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후보들에게 바란다] 디지털 생태계, 두 가지 이정표를 놓치지 말기를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창립 20주년을 맞이한 것이 지난 2020년이다. 인터넷 기업들이 태동하고, 산업이 움트기 시작할 무렵에 협회도 함께 태어났으니 인터넷 산업 역시 어느새 20년의 세월을 지난 것이다. 그 시간 덕분인지 지금의 인터넷 기반 산업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제에서도 가장 중심에 서서, 세계 경제를 끌고 가는 산업이 되었다. 감사하게도 태동기부터 지금까지 인터넷 산업에 몸 담고 있는 개인으로서는 감회가 정말 새롭다. 시작은 미약했고 지금이 이렇게 창대할지는 몰랐으니까.

지난 20년을 돌이켜보면 인터넷 산업에 가속도를 붙인 몇 가지 사건들이 있었다. 첫째는 일상이 모바일 중심으로 재편된 것이다. 스마트 폰이 등장했다. 이 의미는 곧 컴퓨터가 사람들의 손 안에 있으며 인터넷이 이동 중에 가능하게 되었다는 의미다. PC를 통해 제한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던 인터넷이 이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많은 서비스들이 탄생하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웹의 시대에서 앱의 시대로 전환을 맞이하게 된 계기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으로 인해 인터넷 산업은 또 한 번 긍정적 모멘텀을 맞이했다. 우리가 움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단계적 일상 회복’이라는 시기를 이제는 맞이하게 되었지만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우리는 움직이는 것에 조심스러운 일상이었다. 그렇다 보니 출근, 등교와 같은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기 어려웠고 이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이 인터넷이었다. 이를 방증하듯 지난 2년 사이에 급속도로 익숙해진 단어들이 있다. 재택근무, 화상회의 같은 단어들은, 팬데믹 이전의 세상이라면 어쩐지 어색한 단어들이지만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단어다. 그 중심에는 물리적 거리가 떨어져 있어도 사람과 장소를 이어주는 인터넷이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선별검사소 안내, 백신 잔여 수량을 어디서 확인할 수 있었을까? 인터넷이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인터넷을 통해서 펜데믹을 조금씩 헤쳐나가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인터넷 산업은 늘 사용자를 향해왔다. 이용자 후생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손 안에서 원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움직이지 않아도 만날 수 있도록 사용자가 편안해지는 것에 방점을 찍어온 것이다. 그 방점을 찍을 수 있게 만든 것은 인터넷 산업 고유의 DNA인 혁신이다. 구태에 얽매이지 않고 새롭게 한다는 그것. 혁신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그에 따라 새로운 기업이 등장하고 또 어느 순간 사라지는 등의 급격한 변화가 수시로 일어나는 특수한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DNA다. 덕분에 인터넷 기업들은 사용자들의 지속적인 선택을 받아올 수 있었다. 줌(Zoom)이 등장했다고 해서 선택지가 화상회의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모니터 앞에서 상의만 깔끔하게 입으려고 했을까? 편리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기반 산업은 사용자의 번거로움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진화해왔다. 그래야 선택받을 수 있음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을 맞이하는 지금, 이 선택으로 세상은 바뀌었다. 이제는 산업이 아니라 패러다임과 문화의 영역으로 인터넷 산업을 바라볼 시점이다. 인터넷 기반으로 사고하고 세상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매체부터 달라졌다. TV는 글자 그대로 레거시다. MZ세대부터 60대 어르신까지 지하철에서 유튜브를 본다. 구매 절차 또한 크게 달라졌다. 오프라인 매장은 상징으로서 남을 확률이 높다. 자주 쓰는 카드 하나 걸어놓거나 페이 서비스에 충전들 해두고 다양한 커머스 플랫폼에서 우리는 필요한 걸 찾는다. 사람들은 인터넷적으로 사고하고 모바일적으로 행동한다. 바뀐 세상에서 태어나고 자란 1020들, Z세대들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역시 디지털 네이티브다. 생활 양식의 기반이 디지털이라는 이야기다. 세계 경제의 축 역시 이동했다. 수출을 중심으로 한 제품의 영토를 넓히는 것보다 디지털 영토를 넓히는 것이 더 주요하게 되었다. 글로벌 증시를 주도하고 있는 기업들을 보자. 이른바 GAMA(Google, Apple, Meta, Amazon)로 불릴 수 있는 이유는 이들이 디지털 영토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인터넷 기업들 역시 이 디지털 영토를 밖으로는 확장하고, 안으로는 사수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세상이 바뀐 만큼 인터넷 기업들이 만들어 온 디지털 생태계는 대한민국 성장의 동력이자 글로벌 경쟁력의 구심점이 되었다. 디지털 생태계 안의 종사자 수만 어림잡아 120만명이다. 국내 반도체 산업 종사자 수가 약 16만명이라는 것을 고려해볼 때 국가의 지상 과제라 할 수 있는 일자리 창출이 어디에서 실현되고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디지털 산업이 만드는 파생의 효과다. 디지털 산업은 단순히 생산자와 소비자, 또는 제공자와 이용자로 양분되는 시장이 아니다.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일종의 ‘판’을 까는 것에 가깝기 때문에 다양한 이해 관계자가 생태계 내에서 공존하게끔 되어있다. 커머스 플랫폼을 하나의 예로 들어보자면 플랫폼이라는 판이 깔리고, 그 판 안에 소상공인들이 들어오고 소상공인들의 제품을 사고자 하는 소비자가 들어온다. 일종의 장이 서는 것이다. 장이 서게 되면 이제 상점과 소비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광고(손님을 부르고) 비즈니스도 생기고, 엔터테인먼트(즐거움도 주고)도 생긴다. 촘촘하게 생태계가 확장되는 것이다. 120만이라는 동력이 만들어지는 이유다.

디지털 산업이 명실상부 한 국가의 동력이 된 상황에서 더 건강한 성장과 더 커다란 디지털 영토 확보를 위해서는 현 시점에서 두 가지 이정표를 놓아두어야 한다. 특히나, 20대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여야 무관하게 후보들의 당면 과제인 미래 먹거리 발굴, 미래 세대의 일자리 마련을 위해서는 디지털 산업의 성장과 영토 확장이 필수적이기에 이를 위한 제대로 된 이정표 설정이 필요하다.

첫 번째 이정표는 당연하게도 규제는 심사숙고이다. 디지털 산업에 대한 섣부른 규제 도입은 부작용이 수반될 확률이 높다. 여기서 주요한 것은 섣부르다는 것이다. 산업에 대한 규제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늘 함께 존재한다. 산업에 문제가 불거졌을 때, 규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론 중 하나로 거론될 수 있고 해당 사안의 심각성으로 인해 규제를 통한 개입이 필수적이라고 판단된다면 규제는 유효할 수 있다. 단, 이를 위해서는 심각성이 판단되어야 하고 순기능이 더 유효할 때다. 예를 들어 ‘인앱결제 강제 방지법’은 인앱결제 강제로 인한 이용자 후생 축소, 생태계 내 창작자 위기, 생태계 위축 등의 심각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고 이에 규제를 통한 순기능이 더 크게 기대되기에 유효한 규제가 되는 것이다. 반대로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추진 중인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은 무엇보다 심각성에 대한 판단이 전무한 상황에서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 이전에 해결을 위한 방법으로 규제를 일순위로 두었다. 이는 실제로 병이 있는지 없는지부터, 어떤 병인지도 모른 채 수술부터 시작하려는 것과 다름없다. 진단도 없고 다른 치료법에 대한 고려도 없이 시작하는 수술은 다칠 수밖에 없다. 특히나, 디지털 생태계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용자를 포함한 이해 관계자들이 촘촘하게 엮여있기에 섣부른 규제 도입으로 어디가 어떻게 덧날지 모른다. 규제의 순기능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입 이전에 심사숙고가 최우선 시 되어야만 디지털 생태계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두 번째 이정표는 공존으로 시너지. 이는 디지털 산업의 숙명이며 지속적인 동력이다. 디지털 산업의 신성장 동력으로는 다양한 키워드들이 언급된다. 메타버스, NFT(Non-fungible token),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등은 미래의 성장동력인만큼 디지털 생태계 안에서도 크고 작은 비즈니스가 탄생하고 자라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새로운 서비스가 생태계 안에서 등장하더라도 공존을 기반으로 해야 지속적인 성장이 확보될 것이라는 점이다. 공존, 상생이라고 하면 사회공헌이나 ESG 경영의 연장선 상에서 착하고 선한 이미지를 그리게 되는데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디지털 생태계에서 말하는 공존은 비즈니스의 본질에 가깝다. 공존의 정의는 ‘서로 도와서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정의처럼 디지털 생태계 안의 수많은 이해관계자들과 서로 도와 함께 존재해야 비즈니스가 성립 가능하며 장기적으로 생존 가능하다. 소상공인 없는 커머스가 가능하겠는가? 창작자가 없는 콘텐츠 플랫폼이 가능하겠는가? 불가능하다. 대한민국 플랫폼 비즈니스가 계속 성장하는 이유는 바로 이 공존에 비교적 충실했기 때문이다. 생산자라고 할 수 있는 창작자, 소상공인과의 공존, 소비자인 사용자와의 공존, 이 안에서 새롭게 파생되는 비즈니스와의 공존. , 생태계 안에 다양한 구성원이 존재함을 알고 이 구성원들이 서로 도와 함께 키워나갈 때 디지털 생태계는 더 큰 파급력을 가지게 된다.

이 두 가지 이정표는 사실 산업계에서 지속적으로 내온 목소리와 다르지 않다. ‘규제 완화’는 입법 기관, 규제 기관을 향해 아직 성장 중인 산업이므로 조금 더 지켜봐 주기를 요청해왔다. ‘상생’ 역시 보기에 모자랄 수 있으나 이 자체가 비즈니스의 본질이자 동력이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키워나가는 것을 실천 중이다. 그럼에도 이 두 가지 이정표를 다시금 강조하는 이유는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이 산업의 성장이며 디지털 영토의 확장이기 때문이다. 차기 정부에서 이 성장과 확장을 놓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기회를 통해 다시금 강조해 본다.

저자 :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