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권 저, 『로봇시대, 인간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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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직업은’,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 일본 ‘닛케이 호시 신이치(星新一)상’의 예심을 통과한 두 소설의 제목이다. 그런데 사람이 쓰지 않았다. 일본의 SF 작가인 호시 신이치의 소설 1,000여 편을 학습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 썼다. 정확히는 이야기 구성이나 등장인물, 성별 등을 인간이 설정한 뒤 인공지능이 그 상황에 맞춰 준비된 단어나 단문을 선택해 집필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공개적으로 프로그램을 공유하는 플랫폼인 깃허브(GitHub)에는 ‘나모젠모(NaNoGenMo, National Novel Generation Month)’1라는 프로젝트가 있다. 5만 단어 이상의 책을 자동으로 만들어 매년 11월 서로 공유하고 평가한다. 2013년에 처음으로 시작했고, 책을 다 쓴 다음에는 소스 코드 공개를 규칙으로 하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디지털 미디어 분야 교수인 닉 몬트포트(Nick Montfort)가 2013년 나노젠모를 통해 공개한 ‘세계 시계(World Clock)’2는 큰 화제를 모았고 하버드 출판사를 통해 오프라인 책으로도 발간됐다. 닉 몬트포트 교수는 165줄로 된 파이선(Python) 코드를 통해 하루 동안에 발생하는 새로운 캐릭터, 위치, 사건을 분 단위로 배열하도록 프로그래밍했다.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이 서평을 사람이 쓰고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붓, 펜, 연필과 같이 선을 그을 수 있는 도구로 종이 따위에 획을 그어서 일정한 글자의 모양이 이루어지게 하다”는 사전적 의미에서는 쓰고 있지 않다. ‘ᄒᆞᆫ글’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실행하고 모니터 화면에 자판으로 글을 입력하고 있다. 정확히는 컴퓨터가 쓰고 있다. 오세욱이라는 사람이 자신만의 생각이라고 믿고 있는 내용을 자판을 통해 입력하고 그 내용을 컴퓨터가 데이터화해 처리하고 있다. 자동으로 쓰지 않을 뿐 컴퓨터가 종이에 획을 그어서 일정한 글자의 모양이 이루어지게 하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의 거주자를 위한 지침서”, “만능 인공지능 시대 지침서”, “저는 커피도, 섹스도 로봇과 해요!”, “로봇이 당신의 일자리를 빼앗을 수 있을까”, “로봇과 인간의 공존, 축복일까 재앙일까”, “무인車·전투로봇 … 당신의 직업 10년 뒤에도 존재할까”, “로봇은 우리의 친구일까, 경쟁자일까”, “모든 것이 자료로 쌓이고 자동화되는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인간다운 삶과 노동에 관하여”, “로봇과 사랑에 빠지는 현실이 도래할까”, “로봇 시대라는 문명사적 전환에 대해 디지털 인문학자가 던지는 10가지 미시적 질문”, “로봇 시대를 항해할 지표가 될 것”, “인공지능과 로봇 시대가 궁금하십니까”, “로봇이 대체할 수 없는…호기심 육성 능력을 키우자” 등. 책 제목인 ‘로봇시대, 인간의 일’로 검색해 나온 문서들 중 일부의 제목만 뽑은 것이다. 검색 결과 화면의 제목들을 복사한 후 붙여넣기 한 결과다. 이 제목들은 누가 쓴 것일까? 컴퓨터 화면에서 복사와 붙여 넣기를 한 내가 쓴 것일까 아니면 나의 명령을 수행한 컴퓨터가 쓴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각 문서를 작성한 사람들이 쓴 것일까?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대결에서 알파고가 승리하면서 인공지능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화두가 됐다. 인공지능과 관련해 지금 서평의 대상인 ‘로봇시대, 인간의 일’도 자연스럽게 많은 주목을 받았다. 위에서 제시한 것 외에도 수많은 문서들이 ‘로봇시대, 인간의 일’이라는 책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일본의 문학상 예심을 통과한 소설은 1,000여 편의 기존 소설을 분석해서 조합한 결과였다. 닉 몬트포트 교수의 소설도 기존 소설을 분석해 학습하는 방식을 토대로 했다. 소설과 시, 논문, 기사 등이 다 자동으로 작성되고 있다. 충분한 서평이 존재하는 ‘로봇시대, 인간의 일’에 대한 서평도 인공지능이 자동으로 쓸 수 있지 않을까? 당연히 쓸 수 있다. 기존 서평들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내용들을 추출해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연결하면 된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서평이 인공지능이 자동으로 작성한 서평보다 더 좋은 내용을 담을 수 있을까? 자신 없다. 복사해 붙여 넣어 제시한 제목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훨씬 풍부하고 다양한 내용이 자동으로 담길 것이다.

대부분의 서평은 책 내용에서 중요하다고 하는 부분을 추려서 전달한다. 어떤 부분이 중요할지는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기에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아직은 생각하고 있다. ‘야후 뉴스 다이제스트(Yahoo News Digest)’는 아침과 저녁 하루 두 번 10개의 뉴스를 사용자에게 전달한다. 10개의 뉴스는 각기 다른 주제로 구성되며 선택된 주제들에 속한 뉴스들을 모아서 주요 키워드들을 추출한 후 자동으로 요약한다. 기존 뉴스 중 중요한 뉴스를 골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수많은 언론사들의 뉴스를 모아서 모바일 환경에 맞게 요약해서 제공하고 그 아래에는 요약의 출처가 된 뉴스들의 링크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뉴스의 요약은 사람이 아닌 로봇에 의해 자동으로 이루어지고 요약에 걸리는 시간도 순식간이다. ‘다중 문서 축약(multi document summarization)’ 알고리즘 덕분이다. 책 내용을 요약해 전달하는 서평도 인공지능에 비해 사람이 뒤질 수밖에 없다. 풍부하고 다양한 시각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책 내용의 요약도 로봇에 비해 뒤질 수밖에 없는데, 나는 왜 서평을 쓰겠다고 자판을 통해 모니터에 글자를 입력하고 있을까?

“로봇화와 자동화 속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리라 여겨지던 지식 기반 업무 역시 컴퓨터 알고리즘과 소프트웨어에 의해 대체될 것이며, 변호사, 의사, 약사, 회계사, 세무사, 교수, 기자 등의 직종마저 위험하다”. 저자인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이 ‘로봇시대, 인간의 일’에서 던지는 말이다. 서평을 쓰는 것도 지식 기반의 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필요 없어서 하지 않을 뿐이지, 서평도 로봇이 충분히 쓸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서평을 쓰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로봇시대, 인간의 일’은 “로봇 그리고 인공지능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공생의 시대가 개막”하는 상황에서 인간의 성찰을 요구하는 철학서다. 인공지능 시대에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조건에 대해 차분하게 제시한다. 또한, 이 책은 낙관과 비관이 교차하고 있는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란 질문에 대해 답하고 있다. 처음 책 제목을 봤을 때에는 누구도 모르는 미래에 대해 매우 ‘과감’하게 예측하고 답을 내놓는 수많은 책들과 비슷한 범주로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끝까지 읽은 후에는 질문하게 됐다. 다가오는 미래를 위해 나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기계가 갖기 힘든 고유한 능력인 “창의적이고, 성찰적이며, 공감하는 사고 능력”을 나는 갖추고 있는가? 호기심에서 비롯되는 문제 파악 능력을 갖추고 그 해결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나는 기계, 인공지능, 로봇과 어떻게 다를 수 있을 것인가?

사랑하는 능력과 질문하는 능력. 기계가 절대 능가할 수 없는 사람의 능력으로 저자가 제시하는 것이다. 사랑은 글자로 표현하기 어렵기에 질문이 가능한 많이 글에 담기도록 했다. 어디선가 이 책에 대한 서평을 로봇이 쓰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어떻게 로봇과 다르게 쓸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물론, 이 글은 육필이 아니라 기계로 쓰고 있다. 또한, 이 글의 상당 부분은 기계도 쓸 수 있는 내용들이다. 가능한 책 내용 소개를 빼려 한 이유다. 책 내용이 궁금하다면 외재 기억 저장소에 있는 수많은 문서들을 호출하면 된다. 물론, 책을 사 보는 것이 기본이다. ‘로봇시대, 인간의 일’에서 일은 노동으로서 ‘일(work)’이라기보다는 ‘무엇을 할 것인가(doing what)’다. 그 첫 번째로 나는 이 글을 통해 질문하고자 했다. 지금 이 서평은 로봇과 어떻게 다를 수 있을까? 어딘가에서 서평을 쓰고 있는 로봇이 있더라도 이 질문은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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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vailable: http://github.com/dariusk/NaNoGenMo [본문으로]
  2. available: http://nickm.com/poems/world_clock.pdf [본문으로]
저자 : 오세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