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온 미래 :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

장강명 작가의 ‘먼저 온 미래’는 한 편의 바둑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그 안에는 AI가 인간의 고유한 영역을 어떻게 침범해 나가고 있는지를 깊이 탐구하는 질문이 자리하고 있다. 저자는 프로기사들과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AI가 바둑계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 미친 충격과 그로 인한 변화를 면밀히 고찰한다. 그의 서술은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인간 존재와 가치의 재설계를 요구하는 시대의 위기감을 강하게 환기시킨다.
작품 속에서 장강명 작가는 기술의 충격이 인간의 세계관을 어떻게 흔들고 재구성하는지를 심도 있게 분석한다. 30명의 프로기사와 6명의 전문가의 목소리는 각기 다른 태도를 반영하며, 일부는 AI의 발전을 수용하려고 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그에 대한 체념과 불안을 드러낸다. 바둑기사 신진서 9단의 AI 활용 경험을 바탕으로, 작가는 다양한 시각을 통해 AI가 단순한 도구를 넘어서, 인간의 창의성과 존재 방식을 재편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바둑 대국의 결과물로 흑백으로 나눠진 바둑돌이 정교하게 배열되며, 이는 도형 저작물과 유사한 형태로,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의 표현’이라는 저작물 성립의 요건을 충족한다. 바둑 기사가 대국을 통해 드러내는 형상은 그의 결정, 전략, 그리고 감정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결과물이다. 이 과정은 소설가나 시인이 창작하는 과정과 유사한 성격을 띤다. 바둑기사의 대국 과정과 문학 창작 과정은 결국 인간의 사고와 감정이 각기 다른 방법으로 구현된다는 공통성을 지니며, 이는 각 분야가 창조적 표현을 이어가는 데에 고유한 방식이 있음을 시사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장강명 작가는 바둑기사의 고민을 단순한 직업의 문제로 치부하기보다는, 깊이 있는 이해와 공감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인물이라 생각된다.
장강명 작가는 궁극적으로 “인간은 과연 창의적인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창의성의 영역마저 알고리즘이 대체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독자에게 인간다움을 증명해야 할 기준에 대해 재고하도록 촉구하며, AI와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요구한다. 자신의 역할을 AI의 보조자로 한정 지을 것인지, 아니면 그 자체로 새로운 인간성을 발견하는 기회로 삼을 것인지에 대해 사유하게 만드는 것이 주요한 과제가 된다.
특히, AI 학습의 발전은 바둑기사와 작가들의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AI는 데이터 분석을 통해 다양한 창작 활동을 지원해 대국 전략을 제안하거나 서사적 아이디어를 생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러한 기능은 창작 과정을 다채롭고 풍부하게 만들 수 있으나, 동시에 작가는 자신의 독창성과 고유한 목소리를 잃지 않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인간의 창의성은 단순한 계산과 데이터의 배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경험, 감정, 그리고 직관에서 발전한다는 점에서, AI와의 조화를 이루며 함께 성장해 나가야 하는 도전이 필요하다.
장강명 작가의 ‘먼저 온 미래’는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고찰을 넘어서는 순간들을 포착하며, 창의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신진서 9단이 언급했듯,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알고리즘을 학습하고 그 결과물을 도출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바둑에서의 창의적인 결정이나 소설가가 탄생시키는 독특한 플롯, 그리고 각 캐릭터의 특성은 인간의 감정과 경험을 고스란히 반영한 독창적인 결과물이다. 이러한 창의성이 AI에 의해 완전히 대체될 수 없다는 점은 이 작품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인간의 감정은 다층적이고 복잡하여, 이를 문학작품으로 표현하는 과정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여정이다. AI는 감정의 패턴을 분석할 수 있으나, 그 감정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독자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질문하고 싶다. AI는 과연 호기심을 가질 수 있을까? 호기심은 작가가 독자를 감동시키고 심오한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필수적인 감정의 깊이인데, 이는 AI가 결코 체험하거나 생성할 수 없는 영역이 아닐까. AI가 기계적인 계산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통계적으로 가능성 높은 응답을 생성하는 것이라면, 호기심이라는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은 그에게 결코 닿을 수 없는 먼 나라의 것일 것이다. 결국,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깊은 여정과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류의 고유한 감정들은 기계적 존재가 절대 부여받지 못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는 결국 창작이라는 작업이 인간만이 걸어갈 수 있는 길임을 상기시켜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강명 작가는 AI가 가져올 미래의 가능성을 간과하지 않는다. AI는 바둑기사와 작가들에게 창작 도구로서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며, 신속한 아이디어 생성과 패턴 분석에서 그 보조적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는 기존의 창작 방식을 넘어서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창작자들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할 것이다. AI는 기존의 창작 형식을 허물고 새로운 장르와 콘텐츠의 출현을 가능하게 한다. 바둑과 문학이 AI와의 협업을 통해 전혀 새로운 형태의 창작물이 탄생할 수 있는 가능성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창작의 방식과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더 나아가, AI는 독자의 취향을 학습해 개인 맞춤형 작품을 제안하는 능력 또한 갖추고 있다. 이는 각 개인의 실력에 맞춘 대국 전략을 제공하거나 독자를 반영한 서사를 창출하는 데 유용할 수 있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독자와의 깊은 창작 경험으로 이어질 것이다.
결국, 장강명 작가의 ‘먼저 온 미래’는 AI가 바둑기사와 소설가 같은 창작 활동에서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분명히 인식시키고 있다. 우리는 AI가 단순한 ‘도구’에서 진화해 ‘친구’나 ‘멘토’로 자리하게 되는 과정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AI가 인간의 창의성과 감정을 대체할 수 있는 한계 또한 분명히 드러난다. AI와 인간의 긴밀한 협력이 이뤄질 미래에 창작의 형태와 경험이 혁신적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작가의 통찰은 길고도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 지능 기반의 능력주의 종말과 AI와의 공존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는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을 깊이 있게 성찰해야 할 것이다. ‘먼저 온 미래’는 독자로 하여금 미래를 향한 좌절과 희망이 교차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할 것이며, 우리가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를 제시한다. 인간다움의 본질을 지키며 AI와 조화를 이루는 길을 모색하는 것은 앞으로 우리가 마주해야 할 과제이자 숙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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