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진실(Post Truth) 시대의 도래와 소셜 미디어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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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 진실 시대의 도래

최근 국제정세 및 각국의 국내정치의 급변속에서 이러한 시대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탈(脫) 진실(Post-truth 또는 Post fact)’과 ‘대안적 사실(alt-facts, Alternative fact)’이라는 다소 낯선 용어들이 회자되고 있다. 탈 진실이란 진실이 다른 고려사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가치를 부여받고, 그 결과 진실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해 대중이 수용적인 경향을 보이는 현상을 의미한다.1 최근 제기되고 사용되는 맥락은 주로 정치와 관련되며(post-truth politics), 객관적 사실보다 감정적 호소가 여론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의미한다.2 또한 탈 진실과 함께 거론되는 개념으로서 대안적 사실이란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 취임식 인파와 관련한 백악관과 언론의 갑론을박 과정에서 제기된 개념이며, 탈 진실의 의미와 맥락을 같이한다. 당시 캘리앤 콘웨이(Kellyanne Conway) 백악관 고문이 뉴욕 타임즈 등 기존 매체들의 거짓 브리핑 지적에 대해 이것은 ‘대안적 사실’이라고 해명하면서 논란이 된 개념이다.3 양 개념은 사실의 외면이라는 점, 그리고 정치와의 관련성 속에 등장하고 있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탈 진실 개념의 등장은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에 대해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개념정의한 랄프 케예스(Ralph Keyes)는 탈 진실이란 진실을 벗어나는 것에 허용적인 윤리체계라고 설명한다. 그는 이 현상의 핵심은 사람들이 과거보다 거짓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 사회적 맥락과 이를 부추기는 사회의 작동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최근 탈 진실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것은 정치적 맥락에서이다. 2016년 세계적 관심을 모았던 영국의 EU 탈퇴(Brexit) 국민투표, 프랑스 및 유럽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극우파의 발호, 그리고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 등을 계기로 이 개념이 다시 부상하였다. 브렉시트 투표 과정에서는 EU 잔류 및 탈퇴의 문제점에 관해 사실 확인이 되지 않았거나 거짓인 정보가 브렉시트 지지자 사이에서 유통되었고, 이것이 브렉시트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는 분석도 있다. 또한 미 대선과정, 트럼프는 검증되지 않은 많은 발언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이 중 다수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음에도 대통령 당선에 성공했다. 문제는 이러한 경향이 여러 국가의 정치에서 공통되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들 공통적 현상의 이면에는 소셜 미디어의 급속한 확산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등장 배경

탈 진실 시대의 등장 배경으로는 기존의 공적기관과 미디어에 대한 불신, 냉전종식 이후 이념의 공백을 메우며 등장한 정치적 양극화와 포퓰리즘의 발호, 그리고 정보의 원천으로서 소셜 미디어의 등장으로 인한 미디어 생태계의 근본적 변화 등이 지적되고 있다. 자유주의자들은 작년 영국과 미국에서 발생한 결과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소셜 미디어의 에코 체임버(Echo Chamber) 효과, 가짜 뉴스(Fake news)의 폐해, 정치적 거짓에 대한 공중의 무관심 등을 들고 있다. 이러한 주장의 근저에는 정치가와 대중들은 점점 사실을 부정하며, 진실을 왜곡하고, 전문적 지식보다 감정에 휘둘리고 있다는 판단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들에는 왜 우리는 탈 진실시대에 돌입했는지, 그렇다면 진실의 시대는 무엇이며, 언제 끝났는지 등에 대해서는 명확히 설명하고 있지 않다.

특히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탈 진실 현상을 촉진하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이다. 소셜 미디어의 확산으로 정보의 발신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유통되는 정보량이 급증하고 있으며, 이 와중에 상충되는 정보로 인한 혼란과 전문가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정보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고 있다.4 소셜 미디어의 확산과 더불어 신뢰도와 평판을 고려해야 하는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 즉 기존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신문·방송과 달리, 생산하는 정보, 즉 뉴스에 대해 책임을 질 필요가 거의 없는 다양한 인터넷 매체가 새로운 정보원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미디어 생태계의 변화 속에서 기존 미디어의 영향력 약화와 이들에 대한 불신, 인터넷 매체를 유통시키는 플랫폼의 자정작용 부족, 가짜 뉴스와 같이 인터넷 기반 비즈니스 모델에 착안한 각종 거짓 정보의 범람으로 인해 탈 진실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탈 진실 시대의 등장이 소셜 미디어만의 책임은 아니며, 기존 미디어가 탈 진실 현상의 확산을 더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지난해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영국이 매주 EU에 지불하는 기여금과 관련하여 EU 이탈파가 전개한 논리와 인터넷 정보를 선(The Sun)이나 데일리메일(Daily mail) 등의 대중지가 편승하면서 거짓 정보는 더 확산되었다. 이는 탈 진실시대의 도래에 대한 책임이 기존의 정치권이나 소셜 미디어들에만 있는 것은 아니며, 거짓정보가 기존 언론사들을 통해 인용되거나 확산되는 경우 더 파급력이 커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즉 탈 진실이 횡행하는 배경에는 사실 확인 및 진실추구를 소홀히 하고 자극적인 정보를 흘려 부수와 조회 수를 늘리고자 하는 기존 미디어의 존재도 있다.

주요 쟁점

탈 진실시대와 관련하여 현재 제기되는 쟁점으로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탈 진실시대라는 개념 자체를 둘러싼 논쟁이다. 브렉시트와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을 기점으로 이른바 정치에 있어 사실이 무시되는 탈 진실시대로 돌입하였다는 주장이 있는가하면, 애초 진실의 시대가 존재했는가라는 반박도 제기되고 있다. 정치적 영역에서 탈 진실이 비합리적 여론 형성과 정치적 결정의 원인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정치는 원래 거짓을 동반해왔을 뿐만 아니라, 가치의 문제에 대해 진실이라는 개념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개념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과거에도 정치에 많은 거짓이 있었지만, 이를 말하는 정치인이나 받아들이는 대중들의 태도가 과거와는 달라졌다고 본다. 즉 이제는 진실하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게 여겨지거나, 거짓이 드러났을 때 정치인이 감당해야 할 부담이 훨씬 작다. 원래 정치인은 많은 거짓말을 했지만 과거에는 그것을 진실인 것처럼 보이려 노력했다면, 지금은 정치가의 말이 사실인지 여부에 대해 그 정치가도, 지지자도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5

둘째, 대응 방안에 대한 이견이다. 현재 야기되고 있는 현상을 탈 진실시대로 부르던 아니던 존재하는 현상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주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법제도적 규제 강화 등을 주장하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진실의 완벽한 의미의 확인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규제가 곧 표현의 자유의 침해로 연결될 수 있으므로 자율적 노력에 맡겨두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소셜 미디어와 관련하여 현재 선거를 비롯한 주요한 정치적 일정을 앞둔 국가들에서 모색되고 있는 가장 대표적 방안으로는 디지털 정보 및 뉴스에 대한 사실확인 기능의 강화이다. 즉 정치인의 발언이나 인터넷 매체 등의 정보유통에 대해 사실관계 확인을 전문으로 하는 ‘팩트 체크(Fact Checker)’ 매체나 기관을 활용해 정확한 정보의 유통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은 사회경제적 상황의 악화 국면에서 사람들이 자기들의 생각을 강화해줄 뉴스나 사실을 찾고 있었고, 가짜뉴스가 그런 대중들의 심리를 파고들은 측면이 있다고 할 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안이 되지는 못한다고 할 수 있다.

탈 진실 시대의 민주주의와 소셜 미디어의 역할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냉전의 종식 이후 대처(Margaret Hilda Thatcher) 전 영국수상은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라고 선언했지만, 트럼프는 대안적 사실의 존재를 주장하고 있다. 캐나다의 학자인 조셉 히스(Joseph Heath)는 미국인이 문득 깨달았을 때 미국의 정치체제는 왼쪽이냐 오른쪽이냐가 아니라, 미친 파와 미치지 않은 파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게다가 미친 파 쪽이 우세해 보인다고 지적하고 있다. 히스는 미국에서 이와 같은 ‘크레이지한’ 경향이 무대 표면에 등장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이지만 급격히 이상해진 것은 이른바 냉전시대의 이념대결이 끝나면서 라고 주장한다. 즉 냉전의 종식 이후 정치는 사실(또는 진실)과 실행의 문제가 되었고, 사실에 근거한 정치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비현실적 믿음이 정치에의 환멸을 가져온 것이라 분석하고 있다.6

탈 진실은 영국과 미국의 미래를 크게 바꾸었다. 향후 전 세계에서 비슷한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은 의심 할 여지가 없다. 서로 다른 의견 간 교류 없이 자신이 믿는 가치만이 강화되며, 모두가 ‘진실’로 인정하는 합의점을 찾기 힘든 사회에서 신뢰수준을 높이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간의 커뮤니케이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디지털 미디어생태계의 급격한 변화가 이러한 흐름에 주요한 역할을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기성 언론은 물론 탈 진실시대의 정보유통을 주도한 장으로서 의심을 받고 있는 소셜 미디어의 향후 역할에 대해 근본적 고민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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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eyes, Ralph. The post-truth era: Dishonesty and deception in contemporary life. Macmillan, 2004. [본문으로]
  2. Oxford English Dictionary. “post-truth.” Oxford Dictionaries, Accessed 22 Feb. 2017. available: http://OxfordDictionaries.com/ [본문으로]
  3. Blake, Aaron. “Kellyanne Conway says Donald Trump’s team has ‘alternative facts.’ Which pretty much says it all.”. The Washington Post. Retrieved January 22, 2017. [본문으로]
  4. The New York Times. “The Age of Post-Truth Politics.” www.nytimes.com/. 24 Aug. 2016 Accessed 22 Feb. 2017. [본문으로]
  5. “The post-truth world: Yes, I’d lie to you.” The Economist. 10 Sep. 2016 available: http://www.economist.com/ [본문으로]
  6. Joseph Heath, Enlightenment 2.0: Restoring Sanity to Our Politics, Our Economy, and Our Lives Harper Collins, 2014. [본문으로]
저자 : 김유향

국회입법조사처 사회문화조사심의관, (전) KISO저널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