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시대 이용자 트렌드 변화…’듣는 콘텐츠’의 부상
문자→이미지→영상→이제는 음성…“연결되고 싶다” 팬데믹 속 기술 발전, 오디오 황금기 지금부터
잊혀가던 오디오 산업이 다시 황금기를 맞고 있다. ‘2세대 소셜미디어 혁명’이라는 오디오 열풍은 ‘클럽하우스’가 이끌고 있다. 지난해 4월 출시된 클럽하우스는 1년도 안 돼 글로벌 이용자 810만 명을 모았다. iOS 베타버전으로만 출시된 데다 ‘초대’ 기반 SNS임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국내에도 미디어 등을 통해 알려진 지 약 한 달 만에 이용자 20만명을 돌파했다. 클럽하우스를 써보겠다고, 아이폰 중고거래량까지 늘고 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카톡이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이 아닌 클럽하우스를 켠다는 ‘클하 폐인’이 등장할 정도다.
기존 소셜 미디어도 오디오 서비스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 클럽하우스와 같은 음성 기반의 SNS가 향후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단 점을 포착, 빠르게 사업기반을 넓히고 있다. 아마존은 팟캐스트 제작사인 원더리(Wondery)를 인수, 오디오 콘텐츠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최근 국내에 상륙한 스포티파이는 인기 팟캐스트 스튜디오 김렛 미디어(Gimlet Media)를 시작으로, 팟캐스트 디지털 출판사 등을 잇달아 인수했다. 조 로건이나 미셸오바마 등 유명인과 독점계약도 체결했다. 트위터는 생방송 대화를 자체적으로 다루는 플랫폼을, 애플도 팟캐스트 구독 서비스 출시를 모색 중이다.
10년 전인 2011년 트위터, 페북이 ‘아랍의 봄’의 중심에서 전 세계로 퍼졌다면 2021년에는 팬데믹 속에서 ‘소리’를 매개로 한 소셜미디어가 급부상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 동영상 서비스가 인터넷과 모바일, 클라우드 등과 결합해 일상을 송두리째 바꿨듯 이제는 오디오가 네트워크와 비즈니스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 문자→이미지→영상…이제는 음성? 셀럽들의 놀이터 ‘클럽하우스‘ 실시간 대화가 핵심
클럽하우스의 핵심 기능은 ‘대화’다. 재미와 이해를 돕는 영상도 없고 눈길을 끄는 섬네일도 없다. 대화방의 제목과 대화 내용만이 전부다. 이렇게 단순한 인터페이스와 기능뿐인데도 글로벌 열풍을 일으킨 비결은 음성 기반의 ‘실시간 쌍방향’ 소통에 있다. 클럽하우스는 유튜브처럼 파일 업로드가 불가능하다. 오직 약속된 시간에 들어온 참여자들이 실시간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유튜브와 팟캐스트도 라이브의 경우 실시간 댓글로 소통할 수 있다. 그러나 글을 쓰는 것보다 말하는 것이 훨씬 빠르다. 텍스트 특성상 많은 댓글이 빠른 속도로 달리면 진행자가 일일이 대응하기도 어렵다.
클럽하우스 투자를 주도한 앤드류 챈 안드리센 호로위츠는 “클럽하우스는 팟캐스트처럼 강의나 강연에 참석하는 것과 같지만, 듣는 것뿐만 아니라 대화도 가능하다”면서 “할 말이 있으면 그냥 손들면 된다”고 말한다. 그는 “클럽하우스는 편집된 콘텐츠를 소비하는 곳이 아니다. 이런(가공되지 않은) 접근이 더 인간적이면서 온라인 참여도를 높이는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클럽하우스 이용자들은 글을 매개로 하는 트위터나 페이스북보다 표현이 자유롭고, ‘줌’ 같은 영상 플랫폼보다는 노출 부담이 적은 점이 장점으로 꼽는다.
여기에다 ‘인플루언서’는 대중의 시선을 클럽하우스로 단번에 끌었다. 오프라윈프리나 일론 머스크 같은 방송인, CEO, 정치인 등은 평소 사람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그러나 클럽하우스에서는 손만 들면 얼마든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클럽하우스가 잘나가자 페이스북도 이와 유사한 오디오 채팅앱 ‘파이어사이드(Fireside)’를 개발했다. 파이어사이드는 대화와 방송, 녹음 등을 수익화하는 플랫폼을 목표로, 크리에이터에게 어떤 콘텐츠가 인기인지 분석해준다. 녹음 기능이 없는 클럽하우스와는 달리 파이어사이드는 녹음 기능이 추가될 예정이다.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이같은 오디오 플랫폼에서는 평소에 만나기 힘든 유명인부터 지인과 그 지인의 친구까지 같이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면서 “비대면 환경에서 새로운 플랫폼으로 기존 SNS를 빠르게 대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유튜브, 귀로 들으며 출근 준비·공부…Z세대 열광하는 오디오계의 유튜브 ‘스푼라디오’
그렇다고 팟캐스트나 유튜브의 매력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비대면 수혜를 가장 입은 곳이 바로 유튜브다. 다만, 유튜브에도 오디오 바람이 불고 있다. 영상 콘텐츠에서 청각적 요소를 다루는 이른바 ‘듣는 유튜브’가 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유튜브를 볼 때 아예 소리를 꺼두고 보는 사람도 많아, 자막은 필수였다. 그러나 요즘엔 코로나19로 유튜브 사용량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출근길, 등굣길, 공부 시간 등 시청 사각지대에서도 유튜브를 켜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 대신 귀를 쫑긋 세웠다.
GRWM(Get Ready With Me) 콘텐츠가 대표적인 ‘듣는 유튜브’다. 크리에이터는 학교 갈 준비, 출근할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시청자는 가만히 앉아 영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크리에이터가 준비하는 소리를 들으며 함께 나갈 준비를 한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유튜브로 중계하는 일명 ‘공방’(공부 방송)은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잉포스트는 지난달 14일 한국 학생들의 공부 방송을 언급하면서 “공부할 때 가상의 파트너를 제공한다”다고 소개했다. 보도에서는 “영상은 책장을 넘기는 삭막한 소리와 종이에 연필을 긁는 소리를 동반한 채, 테이블에 앉아 공부하는 한국 학생을 집중적으로 촬영한다”고 전했다. 실제 해당 방송 시청자들은 “공방을 보면서 과중한 학업 스트레스를 받는 게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과 자극을 얻는다”며 입을 모은다.
미국에 클럽하우스가 뜨기 전, 한국에선 ‘스푼라디오’로 오디오 열풍을 먼저 예고했다. 사용자 70% 이상이 18~25세로, ‘오디오계의 유튜브’로 불린다. 스푼라디오에서는 매일 10만 건 이상의 오디오 라이브 방송이 진행된다. 스푼라디오 DJ와 청취자는 짧게는 2시간, 길게는 10시간까지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눈다. 정치나 사회 문제 같은 거창한 주제가 아닌 학교에서 있었던 일, 좋아하는 가수, 진로 고민 같은 소소한 이야기가 오간다. 공부 방송, 숨소리만 내는 수면방송, 청취자들을 연결해주는 소개팅 방송 등 종류도 다양하다. DJ들은 “Z세대에게 스푼라디오는 단순히 라디오 역할이 아닌 일종의 ‘노는 문화’이고 SNS”라고 말한다. 스푼라디오는 2016년 3월 출시 이후 글로벌 다운로드 2000만 명, 월 이용자는 300만 명을 넘어섰다.
◇ ‘소외될 지 모른다’는 두려움, 다양한 연결로…“글보다 말이 빨라” 팬데믹 속 기술 급성장
업계에서는 사양 산업으로 치부되던 오디오 산업의 성장 원인을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기술 발전과 이를 통한 ‘자유로운 상호작용’을 꼽는다. 이런 변화 속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은 기름을 부었다.
사람들은 소통하고 싶어하는 존재다. 언택트 환경 속에서도 ‘연결’을 원했다. 특히, SNS 속에서 자라온 Z세대는 ‘쏟아지는 정보와 연결의 세계에서 때론 혼자 있고 싶어하면서도, 어느 세대보다도 깊은 외로움과 불안을 느끼며 타인과 연결되고 싶은’ 특성을 보인다. 소외에 대한 두려움 ‘FOMO(Fear of Missing Out)’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할 정도다.
FOMO는 클럽하우스가 급부상한 비결이기도 하다. 클럽하우스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초대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다. 이런 폐쇄성과 트렌디한 인물들이 참여하는 유행과 더불어 ‘나도 하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하고 있다. ‘어디선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지만 나는 소외된다’는 생각에 불안을 느끼는 것이다. 이런 불안감은 또다시 다양한 연결을 지향한다.
영상 콘텐츠에 익숙한 이들에게 ‘라디오’라는 플랫폼이 신선한 측면도 있다. ‘친해지고 싶지만, 얼굴 노출은 부담스러운’ 이용자들은 익명으로 소통하면서, 소리를 공유하며 공부도 하고, 고민을 털어놓는 공간이자 만남의 장소로 드나든다.
‘손쉬운 창작’도 오디오 소셜미디어의 매력 포인트다. 얼굴 노출이나 촬영 편집 등의 기술을 요구하지 않아 기존 플랫폼 활용이 어려운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각본도 필요 없다. 모닥불 주변에 둘러앉아 이야기 나누듯이 하면 된다. 듣는 유튜브도 마찬가지다. 귀로 유튜브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영상의 길이는 중요치 않다. 어차피 실제 무언가를 준비하는 시간만큼의 재생 시간이 온전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술 발전은 오디오 붐에 불을 지폈다. 벤처캐피탈 베시머 벤처파트너스는 “자연어 처리(NLP)와 음성 인식, 음성의 텍스트 전환기술이 분기점에 이르렀고 정확성은 95%를 넘어섰다”면서 “말하는 게 받아쓰는 것보다 더 빠른데, 기술 발전이 더 빠르고 효율적인 상호작용을 가능케 해줬다”고 말했다.
◇ 韓 오디오 시장 커지고 있지만 주류 인정 못 받아…”저평가된 곳, 성장 가능성 높다”
국내에서도 네이버 오디오 클립, 팟빵 등을 중심으로 오디오 콘텐츠 시장이 날로 커지고 있다. 밀리의 서재나 윌라 같은 플랫폼은 오디오북 서비스 규모를 키워나가는 중이다.
다만, 미국처럼 판을 키울 만한 수익화 모델이 뚜렷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나마 가장 큰 재원으로 꼽히는 광고 시장마저 어수선하다. 미국처럼 팟캐스트에 대한 공식적인 트래픽 산정 기준이 없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국내에서는 아직 팟캐스트 등 오디오 플랫폼 트래픽이 주류 광고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애플이나 구글, 아마존 같이 메이저 플레이어들이 아직 없고, 콘텐츠가 풍부한 것에 비해 한국 오디오 시장이 저평가돼 있다”면서 “작은 한국 시장에 스포티파이가 상륙한 여러 가지 이유 중에 하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