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의 쓸모’ : 설명의 정치학

1. ‘이유’라는 이름의 보이지 않는 질서

우리는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누군가 늦었을 때,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혹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마주했을 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유를 요구한다. 그러나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 틸리(Charles Tilly)는 ‘왜의 쓸모’에서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이 행위를 다시 묻는다. 사람들은 왜 이유를 요구하고, 특정한 방식으로 설명하는가?

이 책이 흥미로운 지점은 이유를 단순한 정보나 사실 설명으로 보지 않는다는 데 있다. 틸리에 따르면 이유 제공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다. 사람들은 객관적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서만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계를 유지하고 갈등을 완화하며 서로의 위치를 조정하기 위해 이유를 말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설명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의 문제다. 우리가 건네는 이유는 사실을 말하는 동시에 관계를 정리한다. 설명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하나의 질서라고 할 수 있다. ‘왜의 쓸모’는 바로 이 익숙하지만 거의 논의되지 않았던 영역을 탐구한다.

2. 네 가지 이유: 설명의 형식과 권력의 선택

틸리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이유를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관습, 이야기, 코드, 그리고 학술적 논고다. 이 구분은 설명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상황에 맞추어 서로 다른 설명 방식을 선택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관습: 관계를 유지하는 설명

“차가 막혀서 늦었습니다”라는 말은 정확한 원인 분석이라기보다 사회적 예의에 가깝다. 이러한 관습적 이유는 일상의 마찰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중요한 것은 사실 여부가 아니라 상황에 어울리는 설명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종종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관계를 부드럽게 유지하기 위해 설명한다.

이야기: 복잡성을 인물로 환원하는 서사

이야기는 복잡한 구조를 생략하고 인물과 동기 중심의 인과 구조를 제시한다. 대중 매체는 제도적 맥락보다 드라마적 긴장을 선호한다. 정치 스캔들, 사회 갈등, 범죄 사건은 ‘누가 무엇을 왜 했는가’라는 서사 구조로 재편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갈등’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뻔한 결말, 막장 드라마가 인기 있는 이유는 인간이 가지는 본성에 있다.

이야기의 장점은 이해하기 쉽다는 점이지만 동시에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할 위험을 지닌다. 개인의 잘못으로 보이는 문제 뒤에는 종종 제도적 조건이나 사회적 구조가 존재하지만, 이야기형 설명은 이러한 맥락을 가려버리기도 한다.

코드와 학술적 논고: 권위의 언어

법률 조항, 규정, 통계 자료, 과학적 분석은 또 다른 방식의 이유다. 이러한 설명은 객관성과 합리성을 강조하며 설득력을 획득한다. 사람들은 전문가의 설명을 신뢰하고, 때로는 그것을 논쟁의 종결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틸리는 이러한 설명 역시 사회적 맥락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어떤 설명이 권위를 얻는지는 지식 자체뿐 아니라 그것이 생산되고 인정되는 사회적 환경에 달려 있다. 즉, 전문적 설명도 완전히 중립적인 것은 아니다.

3. “왜”는 책임을 배분한다: 설명의 도덕적·정치적 효과

‘왜의 쓸모’가 특히 인상적인 이유는 설명이 책임과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책임의 방향을 결정한다. 개인의 선택을 묻는 질문은 책임을 개인에게 집중시키고, 구조적 원인을 묻는 질문은 책임을 제도나 사회로 확장한다. 우리가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사건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틸리는 설명이 사회적 협상의 결과라고 말한다. 누가 설명을 요구할 수 있는지, 누가 설명해야 하는지는 사회적 권력 관계를 반영한다. 공적 위치에 있는 사람은 더 많은 이유를 요구받고, 어떤 집단은 설명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설명은 단순한 언어 행위가 아니라 사회 질서를 드러내는 장치다.

4. 설명이 넘쳐나는 시대, 그러나 이해는 부족한 시대

오늘날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설명 속에 살아간다. 인터넷과 디지털 플랫폼은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수많은 해석과 이유를 생산한다. 개인적 경험에서 전문가 분석까지 모든 설명이 동시에 등장한다. 그러나 설명이 많아졌다고 해서 이해가 깊어진 것은 아니다. 감정을 자극하는 이야기나 단순한 해석이 빠르게 확산되는 반면, 복잡한 분석은 쉽게 주목받지 못한다. 그 결과 우리는 설명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면서도 오히려 무엇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워한다.

틸리의 분석은 이러한 현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사람들은 항상 가장 정확한 이유가 아니라 상황에 가장 적합하거나 받아들이기 쉬운 이유를 선택한다. 설명은 진실의 경쟁이 아니라 사회적 선택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5. 이유를 읽는 능력

‘왜의 쓸모’의 가장 큰 성과는 설명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만든다는 점이다. 설명은 객관적 사실의 단순한 전달이 아니라 관계, 맥락, 권력이 얽힌 결과물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된다. 지금 제시되는 이유는 누구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것인가? 어떤 책임을 강조하고 무엇을 숨기고 있는가? 왜 우리는 어떤 설명에는 쉽게 설득되고 다른 설명에는 거부감을 느끼는가? 결국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이유를 해석하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설명의 형식과 맥락을 이해하려는 태도는 복잡한 사회를 살아가는 데 중요한 지적 도구가 된다.

‘왜의 쓸모’는 거창한 이론서를 표방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설명이라는 행위를 통해 사회를 바라보게 만든다.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에게 이유를 요구하고, 또 이유를 제공하며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관계가 만들어지고 책임이 정해지며 사회적 질서가 형성된다. 결국 설명은 단순한 언어 행위가 아니라 인간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식이다. 지금 우리가 건네는 이유는 누구를 이해하려는 시도이며, 동시에 누구를 판단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왜의 쓸모’는 이런 사실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저자 : 박성순

서울예술대학교 영상학부 방송영상 전공 교수 / KISO저널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