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에서 실체로, CES 2026을 통해 본 ‘AI Everywhere’ 시대
제1장: 서론 – AI Everywhere, 공기처럼 스며든 인공지능의 시대
CES 2026은 단순한 전시회를 넘어 인류의 삶이 이미 AI 기반으로 재편됐다고 선언하는 장과 같았다. 올해 CES의 슬로건인 ‘Innovators Show Up(혁신가들의 등장)’은 지난 몇 년간 우리가 마주했던 AI라는 파도가 이제는 우리 삶의 모든 곳(Everywhere)을 적시고 있음을 선언하고 있었다.
이제 AI는 우리가 필요할 때만 사용하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AI는 마치 우리가 의식하지 않고 마시는 공기처럼, 혹은 도시를 밝히는 전력망처럼 우리 일상의 ‘기본값(Default)’이 되고 있다. 그간의 AI 담론이 기술적인 ‘기회’를 논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이번 전시에서 확인한 AI는 이미 일상의 배경으로 스며들어 인류의 삶을 실질적으로 지탱하는 ‘필수 인프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었다.
인터넷 자율규제 기구인 KISO의 시각에서 CES 2026 현장을 바라보면 이러한 변화는 자율규제 기구에 매우 묵직한 과제를 던진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AI는 기업의 경쟁력을 위해 선택하는 옵션의 영역에 있었다. 하지만 올해 CES에서 확인한 것은 AI가 빠진 기술은 더 이상 시장에서 유의미한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는 사실이다. 모빌리티에서 가전, 그리고 스타트업의 아이디어 제품까지, AI는 제품의 심장이자 뇌로서 작동하고 있었다. AI는 이제 선택이 아닌 ‘존재’ 그 자체가 됐으며, 이것이 바로 이번 CES를 관통하는 대주제 ‘AI Everywhere’의 본질이다.

[그림 1] 수많은 인파로 붐비는 West Hall 입구
/라스베이거스=KISO 곽기욱 책임연구위원
그러나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는 전시장에서 다채로운 혁신의 면면을 살펴보며 얻은 가장 큰 화두는 기술의 화려함보다는 그 뒤에 가려진 ‘신뢰의 무게’였다. AI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으로 스며들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그 지능의 오작동이나 데이터 오용이 발생할 위험 지점 역시 일상의 모든 곳으로 확산됐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모든 곳에 AI가 있다면, 이를 안전하게 관리하는 자율규제 또한 모든 곳에 유연하게 존재해야 한다. 특정 플랫폼의 게시판이나 텍스트 서비스에만 국한됐던 과거의 규제 방식으로는 이제 물리적 실체를 입고 집 거실과 도로 위를 누비는 인공지능 세상을 포용할 수 없다. 기술이 우리 삶에 공기처럼 스며든 만큼, 그 기술을 신뢰하며 사용할 수 있게 실천적 가이드라인이 뒷받침돼야 한다.
본고에서는 CES 현장에서 목격한 ‘AI Everywhere’의 다채로운 실체들을 다섯 가지 관점으로 나눠 기록하려 한다. 먼저 제2장에서는 육체를 얻은 인공지능인 ‘피지컬 AI(Physical AI)’를 살펴보고, 제3장에서는 우리 삶의 필수 엔진으로 자리 잡은 가전과 스마트홈의 변화를 짚어본다. 이어 제4장에서는 산업 간 경계를 허무는 ‘AI 컨버전스(Convergence)’를, 제5장에서는 ‘온디바이스 AI(On-Device AI)’의 가능성을 조명한다. 마지막으로 제6장에서는 독창적인 기술로 이번 전시를 빛낸 한국의 혁신 스타트업 루키들을 소개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제2장: 피지컬 AI(Physical AI) – AI, 육체를 입고 우리 곁으로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은 지점은 인공지능이 모니터 안의 텍스트나 가상 세계를 넘어, 물리적인 ‘몸’을 입고 우리 곁으로 튀어나왔다는 점이다. 흔히 ‘피지컬 AI’라 불리는 이 기술은 클라우드 시스템 속에 머물던 지능(뇌)이 로봇이나 자동차 같은 기계적 장치(몸)와 결합한 상태를 의미한다. 이제 AI는 화면 밖으로 나와 인간과 같은 공간에서 물리적으로 부딪치고 소통하며 상호작용하는 단계에 진입했다.
그 상징적인 장면은 현대자동차 전시관에서 만난 ‘아틀라스(Atlas)’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과거의 로봇이 미리 입력된 명령에 따라 딱딱하게 움직였다면, 아틀라스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유연했다. 기괴할 정도로 매끄러운 관절의 움직임은 물론, 바닥의 굴곡을 실시간으로 읽어내며 균형을 잡는 모습은 AI가 물리 법칙을 완벽히 이해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줬다. 이는 지능이 단지 정보를 처리하는 것을 넘어, 물리적인 공간을 인지하고 그에 맞춰 자기 몸을 제어하는 고도의 단계로 진화했음을 뜻한다.
산업 현장에서의 진화도 눈부셨다. 최고혁신상을 받은 두산로보틱스의 ‘스캔앤고(Scan&Go)’ 는 정밀함의 극치를 보여줬다. 로봇 팔(arm)이 스스로 구조물을 스캔하고 작업 경로를 생성하며 정교한 작업을 수행하는 모습은, 숙련된 기술자의 손길을 AI가 완벽히 대체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단순히 ‘자동화’라는 단어로 정의하기에는 부족한, 데이터와 물리적 행동이 실시간으로 동기화되는 AI 생산의 미래가 그곳에 있었다.

[그림 2] 현대자동차에서 선보인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라스베이거스=KISO 곽기욱 책임연구위원
이러한 피지컬 AI의 확산은 ‘AI Everywhere’가 더 이상 추상적인 구호가 아님을 확인시켜 줬다. AI는 이제 거대한 공장의 조립 라인은 물론, 길거리의 자율주행 셔틀, 그리고 가정을 돌보는 로봇의 모습으로 우리 주변 어디에나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능이 육체를 얻어 실제 공간을 점유하고 움직인다는 것은 우리 삶이 비약적으로 편리해졌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물리적 안전과 책임이라는 새로운 규범적 과제를 던진다. KISO가 온라인에서 다뤄 온 ‘표현의 자유 vs 안전’ 논리를 물리 공간으로 확장해야 하는 것이다. 가상 세계를 넘어 실제 삶의 현장에서 우리와 함께 숨 쉬게 된 실체적 AI를 어떻게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제3장: AI,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 – 스마트홈과 일상의 재설계
과거의 AI 가전이 부가적인 편리함을 제공하는 ‘프리미엄 옵션’에 머물렀다면, 이제 AI는 가전의 작동을 결정짓는 ‘필수 엔진’으로 자리 잡았다. 이번 전시를 통해 확인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AI가 없는 가전은 더 이상 그 정체성을 유지하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는 점이다. AI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장 선명하게 목격할 수 있었던 현장은 바로 우리 삶과 가장 밀접한 공간인 스마트홈이었다.
삼성전자 부스에서 목격한 광경은 가전이 단순히 명령을 수행하는 도구를 넘어, 사용자의 삶을 깊이 이해하는 조력자로 진화했음을 보여줬다. 구글의 생성형 AI ‘제미나이(Gemini)’를 탑재한 냉장고는 식재료 관리라는 본연의 기능을 넘어 사용자의 건강 상태와 취향에 맞는 레시피를 제안하고, 집안의 모든 기기를 제어하는 허브 역할을 수행했다. AI라는 엔진이 장착됨으로써 냉장고는 단순한 저장고에서 ‘지능형 라이프 매니저’로 탈바꿈한 것이다.
LG전자가 내세운 차세대 AI 가사 로봇 ‘클로이드’ 또한 인상적이었다. 두 다리를 이용해 집안의 문턱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클로이드는 더 이상 단순한 이동형 기기가 아니었다. 이번 전시에서 클로이드는 세탁된 옷감을 스스로 인지해 정교하게 개는 고난도 가사 작업을 완벽히 수행하며 가사 해방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진정한 혁신은 그 너머에 있었다. 카메라와 센서를 통해 가족 구성원을 인식하고, 특히 아이의 표정이나 목소리 톤을 분석해 미세한 감정 상태까지 읽어내는 ‘공감 지능’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아이가 우울해 보이면 그에 맞는 음악을 선곡하거나 다정한 위로를 건네는 모습은, 가전이 물리적 노동을 대신하는 단계를 지나 인간과 정서적으로 깊이 교감하는 필수 동반자로 진화했음을 증명했다. 이제 가전의 가치는 하드웨어의 성능이 아니라, 클로이드처럼 인간의 삶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조력하느냐에 따라 결정되고 있었다.

[그림 3] 빨래 개는 로봇 ‘클로이드’/사진=LG전자
이처럼 가전의 AI화는 집안의 모든 기기가 AI로 연결돼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AI Everywhere’의 완성을 예고했다. 거실의 에어컨은 사용자의 위치와 활동량을 계산해 풍량을 조절하고, 세탁기는 세탁물의 양과 오염도를 스스로 판단해 최적의 모드로 작동한다. 사용자가 일일이 개입하지 않아도 AI가 끊임없이 상황을 인지하고 최선의 환경을 조성하는 이른바 ‘캄 테크(Calm Tech)’의 실현인 것이다.
결국 스마트홈에서의 AI는 이제 있으면 좋은 기능이 아니라, 없어서는 안 될 필수값이 되었다. 모든 기기가 지능을 갖고 서로 소통하며 사용자의 일상을 재설계하는 모습은, AI가 우리 삶의 가장 사적인 영역까지 깊숙이 침투하여 ‘존재’ 자체로 가치를 증명하는 필수 불가결인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확신시켜 줬다.
제4장: AI 컨버전스(Convergence) – 산업의 경계를 허무는 융합의 파고
이번 전시를 통해 목격한 또 하나의 거대한 흐름은 ‘AI 컨버전스(Convergence)’다. 컨버전스란 단어 그대로 해석하자면 ‘융합’을 뜻하는데, 쉽게 비유하자면 각기 다른 재료들이 한데 어우러져 새로운 맛을 내는 ‘거대한 비빔밥’이라는 개념이다. 과거에는 자동차, 가전, 의료, 보안 등 각 산업 분야가 독립적인 영역을 구축하며 저마다의 길을 걸었다면, 이제는 인공지능이라는 공통의 언어를 통해 그 경계가 완전히 무너지고 있다. 특정 산업의 전유물이었던 기술들이 AI를 매개로 섞이면서, 업의 본질 자체가 새롭게 정의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융합의 정수를 보여준 사례가 바로 소니혼다 모빌리티의 ‘아필라(AFEELA)’였다. 아필라는 단순히 전기로 움직이는 이동 수단을 넘어 모빌리티와 엔터테인먼트가 결합된 새로운 공간을 제시했다. 차량 내부를 가득 채운 화려한 디스플레이와 고성능 시스템은 자동차를 ‘움직이는 영화관’ 혹은 ‘달리는 게임방’으로 바꾸어 놓았다. 소니의 강력한 콘텐츠 기술과 혼다의 제조 기술이 AI라는 기반 위에서 만남으로써, 이제 자동차는 거실의 연장선이자 개인화된 디지털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하드웨어 중심의 자동차 산업이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중심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현장이었다.
업무 환경에서의 컨버전스 역시 눈부셨다. 삼성SDS 전시관에서 확인한 업무 환경의 컨버전스 또한 압도적이었다. 기업용 생성형 AI로 널리 알려진 ‘브리티 코파일럿(Brity Copilot)’은 단순한 사무 보조의 차원을 넘어, 생산성과 강력한 보안 체계가 완벽히 결합된 완성형 플랫폼의 면모를 보여줬다. AI가 회의 전체를 실시간으로 조율하는 비서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기업 내부의 민감한 데이터 흐름을 스스로 감시하고 유해 콘텐츠를 선제적으로 차단하는 보안 통제센터의 기능까지 통합적으로 마친 상태였다. 과거 별도의 보안 시스템이 담당하던 영역이 업무 플랫폼의 혈관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든 셈이다. 이는 기술이 단순히 편리함을 제공하는 단계를 지나, 안전과 신뢰라는 가치를 지능적으로 통합 관리하는 성숙기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한다.

[그림 4] 소니혼다에서 선보인 ‘AFFELA 1’
/사진=소니·혼다 모빌리티
결국 AI 컨버전스는 ‘AI Everywhere’가 산업 전반으로 확장된 결과물이다. 산업군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스며든 AI는 제조, 물류, 금융, 의료 등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영역의 벽을 허물고 있다. 스마트워치가 의사보다 먼저 내 몸의 이상을 감지하고, 인공지능 비서가 자동차와 집안의 모든 기기를 제어하는 일상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이처럼 경계를 넘나드는 AI 컨버전스의 파고는 기존 산업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모든 영역이 AI로 연결되는 시대에 우리는 단순히 개별 기술의 발전을 넘어, 산업 간 융합이 만들어낼 새로운 사회적 가치와 그에 따른 윤리적 체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에 대해 더욱 깊은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제5장: 온디바이스 AI(On-Device AI) – 내 손안의 비서, 프라이버시의 요새
모든 것이 연결되는 시대에서 사용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아마도 ‘나의 데이터가 안전한가’일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 해답으로 제시된 핵심 기술이 바로 ‘온디바이스 AI(On-Device AI)’다. 온디바이스 AI란 거대한 중앙 서버나 클라우드를 거치지 않고, 우리 손안의 스마트폰이나 로봇, 자동차 내부에 탑재된 칩에서 직접 데이터를 처리하는 방식을 말한다. 정보를 외부로 보내지 않고 기기 안에서 자체적으로 연산하기 때문에, 처리 속도가 비약적으로 빠를 뿐만 아니라 프라이버시 보호 측면에서 강력한 강점을 가진다.
과거의 클라우드 방식이 대규모 데이터를 서버로 전송해 분석하는 구조였다면, 온디바이스 AI는 개인의 민감한 정보가 기기 밖으로 나가는 통로 자체를 차단한다. 이러한 기술적 흐름은 ‘이용자 보호’를 강령으로 두고 있는 KISO의 지향점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사용자의 음성, 지문, 일상적인 대화 내용이 클라우드라는 네트워크를 떠돌지 않고 기기 내부에 머물기 때문에 데이터 유출이나 오용의 위험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것이다. 기술의 진보가 오히려 사용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 이번 CES에서 확인한 획기적인 변화였다.
현장에서는 이러한 온디바이스 AI를 가능케 하는 하드웨어 혁신이 돋보였다. 특히 한국의 AI 반도체 기업인 ‘딥엑스(DEEPX)’ 부스에서 목격한 고효율 NPU(신경망처리장치) 기술은 인상적이었다. 아주 작은 칩 하나가 수십 개의 카메라 영상을 실시간으로 분석하면서도 전력 소모를 최소화하는 모습은 놀라웠다. 또한 엔비디아나 AMD 같은 반도체 대기업들 역시 하드웨어 레벨에서 AI의 부적절한 답변을 막는 ‘가드레일’ 기술을 선보였다. 소프트웨어가 아닌 칩 자체에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이식함으로써, 보안과 성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포착됐다.
결국 온디바이스 AI는 ‘AI Everywhere’의 범위를 보이지 않는 곳까지 확장시킨다. 인터넷 연결이 원활하지 않은 오지나 비행기 안, 혹은 보안이 극도로 중요한 사적인 공간까지도 AI가 안전하게 작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연결 없이도 어디서나 AI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시대는 기술의 장벽뿐만 아니라 불안의 장벽까지 허물고 있다.
이처럼 기기 내부에서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독립적인 지능’의 등장은 자율규제의 영역에도 새로운 시사점을 던진다. 중앙 서버의 데이터를 일괄 관리하던 기존의 규제 방식을 넘어, 이제는 개별 기기 단계에서 AI가 스스로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이행하는 ‘설계 기반의 자율규제’가 핵심적인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KISO는 내 손안의 비서가 단순한 편의를 넘어, 가장 안전한 프라이버시의 요새가 되는 시대에 발맞춰, 콘텐츠 규제에서 서비스 설계 단계 가드레일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
제6장: 스타트업의 루키들 – 혁신은 가장 구체적인 곳에서 시작된다
대기업들이 거대한 인프라와 생태계를 구축하며 담론을 주도한다면, 스타트업들은 인간의 개인적인 불편함 속으로 AI를 침투시키고 있었다. 이번 CES에서 만난 스타트업 루키들은 AI가 어떻게 우리의 아주 작은 일상까지 파고들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그 실천적인 해답을 제시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 중 하나는 수면 전문 스타트업 ‘뉴로티엑스(NeuroTx)’다. 이들이 선보인 ‘윌슬립(WillSleep)’은 인간의 가장 본능적이고도 사적인 영역인 ‘잠’에 주목했다. AI가 뇌파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최적의 숙면 상태를 유도하는 미세 전류를 조절하는 방식은 매우 정교했다. 뇌파라는 민감한 개인 데이터를 다루는 만큼, 앞서 언급한 온디바이스 기술과의 결합이 기대되는 지점이기도 했다. 건강한 삶의 필수 요소인 ‘수면의 질’을 AI가 관리해 준다는 발상은, 기술이 인간의 신체적 고통과 불편함을 보듬는 따뜻한 지능으로 진화했음을 보여줬다.

[그림 5] CES 2026 혁신상을 수상한 뉴로티엑스의 ‘윌슬립’
/라스베이거스=KISO 곽기욱 책임연구위원
창의적 업무의 영역에서도 한국 스타트업의 혁신은 이어졌다. 최고혁신상을 받은 ‘스튜디오랩(Studiolab)’의 ‘젠시 PB’는 촬영 로봇과 AI가 결합해 상업 사진 촬영의 문법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로봇 팔이 의류의 특징을 파악해 최적의 구도로 사진을 찍고, AI가 상세 페이지까지 자동으로 생성하는 과정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작가의 감각이 필수적이라 여겨졌던 창작의 영역조차 이제 AI가 훌륭한 파트너로서 함께하고 있었다. 이는 기술이 단순히 반복 업무를 대신하는 수준을 넘어, 인간의 창의성을 보조하고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필수 도구가 됐음을 방증한다.

[그림 6] CES 2026에서 최고혁신상을 수상한 STUDIO LAB의 ‘젠시 스튜디오’
/라스베이거스=KISO 곽기욱 책임연구위원
이들 루키의 행보는 ‘AI Everywhere’가 거창한 시스템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잠자는 순간부터 물건을 판매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찰나까지 일상의 아주 작은 틈새까지 존재하게 됐음을 시사한다. 대기업의 범용 AI가 세상의 밑바닥을 다진다면, 날카로운 전문성을 가진 스타트업들은 그 위에서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고 구체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개인적 삶의 틈새를 공략하는 이들의 혁신은, AI 기술이 단순한 성능 경쟁을 넘어 인간 중심의 가치를 어떻게 실현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정표를 제시했다.
제7장: 결론 – 혁신을 완성하는 최후의 열쇠, 신뢰의 가이드라인
약 일주일간의 CES 2026 여정을 마무리하며 내린 결론은 하나다. 이제 AI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도구의 단계를 넘어, 우리 삶 모든 곳에 편재하는 ‘AI Everywhere’의 시대로 완전히 진입했다는 사실이다. 2장에서 목격한 피지컬 AI는 지능에 육체를 부여하며 실제 공간의 제약을 허물었고, 3장의 스마트홈은 AI가 일상의 필수값이 되었음을 증명했다. 또한 4장에서의 산업 간 컨버전스는 경계 없는 융합을, 5장의 온디바이스 AI는 보안과 프라이버시 보호의 새로운 표준을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6장의 스타트업 루키들은 인간의 가장 개인적인 틈새까지 기술이 스며들었음을 확인시켜 줬다.
그러나 이 화려한 혁신의 이면에는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이라는 날카로운 칼날이 숨어 있다. AI가 모든 곳에 존재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오작동, 데이터 오용, 윤리적 판단의 오류가 발생할 지점 또한 우리 삶의 모든 곳에 잠재해 있다는 뜻이다. 지능이 물리적 육체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며, 우리의 잠자리와 업무 공간까지 깊숙이 침투한 세상에서 신뢰가 담보되지 않은 기술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결국 혁신의 화룡점정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신뢰’라는 사회적 합의에 있다.
이러한 흐름은 향후 KISO의 정책 방향에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과거의 규제가 사후적인 텍스트 검열이나 플랫폼 내 게시물 관리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서비스 설계 단계부터 윤리와 보안을 고민하는 ‘지능형 자율규제’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온디바이스 AI가 보여준 것처럼 데이터가 기기 내부에 머무는 환경에서는 중앙 집중식 규제보다 개별 서비스가 자율적으로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준수할 수 있도록 돕는 유연한 지원 체계가 효과적일 것이다. 또한 산업 간 경계가 무너지는 컨버전스 시대에 발맞춰, 다양한 산업군과 소통하며 복합적인 이슈를 중재할 수 있는 넓은 시야를 확보하는 것도 KISO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혁신적인 AI 기술들이 우리 사회에 안정적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기술의 발전 속도에 발맞춘 유연하고 실천적인 ‘자율규제 체계’가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어야 한다. 이번 CES에서 얻은 인사이트는 AI라는 새로운 질서 속에서 우리가 어떠한 원칙을 세워야 하는지 고민하게 하는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혁신가는 등장했고 AI는 이미 우리 곁에 도착했다. 기술이 공기처럼 스며든 만큼, 자율규제도 모든 곳에 유연하게 존재해야 한다. 거대한 AI 생태계가 우리 사회의 건강한 상식과 조화를 이루며 발전할 수 있도록, 변화하는 기술 환경에 발맞춘 실천적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KISO에 주어진 다음 과제일 것이라고 감히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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