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은 사이버불링 차단의 선구자가 될 수 있을까

영화 ‘타짜’에서 정 마담은 화투판에서 가장 어려운 일로 호구를 ‘판때기’에 앉히는 일을 꼽는다. 일단 호구를 앉히기만 하면, 판돈을 불리고 먹는 일은 아주 쉽다는 얘기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는 주인공 고니에게 스승 평경장은 말한다. “세상이 아름답고 평등하면 우린 뭘 먹고 사니?”

주목경제와 패거리 문화를 빼고 설명하기 힘든 사이버불링(온라인 괴롭힘), 사이버렉카 현상을 보면서 종종 비열하고 냉혹한 화투판이 떠오르곤 한다.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발판을 빌미로 돈과 재미만 남은 판때기가 불특정 다수의 거대한 관심을 연료로 돌아간다. 화투판과의 차이가 있다면 이 판때기 위에서는 누군가의 죽음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온라인상 집단 괴롭힘 문제는 2022년 2월 배구선수 김인혁 씨, 인터넷방송 스트리머 잼미(조장미)씨의 죽음으로 ‘더는 미룰 수 없는 현안’이 되었지만, 언제나처럼 보란 듯 미뤄졌다. 표현의 자유가 맞물려 있는 혐오 문제는 규제나 처벌만으로 해소되기 어렵고, 전사회적 책임을 동반한다.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 누구에게도 뚜렷한 책임이 없어 보이는 상황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런 때일수록 플랫폼 사업자의 적극적인 자율규제 노력이 필요하다. 온라인 괴롭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플랫폼 사업자의 적극적인 의지 표명은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를 법적 강제력으로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이용자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몇 안 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혐오는 힘이 세다 : 재미가 최고의 가치일 때 괴롭힘은 게임이 된다

수년 간 인터넷방송 스트리머로 활동해 온 A 씨에게 사이버불링 문제해결을 위해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물었다. 그러자 A 씨는 사이버불링이 작동하는 방식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A 씨는 사이버불링이 판치는 배경으로 ‘부정적 농담’과 ‘소속욕구’를 들었다. 그에 따르면 “좀 재밌자”는 정서를 바탕에 두고 작동하는 인터넷 문화에서 농담은 필수적이다. 반면 상식적 문제제기나 윤리적으로 옳은 말은 ‘지루한 모범생’ 취급을 받는다. 인터넷 농담은 주로 아이러니와 냉소를 바탕에 두는데, 당위와 윤리를 앞세운 논리 정연한 의견은 피곤함을 먼저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연장선상에서 A 씨는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농담이 시선을 끈다고 했다. 부정적 농담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샌님’처럼 여겨지는 콘텐츠보다 상대적으로 시선이 머무르게 된다는 설명이다. A 씨는 이 때 이용자들에게 ‘가용성 편향’이 생길 수 있다고 진단했다. 부정적 농담이 대표성을 획득하는 과정이다.

사이버렉카는 이 과정을 오직 수익창출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 A 씨는 일견 정치적 입장과 논리가 있어 보이는 사이버렉카의 실상은 부정적 농담을 통해 ‘어그로’를 끌고, 대중의 소속욕구를 자극해 영리를 취하는 이들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A 씨는 사이버렉카와 그에 소속된 이들이 일종의 ‘밈’(meme)을 공유, 그룹을 형성해 ‘혐오파티’를 벌이는 것이 사이버불링의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사이버불링·혐오표현 규제 난맥상이 가리키는 것

특정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해결방안은 처벌조항을 동반한 규제다. 하지만 표현물에 대한 규제는 법적 기준을 설정하는 작업에서부터 표현의 자유 침해와 규제 실효성 논란을 불러일으켜 왔다.

형법·정보통신망법 등에서 명예훼손·모욕죄 등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제안이 대표적이다. 현행법상 모욕죄 처벌대상은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로 규정되어 있다. 이에 모욕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문제제기가 이뤄지고 있다. 처벌대상이 되는 표현을 사전에 예측하기 어렵고, 사적 다툼에서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2017년 헌법재판소는 현행 모욕죄가 명확성의 원칙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고, 혐오표현에 대한 일종의 규제로 기능하고 있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헌재 소수의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헌재 소수의견은 “상대방의 인격을 허물어뜨릴 정도로 모멸감을 주는 혐오스러운 욕설 외에도 타인에 대한 비판, 풍자·해학을 담은 문학적 표현, 인터넷상 널리 쓰이는 다소 거친 신조어 등도 모욕죄로 처벌될 수 있다”고 광범위한 ‘모욕’의 개념을 지적했다. 또 헌재 소수의견은 모욕죄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약해 사회에 대한 다양한 문제제기를 막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명예훼손죄의 경우 같은 이유로 세계적으로 비형사화되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 경우 허위사실 뿐만 아니라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까지 처벌하고 있어 언론과 사상의 자유를 제약한다는 비판이 이어져왔다. 플랫폼 사업자가 정보통신망법에 의거해 시행하고 있는 인터넷 임시조치 제도에서도 표현규제의 난맥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임시조치 제도는 공익성 정보나 권리침해 여부가 불분명한 정보라도 특정인의 문제제기가 이뤄지면 게시물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어 공적 비판여론 차단에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위헌 시비가 제기되는 인터넷 준실명제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온라인상 혐오표현 문제를 형법을 통해 규제하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로 독일이 꼽히지만, 독일에서도 난맥상은 이어진다. 독일은 형법(StGB)에서 규정하고 있는 범죄 중 폭력행위에 대한 찬양이나 음란물, 타인에 대한 모욕, 국민선동 등 21개 범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는 게시물들을 위법한 게시물로 취급해 형사처벌하고 있다. 하지만 형법에 법적근거를 둔 규제에도 불구하고 표현의 자유, 혐오표현에 대한 정의 등의 문제는 독일에서도 여전히 논쟁적인 사안이다.

2019년 한국을 방문한 비르깃 블라믈 독일 바이에른주 미디어청 청소년·이용자 보호국장은 “독일은 형법상 처벌이 가능한 혐오표현들이 명시돼 있지만, 형사처벌을 가능하게 하려면 심각한 수준의 혐오표현이어야 하는데 이를 구분하기 쉽지 않다”며 “혐오표현에 해당하는 표현이 무엇인가를 정의해야 하는데 독일도 쉽지 않다. 21개 조항 있지만 이것만으로 정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SNS 등 온라인 서비스가 개인에게 특화될수록 표현에 대한 규제나 처벌은 사생활 침해 논란을 동반할 수 있어 제도적 장치 마련에 어려움을 더한다. 김인혁 씨의 죽음에서 새삼 주목할 수밖에 없었던 사이버불링의 수단은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DM)였다. 기존 악플의 경우 게시판에 고정된 상태로 대중에게 공표됐다. 그러나 DM을 통한 사이버불링은 1:1 대화창을 기반으로 개인에게 혐오표현과 괴롭힘이 쏟아지는 형태를 띤다.

개인 대 개인의 대화창을 규제할 제도를 마련하는 것은 상상하기가 매우 어렵다. 특정 단어를 금지하는 방식의 기술적 조치를 상상해볼 수 있지만 폭력의 맥락을 교묘하게 활용하는 괴롭힘의 형태로 가해가 지속된다면 제재가 요원하다.

지난해 한국일보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일명 ‘혜린이 사건’을 보면 개인 SNS를 기반으로 한 사이버불링 범죄의 유형이 얼마나 다양하고 은밀한 지 확인할 수 있다. 가해자들은 페이스북 메신저를 이용한 단체대화방을 통해 장혜린(가명·16)양을 괴롭혔다.

가해자들은 혜린양을 향해 각종 욕설과 비하를 퍼붓고, 혜린양의 성폭력 피해사실까지 까발리는 행위를 벌였다. 이들은 혜린양이 메시지에 답을 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메시지를 확인하라며 화를 냈고, 혜린양이 전학을 고려하던 시기에 해당 지역에 살고 있던 또래를 대화방에 초대해 알리는 등의 집요함을 보였다. 이후 혜린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현행 학폭법이 우리 법체계에서 사이버불링을 유일하게 정의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같은 사건을 막기에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한 사람을 채팅방에 초대해 단체로 욕설을 내뱉거나, 채팅방에 초대한 뒤 혼자 남겨두는 것 등이 요즘 유행하는 사이버불링의 유형이라고 한다.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사실을 드러내고 적극적인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한 관찰 자체가 어려운 범죄로 사이버불링이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플랫폼 사업자는 선한 영향력의 리더가 될 수 있을까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이 몇 년 전부터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다. 각종 콘텐츠와 그에 대한 반응에서도 ‘선한 영향력’을 공유하는 세태가 과거에 비해 뚜렷해졌다. 한 쪽에서는 욕설이, 다른 한쪽에서는 ‘선’(善)을 전파하려는 노력이 일종의 놀이가 된 온라인 생태계는 양가적이다. 같은 이용자가 두 갈래 모두를 소비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모든 현상에서 가장 큰 유·무형적 이익을 향유하는 것은 플랫폼 사업자다.

인터넷 스트리머 A 씨는 사이버불링과 온라인상 혐오표현 문제 해결의 희망을 플랫폼 및 커뮤니티 사업자의 변화에서 찾고 있었다. 플랫폼/커뮤니티 사업자가 사회적 책무뿐만 아니라 언젠가 혐오에 잠식돼 서비스에 타격을 입을 것을 우려해서라도 대책을 마련하길 기대했다. 그는 인터넷 혐오문제는 인간성의 부활로 대응해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 사업자가 적극적으로 혐오 데이터를 보여주고, 혐오에 기댄 영리를 차단하며, 선에 대한 보상을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A 씨는 사이버불링을 “인간성에 대한 도전”이라고 했다.

시민사회나 전문가 의견이 크게 다르지 않다. 표현의 자유가 얽혀있는 복잡하고 애매한 혐오 문제에 있어 플랫폼 및 커뮤니티 사업자의 설명책임이 요구된다. 관련 가이드라인을 구체화하거나 투명성보고서를 제출하는 수준을 넘어 이용자인 시민들에게 혐오에 대한 기준과 조치를 명확히 설명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우리 플랫폼에 혐오 콘텐츠는 발을 들일 수 없다’는 선언을 행동으로 보여주길 기대하는 것이다.


[참고 문헌]한국일보(2021.02.01) <[16세 소녀 죽음 추적] 이름·번호 바꾸며 삶에 의지 드러냈는데… 가해자 선고 직전 극단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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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송창한

미디어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