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0 시대 통상 리스크와 디지털 규제

트럼프 2.0: 연속성과 변화

2025년 2월 트럼프 2.0 시대가 개막되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1기 행정부와 연속성과 변화의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기에 트럼프 2.0이라고 명명된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무역 불균형의 완화 또는 제거, 관세의 무기화, 양자 협상에 대한 강력한 선호, 대중국 견제에서 1기 행정부의 정책과 상당한 연속성을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 2기는 그렇다고 해서 1기 행정부의 단순한 귀환은 아니다. 트럼프 1기 출범 이후 기준 지난 8년간 미국 국내외에서 발생한 커다란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은 1기의 정책과 차별성과 변화의 모습을 띨 수밖에 없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어젠다가 공화당의 주변부에서 벗어나 주류화되는 변화가 발생하였다. 여기에는 민주당에 비해 공화당의 세대 교체가 상대적으로 신속하게 이루어진 것이 작용하였다. 이른바 ‘젊은 공화당원들(Young Republicans)’이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당내에서 뒷받침하는 당내 세력으로 부상한 것이다. 이들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 MAGA)’는 목표에 적극 공감·호응하는 그룹으로 공화당 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한 추산에 따르면, 공화당 내 MAGA의 비중이 60%에 달한다. 이처럼 개인의 인기에 의존하여 정책을 추진하던 트럼프 대통령이 1기에 비해 더 탄탄한 정치적 기반을 확보하게 되었다. 미국 정치의 트럼프화(Trumpification)가 발생한 것이다.

의회의 상하 양원이 모두 공화당이 장악하는 단점 정부의 출현은 트럼프 대통령이 가진 또 하나의 정치적 자산이다. 1기 행정부 당시 트럼프 행정부는 자신의 정책 어젠다를 신속하게 추진하기 위해 의회의 견제를 우회하는 행정명령을 동원하였다. 여기에는 주류 정치에 대한 불신도 작용하였지만, 당시 미국 상원과 하원의 다수당이 각각 공화당과 민주당으로 나누어짐으로써 입법이 지연 또는 폐기되는 국내 정치적 상황과도 관련이 있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의 경우, 출범 당시에는 상하 양원 모두 공화당이 다수당이었으나, 2년 뒤인 2018년 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235석을 획득함으로써 다수당이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이러한 정치적 난관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2024년 선거에서 공화당이 다시 양원의 다수당으로 복귀함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적극 활용하는 기존 방식에 더하여, 의회의 입법 지원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장착하게 되었다.

동시다발적 양자주의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다수의 국가들을 상대로 협상을 동시에 진행하는 동시다발적 양자주의를 추구하고 있는데, 이러한 방식은 트럼프 대통령 자신에게도 새로운 영역이다. 트럼프 대통령 자신이 뛰어난 협상가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나, 최대 압박을 가한 후 자신에게 유리한 협상의 환경을 만드는 협상 방식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양자 협상은 이러한 협상술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식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2기가 추진하는 협상은 동시다발적 양자 협상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협상 방식과 차이가 있다. “90일의 유예기간 동안 90개의 협상을 타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백악관 선임 고문 피터 나바로(Peter Navarro)의 언급이나 “200개의 협상을 타결하였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서 나타나듯이, 현재 미국 정부가 협상을 진행 중인 국가의 수를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동시다발적 양자주의가 기대한 결과를 가져다 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미국의 협상 대상으로 지목되어 협상의 비대칭성을 홀로 감내해야 하는 트럼프 1기와 달리, 동시다발적 양자주의에서는 어느 한 국가라도 트럼프 대통령의 예상과 달리, 보복 관세로 대응하는 선택을 할 경우, 전체 협상 전선이 일거에 무너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2.0과 EU 디지털시장법

한국의 플랫폼 산업 규제에 대한 미국의 문제 제기는 다각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 문제에 대한 입체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우선 플랫폼 산업 규제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기본 인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의 디지털시장법(Digital Market Act: DMA)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견해를 반복적으로 드러냈는데, 미국의 빅 테크에 과징금을 부과할 것이라는 유럽연합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 EC)의 발표가 도화선이 되었다. 2025년 3월 유럽연합집행위원회는 애플(Apple)과 구글(Google)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여, 두 기업이 DMA를 위반한 소지가 있다며 EU의 디지털 경쟁 규칙을 준수할 것을 촉구하였다. EU는 2025년 4월 애플과 구글에 각각 5억 7천만 달러, 2억 3천만 달러의 과징금 부과를 결정하였다. 애플과 구글은 이를 회피하기 위해 핵심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에 들어가야 한다. 이 경우, 애플은 경쟁 기업에게 알림, 기기 연결 등 아이폰과 동일한 기능에 대한 접근권을 제공해야 하고, 개발자들과 소통, 협업하는 방식을 변경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글 역시 플레이스토어(Play Store)와 구글 서치(Google Search) 등 자사의 서비스를 우선적으로 제공하는 영업 방식을 개편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의 이러한 움직임은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되어 미국과 EU 사이의 통상 분쟁의 확전을 격발한 요인이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DMA를 미국 빅 테크에 대한 갈취라는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며 비판한 것은 이러한 배경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연합집행위원회의 발표 이전인 2025년 2월 서명한 메모에서 DMA를 언급하며 미국 기업의 이익을 수호할 것이라고 공언한 데서 자국 빅 테크 이익 보호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의지가 읽혀진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의 발표에 대한 반발을 트럼프 행정부 전체로 확산되었다. 발표 당일 백악관 국가안보위원회 대변인이 “EU의 조치를 용인하지 않을 것(EU’s actions will not be tolerated)”라고 반발한 것이나,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ederal Trade Commission) 위원장 앤드루 퍼거슨(Andrew Ferguson)은 DMA의 복잡하고 기업에 부담이 큰(complex and burdensome) 규정이 미국 빅 테크의 혁신 능력을 현저하게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한 것이 대표적이다. 한 마디로 DMA가 미국 빅 테크에 대한 공격이라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DMA에 대한 비판에 적극적인 것은 EU의 불공정 행위를 차단하겠다는 무역 전쟁의 차원과 관세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당한 자국 기업과 복원하려는 국내 정치적 고려가 동시에 작용한 결과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다수의 국가들을 상대로 동시다발적인 양자 협상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이른 시기에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DMA의 시행에 대한 EU의 타협을 얻어내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전쟁에서 승리를 ‘선언’할 수 있는 소재가 되기에 충분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EU와 90일 간 협상이 원만하게 타결되지 않을 경우, 2025년 6월부터 50%의 관세를 부과할 것을 재확인한 것도 DMA를 포함한 EU와의 무역 전쟁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한 지렛대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정치 차원에서 볼 때, 고율의 관세 부과는 미국 소비자들뿐 아니라, 제조 공정을 해외로 이관한 미국 테크 기업에게도 상당한 피해를 초래하였다. 미국의 이익을 수호한다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관세 부과의 피해가 고스란히 미국 시민과 기업에 돌아올 것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특히, 테슬라(Tesla)를 비롯하여 핵심 지지 기반인 빅 테크들의 이해관계를 트럼프 행정부가 소홀히 한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엔비디아(Nvidia)의 젠슨 황(Jensen Huang)이 미국 정부의 대중국 수출 통제 정책이 ‘실패’라고 정면 비판한 데서 빅 테크들의 불만이 확인된다. 그 불만의 핵심은 관세 전쟁과 수출 통제가 ‘자기 발등’ 찍기라는 것이다. DMA에 대한 강력한 대응은 관세 전쟁을 지속하면서도 빅 테크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는 딜레마를 해소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된다.

트럼프 2.0과 한국의 플랫폼 규제

한국의 디지털 무역 벽의 문제점을 여러 해에 걸쳐 지적해 온 미국 통상대표부는 <2025 무역장벽보고서>에서도 어김없이 플랫폼 산업 규제의 문제점을 분명하게 지적하였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은 이 규제로 인해 기업에게 부과될 금지 규정과 의무를 도입하는 데 있어서 업계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반영하여 신중하게 접근할 것을 요청하였다.

한국의 플랫폼 산업 규제에 대한 미국의 접근은 세 가지 측면에서 이루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미국은 플랫폼 규제가 미국 빅 테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함으로써 한국 시장에서 기존과 같은 위치를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와 관련, 미국 기업을 겨냥하여 특별한 요건 또는 세금을 부과하는 한국 정부의 조치에 대한 의견을 묻는 마이크 크레이포(Mike Crapo) 상원의원 질문에 대하여, 재이미슨 그리어(Jamieson Greer) 미 통상대표는 미국 기술 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규제에 대해 명확한 반대 의사(“It won’t be tolerated.”)를 밝혔다. 미국 업계 또한 한국의 플랫폼 산업 규제가 도입되기 전에 경쟁 환경에 대한 포괄적인 시장 분석과 규제의 영향 평가를 수행할 것을 요구해 왔다. 구글, 메타, 아마존 등 미국의 대표적인 플랫폼 기업을 대변하는 미국상공회의소(American Chamber of Commerce: AMCHAM) 또한 이 이슈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 바 있다. 한국의 플랫폼 산업에 대한 규제 시도에 대하여 미국은 정부, 빅 테크, 협회가 마치 하나의 몸처럼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미국은 플랫폼 산업에 대한 규제 이슈를 무역 불균형의 완화와 연계한다. 2025년 4월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산 수입품에 기본 관세 10%에 추가로 25%의 상호 관세를 부과하기로 발표하였다. 이 조치가 실행에 옮겨질 경우, 2024년 기준 566억 달러 규모의 미국 수입액에 적용된다.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가 대다수 무역 상대국을 대상으로 관세 전쟁을 감행한 것은 무역 불균형을 시정하려는 의지가 강력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한국은 미국에게 6번째로 큰 무역 상대국으로서 대미 무역 흑자 규모가 660억 달러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만성적인 무역 불균형의 원인을 한국의 비관세 장벽에서 찾는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ational Economic Council)의 케빈 하셋(Kevin Hassett)이 “(한국의) 비관세 장벽 때문에 미국 기업이 한국에서 공정하게 경쟁하기 어렵다”는 발언에서 미국 정부의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2025년 5월 제주에서 진행된 관세 협상을 위한 한미 국장급 회담에서 논의된 주요 이슈에 디지털 무역이 포함되었다. 이 회담에서 미국 측은 플랫폼 산업 규제 이슈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 불균형 완화라는 관점에서 플랫폼 산업 규제에 접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경제 안보적 관점이다. <2025 무역장벽보고서>는 ‘무역법 집행 및 미국의 경제 안보 이익 증진’하는 데 주요 목적이 있다고 명확하게 서술하고 있다. 무역법의 집행이 규칙과 절차적 측면에서 미국의 이익에 대한 침해를 파악하는 것으로 상대국 정부의 법률, 규제, 정책, 관행 등이 공정한 경쟁을 왜곡하거나 저해하는 것을 방지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한편, 경제 안보 이익의 증진은 통상 이슈를 경제 안보, 더 나아가 국가안보의 맥락에서 접근하겠다는 점을 명시한 것이다. 이는 미국이 플랫폼 규제를 개별 이슈(single issue)를 넘어, 중국과 첨단기술 경쟁 등 미국의 경제 안보 이슈로서 접근할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이슈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시각의 일단은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을 역임한 로버트 오브라이언(Robert O’Brien)의 언급에서 찾을 수 있다. 2023년 12월 오브라이언은 2024년 12월 플랫폼 산업의 불공정 거래를 제한하기 위해 도입되는 규제가 중국에 대한 ‘선물’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였다. 한국 정부가 비록 그럴 의도가 전혀 없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미국 플랫폼 기업이 규제의 일차적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에, 중국 플랫폼 기업이 반사효과를 누리게 될 것이라는 경고였다. 알테쉬(알리, 테무, 쉬인)의 한국 플랫폼 서비스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는 데 대한 국내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현실은 미국 플랫폼 기업의 우려를 더욱 증폭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저자 : 이승주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