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관들-국가는 어떻게 출판을 통제해왔는가
이 책은, 서로 다른 시기와 지역의 세 권위주의 체제 아래에서 인쇄물(책)이 정체(政體)로부터 어떠한 방식으로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는지를, 검열관들의 일상 업무에 관한 여러 사료(동독 사례의 경우 일부는 검열관들과의 인터뷰)를 통하여 구성한다.1 구체적으로, 이 책은 18세기 부르봉 왕조의 프랑스, 19세기 영국령 인도와 공산주의 동독의 검열관들의 업무에 관한 다양한 사례들을 배열하여 “정책 입안자들이 어떤 식으로 사고했는지, 정부가 그 독점적 권력에 위협이 되는 것을 상대로 어떠한 정책을 마련했는지, 또한 그러한 위협에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 로버트 단턴(Robert Darnton)은 이렇게 탐색한 검열 체계가 출판 분야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원고를 수정하거나 삭제하는 수준을 넘어 사회 체제 전반에서 작동하는 힘으로서 출판의 틀 자체를 구성하는 정도였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평가는 “인쇄 시대에 국가가 그 정도의 힘을 행사했다면, 인터넷 시대인 오늘날에는 그러한 힘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저자 자신의 의문에 대한 간접적인 답변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은 검열에 관한 시원(始原)이나 비교사(比較史)를 다룬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출판(책)에 관한 주제사나 부문사로서 검열이 책에 미친 영향에 관한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한편, 단턴은 검열이라는 용어를 “법률적·비법률적 제재, 심리적·기술적 필터링, 그리고 국가기관, 민간단체, 동료 그룹뿐 아니라 자기 내면의 비밀을 스스로 점검하는 개인 등이 취하는 모든 종류의 행위”로 포괄하여 정의하고 그에 부합하는 사례를 나열하기 보다는, 사회·정치 체제의 성격에 따라 다른 의미와 양상으로 전개되어 출판(책)을 둘러싼 행위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례를 통하여 분별하고자 한다. 단턴이 밝혀 보인 여러 검열에 관한 사례들에는 기존의 검열에 관한 통념-체제의 안정과 유지를 위한 행정 관리들의 억압과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는 작가들의 시도 간의 대립-에 부합하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상호 호의적인 관계에 놓여 있는 장면으로 인하여 때로는 검열이 바람직하게 보이는 경우는 낯설 수도 있게 한다. 다시 말하면, 단턴은 당시의 검열관들이 자신들의 활동에 개입할 수 있는 권력의 뜻에 맞추고자 하면서도, 동시에 원고를 개선하려는 노력도 기울였다는 두 가지 모순적 양상의 혼재함을 보여준다. 이를 통하여, 검열이 출판에 미친 영향을 단순히 감시, 억압, 처벌과 같은 것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당대의 복잡하면서도 상호 모순적인 상황과 구조 속에 얽혀 있음을 알려준다. 그런데, 이와 같이 여러 사례를 살펴 검열에 관한 이분법적 관점에서 벗어난다고 하여 곧바로 그것에 관한 충분한 이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인쇄물(책)에 대한 검열 제도의 이해를 위해서는 검열의 객체가 되는 인쇄물(책)에 관한 역사적 이해가 필요하다고 보여 간략한 설명을 덧붙이고자 한다.
인쇄술의 출현 이전 시기의 검열은 제한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수작업인 필사를 통해서만 책을 복제할 수 있었기에 책이 전파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을 뿐 아니라 원본과의 동일성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즉, 본격적인 정체(政體) 차원의 검열은 동일한 텍스트가 대량으로 보급되면서 발생하는 여러 영향들을 통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1450년경 구텐베르크가 고안한 ‘인쇄술’이라는 테크놀로지는 책에 대한 검열의 실질적인 계기 내지 원인(遠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쇄술의 계속된 발전은 이후 책 제작을 둘러싼 여건들의 개선과 새로운 유통 방식 등의 출현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나아가 책 제작의 증가는 책을 접하는 인적 범위의 확대로 이어지게 되고, 학문의 경우 고유한 연구 영역을 가진 많은 전문 분야로 세분화됨에 따라 학술적인 의견 교환과 토론이 오갈 수 있는 공통적인 토대가 생겨나는 것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2
한편, 인쇄술의 초창기에는 출판업자 상호 간의 무단복제가 별다른 문제로 인식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널리 알려져 있는 필사본으로 확산된 고대 문헌이 대부분의 인쇄 작업의 대상이었기에, 출간할 작품의 선택의 폭이 상당히 넓었으며 그러한 책들에 대한 수요도 충분히 높은 편이어서 하나의 동일한 텍스트에 대한 여러 가지 판본이 동시에 인쇄될 수 있었다는 배경에 있다. 그런데, 본격적인 도서 시장이 형성되면서 출판업자들 간의 경쟁은 격화되고 값싼 무단복제 책이 만연해짐에 따라 출판업자들은 이윤 감소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에 따라 비중 있는 간행물을 만들어내는 출판업자들은 이러한 폐단을 막고자 자신이 속한 정부에게 특권(privilege)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이 책이 언급하고 있는 프랑스에서도 16세기 초에 국왕이나 고등법원 등이 이런 방식의 인쇄·출판 독점 허가권을 부여하게 된다. 프랑스의 군주는 인쇄 독점 허가권을 부여할 수 있는 권리를 전유하려 하였기에, 이 권리는 인쇄업자들의 활동을 감시할 수 있는 수단으로 전환된다. 나아가 인쇄업자의 수마저 제한하는 조치의 도입은 지방 출판업자들의 속출로 시작해 프랑스 출판업계 전반의 어려움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금서 출판업자나 무단복제업자들이 프랑스의 국경 밖에서 제작한 책이 프랑스 국내에서 유통됨에 따라 프랑스 출판시장은 더욱 어려워지게 된다. 당대의 검열관이었던 말제르브3는 “자본이 프랑스 국경을 넘어 해외 출판사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묵인(permission tacite)이라는 검열 규제 완화 정책을 사용하게 된다. 프랑스의 검열 제도의 부침의 이면에 모두 출판 산업의 경제적 요인이 있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4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단턴이 ‘서론’의 끝부분에서 언급한 질문에 대하여 나름의 구체적인 답을 내 보려고 했으나 그 과정에서 대답을 얻기보다는, 오히려 검열이라는 제도가 인쇄술이라는 테크놀로지와 책을 둘러싼 행위자들 간에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성된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뿐이었다. ‘인터넷’이라는 강력한 테크놀로지가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 현 시대에서의 ‘검열’에 관한 의미는 더욱 분화될 수밖에 없어 그 해결책을 찾아내기가 실로 난망하다. 구조적 한계로 인한 개인의 자기 검열과 교묘한 정당성 확보를 통한 국가 기관의 검열에 관한 오래된 지금의 문제 인식이 의외로 그 해결책의 단초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