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세대 문해력 논쟁’이 알려주는 ‘21세기의 능력’

요즘 몇 달에 한 번씩 전 국민 대상 어휘력 테스트가 진행되고 있다.

이번엔 ‘심심한 사과’였다. 2022년 8월 20일 유명 웹툰 작가의 사인회를 열기로 한 카페에서 예약 오류가 있었다며 “심심한 사과 말씀드린다.”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린 게 불씨였다. 사과 공지를 읽은 일부 이용자들이 “심심한 사과? 난 하나도 안 심심해” “어느 회사가 사과문에 심심한 사과를 줌” “꼭 심심하다고 적었어야 했나”라고 항의 댓글을 달면서 불이 붙었다. ‘심심(甚深)하다’는 표현을 “지루하다”라고 읽고 비난하면서 시작된 소동은 많은 언론이 다루면서 ‘디지털 세대의 문해력 논쟁’으로 불길이 커졌다.

2020년 광복절을 앞두고 “임시공휴일 지정으로 연휴가 사흘로 늘었다”는 보도가 나오자 “3일을 왜 사흘이라고 하냐, 사흘은 4일 아니냐”는 항의 댓글이 달렸다.

2021년 11월 1일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자 신경전을 벌이던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무운(武運)을 빈다”고 말했는데, 한 방송사의 정치부 중견 기자가 이를 “운이 없기를 빈다”는 뜻(無運)으로 해석해 보도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디지털 세대의 문해력 논쟁을 널리 알린 일은 2019년 6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대해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올린 한줄평이다. 이동진 평론가는 <기생충>에 높은 별점(4.5)을 부여하며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라고 한줄평을 올렸다. 한자어로 압축된 한줄평을 읽은 누리꾼들이 ‘명징’과 ‘직조’라는 어려운 단어를 꼭 써야 했느냐며 항의하는 댓글로 반응했고, ‘명징’ ‘직조’는 문해력 논란을 점화한 인기 검색어가 된 일이다.

이번에 소셜미디어에서는 “금일 명징하게 직조한 심심한 사과를 드리며 사흘간 무운을 빈다”는 식으로, 근래 화제가 된 한자어를 포함한 짧은 글짓기 놀이도 생겨났다. 또다시 디지털 세대의 문해력 논쟁으로 불붙었다. 한자어로 시작된 문해력 논쟁은 항상 비슷한 경로로 진행된다. 한자어를 모르는 디지털 세대에게 한자 교육과 국어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반대편에서는 한자 교육을 강조하는 나이 든 세대가 키오스크나 소셜미디어를 사용할 줄 모르고 가짜 뉴스에 쉽게 빠진다는 세대 논쟁으로 이어졌다.

디지털 세대의 문해력 논쟁은 교육계로 옮겨붙어 대책이 논의 중이다. 2021년 3월 교육방송(EBS)이 방영한 <당신의 문해력> 시리즈는 특정 세대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세대가 긴 글 읽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태를 알려줬다. 2021년 5월에는 국내 청소년들의 디지털 문해력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서 최하위로 판명됐다는 ‘피사(PISA) 21세기 독자’ 보고서가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새 정부 들어 본격적인 대책도 발표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8월 22일 국무회의에서 “전 세대에 걸쳐 디지털 문해력을 높일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육부는 8월 30일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을 공개하며, 학생들의 ‘기초 문해력 교육 강화’를 위해 초등학교 1,2 학년의 국어 시간을 현재(448시수)보다 34시간 늘리는 방안(482시수)을 대책의 하나로 제시했다.

헤어질 결심’의 송서래에게서 배울 것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 등 미디어를 이용하는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기 때문에 국어 교육과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을 강화해야 하는 방향은 바람직하지만, 최근의 문해력 논쟁은 그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음을 알려준다. 단지 디지털 세대의 한자어 어휘력의 부족에서 생겨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세대와 환경에 따라 사람마다 어휘는 달라지므로 세대 차이가 생겨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디지털 세상에서는 변화가 빠르다 보니 세대 간 어휘 차이도 벌어졌을 따름이다. 한자어에 익숙한 기성세대는 요즘 MZ세대가 일상어로 사용하는 줄임말이나 초성 표현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낯선 단어를 만나도 스마트폰으로 바로 검색해 볼 수 있는 편리한 환경이다. 박찬욱 감독의 최신작 <헤어질 결심>에는 한국어에 서툰 중국인 송서래(탕웨이)가 스마트폰 번역 앱으로 형사 장해준(박해일)과 소통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라는 해준의 울부짖음을 이해할 수 없던 서래는 ‘붕괴’의 뜻을 찾아본다. 검색으로 “무너지고 깨어짐”이라는 의미를 알게 된 서래의 심경 변화는 영화의 주요한 변곡점이다. 기술 발전은 언어의 차이를 별것 아닌 문턱으로 낮추고 있지만, 소통은 기술로 인해 저절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기술은 환경일 뿐이고 이용자의 소통하려는 의도와 노력이 필수적이다.

최근의 잇따른 문해력 논란에서 눈여겨볼 사회현상은 상대를 향해 왜 그런 단어를 써서 오해를 유발하느냐고 비난하는 상황이다. 한자어 문해력 논란이 드러내는 것은 정보사회의 반지성적 태도와 문화이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지식에 대해서 문을 닫고 낯선 어휘를 사용하는 사람에 대해 오히려 비난을 퍼붓는 현상으로 나타난 게 최근의 문해력 논란 사태의 본질이다.

지금은 스마트폰 덕분에 모르는 단어가 한자어이건, 줄임말이건, 외국어이건 그 뜻을 찾아보기 어느 때보다 쉬운 환경이다. 디지털 세대를 향한 우스개가 있다. 여러 해 전 미국의 게시판 사이트 ‘레딧’에 올라온 문답이다. “60년 전 사람이 타임머신을 타고 오늘날로 시간여행을 왔을 때 가장 이해하지 못할 현상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던져졌다. 쏟아진 댓글 답변 중 사람들이 무릎을 친 것이 있다. “누구나 주머니 속에 인류가 쌓아온 지식 전체에 접근할 수 있는 도구를 늘 갖고 다니지만 주로 고양이 사진을 보고, 모르는 사람들과 말다툼하는 데 사용한다”는 답변이었다. 스마트폰 시대의 정보 이용환경과 교육 현실의 문제를 압축해주는 문답이다. 여기에 달라진 정보 이용환경에서 전통적 교육법이 왜 작동하지 않는지 알려주는 열쇠가 들어 있다. 지난 시절 혜택 받은 소수만 지닐 수 있던 ‘절대반지’ 같은 도구를 오늘날에는 누구나 지니게 됐지만, 절대반지를 절대반지답게 활용하는 사람은 극소수라는 얘기다.

‘사회의 이케아화’

슬로베니아 출신의 철학자 레나타 살레츨은 2021년 펴낸 저서 <알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살레츨은 “무제한 정보를 온라인으로 이용하는 시대에서 지식의 부족을 인정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모두가 검색 엔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어떤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핑계 댈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디지털 환경이 모든 것을 스스로 처리하도록(DIY) 요구하는 ‘사회의 이케아(IKEA)화’를 가져왔는데, 이는 자신의 지식 부족을 인정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경고한다.

‘사회의 이케아화’라는 개념은 현 상황을 압축하는 단어다. 중개자 없이 모든 정보에 무한 접근할 수 있는 정보 사회는 동시에 이용자 스스로 모든 것을 찾아내고 구성해야 하는 환경을 저자는 ‘사회의 이케아화’라고 말한 것이다. 안내자 없이 정보의 신뢰성과 유용성 또한 ‘스스로’ 판별해 활용해야 함을 의미한다.

2017년 국내에 번역된 미국 해군대학 교수인 톰 니콜스의 저서 <전문가와 강적들>은 “나도 너만큼 알아”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오늘날엔 검색 엔진을 활용하면 누구나 손쉽게 전문가의 지식을 검증할 수 있고, 나아가 그 전문가가 알지 못하는 정보까지 연결할 수 있는 환경이다. 많은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전문지식을 직접 찾아보고 검증하느냐와는 별개로, 이러한 환경은 전문적 지식과 그에 필요한 지적인 훈련 과정을 가볍게 만들고 있다. 톰 니콜스는 “그 결과 지식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된 것이 아니라, 모두의 지적 수준이 동등하다는 비합리적인 신념이 확산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교육의 애초 의도와 정반대되는 상황이다. 니콜스는 “교육은 아무리 똑똑하거나 재주가 많은 사람일지라도 그를 일평생 배움을 멈추지 않는 사람으로 만드는 일을 목표”로 하는데, 우리는 “약간의 배움이 교육의 시작이 아니라 종착점이 되어버린 사회”에 살게 됐다고 말한다.

영국의 언론인 데이비드 롭슨이 2020년 펴낸 <지능의 함정>에서는 지적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지능의 함정’에 빠져 위험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는 자동차의 사례를 들어, 차량의 엔진 성능이 뛰어날수록 목적지에 빨리 도착할 수 있지만 엔진 마력이 높다고 해서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한다는 보장은 없다고 말한다. 브레이크와 운전대 등 적절한 도구와 운전 기술이 없다면 엔진이 높은 속도를 낼수록 위험은 더 커지기 때문이다. 미심쩍은 정보인지 검증해보고 뜻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며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어느 때보다 편리해진 환경이지만 오히려 가짜 뉴스와 허위 정보가 난무하는 탈진실 현상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똑똑한 디지털 도구’를 잘 쓰려면?

한자어 어휘를 둘러싼 문해력 논쟁이 알려주는 것은 이러한 정보사회의 역설적 현실이다. 도구가 편리해지고 강력해지고 똑똑해짐에 따라 과거 우리가 수고롭게 수행하던 지적 노력 과정을 단축시켰다. 편리한 기계에 의존하고 위임하는 것에 머무르고, 달라진 지적 환경에 필요한 새로운 지적 능력과 습관을 습득하지 않으면 탈진실 현상은 갈수록 심각해지게 된다. 모든 정보에 대한 접근권이 주어졌다는 사실이 모든 이용자를 저절로 현명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사람을 지적으로 게으르고 둔감하게 만들어, 허위 정보를 악용하는 사기꾼들의 영향력이 커지게 되는 환경이 될 수 있다.

정보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이용자들은 새로운 능력을 스스로 찾고 장만해야 한다. 데이비드 롭슨은 지적인 겸손함,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사고, 호기심, 자신의 감정에 대한 정확한 인지, 결과보다 성장을 중시하는 사고방식 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문제는 정보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이러한 디지털 리터러시 능력과 책임은 정보화의 편리함에 가려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보사회의 편리함이 달콤한 디저트라면 정보 주체의 비판적 능력과 책임은 다이어트나 체력 훈련과 비슷하다. 이는 매우 힘든 일이고 절대로 저절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최근의 문해력 논쟁에서 보고 있다.

저자 : 구본권

KISO저널 편집위원, 한겨레신문사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