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 진실보다 강한 탈진실의 힘

아무리 그래도 ‘개소리(Bullshit)’라니, 이런 단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해도 괜찮을까? 처음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2020, 다산북스)를 접했을 때 한편으로는 놀라면서 다른 한편으로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책을 읽고 난 지금도 개소리라는 비속어가 여전히 편하지는 않지만, 저자(James Ball)와 역자(김선영)가 왜 가짜뉴스, 허위정보 등의 단어를 뒤로하고 굳이 개소리라는 단어를 선택했는지는 이해할 수 있다.

개소리의 사전적 정의는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조리 없고 당치 않은 말을 비속하게 이르는 말’이다(표준국어대사전). 책의 표지에 정리되어 있는 것처럼 거짓말이 ‘사실, 진실을 염두에 두고 전략적으로 꾸며낸 말’이라면, 개소리는 ‘진실이나 거짓 어느 쪽으로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허구의 담론’이다. 저자에 따르면 개소리에는 가짜뉴스뿐 아니라 왜곡된 뉴스, 인기몰이를 하는 허위 정보, 극당파적인 밈, 정치 캠페인이 쏟아내는 개소리 등이 모두 포함된다(341쪽). 진실 여부에 대한 검증 없이 아무렇게나 쏟아내는 이런 무책임한 메시지들을 어떤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개소리라는 단어가 선정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자유롭고 소통적인 미디어 세상에서 개소리를 생산하고 확산하는 주체는 다름 아닌 영향력 있는 정치인, 주류 언론, 주요 플랫폼 기업, 그리고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정치인과 주류 언론은 각각 정치적 목표와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무책임하고도 교묘하게 개소리를 생산한다. 주요 플랫폼 기업은 경제적 이익을 위해 개소리를 널리 퍼뜨리는 역할을 기꺼이 수행하며, 우리 모두는 개소리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주변 사람들과 공유한다. 미디어 시스템을 구성하는 주요 주체들이 개소리의 생산과 확산에 사이좋게 기여함으로써 이른바 개소리 생태계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영국의 브렉시트 과정을 사례로 개소리 생태계의 원리를 상세하고 설득력 있게 설명해 낸다. 그의 통찰은 먼 나라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미디어 현실에 놀랄 만큼 정확하게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개소리가 담론을 주도하는 현실을 벗어나 진실이 득세할 수 있는 미디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정치인은 거짓 선동이 궁극적으로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미디어를 탓하고 공격함으로써 충성적인 지지자들을 자극하고 설득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정치인이 추구해야 할 정도(正道)는 아니다. 또한 주류 언론은 스스로가 개소리 생태계의 주요 구성원임을 자각하고 저널리즘 규범을 확립해야 한다. 언론사들은 극심한 재정 위기와 신뢰도 하락, 그리고 새로운 뉴스 미디어의 등장으로 삼중의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거나 저널리즘 규범을 정립해야 한다는 요구는 너무 한가하고 비현실적인 조언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치인이나 유명인이 쏟아내는 정보와 평론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객관적인’ 보도가 결과적으로 개소리의 확산에 기여하는 것에 불과하며 극히 편향적인 보도일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객관성, 균형성, 공정성 등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 온 저널리즘의 가치가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어떻게 해석되고 실천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저자는 개소리 생태계 형성에 있어 모든 주체가 공평하게 책임을 나눠지고 있다고 평가하지만, 나는 미디어 플랫폼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판단한다. 양질의 뉴스와 가짜뉴스가 구분되지 않은 채 동등하게 배치되는 뉴스 플랫폼, 그리고 누구나 쉽게 개소리를 생산하고 확산할 수 있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의 구조는 현재의 개소리 생태계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다. 미디어 플랫폼은 경제 활동에서 사적 친목 활동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우리의 삶을 효율적이고 풍요롭게 해 주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탈진실이 진실을 압도하는 왜곡된 담론 형성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 그것이 의도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플랫폼 기업의 운영에 가장 중요하게 적용되는 경제 논리는 개소리 생태계의 형성과 발전의 가장 근원적이고 중요한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미디어 플랫폼은 개소리의 생산과 확산을 막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진실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사실을 확인해 주는 공간, 거짓을 말하지 않는 공간, 수용자들이 진실 여부를 확신할 수 없을 때 믿고 찾아갈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현재 일부 언론사와 포털이 마련해 놓고 있는 팩트체크를 추구하는 공간들이 여기에 해당하지만, 이들은 아직 주류 공간이 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의미 있는 정보와 자료들이 풍부하게 제시되지 않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이용자의 수도 적다. 탈진실을 물리칠 수 있는 수준의 대중적인 진실의 장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짜뉴스를 비롯한 개소리는 진실보다 더 매력적이고 더 빨리 확산되며 특정 집단의 사람들을 더 효과적으로 설득한다. 탈진실과 진실이 미디어라는 무대에서 공정하게 경쟁을 한다면 탈진실이 승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미디어 플랫폼이 해야 할 일은 단순히 진실의 공간을 마련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이 주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트래픽이 가장 많은 길목에 진실의 공간을 마련하고, 사람들의 방문을 유인하는 다양한 장치들을 제공하여 공간을 활성화하는 것이 그 예이다. 이윤 추구라는 경제적 목표에 따라 움직이는 미디어 플랫폼에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개소리 생태계를 약화시키고 건강한 언론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제 몫을 다해야 할 책무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개소리 생태계의 또 다른 주요 주체는 수용자, 곧 우리들 자신이다. 우리는 아무리 교육을 잘 받았고 양질의 정보와 저질 정보를 분간할 수 있는 판단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심리적 이유로 인해 개소리에 넘어간다. 저자는 확증편향과 역화효과, 동조성 등의 개념을 통해 이러한 수용자의 심리를 설명한다. 자신의 믿음을 키우는 정보만 추구하고 믿음에 반하는 정보는 배척하는 태도(확증편향), 신념에 반하는 증거를 알게 될 때 신념을 바꾸기보다 오히려 확고히 하는 경향(역화효과), 그리고 동료 집단의 판단에 자신의 의견을 맞추는 성향(동조성)으로 인해 개소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이로 인해 개소리 생태계가 더욱 성장한다는 것이다. 진실을 수호하고 개소리 생태계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수용자는 미디어를 편향적으로 이용하는 필터버블을 터뜨리고,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정보와 의견을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당연하게 믿어 온 담론을 의심해 보고, 터무니없는 음모론을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등의 노력을 해야 한다. 실천이 불가능해 보이는 제안이지만, 미디어 수용자는 개소리 생태계의 위험을 직시하고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저자는 기자답게 날카로운 시선으로 개소리가 진실을 압도하는 탈진실의 시대를 통찰한다. 레거시 미디어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개소리를 생산하게 되는 과정, 소셜 미디어와 뉴미디어가 개소리 생태계의 중심으로 부상하게 된 원리, 그리고 정치인과 수용자가 개소리를 생산하고 확산하고 수용하는 방식 등을 풍부한 사례들과 함께 명확하게 설명해 낸다. 그리고 더 나아가 어떻게 개소리에 맞서 진실을 수호할 것인지 나름의 대안을 제시한다. 정치인과 미디어, 수용자가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안하면서 낙관적인 전망을 전개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이 문제의 일부라면, 우리 모두가 해결책의 일부일 수 있고 또 언제든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있다”면서 “당장 우리가 시작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시작해보자”는 제안(371쪽)으로 책은 마무리된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원인이므로 누구든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은 지나치게 낙관적이어서 허무하기까지 하다. 우리 모두가 원인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동시에 ‘함께’ 움직이지 않으면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실이 개소리를 압도하는 진실의 시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미디어와 정치인과 수용자, 더 나아가 정부와 유관 기관들이 모두 ‘함께’ 정교한 규범과 개선책을 만들고, 이를 모두 ‘함께’ 실천해 나가는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저자의 논의가 구체적이고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는 못하지만, 진실의 시대를 열기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 배진아

공주대학교 영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