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시대의 스포츠 민족주의
흔히 대규모 스포츠 대회가 열릴 때면 ‘지구촌의 대축제’나 ‘평화의 한마당’같은 수식을 덧붙이지만, 이 메가 스펙터클은 오히려 긴장과 대립의 세계상을 적나라하고 강력하게 반증한다. 더욱이 인터넷 시대에 접어들면서, 전 세계가 이른바 ‘비동시성의 동시성’으로 압축되고 기존의 시공간적 관계가 재편되면서 국제적인 스포츠 대회에 몰입되는 과잉된 민족주의는 경기가 끝나고 대회가 폐막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확산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 6월의 ‘유로2012’ 대회나 8월의 런던올림픽 때, 주최 측에서 가장 염려한 것이 ‘온/오프라인’을 가릴 것 없이 각국의 ‘열혈 팬’들이 민족주의에 휩싸여 혹시라도 선수나 관계자들에게 극단적인 폭력(오프라인상의 물리적 폭력뿐만 아니라 온라인상의 이른바 ‘인터넷 테러’까지도)을 행사하지 않을까하여 이를 사전에 예방하거나 사후에 엄중히 조치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경우, 그 생생한 사례를 ‘박종우 독도 세러머니’에서 확인하였거니와, 이에 대한 검토와 성찰은 인터넷 문화 발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제라고 하겠다. 기본적으로 전제해야 할 것은 인터넷상의 민족주의 표현이 바로 그 ‘인터넷’에 의하여 원천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많은 문화연구는 인터넷이 이러한 20세기적 민족주의적 정서를 완화하거나 다양화한다고 밝혀왔다. 기존의 폐쇄된 사회에서는 민족주의가 정치적 이념으로 그치지 않고 수직적인 가족/직장 문화의 위계서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지만 인터넷 시대 이후로는 세계 곳곳의 젊은 문화와 쉼없이 소통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코드를 ‘생성-전이-확산’함으로써 수직적인 위계서열 보다는 수평적인 대화 관계가 점점 더 늘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분석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시공간의 장벽없이 수시로, 쉼없이 소통 가능한 인터넷 문화는 때로 극단적인 민족주의적 ‘사건’이 발생했을 때 서슴없이 그 대립적 정념을 표출하는 매우 효과적인 장치가 되기도 한다. 인터넷이 대결적 민족주의를 생산하지는 않았지만 때로는 그 감정을 20세기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방식으로 표현하고 관철하는 것이 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펜싱의 ‘신아람 1초’, 축구 대표팀의 스위스전, 박종우 독도 세러머니 등이 발생했을때 인터넷은 격렬한 감정의 표출 수단으로 거침없이 활용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문제를 ‘스포츠의 민족주의’와 ‘인터넷의 민족주의’로 나누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생각하건대, 어쩌면 쿠베르탱 남작이 애초 올림픽을 상상했을 때부터 스포츠는 민족주의라는 씨앗으로 출발했는지도 모른다.
그 이전에 이미 프랑스에서는 근대적인 종합대회인 ‘공화국 올림픽(L’Olympiade de la Rpub-lique)’을 치른 적이 있다. 왕정을 몰아내고 혁명이 성취된 1790년대 일이다. 그 열기가 곧 19세기의 근대 도시로 번져나갔다. 산업혁명의 나라 영국에서는 1866년에 바로 그 혁명의 상징인 런던 수정궁에서 윌리엄 페니 브룩스가 최초의 영국 올림픽 대회를 만들었다.
이런 과정, 즉 19세기에 벌어진 유럽 여러 나라의 올림픽 재현 열기란 기존의 왕권과 세습 귀족 세력을 대체하면서 서서히 근대 국가의 핵심 세력으로 성장한 시민 계급이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과 사회적 위상과 문화적 취향을 확립하기 위하여 상상한 것이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 맞서고자 했던 그리스가 올림픽 부활을 노력한 점이나 쿠베르탱이 보불전쟁의 여파(프로이센에게 대패함)로 참혹하게 구겨진 프랑스인의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올림픽을 구상한 것이 근대 스포츠의 민족주의적 출발점이 된다. 이를 도약대로 삼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사마란치 시대 이후 다양한국제 경기를 세밀하게 재편하여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축구는 무엇보다 이러한 정념을 집약하고 확산시키는데 매력적인 종목이다. 룰이 복잡하지 않다. 공간 제약도 별로 없다. 가벼운 차림으로 얼마든지 참가할 수 있으며 키나 몸무게가 특별히 장애를 주지 않는다. 비가 와도 할 수 있으며 춥거나 더운 날씨가 경기 자체를 방해하지 않는다. 이러한 단순성과 보편성 때문에 지구 전역에서 축구가 벌어졌고 따라서 축구장은 그저 하나의 거대한 스펙터클 차원을 넘어서 집합적 감정, 곧 민족주의를 표출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화약고 같은 스포츠에 거대 기업과 미디어와 피파(FIFA, 국제축구연맹)라는 삼위일체가 흡착되면서 축구가 산업 이상의 산업, 콘텐츠 이상의 콘텐츠, 스포츠 이상의 스포츠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대규모 스포츠 대회를 통해 집단과 국경을 초월하여 막대한 기대 이익을 창출하고자 한다. 물론 이 ‘삼위일체’가 민족주의를 일부러 조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유럽의 경우, 유럽연합(EU) 결성에 따라 기존의 민족이나 국가적 경계를 초월하는 새로운 사고와 정서가 탈민족적 경향을 주도할 것으로 예측 되었지만 현실은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기존의 민족 국가 정체성을 재확인하려는 경향, 무엇보다 스포츠(특히 축구)를 통하여 민족주의 정체성을 강화하려는 경향이 증대되고 있다. 게다가 경제 위기에 따라 비유럽계 이민자를향한 악감정도 늘고 있다. 서유럽보다 사회 안전망이 부실하고 문화 격차가 큰 동유럽에서는 극우 패권주의가 발호하고 있다. 내부의 문제를 인종차별이란 예민한 감정을 이용하여 외부를 향해 폭력적으로 발산하려는 그릇된 민족주의도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스포츠와 민족주의가 결합된 대표적인 나라다. 시민 생활 스포츠 보다는, 철저히 조련된 엘리트스포츠 정책이 주도해온 현황에서 ‘대한건아’,‘태극마크’,‘국위선양’ 같은 수사는 여전히 한국 스포츠의 강력한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고 있다.
바로 그 강렬한 감정이 경기장에서, 그리고 인터넷에서 서슴없이 표출되고 있는 현실이다. 거칠게 압축하여 ‘기존의’ 인터넷이 자기가 원하는 정보를 찾거나 어떤 의견을 덧붙이는 정도였다면 ‘오늘의’ 인터넷은 이와 같은 기본적인기능에 더하여 검색한 정보를 재가공하거나 스스로 생산하는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인터넷’이라는 범주와 흡사하면서도 전혀 다른 문법으로 급변하고 있는 ‘SNS’는 모두가 발화자이자 수신자이며 모두가 생산자이자 수용자인 새로운 ’공론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수많은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때로 이러한 네트워킹 방식은 즉시성과 집단성을 무기로 하여 특정한 민족주의적 감정에 따라 어떤 ‘목표’를 정하여 집단적으로 ‘테러’를 가하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민족주의적 감정을 표출하는 그 순간에는, 스포츠가 가진 최소한의 의미나 해당 종목의 현황 그리고 무엇보다 ‘분노’를 자극한 문제의 상황에 대한 이해가 대부분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도 국내 방송과 신문은 몇몇 종목의 판정에 대해 ‘종주국이 경쟁국을 견제한다’거나 심판들의 국적을 특별히 제기하며 민족주의또는 부분적으로는 인종주의적인 편견으로 이를 보도하는 경우가 있었다.
‘신아람의 1초 오심’의 경우, 네티즌은 상대 선수였던 독일 여자 펜싱 대표 하이데만의 사적 공간인 SNS로 가서 ‘나치의 후예’ 등의 표현을 했다. 물론 신아람의 ‘1초’는 억울한 판정이었고 하이데만 선수도 조금은 경박하게 행동한 점이 있지만 이를 인종주의로 이해하거나 나치 운운하는 것은 심한 표현이었다. 유도, 펜싱, 태권도, 레슬링 등이 수 년에 걸쳐 매우 높은 수준의 극소수 경쟁자들이 겨루는 ‘개인 종목’임을 감안할 때 석연치 않은 판정이 날 공산이 크지만 그럴 때마다 이를 민족주의 감정으로 치환해버리는 것은 우리가 아직 스포츠를 ‘일상 문화’로 전환시키지 못하고 여전히 근대적인 민족주의 대결로 인식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김연아 선수의 맞상대였던 아사다 마오를 표현할때, 나름대로 세계적 기량을 갖춘 한 개인으로 평가하기 보다는 ‘숙적 일본’으로 대하는 태도가 그런 것이다.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 인상적인 조치를 내렸던 나라는 스위스다. 스위스 선수단과 축구협회는 한국과의 경기 전후 과정에서 말썽을 일으킨 미첼 모르가넬라 선수를 즉각적으로 대표팀에서 퇴출시켰다. 모르가넬라는 경기 후 자신의 트위터에 한국인을 비하하는 표현을 했다. 그는 인종차별적인 글을 올렸고 이에 스위스 선수단과 축구협회는 “모르가넬라가 차별적이고 모욕적인 말로 한국 축구대표팀과 한국 국민을 비하했다”며 정중히 사과하도록 하고, 그 선수를 대표팀에서 퇴출시켰다. 그리스의 육상 여자 세단뛰기의 볼라 파파크리스토 선수도 아프리카계 이민자를 조롱하는 글을 올렸다가 대표팀에서 퇴출당했다. 바로 이런 정신이 필요하다. 이는 매우 고결한 결정이며 인류 보편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려는 진지한 노력이다. 반면 우리 대표팀과 미디어와 일부 네티즌이 보여준 태도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석연치 않은 판정에 대한 비난을 넘어서 극단적인 표현이 난무하였고 심지어 몇몇 선수들은 귀국 후 가진 기자회견이나 텔레비전 예능 프로에서 일종의 무용담처럼 그런 이야기를 되새기기도 했다.
스포츠를 통해 민족주의를 표현하는 것은 대체로 ‘민족적인 사건’이 발생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사건을 우리 사회 내의 응어리진 어떤 분노와 감정을 표출하는 계기로 삼는 측면이 훨씬 더 강하다. 앞으로 세계는 더 좁아질 것이고스포츠를 통한 감정 표현도 더 격렬해질 것이다. 국내의 인구 구성 환경도 세계 곳곳에서 직장이나 결혼 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유입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때에 인터넷에서의 문화적 인신 공격은 매우 위험하다. 이를 적절히 조절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의 스포츠 문화를 ‘민족주의 대리전’으로 인식해온 그동안의 관점을 서서히 바꿔가는 것이다. 문화적 다양성과 서로 다른 가치의 공존이 더 일반화되고 특히 이 바람직한 태도가 인터넷에서 슬기롭게 자기 조정이 될 때, 스포츠는 더없이 아름다운 일상 문화로 자리잡을 것이며 동시에 그러한 조건 위에서 펼쳐지는 국가 대항전에서의 흥분은 이번 올림픽처럼 매우 위험한 민족주의로 표출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