 효과를 부가하는 것과 별개로, 미국 반도체 업체들에게는 그 효과가 역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중국의 첨단 반도체 내재화율이 올라갈 경우, 중국은 양안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 미국이 전략적 모호성으로 기울 경우, 중국의 대 대만 무력 행사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

3. 한국의 대응 전략 개편 방향

트럼프 2기 정부의 반도체 정책에 내포된 불확실성은 한국 반도체 산업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불확실성 대비 차원에서 한국은 반도체 제조업 경쟁력을 생태계 다양성 강화와 연계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후공정 수율 경쟁력이 중요해지면서 첨단 패키징 기술이 중요하다. 이는 비단 AI 반도체뿐만 아니라, 고성능 반도체 제조 경쟁력을 결정할 것이므로, 산업계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의 연구개발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 국제정치 관점에서는 미국이 최근 강화하려는 다자간 수출 통제의 함의를 분석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첨단 반도체 로드맵과 표준 제정에 적극 참여하여 한국에 유리한 지점을 만들어야 한다. 레거시 파운드리에서 점유율이 약한 단점을 극복하고 국내 팹리스 생태계 안정화를 위해 정부가 투자하는 공적 파운드리도 추진될 수 있어야 한다. 향후 반도체 산업의 핵심은 AI가 주도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바, 글로벌 AI 팹리스 생태계 구성에도 적극 참여하며 차세대 AI 반도체 기술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적 경쟁력 확보와 생태계 변화에 대응하며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방향은 트럼프 2기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한국이 끌고 갈 수 있는 주요 전략이 되어야 한다.

[참고문헌]

– 권석준(2022). 『반도체 삼국지』. 서울: 뿌리와이파리.

– 보고서 : 대외경제정책연구원(2024). 『중국 제3기 반도체 투자기금의 특징 및 시사점』.

– 보고서: Hoover Institution(2023). 『Silicon Triangle: The United States, Taiwan, China, and Global Semiconductor Security』.

저자 : 권석준

성균관대학교 화학공학부 부교수 (공과대학 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