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멸종 The Extinction of Experience

1. 들어가며

멸종. 무분별한 남획이나, 환경오염, 기후 변화, 천적의 등장 등 자연적 또는 인위적 위협요인으로 개체수가 크게 줄어들어 보호와 관리가 필요한 멸종위기종과 같은 생물을 일컬을 때 사용되는 단어다.

저자는 이 책의 제목을 ‘경험의 멸종’으로 정했다. 경험에 멸종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으니, 가까운 장래에 경험이 소멸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고, 멸종위기종에 대한 대응 방식과 같이 경험에 대해서도 보호와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

저자는 ’경험‘을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공간’에서 ‘자신의 육체‘를 통해 즐기는 것이라고 정의하며, 시간, 공간, 육체 3가지의 물리적이고 유한한 요소가 함께 할 때, 그것이 진정한 ‘경험’이며 그것을 ‘직접 경험’이라고 분류한다.

이와 달리 시간이 지난 후 사진이나 다른 사람과의 이야기를 공유함으로써 그 사건을 다시 경험할 수 있겠지만, 물리적이고 유한한 공간과 환경에서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닌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 인공지능 등 다양한 기술을 통해 전달된 경험을 ‘매개된 경험’으로 분류하며, ‘자동적이고 수월하며 매끄러운’ 경험에 익숙해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2.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

미국 스킨케어 업체인 크리니크(Clinique)는 고객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고하기로 결정하며, ‘고객이 원하는 대로의 서비스’라는 새로운 모토를 정했다.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아도 되는 부담 없는 쇼핑 환경을 원하는 고객들을 위해 ‘크리니크는 쇼핑 바구니를 든 고객님을 방해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안내판을 내 걸었다.

2018년 미국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의 조사에 따르면, 10대 10명 중 여섯 명은 매일 또는 거의 매일 온라인으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낸다고 답한 반면, 같은 빈도로 친구들을 직접 만나 시간을 보낸다고 답한 비율은 24%에 불과했고, 친구를 직접 만난 12학년 학생의 수가 2010년 44%에서 2022년 32%로 감소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저자가 단순히 사람 간의 직접 상호작용이 사라져 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것은 아니다.

미디어 사용 시간의 증가로 인해 친구들과 가족들 사이의 대면 커뮤니케이션이 감소하고, 이것이 부정적인 사회적 웰빙(낮은 자신감, 비정상적 느낌, 수면 부족 등) 증가에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손글씨와 손그림 그리기의 쇠퇴를 바라보며, 편리성과 효율성을 벗어나 시간을 들여 손기술을 배워가는 인내와 끈기, 성실 등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쉽다는 의미이다.

인쇄기가 손글씨를 없애지 않았고, 소프트웨어가 손그림을 없애지 않았듯이, 저자는 새로운 기술이 오래된 작업 방식을 없앨 필요는 없으며, 어떤 형태든 공존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주입시킨다.

3. 직접 경험과 교육의 문제

2020~2021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실제 교사와 기술 간의 대결이 펼쳐졌다. 오리건에 본사를 둔 비영리 단체인 NWEA의 예측에 따르면, 2021년 가을 미국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는 교실에서 수업을 받았을 때보다 읽기는 약 70%, 수학은 약 50% 미만일 것으로 예상했다.

이와 함께 코로나19는 특히 어린이들에게 유익한 비구조화된 신체 놀이를 차단했다.

‘어린아이들이 놀이를 허락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세상을 이해할 권리를 허락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경고한 교육 전문가인 에리카 크리스타키스의 지적, 그리고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된 놀이 기반 학습 기법으로 아동들을 비교한 결과, 놀이 기반 학습 기법이 자제력, 작업 기억력, 실행 기능 등에서 훨씬 좋은 점수를 냈다는 점을 들어, 저자는 직접 경험이 교육에도 큰 장점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4. 기다림과 지루함의 미학

기다림의 경험이 어떻게 그리고 왜 변화했는지, 결과적으로 그것이 어떻게 우리를 변화시키고 있는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 저자는, 기다림과의 전쟁이 진화하면서 공정하게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추가 금액을 지불하고서라도 기다림에서 즉시 벗어나길 원하는 세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상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2초 이상의 동영상 로딩을 기다리지 못하는 시대, 모든 것에 대해 점점 참을성이 없어지는 시대가 되고 있고, 현대인은 기술이 가져다주는 효율성으로 인간의 경험인 지루함을 영원히 없애주겠다는 기술의 약속에 환호한다.

지루함 자체를 대체할 필요가 없도록 우리에게 새로운 콘텐츠를 제공하는 미디어를 경계하고, 지루함을 인내하거나 효과적으로 이겨낼 수 있는, 심지어는 지루함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질 것을 추천한다.

휴경이 땅을 쉬게 함으로써 미래의 경작을 가능하게 하는 것처럼, 우리 인간도 미래의 창의적인 발전을 위해 지루한 휴경의 시간을 누릴 필요가 있다.

5. 기술로 매개된 쾌락

메타는 퀘스트 프로 가상현실 헤드셋 광고에서 ‘증강현실을 통해 바이킹 시대의 정착지를 탐험하면서 당시의 삶을 보고, 느끼고, 온전히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의 디지털 문화는 우리의 음식 경험을 여러 가지 면에서 매개한다. 우리가 소비하는 음식과 수백만 가지 레시피에 대해 알려주며 온라인으로 음식을 주문해 즉시 만족감을 얻게 해 준다. 한국에서 시작된 먹방은 유튜브를 통해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고, 세계 다양한 곳의 식사를 낯선 사람들의 식문화를 경험하게 한다.

우리는 이미 영화, 텔레비전, 비디오게임 같은 형태의 엔터테인먼트로 제공되는 간접 경험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처럼 매개된 경험은 만들어진 연결된 느낌이며, 가짜 친밀감이라고 주장한다. 쾌락을 균질화하고, 위험보다는 통제, 우연보다는 검색, 변덕보다는 알고리즘, 개인정보보호보다는 편의를 우선시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경험을 스크린으로 소비하게 되면서 시각과 청각만이 주로 활용되고, 촉각, 후각, 미각, 장소 감각 등 다양한 감각을 통해 경험하는 것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영화, 텔레비전, 비디오게임 같은 형태의 엔터테인먼트로 제공되는 간접 경험에 시간을 소비하는 것을 단정적으로 ‘쾌락을 경험하기 위해서다’라고 표현하는 저자의 주장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게임을 중독의 대상으로 여기고 게임 셧다운제를 도입했다가 실패한 국내 사례를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청소년 스스로 게임과 미디어의 사용을 자제할 수 있도록 능력을 키우게 하고, 올바른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리터러시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대처 방안임을 우리는 충분히 경험했고, 그것은 성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6. 사회적 상호작용과 기술

저자는 그 어느 때보다 서로가 ‘연결되어’있는 이 시대에 사회적 고립 비율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외로움과 고립의 전염병’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외로움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하루에 15개비의 담배를 피우는 것에 비교했다.

이 전염병의 주된 원인은 기술 사용이다. 15세~24세의 미국인들 사이에 친구들과 갖는 사회적 상호작용은 70% 감소했다.

보고서의 첫 번째 권고는 도서관이나 공원 같은 공적 공간에서 직접 만나는 것을 장려하는 ‘사회적 인프라의 강화’이다. 목적 없는 순수한 사교성이 ‘가장 민주적인 경험을 장려하고, 사람들이 더욱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게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사회적 존재임을 강조하며, 우리에게는 사회적 충동이 번성할 공적 공간이 필요하고, 우리에게 타인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 공동체가 우리가 잘 사는데 필요한 기량의 저장고이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밝히며, 비록 정량화할 수는 없지만, 낯선 사람 사이의 눈 맞춤, 비공식적이지만 신뢰할 수 있고, 추적되지 않으며, 데이터화되지 않는 공적 공간에서의 사회적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엔지니어들의 영향이 크게 미친 온라인 공간이 외로움, 무례함, 정신없는 삶의 속도에 대한 불평이 너무나 흔한 요즘, 가상 세계로의 즉각적인 접근권을 제공하지만, 삶의 균형을 찾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2010년 펜실베니아대학교 키스 햄프턴 교수는 “공적 공간에서 와이파이 사용자에 대한 관찰에서, 모바일 기술이 공적 공간에서 사람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개선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하는 일은 정보를 공유하고 중요한 사안에 대해 토론하는 등 정치적 참여와 매우 흡사했다는 것이다.

또한, 기술 예찬론자인 작가 스티븐 존슨은 “웹이 뜻밖의 경험을 없애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웹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7. 나가며

이 책은 우리가 기술을 통해 삶의 많은 부분을 매개하기로 선택하고 다른 삶의 영역까지 기술이 도입되는 체계적인 변화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이미 소멸되거나 소멸될 위험에 처한 다양한 인간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의 알고리즘에 의해 주도되고, 더 정교한 방법으로 사용자가 정말 원하는 것을 찾아가고 그의 향후 행동에 대해서도 더 세밀하게 예측하는 것이 어떤 경우에는 정치적 양극화와 증오 이념의 확산에 기여하고 심지어 폭력을 선동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불법정보 유통 방지를 위한 다양한 법률을 기반으로 적용 중인 기술적·관리적 조치들, 미디어 기업들의 선도적인 자율규제 및 ESG 경영 활동 등을 감안한다면, 기술이 가진 막대한 능력이 개인정보보호, 폭력적 콘텐츠 노출, 이로 인한 폭력적 환경에 공감하게 할 것이라는 저자의 걱정에 대해, 적어도 대한민국 환경의 현실과는 다소 맞지 않는 주장이다.

책에서 언급된 두 가지 반대된 의견(직접 경험과 매개된 경험)에 대해 앤서니 대니얼스와 같은 비평가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뜻밖의 경험이 주는 기쁨과 모든 것에 즉시 접근할 수 있는 편리함이 주는 기쁨을 모두 가질 수는 없다.”

저자 : 김대기

(주)카카오 정책협력 수석 / KISO저널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