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표현의 자율규제와 대체표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미망인을 검색하면 ‘다른 사람이 당사자를 미망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례’라고 안내한다.

1. 혐오표현의 정의와 자율규제

혐오표현이라는 용어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80년대 미국에서 흑인과 성소수자 등을 대상으로 한 강력 범죄 사건의 빈번한 발생으로 인하여, ‘혐오범죄(hate crime)’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생기게 되면서부터였다(문연주 2014:95, 박해영 2015:139). 법적 규제의 대상이 되는 협의의 혐오표현과 달리 시장규제나 자율규제와 같은 여타의 방식으로 규제가 되어야 할 광의의 혐오표현으로 구분하는 논의(박해영 2015, 김민정 2020) 또한 존재한다. 혐오표현의 법적 규제를 위해서는 혐오표현의 정의와 외연을 엄격히 규정해야 하지만, 자율규제를 위한 혐오표현은 반드시 엄격한 기준이 적용될 필요가 없다.

어학 분야에서는 이러한 표현들이 법적 규제의 대상이라기보다 개선과 순화의 대상이기 때문에 어학 분야의 연구(이정복 2007, 2009, 2010, 2017, 2019; 국립국어원 2009; 박혜경 2009; 허재영 2016; 송현주 2021; 조태린 2011, 2019 등)에서는 법적 규제에 초점이 맞추어진 혐오표현이라는 용어 대신 차별표현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해 왔다. 이때의 차별표현은 광의의 혐오표현과 유사한 개념으로 이해되는데 차별은 혐오의 감정이 발화 등의 행위로 표현된 결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차별적인 표현이 혐오의 감정을 수반하지 않는 경우는 많지 않고 혐오의 감정을 나타내는 표현이 차별적인 결과를 이끌어 내지 않는 경우 또한 매우 드물다고 할 수 있다(유현경 외 2022:173). 특정 혐오표현을 자율적으로 규제할 때 혐오표현 대신에 다른 형식의 대체표현을 사용할 수 있어야 언중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대체표현이 없거나 제안된 대체표현이 부적절할 경우 혐오표현의 규제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 글에서는 언어학적 관점에서 혐오표현의 자율규제와 관련한 대체표현의 문제를 살펴보게 될 것이므로 차별적 표현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혐오표현의 정의를 전제로 논의할 것이다.

2. 국어사전 속 혐오표현

최근 인터넷과 같은 가상 공간에서 사회적 소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혐오표현(hate speech)의 확산으로 인하여 사회적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혐오표현의 규제는 대상이 되는 사회적 소수자들을 보호하는 긍정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과도하게 규제할 경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매우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orea Internet Self-governance Organization, 이하 KISO)에서는 포털에 공개되는 어학사전 서비스 내 혐오표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사전 이용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자 2021년부터 2022년까지 어학사전 자문위원회를 만들어 국어사전 내에 존재하는 혐오표현에 대하여 이용 시 주의 문구를 다는 등 ‘차별표현 바로알기 캠페인’을 수행한 바 있다. 혐오표현에 대한 기존의 논의가 이론적인 고찰과 규제에 대한 제언 등이 주를 이루었다면 KISO의 작업은 혐오표현에 대한 그간의 연구 성과를 수렴하고 사전의 콘텐츠 분석을 통하여 사전 이용자들에게 실제적인 사용 정보를 제공하였다는 의의가 있다.

KISO의 어학사전 자문위원회의 활동의 결과로, 포털의 국어사전 내의 혐오표현에는 사용에 주의를 요하는 문구가 달려 있지만 정작 국가 주도로 편찬된『표준국어대사전』에는 혐오표현에 대한 사용상의 주의 정보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실제 언어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가치중립적 성격을 띠는 성향이 있는데 사전 이용자들은 기본적으로 사전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전에 있는 표현들은 사용해도 무방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혐오표현의 하나인 ‘장님’을『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시각 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는 뜻풀이만 제시되어 있을 뿐 포털에서와 같이 사용상의 주의 문구가 달려 있지 않다. 반면『표준국어대사전』에서 ‘미망인(未亡人)’을 찾아보면 뜻풀이는 “남편을 여읜 여자. ≪춘추좌씨전≫의 <장공편(莊公篇)>에 나오는 말이다.”로 되어 있고 하단에 있는 ‘한 걸음 더’에서 “아직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다른 사람이 당사자를 미망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례가 된다.”라는 정보가 부가되어 있다. 이 뜻풀이와 부가 정보는 2017년 11월에 수정된 것으로 2017년 이전에는 “아직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란 뜻으로, 남편이 죽고 홀로 남은 여자를 이르는 말. ≪춘추좌씨전≫의 <장공편(莊公篇)>에 나오는 말이다.”라는 뜻풀이만 있었고 부가 정보가 달려 있지 않았다. 현재『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제시된 ‘미망인’의 사전적 정보에 의하면 ‘미망인’이라는 말은 사용상의 주의가 필요한 표현이지만 실제 언어사용에서 ‘미망인’을 쓰지 않는다고 가정했을 때 이를 대체할 마땅한 표현이 없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미망인’과 비슷한 뜻을 가진 단어로는 ‘홀어미, 과부’ 등이 있는데 ‘홀어미’라는 말은 ‘남편을 잃고 혼자 자식을 키우는 여자’라는 뜻으로 자식이 없는 남편 여윈 여자에게는 사용할 수 없다. ‘과부(寡婦)’는 ‘남편을 잃고 혼자 사는 여자’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로 ‘미망인’과 유사한 뜻을 가지고 있어서 대체가 가능한 말이라고 할 수 있으나 ‘과부’라는 단어에는 사전적 의미에는 드러나 있지 않은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서 남편을 잃은 여자에게 ‘미망인’ 대신에 ‘과부’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꺼려지는 경향이 있다. 최근에는 ‘미망인’, ‘과부’ 등의 말보다 ‘돌싱(‘돌아온 싱글’을 줄인 말)’ 등의 신조어가 더 많이 쓰인다. 그러나 ‘돌싱’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을 대상으로도 쓰이고 ‘미망인’과 의미적 차이도 있기 때문에 ‘미망인’의 대체표현으로 부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벙어리장갑’은 포털의 어학사전에서도 주의 문구가 달리지 않은 표제어이지만 ‘벙어리장갑’의 구성요소 중 하나인 ‘벙어리’가 혐오표현이므로 ‘벙어리장갑’ 또한 사용할 때 주의가 필요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인터넷을 중심으로 ‘벙어리장갑’을 ‘엄지장갑’이나 ‘손모아장갑’이라는 대체표현으로 바꾸자는 캠페인이 진행되어 상당한 호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망인’ 등과 같이 대체표현이 없는 경우에 ‘벙어리장갑’처럼 적절한 대체표현을 찾으려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미망인’과 다르게 혐오표현의 대체표현이 명백하게 존재하는 경우에도 문제는 남아 있다. 앞서 언급한 ‘장님’을 포털의 어학사전에서 검색하면 차별 또는 비하의 의미가 있으니 이용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주의 문구가 달려 있다. ‘미망인’은 적절한 대체표현이 없는 표현인 반면에 ‘장님’은 ‘시각 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는 뜻풀이를 통하여 대체표현이 ‘시각 장애인’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국어사전에 표제어로 등재된 ‘장님’에는 ‘장님’과 관련된 속담 31개가 부표제어의 지위로서 제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속담 속의 ‘장님’은 ‘시각 장애인’으로 대체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몇 년 전에 한 정치인의 발언 가운데 ‘눈 뜬 장님’이라는 표현이 문제가 된 일이 있었듯이 속담이 우리 민족의 문화적 자산인 것은 분명하지만 혐오표현과 관련된 속담은 격식적인 자리에서는 삼가야 할 민감한 부분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예들을 통하여 ‘장님’, ‘벙어리’처럼 해당 단어가 혐오표현인 경우뿐 아니라 ‘벙어리장갑’, ‘눈 뜬 장님’과 같이 혐오표현이 일부 들어간 합성어나 속담 등의 복합적인 표현을 사용할 때도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혐오표현의 대체표현과 자율규제

앞에서 예를 들어 살펴본 ‘미망인’이나 ‘장님’ 등과 같은 단어는 오랫동안 언중들에게 익숙한 단어들이지만 차별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사용할 때 유의해야 하는 표현이다. 혐오표현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많지 않았던 지난날과 달리 최근 혐오표현에 대한 학문적 논의가 깊어지고 혐오표현의 대상이 되는 집단이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게 되면서 혐오표현에 대한 언어사용자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특정 표현이 혐오적 의미를 가진 것으로 분류되면 그 표현에 대한 대체표현이 필요하게 되는데 대체표현의 어종을 살펴보면 대부분 한자어이거나 외래어, 외국어인 경우가 많다. 고유어는 차별이나 혐오적 의미가 직접적으로 연상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혐오표현뿐 아니라 금기어(taboo)를 완곡어로 대체할 때에도 고유어가 아닌 한자어, 영어 등 외래 어종이 주로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최근 혐오표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혐오표현은 언어사용에 있어 민감한 부분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혐오표현에 담긴 혐오의 정도가 동일하지 않으므로 모든 혐오표현에 동일한 규제를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도 있다. 유현경 외(2023)에서는 혐오의 정도를 판단하는 객관적인 근거에 의하여 혐오표현의 등급을 나누고 그 등급에 따라 자율규제의 정도를 다르게 적용할 것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또한 혐오표현이라 할지라도 그 말 속에 담겨 있는 역사와 문화, 그리고 부정적인 면까지도 함께 생각하면서 의사소통의 자리를 가려 사용해야 한다. ‘벙어리장갑’의 경우처럼 언어사용자들이 혐오표현의 문제를 인식하고 자율적으로 대체표현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자율규제의 바람직한 방향 중의 하나일 것이다. 혐오표현 대신에 대체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담보해 주는 동시에, 적절한 대체표현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언어사용자들의 혐오표현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효과도 있기 때문에 혐오표현의 자율규제와 관련하여 대체표현의 여러 문제를 살펴보고 그 해결 방안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국립국어원(2009). 『사회적 의사소통연구; 지역 민족 인종에 대한 차별적 언어 표현 개선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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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유현경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