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큐레이션, 새로운 미디어 생산과 소비 그리고 쟁점들
1. 디지털 큐레이션의 성장
문서, 뉴스, 음악, 사진, 동영상, 지도, 개인의 일상, 각종 센서에서 나오는 자료 등 만물의 디지털화는 최근의 가장 중요한 현상 중 하나이다. 시스코 시스템즈(Cisco Systems)에 따르면 전 세계 인터넷 트래픽은 2013년 하루 1.1 엑사바이트(exabyte)에서 2014년 하루 1.4 엑사바이트로 증가했다. 이를 2014년 한 해로 계산해보면 DVD 1,270억 개가 있어야 담을 수 있는 정도의 데이터가 교환된 것이다(“VNI Forecast Highlights”, n.d.). 이처럼 디지털로 만들어지는 자료는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IDC에 따르면 2013년 세계 디지털 자료는 4.4 제타바이트(zettabyte)이며 2020년까지 44 제타바이트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Turner, 2014). 1991년 제 19차 세계도량형총회에서 미터법 영어 단위에 붙이는 접두어들이 정해졌을 때, 가장 큰 수를 가르치는 접두어는 요타(yotta)였다. 우리는 미터법에서 정해진 요타라는 단위보다 겨우 한 단계 낮은 제타바이트 시대에 살고 있다.
최근 큐레이션이 주목받고 있는 것도 이러한 상황의 연장선에 있다. 무한히 많아진 데이터를 어떻게 사람들에게 보여줄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애플은 새로운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인 ‘애플 뮤직(Apple Music)’을 출시하면서 스포티파이(Spotify)와 같은 기존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와의 차별점을 큐레이션 기능이라고 말했다. 애플 뮤직은 이용자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소비패턴을 분석하여 음악을 추천해준다. 뿐만 아니라 유명한 전문가들이 직접 음악을 추천하는 ‘비츠 원(Beats 1)’이라는 라디오 서비스도 함께 공개했다. 비츠 원은 유명한 DJ인 제인 로위와 음악 선별 팀이 최신의 음악을 선별한다(권혜미, 2015. 6. 9).
최근 이용자 증가 둔화와 수익모델 부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트위터는 프로젝트 라이트닝(Project Lightning)이라는 이름을 가진 새로운 서비스를 계획 중에 있다. 프로젝트 라이트닝은 이벤트 기반의 큐레이션 콘텐츠를 트위터 플랫폼에서 제공한다. 편집팀은 특정 주제에 대해 가장 중요하고 관련성 있다고 생각되는 트윗을 선별하여 하나의 콜렉션으로 만든다(Honan, 2015). 모바일 메신저인 스냅챗(Snapchat)의 ‘라이브 스토리(Live Story)’는 하나의 이벤트에 참여한 여러 이용자들의 영상을 큐레이터가 모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준다. 라이브 스토리가 스냅챗의 가장 인기있는 콘텐츠로 자리 잡음에 따라 10명 남짓했던 라이브 스토리 담당 큐레이터를 40여명 이상으로 확대했다. 스냅챗은 새로운 큐레이션 서비스로 영상 중간에 10초 가량 광고를 삽입해 이용자 당 2센트의 수익도 올리고 있다(Wagner, 2015). 인스타그램(Instagram)도 새로운 탐색 페이지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건 혹은 이용자와 관련된 내용을 큐레이션하여 보여주고 있다(Hempel, 2015). 이처럼 큐레이션은 데이터가 늘어난 상황에서 이용자들에게 어떤 콘텐츠를 보여줄지만의 문제만이 아니라 서비스를 차별화하고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가고 있다.
특히 모바일 시대로 올수록 큐레이션의 중요성은 증가하고 있다. 검색이 편리한 데스크톱과 달리 제한적인 화면과 통일되지 않은 인터페이스를 갖춘 모바일에서는 이용자들이 스스로 필요한 콘텐츠를 검색하는 것이 쉽지 않다. 소비자들은 직접 필요한 콘텐츠를 찾기보다는 사업자 측면에서 보여주는 큐레이션에 의존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쿠팡, 티켓몬스터, 위메프와 같은 소셜커머스도 실제로 수행하고 있는 역할은 이용자들이 최저가라고 합의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소비자가 필요한 상품을 적절하게 큐레이션 해 주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모바일에 대한 의존도가 증가할수록 향후 디지털 큐레이션은 더욱 성장하는 양상을 보일 것이다.
2. 큐레이션의 방식
다양한 기업들이 이용자들에게 콘텐츠를 적절하게 보여주기 위해 큐레이션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큐레이션은 누가 큐레이터가 되는지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바로 알고리즘과 인간이다. 전통적으로 인간은 뉴스 산업에서 데스크가 해 왔던 것처럼 콘텐츠를 선별하는 큐레이터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하지만 인간의 능력으로 처리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데이터를 다루게 되면서 알고리즘을 통한 큐레이션이 사용되고 있다. 각각의 큐레이션 방식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며 각각의 분야에서 장점을 가진다.
가. 알고리즘을 통한 큐레이션
알고리즘은 데이터를 토대로 원하는 출력을 유도하는 규칙의 모음이다. 알고리즘은 상상할 수 없는 양의 데이터를 지치지 않고 선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뉴스, 음악, 영상과 같은 모든 곳에 사용됐다. 알고리즘을 사용하여 데이터를 선별하는 가장 거대한 IT기업은 구글과 페이스북이다.
구글의 검색결과는 인터넷에 있는 무한한 데이터 중에서 검색어에 가장 적합한 결과를 산출해서 보여준다. 페이스북도 알고리즘을 이용하지만 구글과는 다른 목적으로 알고리즘을 적용한다. 페이스북이 다루는 데이터도 무한하지만 이용자들이 관심을 가지는 뉴스는 제한적이다. 오히려 이러한 제한적인 데이터들을 조합하여 개별 이용자에게 맞는 고유한 뉴스피드를 구성해주어야 한다.
구글이 검색에서 다루는 데이터는 무한하여 인간이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페이스북의 일일 이용자는 지난 8월 23일 10억 명을 넘어섰는데(허핑턴포스트코리아, 2015), 10억 명에게 개인화 된 뉴스 피드를 구성해 주는 일도 인간이 할 수 있는 능력을 벗어난다. 즉 구글과 페이스북이 알고리즘을 사용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모두 알고리즘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나. 인간 큐레이터를 통한 큐레이션
뉴스는 오래 전부터 인간에 의해 큐레이션 되어 온 콘텐츠이다. 뉴스가 인간이 큐레이션 하기 적합한 이유는 구글처럼 무한한 데이터를 다루지 않고 페이스북처럼 모든 이용자에게 개인화 된 콘텐츠를 제공해주어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많은 뉴스가 발생하지만 인터넷 전체에 있는 데이터에 비하면 일부분이고, 사람들이 개인화 된 뉴스를 원하기는 하지만 모두에게 각각 다른 뉴스를 구성해 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애플은 새로운 뉴스 앱을 출시하면서 큐레이션을 위해 인간 편집자를 고용했다. 애플은 뉴스 에디터 채용 공고에서 에디터는 다양한 속보 중 최선의 것을 수집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Kahn, 2015). 이는 알고리즘만으로 독창적이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발견할 수 없음을 인정한 것이다. 또한 뉴스를 큐레이션 하는데 있어 알고리즘에만 의존하지 않을 것임을 밝힌 것이기도 하다.
속보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빠르게 선정해내는 일에는 알고리즘보다 인간 큐레이터가 참여하는 것이 타당할 수 있다. 알고리즘이 더욱 발전하여 인간보다 더 뛰어난 결과를 보일 수도 있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어떤 뉴스가 중요한지를 선택할 때 필요한 맥락을 파악하는 일이나 어떤 음악이 멋진지를 선별해내는데 필요한 창의성은 여전히 알고리즘이 인간에게 뒤지고 있다. 애플의 두 가지 새로운 서비스인 뉴스와 음악 분야에서 인간 큐레이터가 활약하는 이유이다.
3. 인간 큐레이터의 귀환과 큐레이션 윤리
애플은 새로운 뉴스와 음악 서비스에서뿐만 아니라 앱 스토어에서도 인간 큐레이터를 추가했다. 많은 사람들이 앱 스토어 판매 순위와 관련해 수 년간 불만을 제기해왔으며, 개발자들은 종종 앱 순위를 조작함으로써 이득을 취하기도 했다(Kahn, 2015). 애플은 인간 큐레이터를 통해 좋은 품질의 콘텐츠를 소개하는 코너를 새로 마련하여 인기 다운로드 콘텐츠와 별도로 구분되도록 만들었다. 이처럼 알고리즘을 통한 큐레이션의 한계점은 명확하다. 최근의 애플의 뉴스와 음악 서비스의 사례에서 보듯이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 큐레이터들이 돌아오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 큐레이션을 담당하면서 책임의 문제가 더 명확해졌다. 알고리즘을 통한 큐레이션의 경우 알고리즘을 탓하며 책임의 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들 수 있다. 반면 인간 큐레이터의 경우 책임의 소재가 더욱 명확하다. 애플이 자사의 뉴스 서비스에서 중국 공장의 노동환경에 대한 기사를 노출시킬 것인가? 트위터가 자사 CEO의 해임과 관련된 뉴스들을 이용자들에게 보여줄 것인가?
이러한 문제는 사실 알고리즘에서도 사실 다르지 않다. 기계적으로 분류하고 배열하는 알고리즘은 공정하고 균형 잡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알고리즘을 만드는 것 역시 인간의 편견을 기반으로 한다. 사람들이 공명정대한 것처럼 위장하는 큐레이션 앞에서 교묘한 속임수의 흔적들을 찾아낼 수 있을까?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라는 단어는 기업들이 이용자의 개인적 성향에 맞춘 뉴스 혹은 검색 결과를 제공함으로써 개인의 세계관을 넓힐 수 있는 정보들이 차단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이야기한다(Pariser, 2011). 이러한 고민은 디지털 시대 이전부터 뉴스에서 논의되어 왔던 생각이다. 저널리즘에서는 뉴스가 사실과 반하는 정보를 전달하며 특정 집단의 이익에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닐지에 대해 경계해왔다. 오늘날 소비자들은 무수히 늘어난 데이터를 스스로 걸러보기 어렵다. 특히 모바일 시대가 될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우리가 큐레이션을 통해 접하게 되는 음악은 정말 음악 자체만으로 나에게 추천이 된 것일까? 모바일을 통해 본 상품은 순수하게 상품가치 자체로 나에게 보여지는 것일까? 오늘날 구글, 페이스북, 애플과 같은 테크놀로지 기업들은 우리가 무엇을 보고 소비할지에 대해서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보고 왜 보는지에 대해 투명하게 이야기하기에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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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권혜미 (2015. 6. 9.). 애플의 ‘원모어띵’,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애플뮤직’, 블로터. available: http://www.bloter.net
허핑턴포스트코리아 (2015. 8. 28.). 페이스북, 사상 처음으로 하루 이용자수 10억명 돌파. 허핑턴포스트코리아. available: http://www.huffingtonpost.kr
Hempel, J. (2015. 6. 23.). Instagram’s Overhauled Search: Real-Time Instead of Real Bad, Wired. available: http://www.wired.com
Honan, M. (2015. 6. 19.). This Is Twitter’s Top Secret Project Lightning, Buzzfeed. available: http://www.buzzfeed.com
Kahn, J. (2015. 6. 15.). Apple News curation will have human editors and that will raise important questions, 9to5mac. available: http://9to5mac.com
Pariser, E. (2011). The filter bubble: What the internet is hiding from you. Penguin Press HC
Turner, V. (2014). The Digital Universe of Opportunities: Rich Data and the Increasing Value of the Internet of Things, available: http://www.emc.com
VNI Forecast Highlights. (n.d.). available: http://www.cisco.com
Wagner, K. (2015. 6. 17.). Snapchat Is Making Some Pretty Serious Money From Live Stories, re/code. available: http://recod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