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기술 : 미담 그리고 미화

24호_서평_이미지

켄타로 토야마의 <기술 중독 사회>는 기술의 결과가 하나의 방향으로 – 흔히 기대하듯이 인간 문명을 진보로 이끄는 식으로 – 결정되지 않고 사회적 쓰임새 안에서 다양하고 차별화된 효과들을 창출하게 되는 현상에 관해, 그 원인과 효과를 폭넓게 아우르며 진지하게 탐구한다. 토야마는 기술이 이질적인 징후와 효과로 나타나는 원인을 다차원적으로 설명하고 나아가 기술이 보다 좋은 방식으로 사용되어 인간의 복된 삶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행해야 할 사회적 실천 방안들을 처방한다. 이런 점에서 켄타로 토야마는 자신감과 확신에 찬, 유쾌한 휴머니스트 기술주의자다.

토야마는 주로 오늘날 활발하게 발전하고 있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들에서 몸소 행한 현지조사 및 연구와 교육 경험을 풍부하게 살려 기술적 특수성의 사회적 현실과 의미를 생생하게 제시한다. 하나의 기술이 한 지역에서는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놀랄 만한 성과를 일군 사례, 하나의 교육 프로그램이 여타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자극이 되지 못했지만 어떤 이에게는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도록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 준 사례들이 풍부하게 소개된다. 또한 작게는 하나의 컴퓨터 프로그램에서부터 크게는 한 국가의 대학 교육과 사회제도에 이르기까지 미시 차원과 거시 차원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기술이 우리 사회에서 균형적이고 적정하게 사용되어 바람직한 인간과 사회를 건설하는 데에 이바지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효과적인 기술 패키지 활용을 위한 세 가지 규칙으로 “첫째, 목표와 연계된 사람의 영향력을 확인하라, 둘째, 사람의 올바른 영향력을 위해 패키지 개입을 사용하라, 셋째, 패키지 개입의 무차별적인 확산을 피해라”가 조목조목 제시된다. 기술만능주의가 대세인 오늘날, 우리는 토야마의 모험과 탐색을 숨 가쁘게 쫓아다니면서 그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기술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나 기대, 단순한 접근방식을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기술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 아니 우리는 기술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같은 근본적인 물음들을 질문하게 된다.

우리가 기술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토야마의 답안은 명쾌하다. 그는 기술사용 주체인 인간, 특히 인간의 ‘생각과 의지’를 근본에 둔다. 그리고 올바른 생각과 의지를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품성이나 역량으로, 개인의 ‘좋은 의도, 안목, 자기통제’를 든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 제공된다고 해도 그것을 선하게 사용하려는 의도가 없다면, 그리고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구별할 판단력과 지성이 없다면, 마지막으로 이러한 단계를 거치며 마음속에 품게 된 이러저러한 가치들을 직접 몸으로 실천하려는 굳은 결심과 실행력이 없다면 그 어떤 기술도 좋은 효과를 낼 수 없다고 그는 주장한다. 따라서 토마야의 관점에서 볼 때 기술의 운명을 결정하는 힘은 기술 그 자체나 그것을 공급하고 유통시키는 기업에게 있지 않다. 그 결정력의 많은 부분은 기술을 이용하는 개인들의 생각과 의지에 달려있다. 토야마가 표준화된 특정 기술을 획일적인 방식으로 사회에 주입하는 패키지 개입 방식이나, 합리성과 효율만을 중시하는 공학자와 경제학자들의 이론에 반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토야마 논의의 핵심은 인간의 내면을 성숙시켜 자아를 초월하려는 주체의 투지, 그리고 그러한 내면적 힘이 길러질 수 있도록 지도하고 지지하는 교육 활동에 있다. 아울러 개인과 교육기관이 원활히 작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회정책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기술 활용에 있어선 사회 전반의 노력과 실천이 결합되어 동반되어야 하므로, 기술을 통한 인재 양성이란 오랜 시간, 강한 노력, 많은 자원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우리 역시 이처럼 당찬 기획에 기꺼이 투신하려는 올곧은 생각과 의지, 그리고 각자 자신이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는 용기와 적극성을 발휘해야 함을 역설한다.

이 같은 토야마의 주장에 반대할 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토야마에게 인간이란 그 동기가 올바르게 발동되고 양질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다면 선한 의지와 바른 생각을 길러서 자신을 고양하는 인간, 또한 내면적 성숙이 무르익으면 타인에게까지 자신이 성취한 결실의 이로움을 전하고 나누려는 이타주의적 존재다. 개인의 미덕과 선행은 마치 민들레의 씨앗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되면서 세상이 차차 개선되고 향상되리라는 긍정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토야마가 제안하는 아름다운 그림에 우리는 감동과 희망을 품게 된다. 또한 인도 등지에서 실제 경험된 성공 사례들은 우리의 낙관적인 전망에 더욱 큰 믿음과 힘을 불어넣어준다.

그럼에도 <기술 중독 사회>를 읽고 나면 희망에 가득 차서 하늘로 비상하다가 어느 순간 허공 아래로 굴러 떨어질 것 같은 공허함이 드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나는 토야마의 희망찬 전망이 기술에 대한 미담일지 미화일지 자문해 보았다. 물론 미담과 미화의 경계는 실상 그리 뚜렷하지 않다. 미담의 사례들을 뽑아 일반화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낙관적인 전망이 되지만 때로는 미화의 오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토야마가 희망하는 평화로운 기술사회가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면서도 동시에 그러한 미담을 믿고 실행하기 위해선 몇 가지 중요한 문제들이 우선적으로 검토되어야 하리라 생각한다.

우선 토야마는 기술사용의 주체를 개인으로 본다. 실패도 성공도 개인의 심리적인 속성, 성품,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고 전제한다. 그의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초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자신이 처해있는 사회적 모순과 정치 갈등을 기필코 극복하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에 대한 자유주의적 인식은 자칫 사회와 개인이 때로는 마찰적으로 복잡하게 연관된 사회적 현실을 잊게 만든다.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난 한 소년이 일류 대학에 입학하며 고백했다는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말로 대변되곤 하는 성공담에서도 종종 발견되듯이, 이러한 견해는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이 묶여있는 사회적 상황,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하는 존엄마저 박탈하는 부당한 권력 작용과 불평등에 대해서 무관심하다. 또한 개인의 생각과 의지가 특정한 방식으로 형성되는 데에 결정력까지는 아닐 지라도 중대한 조건력을 가하는 사회적 요인과 작용들은 간과된다. 토마야는 이러한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질문을 던지고 근본적인 개선을 도모하는 대신 각자에게 영웅이 되어 탈출하라고 조언한다.

또한 <기술 중독 사회>에서는 물적·정신적 자원과 능력을 제공하는 자(타야마의 분류에 따르면 ‘멘토’에 해당한다)와 수혜자(이것 역시 ‘멘티’로 바꾸어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사이에 고착화된 위계질서를 묵과한다. 그가 ‘유출’이 아니라 ‘순환’이라고 강조하는 지식과 기술의 국제적 흐름은, 안타깝게도 그러나, 여전히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흘러내리는 일방성과 잘 되어야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인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기술 제국주의같이 과거의 고리타분하고 융통성 없는 결정론적인 입장을 들이대려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토야마가 묘사한 사례는 거의 전부가 서방 특히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창안하고 확장한 기술 패키지와 창조계급에 관한 내용들이다. 토야마의 주된 관심사는 이 원천기술을 어떻게 전 세계적으로 보급할 것인가에 있다. 미국 중심의 IT 산업이 지구화 체제로 확장·강화되는 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 예를 들어 사회와 문화의 다양성 쇠퇴, 미국 중심적인 정보 및 지식 질서 확장, 각 국가와 사회의 자생적 지식 및 기술 발전 가능성 그리고 디지털 자본주의의 지구적 체제화 등에 관한 비판적 탐구는 시도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켄타로 토야마가 기뻐 마지않는 성공담들의 주인공들의 정체성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성공사례는 대부분 빈민가 출신의 어린이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은 바탕 위에서 적정한 기술을 제공받음으로써 능력의 ‘증폭’ 효과를 누리고 신분이나 계급 이동에 성공한다는 줄거리를 가진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성공의 기준은 거의 전적으로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밀착해 있다. 물론 IT 업계에서 성공하여 큰돈을 벌었지만 이러한 경제적 보상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고차원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인물들의 교육 장학 활동 등도 멋지게 소개된다. 이들은 단지 경제적 성공이 아니라 자아실현 및 사회적 공헌을 추구하는 태도로 칭송된다. 그러나 이들은 자본주의 체제를 벗어나 있지 않다. 오히려 ‘이미’ 자본주의적 인간형의 성공 모델이다. 그 특권적인 위치에서 도덕적인 희열까지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지닌 지구상의 극소수의 인간 집단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자원과 분위기에서 배양된 젊은이들의 삶과 세계관이다. 토야마는 ‘성공’의 의미를 사회적 명예 및 경제적 부의 개인적 획득에 두고 있다. 반면 해당 사회, 즉 대부분 정치적으로 혼란하고 국지전이 난무하고 인종 및 종교 갈등이 심하며 사회적 불평등과 경제적 빈곤이 심각한 국가들에서 요구되는 ‘시민상’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성공을 거둔 젊은이들 각자의 삶은 분명 경제적으로 윤택해질 것이다. 반면 그가 살아가는 사회의 정치공동체와 시민의 정치참여의 모습이 어떠할지는 답해지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따라서 평화로운 기술의 미래를 논하기 위해선 우선 개인주의 모델을 벗어나 단일국가 혹은 지구적인 차원에서 집합적으로 구현되어야 할 시민성의 성장 문제가 해명되어야 한다.

부연처럼 실용적인 관점에서 몇 개 지적을 하자면, 이 책의 번역서 제목인 <기술 중독 사회>는 원저의 내용과 다소 거리가 있다. 원제는 ‘Geek Heresy’로, 직역하자면 ‘기술의 이단’ 정도의 의미가 될 것이다. 이 원제의 의도는 아마도 기술이 우리에게 항상 그리고 반드시 모든 성공을 가져다주리라고 믿는 기술중심론과는 다른 시각에서 기술의 사회적 실천 방법에 대해 논한다는 점을 부각하려는 것이었으리라 짐작된다. 따라서 이 책은 기술 중독에 대해 단순기술하거나 체념하는 책이 아니라 반대로 기술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서이며 기술의 이단이 되자고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실천서다. 또한 참고문헌이 누락되어 있다. 원저자가 주석에 풍성하게 소개한 서지사항이 무용해진 점이 적잖이 아쉽다.

저자 : 김예란

광운대학교 미디어영상학부 교수/(전)한국언론학보 편집위원/(전)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연구이사/(전) 한국언론학회 연구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