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ICT 자율규제 의미와 전망

1. 문재인 정부의 ICT(플랫폼) 규제

문재인 정부에서 정치권은 플랫폼 갑질을 척결하는 것이 곧 친서민 정책이라는 프로파간다로 일관하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플랫폼 규제정책은 단순히 ‘정책’의 문제를 넘어서 ‘이념화 논쟁’으로 확전됐다.

플랫폼 규제를 반대하거나 합리화하자는 견해는 ‘반서민, 친기업’으로 매도하고, 강력한 플랫폼 규제를 주장하는 견해는 ‘친서민, 친인권’인 것처럼 열광하였다. 이러한 이분법적 이념화 프레임은 규제당국의 규제권 강화에 커다란 지원군이 됐고, 규제당국과 정치권은 강력한 플랫폼 규제 법안과 정책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규제를 신설, 강화하는 입법안이 국회에 다수 제출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른바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라는 명분으로 온라인플랫폼에 대한 규제관할권을 자신들의 소관으로 하려는 의도(의욕)를 명확히 하였고, 이에 뒤질세라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를 저지하고 자신들의 관할을 더욱 분명히 하려는 의도에서 맞불 규제법안의 제정을 추진했다.

공정위가 온라인 플랫폼의 규제 관할이 자신에게 있음을 주장하는 근거는 이른바 공정거래법의 ‘거래상 지위남용’ 조항이 “온라인 플랫폼 시장”에 적용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공정위가 이처럼 공정거래법을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안의 법적 근거로 삼고 있는 것은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이고, 온라인 플랫폼 제공사업자와 온라인 플랫폼 이용사업자의 관계는 ‘갑을관계’라는 것”이 공정위의 기본적 시각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많은 전문가들이 온라인 플랫폼은 ‘일정한 거래분야’, 즉 시장을 획정하기 곤란해서 공정거래법 제2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요건을 충족할 수 없다는 비판을 해왔다. 만약, 공정위의 주장처럼 온라인 플랫폼도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해당하여 공정거래법상 ‘거래상 지위남용’ 규정들로 규제가 가능하다면 왜 굳이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안을 따로 만들려고 하는 것인지 앞뒤가 맞지 않다.

공정위 스스로도 이러한 비판에 대해 “공정거래법의 거래상지위남용 요건인 ‘전속성’(거래 의존도)과 ‘계속성’(거래관계가 1년 이상)을 온라인플랫폼에 적용하기에는 시장 상황에 맞지 않아 불공정행위를 제재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공정화법 제정을 통해 엄격한 요건을 완화하고, 세부적인 것은 시행령을 통해 면밀한 의견수렴을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온라인 플랫폼의 속성상 온라인 플랫폼의 정확한 실체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거래 유형을 특정하여 시장을 획정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며, 온라인 플랫폼 제공사업자와 온라인 플랫폼 이용사업자의 관계는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갑을의 지위가 완전히 바뀌는 매우 유동적이어서 규제 법안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확산됐다. 이처럼 문재인정부의 온라인 플랫폼 규제정책 방향에 문제점이 드러나자 윤석열정부는 공적 규제 대신 이른바 ‘자율규제’라는 카드를 내놓게 된 것이다.

2. 자율규제에 대한 인식의 괴리

이해관계자들의 ‘자율규제’에 대한 인식의 괴리가 상당히 큰 것으로 보인다. 규제 당국은 자율규제를 ‘민관협의체를 통한 원격통제’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고, 기업 또는 자율규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자율규제를 ‘무규제 또는 규제 free’로 여기는 것 같다.

‘자율규제’의 의미가 다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까닭에 당연히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이다. 자율규제는 ‘자기 스스로 규제’(Self- Regulation)라는 의미부터 ‘자기 스스로 준수’(Self – Discipline)라는 의미까지 모두 포섭하고 있다.

Self- Regulation은 스스로 행동규범을 제정하고, 스스로 그 규범을 준수하며, 규범을 준수하지 못한 경우 스스로 미이행 규범 대한 평가나 제재를 하고, 그 평가 결과의 환류를 통해 행동규범을 재설정하는 메커니즘을 말한다.

반면 Self – Discipline은 규제당국이 행동규범(가이드라인 등)을 제정하고 피규제자 스스로 그 규범을 준수하고, 피규제자의 규범 준수 여부에 대해 규제당국이 감시 또는 모니터링을 해서 규범 미준수, 미이행에 대해 규제당국이 제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자율규제의 올바른 의미는 ‘사업자 또는 사업자단체가 이용자보호 또는 시장의 투명성·신뢰성 확보를 위해 스스로 행하는 자정 노력’이며, 규제를 전적으로 배제하는 무규제(un-regulation), 과도한 공적 규제를 제거하는데 초점을 둔 탈규제(de-regulation)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다시 말해서 자율규제란 ‘규제의 틀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주체를 타율적 정부주도에서 자율적 민간주도로 이양하는 것’을 말한다.

3. 자율규제의 유형

1) 규제당국의 개입정도에 따른 분류

(1) 강제적(Mandated)·규제적(Regulated) 자율규제

법령에 의해서 강제된 자율규제의 형태다. 정부의 지시·명령에 의해서 사업자 또는 사업자단체가 타율적으로 도입한 자율규제 시스템으로서, 행정기관에 의한 사전·사후 감독이 따른다. 사업자단체의 자율규제 역량이 충분하게 성숙되지 못한 환경에서 주로 도입되는 제도로서 이러한 자율규제는 ‘자율규제기구’보다는 ‘공무수탁사인’의 성격이 짙다. 이는 자율규제의 형식만 취하고 있을 뿐 학술적 의미의 자율규제가 아니다.

(2) 협상적(Negotiated) 자율규제

정부, 소비자단체 등과 협상을 통해서 규제의 기준과 내용을 결정하는 시스템이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자율규제기구를 설치하고, 사업자가 자율규제기구 가입을 신청하면 자율규제기구가 심사를 통해 가입을 승인하는 방식이다.

사업자 또는 사업자단체가 자발적으로 외부기관과 협상하는 방식으로 규제 기준과 내용을 채택하지만 여전히 외부기관(규제당국)의 감시·감독 등 간섭을 수용해야 한다. 물론 외부의 간섭은 타율적 간섭이 아니라 사업자 스스로 수용하는 간섭이다. 하지만 규제당국이 주도하는 자율규제라는 본질적 한계가 존재하고, 연성적 정부 규제에 가깝다. 현재 ‘개인정보보호 자율규제협의회’가 이러한 유형에 해당한다.

(3) 협동적(Cooperated) 자율규제

소비자대표, 공익대표, 정부대표, 외부전문가 등을 참여시켜 규제의 기준, 내용 등을 결정한다. 자율규제기구를 전원 외부인사만으로 구성하는 방식과 사업자대표 등 내부인사를 참여시키는 방식이 존재하며, 이때 참여하는 외부인사는 모두 사업자단체의 요청에 따라 개인 전문가 자격으로 참여한다. 최근 정부 부처 중심으로 가장 많이 논의되고 있는 모델이다. 이 역시 규제당국의 개입 정도에 따라 강제적(규제적) 자율규제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4) 순수(Pure) 자율규제

사업자 자체에서 내부 및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자율규제기구를 설치·운영하는 자율규제 시스템이다. 사업자가 자체적으로 설치한 자율규제기구에서 규범을 제정하고 그 준수 여부를 모니터링 한다. 사업자가 아무런 간섭 없이 자유의지로 규제 기준과 내용을 채택하므로 규제 기준의 준수와 집행이 용이하다. 현재 ‘당근마켓 프라이버시 및 이용자보호위원회’ 등이 이에 해당한다.

사업자 자체의 자율성이 강조되어 가장 이상적인 자율규제 형태로 보이지만, 규제 기준·내용 등을 결정할 때 외부인사의 참여가 제한될 경우 투명성·공정성을 담보하기 곤란하다. 또한 규제당국의 면책 또는 인센티브 등 유인요인이 없으면 실효성 이 저조하다는 한계가 있다.

2) 규제당국의 규범 제정 개입정도에 따른 분류

자율규제기구의 규범 제정과정에 정부(규제당국)가 얼마나 개입하느냐에 따른 분류로서, 강제적(enforced) 자율규제, 위임형(mandated) 자율규제, 승인적(sanctioned) 자율규제, 자발적(voluntary) 자율규제 등이 있다.

강제적 자율규제란 규제당국이 규범을 제정하고, 자율규제기구는 집행 및 통제를 수행하고, 규범 미준수·미이행시 규제당국이 직접 규제하는 형태다. 내부감사협회(Institute of Internal Auditors)가 이에 해당한다.

위임형 자율규제는 규제당국이 규범의 대강을 정하여 자율규제기구에 구체적 규범 제정권을 위임하는 형태다. 청소년 유해매체물 자율규제가 이에 해당한다.

승인적 자율규제는 자율규제기구가 규범을 제정하고 규제당국의 승인을 얻어 집행하는 것으로서 독일 청소년 미디어 자율규제 등의 사례가 있다.

자발적 자율규제는 그 의미 그대로 자율규제기구 스스로 규범을 정립하고 통제하는 형태다.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가 이에 해당한다.

4. 바람직한 자율규제 방향

규제당국의 역할과 개입 정도가 자율규제의 성패를 좌우한다. 규제당국의 과잉 개입은 자율규제의 탈(?)을 쓴 공적 규제이며, 규제당국의 무관심은 방임적 규제 공백상태를 초래한다. 규제당국이 자율규제기구에 대해 감독자(통제자)가 아닌 조력자의 역할을 수행할 때 진정한 자율규제 성과가 달성될 수 있다. 바람직한 자율규제 모델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32b02d1a.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647pixel, 세로 430pixel

1) 사업자 자체 자율규제기구

내부 경영진과 외부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사업자 자체 자율규제기구를 구성·운영한다. 이 기구에서 사업자의 규범 준수 여부를 감시하고, ‘사업자 단체 자율규제기구’의 권고 등이 있을 경우 이를 사업자가 이행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2) 사업자 단체 자율규제기구

사업자 대표와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사업자 단체 자율규제기구’를 구성·운영한다. 이 기구에서 표준계약서, 약관 등 자율준수 규범을 제정하여 정부(규제당국)에 보고한다. 사업자가 규범을 미준수 또는 미이행할 경우 ‘사업자 자체 자율규제기구’에 이행을 권고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별 사업자가 권고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민관협의체’에 보고한다.

3) 민관협의체

민간전문가가 포함된 민관협의체 형식의 ‘자율규제 협의체’를 구성·운영한다. ‘사업자 단체 자율규제기구’가 제정하는 규범에 대해 의견 등을 개진하고, ‘사업자 단체 자율규제기구’의 시정권고를 이행하지 않아 보고된 사업자에 대해 제재 등 조치를 결정할 수 있다. 소비자(이용자) 등이 사업자 불공정행위 등의 문제를 제기(신고)할 경우, 이에 대한 조정·중재·시정명령 등 조치권을 발동할 수 있다.

저자 :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KISO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