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되지 않을 권리 : 국제적 동향과 전망

1. 연결되지 않을 권리 : 그 의미와 논의 배경

1) 연결되지 않을 권리의 개념

‘연결되지 않을 권리’란 근무시간 외 직장에서 오는 전자 우편이나 전화, 메시지 등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초연결 사회는 근로자들이 퇴근이나 주말, 그리고 휴가 때에도 직장과 온라인상으로 상시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냈고, 이러한 것들이 온전한 ‘쉼’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모호해지는 일과 생활의 경계를 분명하게 구분하고, 근로자의 사적인 영역을 보호하기 위하여 근무시간 이외에 보낸 업무 연락에 관하여 응답하지 않더라도 근로자가 불이익을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한편, 보낸 연락에 대한 직간접적 제한을 하는 것이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방안이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는 디지털 시대에 부합하는 사생활 보호와 자유권의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이 등장한 개념으로 인식되기 쉽지만, 그 본질은 이미 100여 년 전부터 논의되어 온 근로 시간 제도, 보다 정확히는 휴식제도 논의의 연장선이다.

2) 근로관계에서의 휴식제도와 그 의의

근로관계에 관한 일반원칙을 규정하고 있는「근로기준법」제4장은 ‘근로 시간과 휴식’이라는 표제 하에 제50조에서 제63조까지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근로기준법」상 휴식은 제4장 중 근로 시간에 관한 규율 이외의 조문들, 즉 휴게(제54조), 휴일(제55조), 연차 유급휴가(제60조) 등을 포괄하는 상위의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휴식제도란 ‘쉴 수 있는 권리’들을 규정한 총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노동관계 법령에서 휴식 또는 휴식제도에 관하여 명확한 정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논자(論者)마다 그 개념에 약간 차이가 있다.

노동에 관한 보편적인 국제기준에서는 ‘휴식’ 내지 ‘휴식제도’에 관한 정의를 더욱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우선 우리나라가 회원국인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 이하 ILO) 협약에서는 휴식을 사용종속관계를 바탕으로 한 ‘지휘·명령’ 내지 ‘사용자의 처분 가능성’을 중심으로 판단하여 왔다. 근로 시간을 사용자의 처분에 맡기는 시간으로 정의하면서 사용자의 처분에 맡기지 않는 시간인 휴식 시간이 근로 시간에서 제외된다고 한 ILO 제30호 협약(Hours of Work (Commerce and Offices) Convention) 이후로, ‘사용자의 처분 가능성’을 중심으로 ‘사용자의 처분에 맡기지 않거나 이와 유사한 시간(ILO 제153호 협약), ‘근로 제공을 요구받지 않는 시간(ILO 제180호 협약)’ 등으로 휴식을 정의하고 있다. 회원국의 협약 채택을 통하여 법적 효력을 발생하는 ILO 협약과 달리, 회원국들에게 모두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는 유럽연합의 근로시간 편성에 관한 지침(2003/88/EC concerning certain aspects of the organisation of working time: 이하 2003/88/EC)은 제2조의 정의규정에서 휴식 시간(rest periods)을 ‘근로 시간이 아닌 모든 시간’으로 규정하면서(제2조 제2호), ‘근로시간 편성의 다른 측면인 최소 휴식 기간(Minimum rest periods-Other aspects of the Organisation of Working Time)’에서 근로일 사이 휴식(제3조:daily rest), 휴게(제4조:break), 주간(週間) 휴식(제5조:week rest period)과 함께, 제7조에서 연차휴가(annual leave)를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휴식 시간은 단순히 ‘건강회복’만을 하는 차원이 아니라, 직장과의 단절을 통한 여가시간을 보장하여 ‘근로자에서 시민으로 회복’되는 시간이므로, 휴식제도의 본질 속에서, 그 시간의 ‘자유로운 이용’은 내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2. 연결되지 않을 권리의 법제화

이처럼 휴식제도의 본질 속에서, 근로자가 업무지시를 받지 않을 ‘자유로운 이용’이 내재되어 있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이러한 행위를 하는 것을 제지하기 위해서는 이를 명확하게 금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최근 소위 노동 선진국들에서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여 오고 있다.

1) 프랑스의 엘 꼼리 법상 연결차단권

프랑스는 2016년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최초로 입법적으로 규정했다. 흔히 「엘 꼼리 법(Loi El Khomri)」이라고 하는 이 법은 당시 프랑스 노동부장관인 미리앙 엘 꼼리의 노동개혁법안 중에 포함된 내용으로 같은 법 제55조(노동법전 L.2242-17조) 제7호에 규정되어 있다. 주요한 내용은 노사 간의 교섭으로 업무시간 외 디지털 기기를 통한 업무 지시를 받지 않을 것(연결차단권)을 규정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노사는 ‘연결차단권’와 관련해 그 제한 기간, 조건에 대한 연단위 기준을 수립해야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50인 이상의 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업에서는 근로자대표와의 협의를 통하여 ‘연결차단권’의 상세 조건에 관하여 단체협약을 체결하여야 하며, 만약 단체교섭 과정 중 협약의 내용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 노사협의회에서 ‘연결차단권’ 또는 ‘디지털 기기의 합리적인 사용에 관한 지침’을 (우리나라의 취업규칙에 해당하는) 내부 규정으로 설정해야 한다.

다만 이러한 ‘연결차단권’를 위반하여 지시하는 경우 이를 처벌하거나 제재하는 내용이 엘 꼼리 법에는 규정되어 있지 않다(개인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 부재). 기업에서 자체적으로 이에 관한 규정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엘 꼼리 법의 핵심 내용으로, 즉 기업은 이러한 의무 위반에 대하여 제재(벌금 등)를 받게 하고, 기업의 규정을 위반한 경우에는 기업 자체적으로 징계 등을 통한 해결을 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을 만드는, 자체적 규율 방식을 도모하는 연성법(Soft Law) 방식을 취한다는 것이 프랑스 ‘연결차단권’의 특징이다.

2) 스페인의 디지털단절권

스페인은 2018년 12월 5일 제정된 “개인정보보호와 디저털권리보장에 관한 법”(PDPGDRL)에서 근로자의 권리로서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명시했다. 그리고 이 법 제88조(디지털 단절), 제91조(단체교섭), 제13조(사기업 근로자를 위한 제20조 포함), 그리고 부칙 제14조(공기업 근로자를 위한 제14조 포함)에서 관련 사항들을 규정하고 있다.

스페인의 “개인정보보호와 디저털권리보장에 관한 법”은 프랑스의 입법 사례를 참조하였는 바, 다만 프랑스의 사례에서 나타난 한계를 일부 보완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우선적으로 노동법전에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규정한 프랑스에서는 공무원 등 노동법전의 적용대상이 아닌 경우에는 이 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반면 스페인은 공무원을 그 적용범위에 포함하여 그 대상을 확대하였다. 한편 스페인에서는 2021년 7월 9일 제정된 “원격근무에 관한 법”(LTW)에서도 “개인정보보호와 디지털권리보장에 관한 법” 제88조(디지털 단절)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데, 코로나19 시기 ‘재택근무’ 등이 활성화되면서 업무와 일의 경계가 불분명해질 수 있는 시기에도 ‘디지털단절’이 법적으로 보호된다는 점을 명확하게 규정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다만 이러한 보다 진일보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스페인의 디지털권리보장법은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기업에 대하여 단체협약 및 기업내부 규율을 통하여 ‘디지털차단’에 관한 원칙을 수립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으므로, 그 제재는 기업에 국한된다. 한편 스페인의 기업 제재는 ‘디지털차단’ 위반이 근로시간 위반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산업안전 위반에 해당하는지에 관하여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은데, 일반적으로 근로시간 위반에 대한 제재가 산업안전 위반에 대한 제재보다 낮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 속에서 어떠한 제재를 가하는 것에 대한 명확성이 요구된다는 점에 대한 입법적 보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3) 호주의 연결차단권

프랑스와 스페인의 입법 방식과 유사하게,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규정한 다른 국가들(벨기에, 이탈리아, 포루투갈, 캐나다 온타리오주 등 20여 개국)에서는 기업에서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관한 단체협약 내지 기업내부 규율을 두도록 하고, 이를 위반하는 기업에 대한 제재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물론 세부적인 내용에서는 이탈리아와 같이 업무외 시간에 업무상 지시가 있는 경우 초과근로수당을 지급하도록 하는 것과 같이, 각 국가의 사정에 따른 보완이 있었지만, 큰 틀에서 보면 그 체계는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다만 최근 호주의 연결차단권에 관한 입법에서는 법률로 연결차단권을 인정하면서, 이에 관한 분쟁을 행정당국이 개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호주에서는 2024년 8월 26일부터 공정노동법(Fair Work Act 2009) 제6장에 따라 연결차단권에 관한 법규정이 적용된다. 공정노동법 제6장에서는 근로자의 연결차단권에 관하여, 제333조M(연결차단권), 제333조N(연결차단권을 둘러싼 분쟁), 제333조P 내지 제333조U(관련 행정 명령) 등을 세부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합리적인 연락을 제외하고 근무 시간 외에 사용자로부터 이메일, 전화 또는 기타 모든 종류의 연락을 모니터링, 읽기 또는 응답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는 근로자의 권리’로 규정하면서, 이에 관한 분쟁이 기업 내부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 공정노동위원회(Fair Work Commission)에서 이를 판단하여 사용자에게 최대 9만 4천 호주달러(한화 약 8,500만 원)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이에 관한 분쟁이라고 함은 단순히 연락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업무 관련 연락을 합리적으로 거부한 근로자를 상대로 해고나 징계 등 불이익 조치이므로, 공정노동위원회의 벌금 부과가 연결차단권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라고 보기 어렵다.

3. 연결되지 않을 권리의 확산 전망

연결되지 않을 권리는 휴식권의 완전한 보장이라는 점에서, 특히 최근 디지털 기기의 발전과 업무에의 광범위한 활용 및 노동의 시간과 장소에서의 탈경계가 가지는 위험성을 고려하여 정책적인 대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정책적 대안이 입법(법률)의 형태로 나타나는 국가들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 외에도 독일과 같이 산업별 단체협약을 통해 규율하거나 일본과 같이 행정부의 가이드라인을 통해 규율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근로자의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수단을 마련해 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연결되지 않을 권리 관련하여 국회에서 법안이 제출된 바 있으며, 이에 관한 논의들이 점차 활성화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입법을 포함한 구체적인 정책적 대안이 곧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2019년 7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근로기준법」제76조의2) 시행 이후, 퇴근 후 또는 주말이나 휴가 때 업무 지시를 반복적으로 한 상사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 인정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휴식제도의 본질상 당연히 인정될 수 있는 점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입법·행정적인 별도의 조치가 없더라도, 근로관계에서 이를 위반한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김근주ㆍ강주리ㆍ방준식ㆍ이은주(2021), 『일ㆍ생활 균형제도의 법체계 현황과 정책방향』, 한국노동연구원.

-김근주ㆍ남궁준ㆍ양승엽ㆍ이은주(2023), 『일ㆍ생활 균형 실현을 위한 근로시간 및 휴식제도 개선방안』, 한국노동연구원

-Francisco Trujillo Pons(2023), ‘스페인의 디지털 기기로부터의 해방’, 국제노동브리프 2023년 1월호, 한국노동연구원

저자 :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