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규제의 미래] 디지털 미래사회와 자율규제

1. 디지털 속성과 정부 규제의 한계

디지털 규제는 기술 발전에 보조를 맞추어 제•개정되는 특성이 있으며, 따라서 일반적인 가치의 달성이 아닌 현상에 대한 대응이라는 현상 지향성 즉 즉응성을 특성으로 한다1 . 따라서 법령의 잦은 제․개정을 요하므로 정부 규제 형태의 규제방식은 법적 안정성이 문제 될 수 있다2 . 다음으로 기술을 그 규율 대상으로 삼을 뿐만 아니라 기술 자체를 규제 수단으로 활용하는 등 기술 발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따라서 기술이 피규제자에게 미칠 영향을 비롯하여 사회 전체에 미칠 영향 등 기술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을 경우 정부 규제는 미완성•비체계 위험에 빠지게 될 수 있다3 . 또한 빠른 변화와 새롭게 도출되는 사회현상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단기간에 입법이 추진됨에 따라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검토를 거친 숙성된 법규로 성안되지 못하는 사례가 많고, 이로 인한 불안전성을 보완하기 위하여 단기간에 제•개정이 반복된다4. 다시 말해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지 않는 상태에서 현상 지향적 및 기술 지향적으로 충분히 숙의되지 못한 규제가 이루어지게 된다.

디지털 기술은 국가사회 전 영역과 관련되는 만큼 이러한 정부 규제의 불완전성은 국가사회 전 영역에 걸쳐 발생할 수 있다. 정부규제의 ‘현상 지향성’, ‘미완성•비체계성’, ‘불완전성’ 등은 시장의 경쟁력을 저하시키며 무엇보다도 정부 규제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초래하게 된다. 디지털 미래 사회에서 이러한 정부 규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의 모색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디지털 규제의 속성이 지니는 이러한 어려움이 완전한 자유방임에 의해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기술에 대한 융통성 있는 대응과 효율성, 신속성 및 사회적 비용 절감을 위해서는 디지털 이해관계자들 간에 당위적 공감과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자율규제’가 대안으로 모색될 필요가 있다.

2. 한국형 디지털 규제의 특성과 자율규제의 의미

우리나라는 디지털 규제에 있어서 강력한 정부 규제를 표방해 왔다. 과거 제한적 본인확인제라 불리는 ‘인터넷 실명제’를 유례없이 실시한 국가이며5 , 대부분 국가에서 자율규제의 영역에 두고 있는 유해정보(불법정보가 아닌)까지 공적규제 하에 있다. 게임, 영상물 등 각종 콘텐츠에 대한 사전등급제를 시행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기조에 더불어 지난 2년간 정부의 강력한 공적규제를 담고 있는 온라인플랫폼 법안들의 추진이 첨예한 논쟁거리였다. 그러나 정부가 온라인플랫폼에 대한 자율규제 방침을 발표하면서 이러한 논의는 한풀 꺾인 듯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플랫폼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갈망했던 정부 관료들이 스스로 자율규제 정책의 주체임을 자처하면서 자칫 자율규제가 그 본연의 의미를 잃고 산으로 갈까 우려스럽다. 정부는 ‘자발적 자율규제’보다는 ‘강제적 또는 규제적 자율규제’를 추구할 것이며, 민간 시장참여자는 그 반대일 것이다. ‘자율규제’를 둘러싼 정부와 민간 시장참여자 간의 간극은 기존 규제법안 추진 못지않은 혼선과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운데, 디지털 플랫폼 사업자가 집단적 방식으로 스스로를 규율하는 자율규제 기구를 자발적으로 만들어 그러한 기구를 통해 공통규약을 마련하여 준수를 도모하는 자율규제 모델도 자리 잡았다. 바로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이하 KISO)다. 즉 KISO의 경우 전형적인 비법정 자율규제기구로 발족 초기에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하여 불법정보 모니터링 등 법규의 자발적 집행을 감독하는 ‘법령 집행형 자율규제 기구’였다. 그러나 최근 인공지능 개발•이용에 대한 행위 기준 마련 등 영업행위와 관련된 규약 마련의 기능을 추가하면서, 산업계가 준수해야 하는 규약을 스스로 형성하고 이를 집행하는 기능까지도 수행하고 있다. 「(사)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 정책규정」을 비롯, 온라인 부동산 광고 관련 거짓 매물 등의 게시 금지 관련 절차 및 제재에 관련한 규율,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게시물 삭제, 임시조치 및 그 밖의 필요한 조치를 위한 자율적인 구체적 처리기준 등을 마련하여 시행하고 있다6.)) .

작금의 과오와 치적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해관계자 및 시민사회와의 충분한 토론과 협력을 통해 한국의 디지털 환경에 적합한 자율규제의 융성 기반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3. 미래지향적 ‘자율규제’의 역할과 방향

자율규제는 무규제나 탈규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규제를 만들고 집행하는 주체가 정부에서 사업자 또는 사업자단체, 혹은 독립적 자율규제 기구로 이전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자율규제기구는 사업자가 행위규범을 마련하고 준수함에 있어 집단적 방식으로 스스로를 규율하기 위해 만든 단체다. 즉 관련 주체들이 모여서 일정한 규제내용을 마련하고 그 준수 여부를 모니터링 한다. 일정한 경우 행위규약 등에 강제력을 부여하여 구성원들의 행위를 통제한다7 . 사업자단체는 관련 사업자들이 모인 이익단체로서 회원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책을 수립⋅시행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라는 점에서 자율규제 기구와 다르다8 .

앞서 언급하였듯이 디지털 규제의 속성상 정부 규제가 내포하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자율규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디지털 기술 및 사업의 특성을 발전적으로 발현하기 위해 자율규제의 방향을 제언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술•서비스의 빠른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전문적 변화관리 체계를 갖춰야 한다. 디지털 서비스는 네트워크 산업 등 기존의 전통적인 규제 산업과 달리 쉽게 예측하기 힘든 역동성을 갖고 있다. 그 결과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제공되는 서비스의 경우 시장의 수요 및 기술 발전에 따라 계속 진화되며 발전하기 때문에 정형화되지 않으며 실체를 특정하기 어렵다.

둘째, 갈등관리/협력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디지털 혁신의 급변성은 협력의 대상이 되어야 할 이해당사자와 충분한 합의 과정을 거치기 어려워 갈등이 야기되며, 이러한 과정에서 소비자나 이용자의 권익은 외면당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디지털 플랫폼의 군집화 된 시장의 범위는 제한이 없다. 이러한 군집 시장의 속성으로 인해 온라인플랫폼 서비스는 모든 산업 영역과 관련되며 기존의 전통산업과 경쟁 상황에 대한 갈등 요인을 내포하게 된다. 따라서 서비스의 성공을 위해서는 이러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자율규제기구는 이러한 갈등 해결을 위한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 이러한 부분에 대한 자발적 행위규약 없이 오로지 변화에만 질주하다가는 협력 업종 및 소비자의 외면과 갈등으로 파행을 빚어 중대한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

셋째, 글로벌 지향성이다. 온라인플랫폼 서비스는 각종 재화나 서비스 매개가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므로 서비스의 경계 역시 탈영토성(un-territoriality)을 전제로 한다. 인터넷의 구조적 특징, 즉 개방적이고 탈중심적인 네트워크로 인해 네트워크의 일부 영역에서 아무리 강한 통제력을 발휘하여도 전 세계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인터넷의 모든 정보를 통제할 수 없으며, 통제되는 영역에서도 얼마든지 우회하여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다. 따라서 서비스 자체가 글로벌 지향성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해외 사업자와의 경쟁은 본질적 요소다. 이러한 상황에서 글로벌 표준 규범의 선점은 매우 중요하다. 신속하고 융통성 있는 선진화된 자율 규범의 형성으로 국제규범에서 선제적 위치에 설 필요가 있다. 특히 이러한 자율 규범의 형성과 준수에 해외사업자의 협력 및 동참을 이끌 수 있어야 한다.

바람직한 미래 디지털 사회를 그려본다면, 책임 있는 성숙한 디지털 시민성을 바탕으로 인간 중심의 선진화된 서비스를 자유로이 누리는 것이다. 근대 시민사회 이후 인간은 본래 ‘자율’에 기반한 존귀한 존재임을 재차 확인해 왔다. 인간 스스로의 자정능력에 대한 믿음을 극대화 시키는 것이 디지털 시민성의 근본이다. ‘자율규제’는 이러한 디지털 시민성에 가장 적합한 시스템이자, 권위주의적 공적 규제와 자유방임적 사적 자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절묘한 대안일 것이다.

  1. 김현경. “ICT 규제원칙에 기반한 온라인서비스 비대칭규제의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성균관법학」, 2014, 495-496면. [본문으로]
  2. 대표적 디지털 규제법이라 할 수 있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등에 관한 법률」의 경우 지난 2012년부터 근 10년간 개정 횟수만 해도 24회에 달한다(타법개정으로 인한 개정 제외). [본문으로]
  3. 과거 공인인증제도의 경우 정부가 특정 기술의 인증방식을 법령을 통해 의무로 규정한 결과 인증산업 및 기술의 발전을 저해한 결과를 초래하였다는 지적도 있다. [본문으로]
  4. 김현경. 앞의 논문, 495-496면. [본문으로]
  5. 인터넷상의 익명성을 금지하는 법률은 사실상 전 세계 중 대한민국에서 처음 시행된 것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일정 규모 이상의 사이트를 운영하는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가 게시판을 운영할 때에 이용자의 본인 여부를 확인하도록 하는 제도로, 2007년 7월 27일부터 시행되었으나, 헌법재판소는 2012. 8. 23. 동 제도가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하여 표현의 자유 및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을 선고하였다(헌재 2012. 8. 23. 2010헌마47, 252(병합). [본문으로]
  6. 부동산 중개 서비스 이용자 보호를 위해 부동산 정보의 검증을 실시하는 ‘부동산매물 검증센터’ 및 ‘부동산매물 클린관리센터’가 원래 자발적으로 KISO에 설치되었다. 그러나 최근 공인중개사법이 개정되면서(2019. 8. 20. 개정, 2020. 8. 21. 시행) 인터넷을 이용한 중개대상물에 대한 표시 광고에 대한 모니터링을 법적 규제로 도입하였다(제18조의2(중개대상물의 표시 광고) 및 제18조의3(인터넷 표시 광고 모니터링 [본문으로]
  7. 이병준, 자율규제기관인 GUCC와 자율규제로서의 「이용자보호방안 가이드라인」의 의의와 한계, 외법논집 제41권 제4호 (2017. 11.), 122-123면. [본문으로]
  8. 간혹 사업자단체에서도 자율규제수단을 제정하여 집행하기도 하지만, 자율규약의 이행을 강제하고 불이행에 제재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독립적인 자율정책기구를 설립함으로써 자율규제기구의 실효성과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본문으로]
저자 : 김현경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 / KISO저널 편집위원장 / 개인정보보호법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