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조건

2021년 10월부터 2022년 2월까지 신문사에서 참여관찰 연구를 수행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서울대학교 윤석민 교수님께서 연구년을 맞아 현장 연구를 계획하고 계셨는데, 교수님의 제안으로 중앙일간지 A사 편집국 참여 관찰 연구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편집국 내의 신문 제작 과정에 대한 관찰에서 시작한 연구는 일선 기자 동행 관찰, 사회부와 정치부에 대한 밀착 관찰, 신문 지면의 판갈이1 데이터 분석 등으로 확장되었다. 5개월간의 참여관찰을 마치고 편집국을 떠난 지 3년이 지난 올해 2월, 뉴스 생산의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두 권의 책 『저널리즘 연구 1: 뉴스의 생산』, 『저널리즘 연구 2: 뉴스 생산자』를 출간했다.

언론 현장에 들어간 이유는 무엇보다 우리 언론이 처한 위기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마주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언론은 독자 감소와 디지털 전환으로 인한 경영의 위기, 언론에 대한 불신과 냉소가 만연한 신뢰의 위기, 낮은 임금과 과중한 노동에 시달리는 열악한 언론인의 현실까지 다층적이고 총체적인 위기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언론 위기의 상황에서 언론의 제도적 한계나 실천의 문제를 비판하고 언론 개혁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연구는 많았지만, 정작 위기의 언론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실제로 뉴스가 어떤 과정을 거쳐 생산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본 연구는 거의 없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언론 현장에서 언론 위기에 대한 답을 찾아보자는 데 뜻을 모으고 현장 연구를 시작했다. 언론에 대한 불신과 냉소, 회피는 정당한 것인가? 언론이 수행하는 현실 재구성은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언론은 스스로 위기를 극복할 힘을 지니는가? 이러한 질문들을 안고 현장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현장에서 발견한 것이 무엇인지, 이러한 질문에 어떠한 답을 얻었는지 한마디로 간단히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현장에서 희망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일선 기자들이 고군분투하는 현장에서, 사회부와 정치부 데스크의 치열한 일상에서, 그리고 편집국의 정교한 지면 편집 과정에서 언론인들이 현장에서 지켜내고자 애쓰는 저널리즘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일선 기자들은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취재원을 만나고, 팩트를 수집·검증하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하는 뉴스 생산의 최일선을 지키는 존재들이었다. 이들은 이전 세대 언론인보다 강한 공감 능력과 문화적 감수성, 글로벌 마인드와 정의감을 가진 존재들이었고 일과 개인의 삶의 균형을 모색하면서 동시에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언론의 소명에 동참하고 있었다.

사회부 밀착 관찰을 통해 발견한 것은 부장을 중심으로 하는 데스크들의 매일 반복되는 뉴스 생산 노동이었다. 이들은 언론학계의 규범적 기준으로 볼 때 완벽하지 못하고 편향으로부터도 자유롭지 않지만,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이라 할 수 있는 ‘사회적 현실의 재구성’ 작업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와 달리 정치부는 데스크가 기사 아이템의 선정과 기사 작성 과정 전반을 주도하고 있었다. 정치부 데스크는 정치 평론 엘리트로서 정치적 사실들에 맥락과 해석적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들이었다. 이들은 A사 고유의 시각과 편향을 드러내는 동시에, 정치적 사실에 맥락을 부여하고 해석을 더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그것은 해당 언론사의 논조를 만드는 과정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단순한 사실 보도를 넘어서는 정교화의 과정이기도 했다. 이들은 정치 뉴스가 피상적인 팩트로 겉돌지 않게 하면서, 동시에 난장 같은 정치판에서 언론이 ‘함께 칼춤을 추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 존재였다.

지면 편집은 오후 5시 초판 발행 이후 여러 차례의 판갈이를 거치면서, 기사에 대한 검토와 수정, 거듭된 사실 확인, 재검토와 재수정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과정이었다. 이를 통해 사실이 더 정밀해지고, 표현이 명확해지고, 설명이 강화됐으며, 결과적으로 뉴스의 품질과 완성도를 높이고 있었다. 지면 편집 과정은 A사의 이념적 성향이 강화되거나 감성과 해석이 사실을 앞서간 제목이 발견되는 등 일부 한계를 안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이 생산한 신문 지면은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이라고 할 수 있는 현실에 관한 ‘공들인 그림’이었다.

이러한 관찰을 통해 얻은 결론은 단순하지만 확실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언론 현장에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현장 취재와 게이트키핑, 데스킹, 편집의 과정을 거치는 협업 속에서 단순한 사실의 나열을 넘어 맥락과 해석, 사회적 의미를 담은 ‘뉴스’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전문성과 책임성을 갖춘 언론, 즉 가치 있는 언론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뉴스 생산 과정에 대한 5개월간의 관찰 기록을 반복적으로 성찰하면서, 세상의 수많은 정보와 사실들이 모두 ‘가치 있는 뉴스’가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뉴스인 것처럼 유통되고 많은 사람이 소비한다고 해도 뉴스의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뉴스라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진짜 ‘뉴스인 것’과 ‘뉴스가 아닌 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그 기준이 되는 뉴스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제안해 본다.

첫째, 뉴스는 반드시 취재의 과정을 거쳐 생산되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원칙 같지만, 현실에서는 이러한 기본조차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보도자료나 타 언론사의 기사를 그대로 베껴 쓰거나, 인터넷에서 떠도는 정보를 짜깁기해서 쓰는 기사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현장에서 관찰한 바에 따르면 뉴스의 생산은 취재에서 출발한다. 기자가 직접 현장에 가고, 취재원을 만나고, 자료를 뒤지고, 사실을 확인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맥락과 의미를 발견한다. 취재는 단순한 정보 수집을 넘어서서, 사회적 사실에 접근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고 뉴스 생산의 출발점이다.

뉴스의 두 번째 조건은 게이트키핑과 데스킹의 협업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뉴스는 기자 혼자서 쓰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기자라도, 데스크와의 소통 없이는 완성도 높은 기사를 쓰기 어렵다. 어떤 아이템이 뉴스로 보도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게이트키핑), 그리고 그 보도를 어떤 맥락과 언어로 풀어낼지(데스킹)는 데스크 및 동료 기자와의 긴밀한 논의를 통해 판단된다. 이 과정은 단순히 기사 내용에 대한 수정과 교열 넘어서, 저널리즘의 가치와 사회적 판단이 개입된 집단 지성의 작동 방식이다. 기사의 바이라인(by-line)2에는 기자 한 명의 이름이 적히더라도, 그 이면에는 여러 사람의 판단과 협의, 조율이 뒷받침되고 있다.

셋째, 뉴스는 편집을 통해 비로소 독자에게 전달될 수 있는 형태를 갖춘다. 아무리 취재와 데스킹을 잘해도, 편집 과정이 충실하지 못하면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거나 왜곡될 수 있다. 제목은 기사 전체의 맥락을 요약하고, 사진은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보완하며, 지면 배치는 독자의 이해를 돕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 사실을 이해하기 쉽고 정확하고 왜곡 없이 전달하기 위한 정교한 편집 과정이 요구된다는 것이 뉴스의 세 번째 조건이다.

하지만 이러한 조건을 온전히 갖춘 뉴스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취재 없이 다른 기사나 보도자료를 베껴 쓰기도 하고, 현장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많은 뉴스가 양산되고 있다. 소규모 인터넷신문이나 유튜브 콘텐츠는 많은 경우 개인에 의해 생산되기 때문에, 전통적인 편집국의 데스크 체계와 협의, 다층적인 검토가 생략된다. 정교한 편집 과정이라는 조건 역시 디지털 환경에서 쉽게 생략되기는 마찬가지다. 뉴스의 조건을 갖춘 ‘진짜 뉴스’와 ‘뉴스가 아닌 것’이 서로 뒤섞여 언론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뉴스 유통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그에 맞춰 새로운 방식의 뉴스 생산이 필요하고, 전통적인 저널리즘도 그에 맞추어 변화해 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변화가 뉴스의 본질적 조건을 포기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취재를 통해 사실을 확인하고, 협업을 통해 사실에 의미를 부여하고, 편집을 통해 사실을 명확히 드러내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켜내고 있는 사실성과 정확성, 맥락성과 심층성 등의 저널리즘 가치는 플랫폼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사라져서는 안 될 저널리즘의 근간이다.

우리는 뉴스처럼 보이고 뉴스처럼 기능하는 수많은 콘텐츠 사이에서, 무엇이 진짜 뉴스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뉴스의 조건을 갖추지 못한 정보들이 뉴스인 것처럼 유통되고 소비되는 현실은, 저널리즘의 본질적 가치를 흐리게 만든다. 뉴스의 조건을 갖춘 진짜 뉴스가 더 주목받고 더 많이 소비될 수 있도록, ‘뉴스가 아닌 것’이 언론 생태계에서 배제될 수 있도록, 이제는 언론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이제는 사회가 언론을 지켜야 한다.

<참고문헌>

  • 윤석민·배진아 (2025). 『저널리즘 연구1 뉴스의 생산』. 서울: 사회평론.
  • 윤석민·배진아 (2025). 『저널리즘 연구2 뉴스 생산자』. 서울: 사회평론.
  1. 인쇄 윤전기에 걸려 있던 신문 인쇄판을 내려 새 판으로 교체하면서 지면 내용을 수정해 재인쇄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오후 5시경에 초판이 발행되고 이후 저녁 9시경에 지역에 배달되는 지방판이, 밤 11시경에 수도권으로 배달되는 수도권판이 발행된다. 이후 속보 등 사안이 발생하면 판이 추가로 더 발행된다. [본문으로]
  2. 신문 기사에서 해당 기사를 작성한 사람의 이름을 표기하는 것으로, 기사의 마지막 부분에 주로 배치된다. [본문으로]
저자 : 배진아

공주대학교 영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