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정보세상’에서 점점 더 소중해지는 것은?

디지털 세상에서 우리는 과거에 볼 수 없던,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을 만나고 있다.

인류 역사상 오늘날은 어느 시기보다 시민들의 평균 교육기간이 길어져 문맹은 사실상 사라졌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휴대하고 있어 그 자리에서 정보를 찾고 진위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허위 왜곡정보의 영향력은 어느 때보다 강력하고 광범해졌다. 2016년 영국 옥스퍼드영어사전이 ‘탈진실(Post Truth)’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을 정도이지만, 그 이후에도 허위 왜곡정보와 가짜뉴스의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2021년 1월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미국의 폭력시위대가 국회 의사당을 점거한 사실이나, 코로나19의 인포데믹 현상처럼 갖은 허위정보가 기승을 부리는 현실이 이어지고 있다. 왜 역사상 어느 때보다 많이 배우고 강력한 정보검색 도구를 지닌 세상에서 허위정보와 가짜뉴스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게 된 것일까?

요즘 거리 패션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마스크도, 헤나도, 레깅스도 아니다. 정면을 보고 보행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엔 지하철과 버스를 탄 승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스마트폰을 꺼내든 게 눈에 들어왔는데 이제는 걸어다니면서 정면을 보고 가는 사람이 드물다. 지하철과 버스 곳곳에는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스몸비(스마트폰과 좀비의 합성어)’ 보행의 위험성에 대한 안내도 많다. 하지만 계단을 내려가면서 문자를 보내고 횡단보도를 건너면서도 눈을 스마트폰에서 떼지 않는 행인들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스마트폰 확산 초반에는 10대와 20대 위주였던 스몸비 현상이 이젠 성별과 연령을 가리지 않고 점점 확산되고 있는 모습이다.

익숙한 현실이지만, 이런 모습이 바람직하다고 여길 사람은 드물다. 그런데도 왜 이런 현상이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확산되고 있는 것처럼 보일까? 오늘날 디지털 세상을 사는 이용자와 기업들에게는 이러한 문제적 현상을 방치하지 말고 심각하게 여기는 태도가 요구된다.

허위 왜곡정보와 스몸비 현상은 서로 다른 문제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이용자들의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디지털 콘텐츠 이용의 결과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용자들의 선택이 항상 현명한 것도, 지혜로운 것도 아니라는 걸 디지털 콘텐츠 소비실태는 보여준다. 왜 이용자들은 디지털 생태계에서 현명한 선택에 실패하고 스스로를 위험에 처하게 만들고, 허위 정보에 빠지게 하는 것일까?

인터넷이 범용 플랫폼이 되고 경제적 생태계를 형성하게 되면서, 윤리를 외면한 지나친 수익화 경쟁이 부작용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 9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연속으로 보도한 페이스북의 그늘진 실태는 페이스북이라는 기업과 회원의 문제를 넘어 인터넷 생태계와 이용자, 기업 모두에게 무거운 과제를 안겼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지난 3년 동안 여러 차례의 내부조사에서 자회사인 인스타그램이 10대 소녀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정신건강을 해친다는 걸 확인했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이를 공개하지 않고 오히려 13세 이하 어린이용 인스타그램을 따로 개발하고 있는 사실이 알려졌다. 페이스북 연구진은 “10대 소녀의 32%는 자신들의 몸에 대해 불만을 느낄 때 인스타그램이 더 비참하게 만든다고 답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데 이어, 영국 사용자의 13%는 자살 충동 원인으로 인스타그램을 지목하고, 미국 사용자의 6%도 같은 반응을 보인 것을 파악했다. 이런 내용이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를 비롯해 고위 경영진에 보고됐지만, 실태는 개선되지 않았다. 세계 최대의 사회관계망 서비스인 페이스북이 외부에 내건 모토는 “더 개방되고 연결된 세상(making the world more open and connected)”과 “세상을 더 가깝게(bring the world closer together)”로 공표됐지만, 실제의 목표는 이용자들의 방문과 이용시간을 극대화해 수익을 늘린다는 것에서 조금도 달라져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페이스북만의 문제도 아니다. 더 많은 방문자와 체류시간 극대화는 인터넷 콘텐츠 산업계에 보편적인 목표이자 성공의 지표다. 디지털 생태계는 24개월마다 마이크로칩의 집적도가 2배로 높아진다는 무어의 법칙에 영향을 받는다. 점점 더 많은 정보가 끝없이 생산되고 갈수록 그 생산 속도는 빨라지고 집적도가 높아진다. 콘텐츠 생산자와 기업들로서는 사업 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콘텐츠는 이용자에 의해 소비될 때에만 가치를 지니는데, 이용자들의 선택을 받기가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콘텐츠 생산은 빠르게 늘어나지만 이용자들이 콘텐츠에 할당할 수 있는 이용시간은 좀처럼 늘어나지 않는다. 전국민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된 오늘날의 스마트폰 보급률 포화상태는 더 많은 이용자를 확보하는 방법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알려준다. 계단과 횡단보도 이용 순간까지 콘텐츠 이용시간으로 바쳐지는 현상의 배경이다. 이용자당 콘텐츠 소비시간을 늘리려면 콘텐츠는 더욱 재미있고 몰입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인터넷의 다양한 현상을 설명해주는 열쇳말은 ‘주의력 빼앗기’다. 197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 허버트 사이먼은 1971년 “정보가 늘어날수록 관심 부족 현상이 생겨난다”며 ‘주의력 경제’라고 이름붙였다. 정보사회에서는 이용자의 관심과 주의력이 가장 가치 높은 ‘희소자원’이 된다. 넷플릭스의 최고경영자 리드 헤이스팅스는 “넷플릭스는 이용자의 시간을 놓고 경쟁하기 때문에 스냅챗, 유튜브, 수면 등이 경쟁자”라고 말했다.

행동경제학·심리학을 연구하고 구글에서 디자인 윤리학자로 일해온 트리스탄 해리스는 이용자 주의력을 붙잡기 위한 인터넷 서비스의 비윤리적 디자인을 지적해왔다. 그는 구글을 떠나 2018년 비영리단체 ‘인도적 기술 센터(Center for Humane Technology)’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해리스는 뉴스피드·이메일 등의 서비스 설계가 카지노 슬롯머신 사용자환경(UI)처럼 디자인됐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메일이나 콘텐츠를 확인하기 위해 조작버튼없이 화면을 아래로 밀어서 갱신하는 기능과 무한 스크롤 기능은 슬롯머신의 레버 당김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미국 작가 행크 그린은 “현재 존재하는 가장 정교한 소프트웨어는 이용자가 사이트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알아내는 임무를 맡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이용자들이 재미와 관심 위주의 수동적이고 습관적인 콘텐츠 소비에 머물러 있으면 스스로 위험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주의력을 의식적으로 소비하고 현명한 이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

독일 출신의 미국 작가 베레니크 슈라이버는 정보기술매체 <미디엄> 기고에서 이용자가 주의력을 되찾는 방법을 5단계로 제시했다. 첫째는 자신이 주의력을 쏟아붓는 대상들의 목록을 작성하는 일이다. 두 번째는 스마트폰의 설정 메뉴에서 주의력을 노리는 앱을 삭제하거나 밝기 등을 조정하는 일이다. 세 번째는 앱 장터에서 뉴스피드 제거기(Newsfeed Eradicator)나 앱 차단기를 설치해 소셜미디어의 자동노출 정보와 거리를 두고 사용습관을 수시점검하는 일이다. 네 번째는 디지털 기기의 속보 등 각종 알림을 비활성화하고 ‘방해금지 모드’를 사용하는 일이다. 다섯 번째는 넷플릭스·유튜브 등의 자동재생 기능을 비활성화하는 선택이다.

디지털 기술이 우리의 활동과 시간 쓰는 방식을 지배하는 만큼, 이를 다루는 기술과 태도를 이용자들에게 가르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사회적 과제가 되고 있다. 또한 디지털 콘텐츠 기업들에게는 방문과 체류시간 극대화보다 더 나은 목표를 설정하고, 맹목적 소비자가 아닌 현명한 이용자들의 선택과 지지를 받는 서비스를 설계하고 고민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저자 : 구본권

KISO저널 편집위원, 한겨레신문사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