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평] 노동의 미래

디지털 시대의 다양한 현상을 분석하고 미래의 변화 방향을 조망하는 서적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독자들과 시장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영역은 산업 구조변화로 인한 일자리와 고용의 불안정성이다. 자동화와 알고리즘, 로봇 기술이 사람들의 현재 일자리 대부분을 없애버리는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불안이 팽배한 게 배경이다.

2016년 영어로 발간된 라이언 아벤트의 <노동의 미래>가 2018년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안진화 옮김, 민음사). 숨 가쁜 디지털 경제의 변화 속에서 아벤트의 이 책은 6년 전 발간된 만큼 최신의 트렌드가 담겨 있지 않지만, 오히려 현시점에서 다시 주목할 이유가 충분하다. 인공지능과 알고리즘, 4차산업혁명이란 용어가 널리 쓰이지 않던 시기에 디지털 경제를 분석한 내용이 6년여 지난 시점에서 얼마나 타당성을 갖고 있는가를 분석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라이언 아벤트는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수석편집자이자 경제 전문 칼럼니스트로, 오랜 기간 글로벌 경제를 분석해온 국제경제 전문가다. 아벤트는 미국 노동부 산하 노동통계국에서 산업분석을 담당한 이력을 바탕으로 노동과 관련한 다양한 통계와 분석 자료를 책에서 제시한다.

국내에는 <노동의 미래 : 디지털 혁명시대, 일자리와 부의 미래에 관한 분석서>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지만, 원제는 <인간의 자산 : 21세기의 일과 권력 그리고 지위 (The Wealth of Human : Work, Power and Status in the Twenty-first Century)>다. 제목에서 아벤트는 ‘노동의 미래’에 국한하지 않고 훨씬 광범하고 다양한 경제와 사회 영역을 다룰 것임을 말하고 있다.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기술 진보가 사회 변화를 가속화하는 가운데 노동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살핀다. 산업혁명 시대와 디지털 혁명기에서 일어나는 일의 변화가 어떤 점이 비슷하고 차이가 나는지를 비교해보는 게 흥미롭다. 2부는 자동화로 인간 노동력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경제, 사회, 정치의 핵심 세력에 대한 탐구다. 3부는 과다한 노동력이 도시 생활과 금융 시장 등 우리 경제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고찰한다. 4부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와 함께 재분배를 통해 ‘공동의 부’에 이르는 길을 검토한다.

아벤트는 디지털 혁명이 세 가지 방식으로 인간 노동에 변혁을 가져왔다고 분석한다. 첫째, 자동화다. 단순노동에서 운전, 법무 보조에 이르기까지 갈수록 많은 인력을 대체하고 있다. 자율주행차량의 등장에 이어 인공지능은 번역도 하며 보도기사도 작성한다. 둘째, 세계화다. 많은 기업이 세계 전역으로 생산 거점을 분산함에 따라, 지난 30여 년간 늘어난 일자리의 대부분은 개발도상국에서 생겨났고 생산과 소비에서 세계화 트렌드는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셋째, 숙련된 전문가를 통한 생산성 증가다. 기술 발전으로 의료, 금융, 교육, 연구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고도로 숙련된 소수의 전문가가 과거에 수많은 사람이 수행했던 일보다 어렵고 많은 일을 담당할 수 있게 했다.

경제전문가로서 저자는 디지털 시대에 일자리와 생산성의 불균형에 주목한다. 지난 30년간 10억 명 이상 늘어난 글로벌 노동인구는 다음 30년 동안 또 10억 명이 늘어날 것이지만 이들을 위한 일자리는 축소되는 상황이다. 신기술은 단순노동과 전문직을 가리지 않고 점점 자동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신기술로 인해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임금이 정체되고 불평등이 증가할 것이라는 게 아벤트의 분석이다. 여기까지는 대부분의 기술전문가들, 미래학자들의 전망과 유사하다. 아벤트의 분석은 디지털 시대와 미래에 닥칠 변화를 과거 산업혁명시대의 경험과 비교해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내는 지점에서 돋보인다.

프랑스혁명이 낡은 체제(앙샹 레짐)를 무너뜨렸듯, 산업혁명은 오래된 사회질서를 파괴했다. 수많은 노동자가 생겨나면서 노동자 집단이 계급화했고 이들을 기반으로 하는 노동조합과 급진적인 정치운동이 등장했으며 선거권이 확대됐다. 교육에 대한 투자와 금주운동을 주창하는 진보적 사회운동이 생겨났고 무정부주의와 공산주의, 파시즘 같은 급진적 이념도 분출했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장면들이다. 또한 오늘날 당연하게 여기는 국가의 광범위한 사회적 역할과 개입도 산업혁명 이전에 예견하기 어려웠다.

아벤트는 사회적 변화가 세력 대결에서 패한 집단이 좀 더 나은 몫을 요구하기 위해 사회적· 정치적 권력을 행사할 방법을 모색할 때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기술적 미래에 어떤 정책을 채택해야 삶을 더 낫게 만들 수 있느냐가 아니라 누가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무엇을 가질지 결정할 격렬한 사회적 전투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느냐의 문제가 된다.

필자는 <노동의 미래> 발간 6년이 지난 2022년 6월 라이언 아벤트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최근의 상황에 대한 그의 생각을 업데이트할 수 있었다. 아벤트의 기본적인 관점이나 분석이 달라지지 않았지만, 몇몇 최신 상황에 대한 그의 생각을 알아볼 수 있었다.

아벤트는 패자 집단이 행동에 나설 때 사회적 변화가 발생한다고 봤는데, 이는 디지털 세상에서 과거와 다른 ‘집단적 정체성’으로 나타난다고 봤다. 계층에 기반한 집단 정체성이 아니라 서비스 이용자로서 국경을 초월해 새로운 형태로 형성되는 ‘이용자 정체성’이다.

아벤트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미 디지털 시대에 사회 변화에서 소외당한 뒤 서로를 찾아 나서고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해 사회변화를 이루기 위해 협력하는 걸 지켜봤다. 특이한 것은 계층에 기반하거나 재분배를 겨냥한 움직임을 보기 어렵다는 점”이라며 “디지털 세상에서 새로 생겨날 질서의 토대는 국경을 초월할 수 있는 새로운 정체성이 될 것이고 이는 산업혁명 때처럼 계급 기반이 아닐 것이다. ‘이용자’가 새로운 사회질서를 만드는 집단이 될 수 있다. 이용자 집단이 공동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개인들 간의 연대 책임을 받아들일 때 가능하다”고 밝혔다.

디지털 세상에서 새로운 규범을 만들어갈 주도 세력으로서 이용자 정체성은 산업혁명기와 달리 국경과 계급에 국한되지 않을뿐더러 전혀 새로운 형태를 띨 것이다. 아벤트가 가능 형태로 제시하는 사례는 ‘암호화폐 가상자산 커뮤니티’다. 자신들의 경제적·정치적 변화를 성취하기 위해 전혀 새로운 형태의 온라인상에서 형성된 열정적 공동체다. 이는 산업화 과정의 노조와 다른 방식의 사회운동이 어떤 형태일지를 알려준다.

최근 미국에서 구글, 아마존, 애플스토어 등 빅테크 기업에 노동조합이 생겨나고 있다. 빅테크 노조가 산업혁명 이후 노조처럼 새로운 사회규약을 만드는 과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아벤트는 회의적이다.

그는 “기술기업의 물류와 소매 부문은 노조 활동이 급증하는 곳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직업들이 20년 안에 자동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디지털 시대가 산업화 시대와 다르게 진행된다는 게 까다로운 점이다. 노조 활동이 일부 성공적이라고 해도 수익성 높은 산업에서 비숙련 일자리가 확장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는 테크기업 노조가 대중 정치에서 새로운 기반을 형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답했다.

플랫폼과 빅테크 기업들의 영향력이 경제적 영역 이상으로 확대되면서 ‘탈진실 현상’과 ‘집단 극화’ 현상으로 인해 디지털 시대에 민주주의가 위협당하는 상황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아벤트는 이런 혼란에서 벗어나는 방법 역시 새로운 집단적 정체성의 출현을 통해서일 것이라고 기대한다. 미디어를 이용하고 공유하는 새로운 규범을 만들어내는 집단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처럼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활동이 현실로 흘러드는 현상은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사회적 면역 반응이 생겨나지 않는다면 상황은 더욱 나빠질 것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아벤트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디지털 기술이 사회적 자본을 잠식하고 있으며 사회적 자본이 상실되면 얼마나 나빠질 수 있는지를 보고 있다. 이미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며 대안을 제시했다. “정부가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한 ‘비생산적 활동’의 사회적, 경제적 가치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을 만든다면 유용할 것이다. 개인들 또한 사회적 자본을 건설하고 유지하는 것을 도울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집에서 핸드폰 스크롤하는 시간을 줄이고 대신 좀 더 사회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게 <노동의 미래> 저자 라이언 아벤트의 제언이다.

저자 : 구본권

KISO저널 편집위원, 한겨레신문사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