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의 “필요한 조치”의 법적 성격과 KISO 결정의 위상

1. 사안의 개요

전 국회의원이자 전 공기업사장이었던 A씨는 공기업사장 시절에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특별사면 된 사실에 관한 게시물의 삭제요청을 해왔다. 이에 대해서 B포털은 KISO의 내부규정에 따라 A씨가 “정무직공무원 등 공인”에 해당한다고 보아 삭제요청을 반려하였다. 삭제요청 반려에 대해서 A씨는 KISO의 정책이 국가의 법률인 정보통신망법의 상위기준이 될 수 없다는 점, 공기업의 장은 “정무직공무원 등 공인”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 KISO의 다른 회원사인 C포털이 게시물을 삭제해 주었다는 것을 이유로 하여 재차 삭제요청을 하였다. 이 요청에 대해서 B포털은 KISO에 심의를 요청하였고, 이에 대해 KISO는 A씨의 요청이 삭제대상이 아니라고 결정하였다. 하지만 유사 사안에 대해서 이미 삭제조치를 C 포털에 대해서는 게시물의 복구가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여 유사사안에 대해 행동강령에 유의할 것을 권고하였다.

2. 사안의 쟁점

이 사안의 첫째 쟁점은 KISO의 회원사에 대해 게시물 삭제요청을 한 사안에 대하여 그 회원사가 KISO의 규약을 들어 삭제요청을 거부할 수 있는가 이고, 둘째 쟁점은 만일 그러하다면 이 사안에 대해서 내부규정의 적용이 타당한 것인가이다. 셋째 쟁점은 KISO의 결정과 다른 결정을 한 회원사에 대해서 행동강령에 유의할 것을 권고하는 것이 타당한가이다.

첫째 쟁점은 정보통신망법에 규정되어 있는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의 “필요한 조치”의 법적 성격과 그것의 해석에 관한 것이다. KISO는 “필요한 조치”의 프레임 안에서 존립이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쟁점은 단순하지는 않지만 법적용의 일반론이 적용되는 사안이다. 마지막 쟁점은 첫째 쟁점과 연결되는데 KISO의 성격이 무엇인가에 관한 문제이다.

3. 정보통신망법의 “필요한 조치”의 법적 성격

1)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의 “필요한 조치” 조항의 개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이라 한다.) 제44조의2에는 정보의 삭제요청과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의 삭제・임시조치 등 필요한 조치 제도가 규정되어 있다. 정보통신망법에는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일반에게 공개를 목적으로 제공된 정보로 인하여 “사생활의 침해 또는 명예훼손 등 타인의 권리가 침해된 경우” 그 침해를 받은 자는 해당 정보를 취급한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게 “침해사실을 소명하여” 당해 정보의 삭제 또는 반박내용의 게재를 요청할 수 있게 규정하였다(제1항). 삭제 등의 요청을 받은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는 지체 없이 “삭제・임시조치 등의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이를 즉시 신청인 및 “정보게재자”에게 통지하도록 하였다(제2항 전단). “삭제, 임시조치 등”을 필요한 조치의 하나로 예시하여 삭제와 임시조치가 할 수 있는 필요조치에 포함됨을 명확히 하였고, 절차적 관점에서 신청인 이외에 이해관계자인 정보게재자[정보제공자]에게도 조치사항을 통지하도록 하였다. 나아가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는 필요한 조치를 한 사실을 해당 게시판에 공시하는 등의 방법으로 이용자가 알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제2항 후단).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가 쉽게 삭제조치를 하지 못하는 것은 정보제공자의 권익침해 문제 때문인데,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정보통신망법은 삭제절차를 임시조치와 종국조치의 2단계로 구분하였다. 이에 따라 정보의 삭제요청을 받은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는 권리의 침해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거나 이해당사자간의 다툼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정보에 대한 접근을 임시적으로 차단하는 조치[임시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제4항 전단). 임시조치는 비록 종국적인 삭제는 아니지만 피해의 확산 방지의 실효성 있는 대책이라 평가할 수 있다. 임시조치의 기간도 30일 이내(제4항 후단)인데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의 특성상 30일은 상당한 기간이다. 여기에 정보통신망법은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가 정보에 대한 임시조치나 삭제조치로 인한 배상책임을 줄이거나 면제받을 수 있다고 하여(제6항), 임시조치 및 삭제조치가 보다 활성화될 수 있는 장치를 부가하였다.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가 이용자의 요청에 의해서 임시조치를 한 이후에 종국적인 삭제 여부에 관한 판단을 하여야 한다. 적어도 삭제나 임시조치에 대한 법적 책임은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 자신에게 있다. 정보통신망법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배상책임 경감 또는 면제가 가능하도록 규정하여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게 보다 적극적인 조치를 하도록 하고 있다.

2)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가 할 수 있는 것

제도적으로 볼 때 임시조치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그러나 임시조치가 발동되기 위한 요건의 이해는 간단하지 않다. 정보통신망법에는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가 해당 정보의 삭제 등을 요청받으면 지체 없이 삭제・임시조치 등의 필요한 조치를 하고 즉시 신청인 및 정보게재자에게 알려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 분석적으로 접근하면 먼저 정보의 삭제 등의 요청이 있어야 한다. 이 요청은 피해사실을 소명하여 정보의 삭제나 반박내용의 게재를 요청하는 것이다.

문제는 삭제요청을 받은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이다. 정보통신망법은 할 수 있는 것으로 “지체 없이 삭제・임시조치 등의 필요한 조치”를 한다고 되어 있다. 이 조문의 문맥으로는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는 지체 없이 필요한 조치를 하라는 것이다. 삭제・임시조치 등은 필요한 조치의 예시규정이다. 삭제・임시조치가 대표적인 필요한 조치이겠지만 반드시 이에 국한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정보통신망법이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가 해야 할 필요한 조치를 삭제・임시조치에 국한하지 않은 것은 사안별로 필요한 조치를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가 판단하도록 하여 필요한 조치의 구체적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사안에 따라서는 삭제・임시조치가 적절한 피해구제방안이 아닐 수 있다.

게시물을 둘러싼 분쟁상황을 보면 일반적으로는 정보게재자가 가해자이고 그 내용에 언급된 인물이 피해자인 경우이다. 이때는 삭제를 하거나 임시조치를 하는 것이 피해자의 피해 확산을 최소화하는 방안이다. 그런데 정보게재자가 반드시 가해자인가에 대해 의문이 드는 경우가 있다. 사회적 강자에 대한 사실을 공표하는 내용은 비록 명예훼손과 유사한 외양을 갖더라도 공적 가치나 알 권리의 보장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정보게재자를 가해자라 보기가 어렵다. 이 경우에는 삭제・임시조치가 타당한 피해구제 방안이라고 보기 어려울 수 있다. 삭제・임시조치가 오히려 사회적 강자에 관한 문제를 인위적으로 축소하려는 것이 되어 분쟁―이 경우는 개인 피해라기보다는 사회적 분쟁이라 보는 것이 옳다.―을 확대시킬 우려가 있다.

문제의 사안에 따라서 삭제・임시조치를 하지 않고 그 게시물을 그대로 두는 것도 사회분쟁의 확산을 오히려 막는 방안일 수 있다. 사회적 강자 역시도 명예훼손을 받을 수 있으나 이들이 사회적 지위가 인정되지 위한 판단의 조건들에 관한 것은 명예훼손의 대상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는 사안에 따라서 적절한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고, 이 필요한 조치는 삭제・임시조치가 대표적인 것이기는 하나 이를 하지 않는 것도 필요한 조치에 충분히 포함될 수 있다.

위의 사안에서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인 B포털이 A씨의 요청에 대해 삭제요청을 반려한 것은 적어도 법적으로는 가능한 필요한 조치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B포털은 신청반려, 다시 말해서 게시물에 대해서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은 조치를 필요한 조치로서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적정했는가에 대해서는 항목을 바꾸어서 검토하기로 한다. B포털이 신청인에게 KISO 규정을 근거로 신청반려를 했는데 이에 대해서 A씨가 정보통신망법이 KISO 규정보다 우선한다는 취지의 반박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정보통신망법의 해석에 따르면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는 삭제・임시조치 이외에도 이를 하지 않는 필요한 조치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차후에는 신청반려를 할 때 정보통신망법과 KISO 규정을 함께 제시할 필요가 있다. KISO 규정도 궁극적으로는 정보통신망법의 법조항으로부터 그 정당성을 확보하기 때문이다.

3)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가 해야 하는 것

정보통신망법은 필요한 조치를 한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가 해야 할 것으로 신청인 및 정보게재자에게 알리는 것과 일반이용자가 알 수 있도록 공시하는 것을 규정하고 있다. 삭제・임시조치와 같은 적극적인 조치를 한 경우에 이와 같은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그런데 삭제・임시조치를 하지 않고 신청을 반려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청반려도 필요한 조치에 당연히 포함되므로 필요한 조치를 한 것이 되고 이에 따라 해야 할 것을 해야 한다. 즉 신청반려 사실을 즉시 신청에게 알리는 한편 정보게재자에게도 알려야 하고, 일반이용자가 알 수 있도록 공시도 해야 한다. 정보게재자에게도 분쟁의 발생사실을 알리는 것이 타당하고 일반이용자에게도 분쟁의 발생을 알려야 한다. 신청반려에서 보호하고자 하는 이익은 바로 일반 이용자가 갖는 알 권리와 정보게재자가 갖는 표현의 자유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신청반려 사실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4. “정무직 공무원 등 공인”의 적용 타당성

정보통신망법에는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가 “삭제・임시조치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되어 있고 KISO의 규정에는 게시물의 내용이 “정무직 공무원 등 공인”에 관한 것에 해당하면 게시물을 삭제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이는 필요한 조치 중에서 삭제조치를 하지 않는 경우를 요건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여기서 핵심 내용은 “공인”이라는 것이다. 정무직 공무원 등은 이의 예시일 뿐이다. 공인을 해석할 때 공적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을 그것의 표지로 본 것이고 공무원으로 하면 지나치게 범위가 확대되므로 정무직 공무원으로 한정한 것으로 보인다. 공기업사장이 정무직 공무원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공기업사장은 공적 업무를 담당한다는 것, 그리고 사회적으로 정무직 공무원에 상응하는 예우를 받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인에 충분히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KISO와 그 회원사인 B포털의 관계는 계약법적인 관계일 뿐이다. KISO와 B포털의 계약법적 관계는 B포털과 신청인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따라서 B포털이 실제 판단은 KISO의 규정에 따라 했지만 신청인에게 KISO의 규정을 적용시킬 수는 없다. 따라서 B포털은 정보통신망법이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게 부여한 적정한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는 권한에 따라 삭제 반려를 한 것이며 KISO의 규정은 하나의 판단 자료로 사용한 것이다. 따라서 신청인에게 신청반려를 통보할 때는 정보통신망법에 따른 필요한 조치를 했다는 것과 그러한 판단을 한 이유로 KISO의 규정을 예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5. KISO 결정의 위상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2가 처음 입법될 당시에 이를 제안한 정부안에는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가 게시물의 삭제여부의 판단을 위한 자율분쟁조정기구를 둘 수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 규정은 국회심의에서 삭제되었다. KISO의 출발점은 여기에서 찾을 수도 있지만 현재의 정보통신망법은 아무런 규정을 하고 있지 않으므로 KISO의 근거는 회원사와의 계약법적인 관계뿐이다.

KISO의 존립이유를 정보통신망법에서 찾아보면 제44조의2 제4항에 있는 “정보의 삭제요청에도 불구하고 권리의 침해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거나 이해당사자 간에 다툼이 예상되는 경우”라는 규정이다. 개개의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가 이에 대해서 일일이 정보의 삭제여부를 판단한다는 것은 용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당히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이 경우에 이러한 판단을 대신할 수 있는 공동의 기구를 만들고―정보통신망법에 근거가 없으므로 계약법적으로 이를 하여야 한다.―여기에 판단을 대행하게 하면 보다 합리적일 것이다. 애초의 정부안에서 자율분쟁조정기구를 규정한 것도 이러한 취지에서였다.

하지만 포털이 모든 사안에서 대해서 KISO에 판단을 맡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KISO의 업무가 지나치게 비대해지고 느려져서 회원사의 업무진행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다. 회원사가 어떤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어렵다는 ‘판단’을 한 사안에 대한 심의를 요청하게 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다.

KISO의 결정은 회원사가 판단이 어렵다고 하는 1차 결정을 하여 심의요청을 하면 그 다음단계에서 이루어지는 2차 결정이다. 그렇다면 동일한 내용의 게시물이 여러 포털에 게시될 수 있고, 이에 대한 삭제요청에 대한 어떤 포털은 판단이 어렵지 않다고 판단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고 어떤 포털은 이 판단이 어렵다고 하여 KISO에 심의요청을 한 경우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KISO의 역할은 회원사가 1차 판단을 한 이후에 작동하는 2차 판단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심의요청을 하지 않은 회원사가 한 필요한 조치와 KISO가 한 판단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고 또 그래야 하는 것은 KISO의 존립이유이기도 하다.

KISO는 자체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회원사의 판단을 대행하는 곳이다. 회원사는 KISO의 결정을 자신의 결정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준수한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틀이 ‘행동강령(code of conduct)’이다. 회원사는 행동강령을 준수해야 하며 이를 위반하는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행동강령에 따른 제재를 한다. 보통은 벌금이 일반적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회원제명조치도 할 수 있다. KISO의 행동강령은 제재조치가 충분히 갖추어져 있지 않다는 점에서는 불완전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사안에서 문제되는 것은 KISO의 결정이 있기 전에 회원사가 이미 어떤 조치를 하였는데 이것이 결과적으로 KISO의 결정을 위반하게 된 경우이다. 회원사는 원칙적으로 모든 판단을 KISO에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의 침해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거나 이해당사자 간에 다툼이 예상되는 경우”라고 판단하는 경우에 KISO의 판단을 요청한다. 어떤 회원사는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고 다른 회원사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회원사는 삭제조치를 했는데 어떤 회원사는 삭제여부의 판단이 어려워 KISO에 판단을 요청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KISO는 삭제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그러면 이 결정은 이미 삭제조치를 한 경우와 충돌한다. 이 경우에 이미 삭제조치를 한 회원사는 행동강령을 위반한 것일까?

결코 그렇다고 할 수 없다. 정보통신망법이 “권리의 침해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거나 이해당사자 간에 다툼이 예상되는 경우”에 해당하는가 여부에 대한 판단을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게 맡긴 이상은 이와 같이 서로 모순되는 결정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사업자 자율규제라는 것의 생명은 이와 같은 유연성과 소프트한 구조에 있다.

하지만 신청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리 정보통신망법이 이를 예정하고 있다고 해도 포털에 따라 서로 다른 결정이 나오는 것은 적절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당장은 제도의 취지를 충실하게 설명해야 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보다 더 많은 KISO의 결정례가 축적되는 것이 해결책이다. KISO의 결정례가 축적되어 이것이 보다 구체적인 행동강령으로 되고 회원사는 업데이트된 행동강령을 준수해 나가면 이와 같은 서로 다른 결정을 하는 사례가 점차 줄어들 것이다. 결국 제도의 성숙이 이러한 다름으로 인한 불편함을 치유해 줄 수 있다.

저자 : 황승흠

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전)성신여자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