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환경 변화와 새로운 문화콘텐츠의 등장
1. 스마트 핑거 콘텐츠, 손가락이 문화를 지배하다
스마트 미디어 시대에 ‘손가락 하나 까닥’하는 최소한의 행위로 ‘즐거움’을 소비하려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간결하고 짧은 콘텐츠’가 호응을 받고 있다. 특히 작고 간편한 디바이스, 스마트폰의 등장은 ‘손가락’의 터치만으로 모든 콘텐츠를 향유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스마트한 손가락’ 시대를 가능하게 했다. 디바이스의 간편함은 자연스럽게 콘텐츠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유비쿼터스 콘텐츠 환경이 조성되면서 수시로 이용 가능한 간결하고 짧은 콘텐츠 소비가 증가하게 된 것이다.
과거 DMB와 같은 이동형 미디어가 등장했던 시기에도 이미 짧은 콘텐츠 소비에 대한 예견이 있었으나, 당시의 DMB는 대부분 ‘방송 콘텐츠’를 기반으로 하였기 때문에 기존 콘텐츠 소비의 창구 확장 역할에 그쳤다. 그러나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콘텐츠 소비 방식도 변화하고, 차츰 짧은 콘텐츠에 대한 소비 욕구도 증가했다. 특히 스마트폰으로 트위터와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미디어 이용이 활성화되면서 긴 글에 대한 소비양식이 단문의 글 위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어디서나 쉽고 간편하게 문화생활을 즐기는 문화 트렌드로 간편하게 과자를 먹듯이 즐길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신조어인 스낵컬쳐(snack culture)는 이와 같은 짧은 콘텐츠 소비와 같은 맥락에 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이용하는 SNS 시, 모바일 게임, 10분 내외의 짧은 영화나 웹드라마, 그리고 웹툰 등이 스낵컬쳐를 대표하는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출판 시장에도 이러한 트렌드들이 나타나고 있다. 장편 소설이 주류를 이루었던 소설 시장에 ‘짧은 소설’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영미권 소설 시장에서도 ‘숏 스토리’가 인기를 얻기 시작했으며 국내에서도 점차 짧은 소설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장르를 불문하고 간편한 디바이스가 만들어내는 간결한 콘텐츠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음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스마트한 손가락 문화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방식의 문화 콘텐츠 소비양식은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스마트폰의 등장이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콘텐츠를 등장시켰듯이 손가락의 조작만으로 콘텐츠를 이용하고 싶어 하는 이용자들을 위한 새로운 콘텐츠 개발이 속속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스마트한 손가락 하나로 이용하도록 스마트 미디어에 특화된 어떤 대박 ‘짧은 콘텐츠’ 가 등장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2. 뉴노멀 시대, 복고와 일상콘텐츠에서 길을 찾다
경기 침체와 저성장의 심화로 인한 ‘기대 감소의 시대(The Age of Diminished Expectations)’를 맞아, 문화 부문에서 이른바 ‘뉴노멀 콘텐츠(new normal contents)’가 출현하고 있다. 2014년 국내 경제성장률은 3.3%에 그쳐, 지난 2012년 2.3%, 2013년 3.0%에 이어 3년 연속 잠재성장률인 3%대 중반을 밑돌았다. IMF가 지난 1월 발표한 경제 전망에 따르면 2015년 세계 경제의 실질 성장률을 3.5%로 2014년 10월 시점보다 0.3%p 하향 조정했다. 유로존과 일본, 중국 등 대부분의 국가가 경기 전망을 하향 조정하는 등 세계 경제 침체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저성장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경제 질서로 ‘뉴노멀’이 부상하게 된 것이다.
뉴노멀은 본래 미국 자산운용사 핌코의 최고 경영자였던 무하마드 엘 에리언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미국 경제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이다. 고성장, 과잉소비, 위험투자 등이 올드노멀(old normal)이었다면 뉴노멀은 저성장, 저소득, 저수익률 등 일명 ‘3저 현상’이 핵심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역시 “지금부터는 ‘영구적인 침체(Permanent Slump)’가 뉴노멀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또한 중국은 지난 12월 시진핑 국가주석 주재로 연 정치국 회의에서 ‘뉴노멀(新常態, 신창타이) 시대’ 진입을 공식화하여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처럼 저성장 기조라는 거시경제가 문화소비에 영향을 미치며 복고/일상 콘텐츠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특히 1990년대 가요를 재조명한 MBC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가 평균시청률 22.2%, 최고 순간시청률 35.9%을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음원 사이트에는 출연 가수들의 노래가 상위권을 휩쓰는 등 파급력이 지속됐다. ‘토토가’ 이전에도 이미 90년대를 추억하는 문화콘텐츠가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영화 <건축학개론>과 tvN의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 등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영화 <쎄씨봉>이 1970년대 한국 음악계에 포크열풍을 일으킨 ‘트윈폴리오’를 중심으로 당시 음악과 문화공간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게 했고, 영화 <강남 1970> 또한 70년대 의상과 소품 등으로 복고 감성을 자극했다.
사람들이 복고를 찾는 이유로는 먼저 위안을 들 수 있다. 과거 따뜻하고 즐거웠던 추억을 꺼내보며 위로를 받고 싶은 복고의 욕구는 힘든 상황에 놓였을 때 더욱 강해진다. 지난 경제 위기 때마다 복고가 강세를 보이기도 했는데 스트레스, 고독, 치열한 경쟁, 실업, 경제적 어려움 등을 경험하는 요즘에 현대인들은 복고를 더욱 찾게 된다. 과거로 회귀하여 그 시공간과 사람에 빗대어 오늘을 이야기하는 복고산업의 융성은 미래에 대한 전망을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다.
한편 장기 저성장으로 소비자들이 각자의 삶에 집중하면서 일상의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끼고 교감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지기 시작했다. 대중문화에서도 우월한 영웅, 엄청난 부와 권력 등 상대적 박탈감을 야기하는 콘텐츠보다는 일상적인 소재와 공감, 소통을 불러일으키는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다. 1,300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 <국제시장>은 ‘가장 평범한 아버지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라는 포스터 문구가 암시하듯, 격변의 시대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평범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며, 특히 중장년층의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 tvN에서 방영된 <미생>은 기존의 드라마와 달리 계약직, 워커홀릭, 워킹맘 등 이 사회 ‘을(乙)’의 생생한 현실 이야기를 담당하게 풀어나감으로써 직장인들의 공감대를 얻어냄과 동시에 결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인간 관계를 그려내며 직장인들의 로망을 반영하고 판타지를 자극했다.
대중문화가 판타지를 제시하며 소비자들의 욕구를 대리 만족시키는 사례는 육아 예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MBC <아빠 어디가>와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같은 프로그램 속의 아버지는 평범한 아버지와는 다르게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아이들과 보낼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으며, 직업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시청자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주지만, 가장으로서 겪는 평범한 고민들이 드러나는 순간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이 시대의 대표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3. 스마트 디바이스와 콘텐츠의 접목, 영역과 경계를 허물다
기존의 콘텐츠가 1차 제작된 후 부가적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모바일기기와 인터넷 통신망에 적합한 전송포맷으로 전환하는 정도의 수준이었다면, 혁신적인 디바이스와 연결된 초연결 통신망을 대상으로 기획·제작되는 콘텐츠는 새로운 양식으로 나타나곤 한다. 가령 스마트 미디어 등장 후 급격히 주목받고 있는 웹드라마(webdrama)와 웹툰(webtoon)을 보면, 기존의 드라마나 만화의 형식을 넘어 스마트 미디어에 최적화된 새로운 서사구조와 표현방식을 보여준 맞춤형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웹드라마는 TV가 아닌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해 시청이 가능한 10∼15분 분량으로 제작된 드라마로 ‘네이버 TV캐스트’나 ‘다음 스토리볼’의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방영되었다. 2013년 2월 ‘러브인메모리’를 시작으로 하여, 2014년 KBS의 웹드라마 ‘간서치열전’이 화제가 되면서 웹드라마에 대한 인지도가 상승했다. 또한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제작지원한 웹드라마 <연애세포>는 총 600만 뷰를 넘으며 국내에 웹드라마 열풍을 가져왔다.
웹툰의 경우, 온라인의 스크롤 형식과 멀티미디어 효과를 도입하여 콘텐츠 표현과 전달방식을 변화시킨 대표적인 콘텐츠로 2015년 웹툰 자체시장만 3,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2012년부터는 모바일 전용의 스마트툰이 시작되어 기존의 스크롤 방식으로 이루어지던 방식에서 탈피하여 책장을 넘기듯 화면을 넘기는 기법을 도입했다. 그 결과 영상적 서사에 가까운 독특한 표현방식을 갖춘 서비스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드로이드, IOS와 같은 스마트기기 운영체계는 웨어러블 기기와 완전한 호환이 어려울 것으로 예측되며, 대신 플레이스토어, 아이튠즈와 같은 새로운 콘텐츠 플랫폼 등장이 기대된다. 또한 2015년에는 디스플레이 해상도가 향상되고, 자이로스코프와 키네틱 같은 센서기술의 발전으로 가상현실(Virtual Reality) 실현을 앞당기고, 다양한 콘텐츠 서비스가 개시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같이 콘텐츠 산업에서 매번 IT기술의 발전과 함께 새로운 디바이스의 출현에 기대감을 갖는 이유는 단순히 미디어와 콘텐츠가 결합되는 수준에서 벗어나 디바이스에 최적화된 신규 콘텐츠가 탄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4.소유에서 접속으로, ‘플로우’ 소비의 진화
본래 플로우(flow)란 용어는 문화인류학에서 출발하여 사회심리학과 여가심리학에서 사용되던 개념으로 주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몰입’의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이후 호프만과 노박(Hoffman & Novak, 1996)이 ‘기계적 상호작용에 의해 촉진되는 반응의 지속적인 과정에서 본질적으로 즐겁고, 자의식의 상실이 수반되며, 자기강화를 가져오는 네트워크 항해 동안 일어나는 상태’ 라고 플로우의 의미를 재정의하며 디지털 마케팅 분야에서 활용되기 시작했다.
광랜, LTE 등 유무선 통신기술의 발달로 데이터 전송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며 실시간으로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의 전성시대가 오고 있다. 콘텐츠를 다운로드 받아 ‘소유’해서 소비하던 기존 개념에서 스트리밍을 통한 ‘접속’으로 소비하는 방식으로 콘텐츠 소비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면서 ‘플로우’ 소비시대로 진입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음악, 동영상 등 스트리밍으로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플랫폼이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구축되고 있고, 이용빈도 역시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인터넷 사용 시 플로우 경험을 높게 인지한 사용자일수록 온라인을 통한 구매의도가 증가하는데, 스트리밍 서비스의 경우 인터넷 사용과 콘텐츠 소비 사이의 단절이 존재하지 않아 ‘플로우 소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Netflix)의 성공 이후 미국(Amazon, Hulu, Dramafever 등), 중국(Youku Todou, IQIYI 등), 한국(pooq, tving 등) 등 전 세계적으로 OTT 서비스가 급성장하는 추세다. 미국의 경우 OTT 시청자 수가 전년대비 60%(2014년) 증가하는 추세에 힘입어 지상파(NBC, CBS) 및 주요 케이블TV(ESPN, CNN)도 서비스를 개시했다. 음원산업에서도 글로벌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인 스포티파이(Spotify)를 필두로 국내의 멜론(Melon), 밀크뮤직(Milk Music) 등이 급성장하고 있다. 애플 같은 글로벌 기업도 비츠뮤직(Beatsmusic)과 같은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에 착수하는 등 음원 소비트렌드가 스트리밍으로 이동 중이다.
OTT 시장에서는 단순히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콘텐츠를 제작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넷플릭스의 경우 <하우스 오브 카드(2013)>, <오렌지 이즈 더 뉴블랙(2014)> 등을 자체 제작하여 골든글로브, 에미상을 수상하는 성공을 거두었고, 최근에는 최고제작비 기록을 갱신한(총 9,000만 달러) <마르코 폴로>를 제작하는 등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아마존도 <트렌스 페어런트(2014)>를 제작해 골든글로브를 수상했고, 우디 앨런, 스티븐 소더버그, 리들리 스콧 등 드라마/영화계의 스타 감독들을 영입해 콘텐츠 제작에 박차를 가하며 넷플릭스에 맞서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OTT업체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훌루가 최근 스티븐 킹 원작인 <11/22/63>의 리메이크 제작을 결정하는 등 업계 전반에 걸쳐 장기적으로 확장될 것으로 전망된다. 방송을 기반으로 한 ‘보고, 듣는’ 콘텐츠 소비에서 ‘접속’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인터넷 기반 스트리밍 서비스로 콘텐츠 소비의 트렌드가 변화하고 있음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